<대한민국 헌법>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삶을 계획하고 살아간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는 이를 철저하게 보장한다. 우리는 독재와 권위주의의 시대를 지나고 민주화 시대로 나아가는 지난 10년을 살았다. 우리 사회의 많은 모순들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구상도 제기됐고, 이런 저런 방안들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권력형 부정과 부패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은 각기 자기 몫을 최대한 챙기기 위해 서로 자기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개인의 욕구를 극대화하려는 목소리와 더불어 함께 사는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 충돌을 빚기도 한다. 이에 더해 국가 정책의 실패는 국민들에게 삶에 대한 불안과 국가에 대한 불신을 불러오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들과 다시금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헌법학자인 나는 “헌법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헌법을 알고 지키면, 권력자들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도 없고 사유화할 수도 없다. 주권자인 우리 모두가 “헌법대로 하자”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훨씬 앞당겨 실현할 수 있고, 우리의 삶을 보다 안정되고 행복하게 꾸려갈 수 있다.
사회의 수준이 높아지면 고함을 지르기보다는 조용히 법을 찾아본다. 서로간의 약속인 규범을 확인하고 약속대로 실천하자고 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이런 단계로 나아갈 수준에 왔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우리 스스로 만든 최고법인 헌법을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헌법을 한번이라도 읽어본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가를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헌법을 한 번 읽어보자고 제안하며 이 책을 만들었다. 자유민주평화행복이 우리와 함께, 헌법과 함께 이 땅에 실현되기를 기대하며...정종섭
오늘날 입헌 민주주의 시대에는 어느 나라나 헌법을 가지고 있다. 각 나라 헌법의 역사를 보면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1776년 미합중국의 버지니아 권리장전에서 근대 입헌주의 헌법이 태동한 이래 1789년 프랑스의 인권선언이 있었다. 근대 입헌주의 헌법의 시초들이다. 물론 고대 아테네 헌법과 같이 공동체의 기본적인 틀에 대해 규정한 헌법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공동체 주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고법에 정한 것은 근대 입헌주의 헌법에 와서 비로소 실현됐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조선시대 경국대전에서 국가의 기본적인 틀과 성격을 정하고 있었다. 국가의 기본적인 틀을 정한 최고법이라는 면에서는 경국대전도 헌법이다. 그러나 경국대전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근대 입헌주의 헌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강토를 침략해 점령하기 전까지 경국대전을 포함해 이를 확대한 대전회통이 이 땅의 기본법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을 강점해 그들의 법으로 우리 국민을 지배할 때 우리 선조들은 중국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며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부정하고 우리의 강토를 다시 찾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 시기에 우리의 선조들은 여전히 나라의 정통성을 지키고 찬란한 역사의 맥을 끊어짐이 없이 이어오고자 했고, 이러한 의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헌법』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임시정부헌법』은 시기적으로 각기 『대한민국임시헌장』(1919.4.11.) 『대한민국임시헌법』(1919.9.11.) 『대한민국임시헌장』(1925.4.7.) 『대한민국임시약헌』(1927.4.11.) 『대한민국임시약헌』(1940.10.9.) 『대한민국임시헌장』(1944.4.22.)이라는 이름으로 개정되면서 전개됐다.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 강도들의 손에 빼앗겼던 고난과 역경의 시기에 목숨을 바쳐가며 이런 헌법을 만들어 나라의 맥을 잇고자 한 선열들의 독립 운동에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역사의 뜨거운 피를 느낄 수 있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우리 나라를 되찾고 새롭게 나라를 건국한 헌법이 1948년 제헌헌법이다. 대한민국헌법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헌법은 1952년, 54년, 60년 6월, 60년 11월, 62년, 69년, 72년, 80년, 87년에 각각 개정됐다. 이러한 헌법의 개정에서는 적지 않게 권력자들과 정치 세력들의 권력 장악에 대한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불순한 의도들을 발견할 수 있으나, 1960년과 1987년 헌법 개정은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이뤄졌다.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정한 현대 입헌주의 헌법으로서 그 내용이 상당히 현대적이고 진보적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명목적인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도 있지만, 헌법 제정 회의록을 살펴봐도 한 나라의 헌법을 순전히 명목적인 것만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다. 우리 현대사의 왜곡으로 헌법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한 점은 있으나, 헌법 개정의 세밀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우리 국민은 그 나름대로 역사의 발전과 진보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현대 국가에 합당한 헌법을 만들고자 노력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60년 4.19와 1987년 민주화 대항쟁 이후에 만들어진 1960년 헌법과 1987년 헌법은 우리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의 실현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이때의 헌법은 헌법을 철저하게 살아 있는 헌법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만들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1960년 헌법의 헌법재판소는 문도 열어보지 못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러나 1987년 헌법에서는 헌법재판소를 제대로 만들어 이제는 헌법이 우리 곁에 항상 살아 있도록 만들었는데, 이 당시 우리 헌법재판소는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생겨난 것이었다. 현재까지 10여 년 동안 한국 헌법재판의 성공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아시아의 민주화 국가에서도 헌법의 개정과 새로운 헌법의 채택에 즈음해 우리 헌법재판 제도와 헌법재판의 경험에 많은 주목을 하고 있다.
현대 입헌 민주국가의 헌법은 공동체의 안전 및 존속과 그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국민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공동체를 유지하는 원리와 국가를 구성하는 원리를 정하고 있다. 이를 국가의 구성 원리라고 한다. 우리 헌법에는 법치주의 원리, 민주주의 원리, 복지국가 원리, 단일국가 원리가 헌법의 구성 원리로 구현돼 있다. 이러한 헌법의 구성 원리는 다시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국가 권력의 배분, 작용으로 구체화돼 있다. 이러한 헌법의 원리들과 이들이 구체화되어 있는 기본권 보장과 국가 권력의 조직.작용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우리 헌법이 정하고 있는 내용을 바로 알 수 있고, 또 헌법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지식인 사회에서도 우리 헌법이 어떠한 규범 질서를 구축하고 있으며 우리가 어떤 규범 질서에서 생활하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를 규율하고 있는 규범 질서와는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가 하면 아예 수없이 반복된 원론적인 논의를 새로운 것인 양 반복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논의는 이론의 현실 적합성을 떨어뜨리는 것일 뿐 아니라 현실과 괴리된 형태의 담론을 만든다. 이것은 한 개인의 수준에서 발생할 뿐 아니라 국가 정책의 수준에서도 발생한다.
민주화를 표방하고 있는 현재도 그렇지만 우리의 과거 역사에서 공동체의 현실과 국가 권력 행사의 현실은 헌법과는 분리돼 작동했기 때문에 헌법의 규범적 가치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매우 희박하다.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로 하여금 입헌 민주국가의 실현을 지체하게 만들고, 법치주의가 현실에서 힘을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과거 자유의 결핍에서 오늘날 자유의 포화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우리의 구체적인 삶이 규범의 상실과 혼돈 상태에 있는 것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규범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이유가 된다. 아직도 자유를 옥죄는 국가 권력이 횡행하고 있음에도 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자유의 규범적 의미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의 자유, 그리고 국가권력이 작동하는 권력의 장에서의 자유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할 때 개개인에게도 행동 준칙이 발견되고 국가의 작용에서도 행위 준칙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입헌 민주국가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규범적 판단과 가치 판단, 그리고 행동 준칙이 헌법에 마련돼 있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우리나라 헌법을 먼저 이해하고 이를 일상적인 삶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구체화가 헌법의 발전과 헌법의 개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현재 존재하는 헌법을 어떻게 실현시키는가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헌법의 기본적인 구조와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의 보장
자유와 평등의 보장이야말로 자유 민주주의 헌법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자유와 평등의 보장은 자연인인 개인의 자유와 평등은 물론이고, 단체와 정당의 조직과 활동의 자유와 평등도 포함된다. 단체는 결사의 자유에 의해 조직되고 그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는다.(헌법 제21조 제1항)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고, 복수정당은 보장된다(헌법 제8조 1항). 정당의 자유가 무한정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기본 질서를 지키는 한도에서 인정되며, 이를 위반하면 해산된다(헌법 제8조 4항).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 등 기본권적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를 하는 정당도 당연히 위헌 정당으로 해산된다.
개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으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이를 전제로 개인의 모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다. 평등의 보호(11조), 신체의 자유(12조), 거주 이전의 자유(14조), 직업의 자유(15조), 주거의 자유(16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17조), 통신의 자유(18조), 양심의 자유(19조), 종교의 자유(20조), 언론.출판의 자유(21조 1항), 집회.결사의 자유(21조 1항), 학문의 자유(22조 1항), 예술의 자유(22조 1항), 계약의 자유(10조), 혼인의 자유(36조 1항) 등이 자유를 보장하는 것의 전형이다. 이러한 자유의 영역을 보장하는 것 이외에도 재산권, 선거권, 피선거권, 청원권, 재판을 받을 권리, 형사보상청구권, 손해배상청구권,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환경권 등이 보장되고 있다. 모든 기본권에는 기본권을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돼 있다.
우리 헌법에는 이와 같이 명시적으로 개별적인 기본권을 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의 삶에 필요한 자유가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모두 구체적인 이름을 띠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인간이 살아가면서 발견하게 될 자유도 헌법상 보장된다는 장치를 해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제37조 1항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정해 종교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과 같이 헌법에서 구체적으로 이름을 붙여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아도 헌법적 수준에서 보호돼야 할 자유가 발견되면 당연히 헌법이 기본권으로 보장한다는 것을 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헌법은 인간의 자유의 보장에 있어서는 모든 영역에 걸쳐 완벽하게 아우르는 장치를 두고 있다. 우리 헌법의 제10조와 제37조 1항은 자유의 보장에서 어떠한 허점이나 공백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자유의 보장에서는 일단 완벽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 헌법상 국민이 이런 여러 기본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자유와 평등은 언제나 보장된다. 헌법에서 이런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자유와 평등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침해되지 않는다고 하는, 국가에 대한 개인의 방어권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모든 기본권은 대국가적인 면에 있어서 방어권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이런 면에서 어떤 종류의 기본권이든 자유의 보장은 공통으로 포함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 헌법에서 열거된 기본권과 열거되지 않은 기본권의 보장을 보건대, 이러한 자유의 보장이야말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필요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 헌법이 자유 민주주의를 규범화하고 있따는 징표적인 요소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는 무한한 것이 아니고, 방임의 것이 아니다. 이런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인정되며,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미 칸트의 정언명령에 의해 공식화됐다. 그리고 이 명제는 윤리학의 전제가 되고 있다. 우리 헌법은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국민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국가안전보장, 질서 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인간이 공동체나 타인과 분리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라 한다. 따라서 ‘절대적 자유주의’나 ‘자유방임주의’는 우리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헌법이 규율하는 공동체 질서 안에서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존속과 안전, 평화를 전제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이와 같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도 이러한 범위에서 제한을 받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가치들이 있기만 하면 국민의 자유가 마음대로 제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안보, 질서 유지, 공공복리라는 가치에 의해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법치주의가 요구하는 원칙을 지켜야 하고, 헌법이 자유를 보장한다는 규범적인 가치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자유의 제한에는 과잉 금지 원칙이 적용되고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는 원리가 적용된다(헌법 37조 2항). 과잉 금지 원칙은 자유의 제한에 있어서, 첫째 제한의 목적과 수단이 서로 적합해야 하고, 둘째 그 수단이 적합하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수단 중 최소의 침해를 가져오는 것이어야 하며, 셋째 최소의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그 수단에 의한 제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이든 행정처분이든 재판은 이러한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반돼서는 안 된다. 물론 자유의 제한이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자유의 부정이 돼서도 안 된다.
헌법 상의 자유의 보장은 이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종래 자유에 대해 전개된 많은 철학적 논의와 윤리학적 논의들은 우리 헌법에서 이렇게 정밀한 구조로써 보장돼 있다.
헌버상의 이러한 자유의 보장은 결국 자유라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규범화한 것이다. 자유의 보장은 가치 상대주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가치 상대주의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이 강하게 부각되는 지점이 사상의 자유다. 사상의 자유도 헌법 제37조 2항의 제한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정치적 사상의 경우 사상의 실행이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정당 활동으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이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 헌법의 특색이다. 즉 정당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해산된다(헌법 제8조 4항). 예컨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실천하는 정당은 우리 나라에서 존재할 수 없다. 자신을 공격하는 적에 대해 자유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며, 헌법을 부정하는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의 활동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이 돼 자기 모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나치를 체험하면서 극단적 가치 상대주의가 가져오는 위험을 절실히 깨달았다. 독일에서 위헌 정당 해산은 물론이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와 헌법 적대적 행위들을 규율하고 있는 장치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의 무력 침략에 피 흘리며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온 우리 나라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권력 분립의 제도화
인간의 자유가 국가 질서 속에서 제대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권력의 제도화에서도 이런 자유 보장의 정신이 관철돼야 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경험적으로 확인된 바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지배 욕구가 무한정 확대되고 인간이 상대방의 의지를 저지할 수 있는 영향력과 권력을 가지면 남용의 위험은 언제나 상존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은 국가 권력의 제도화에서도 고려돼야 한다. 국가 권력을 한 사람의 수중에 맡겨놓고 그러한 한 사람이 자비와 선의로 모든 국민에게 헌신하기를 바라는 것은 메시아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고 위험하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경험적으로 확인한 이상 근대 이후 헌법은 이러한 어리석고 위험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근대 이후 헌법은 국가 권력을 철저히 분산시키고 있다. 국가 권력의 분산은 역사적으로 군주의 권력에서 시민의 권력으로 이양되는 과정에서 이뤄졌지만, 그 후 이런 분산은 단순히 분산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분산된 권력간의 기능의 배분과 상호 통제로 이어졌다. 따라서 오늘날 헌법에서 제도화돼 있는 권력의 분립은 권력의 집중을 부정하는 균형적인 권력의 분산과 분산된 권력에 국가의 기능이 배분되는 기능 배분과 이런 권력간의 상호 통제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권력 분립의 제도화는 자유의 보장에서 필수적이다. 권력의 집중이 자유의 부정과 파괴를 가져왔던 경험에 비춰 이런 권력의 분립은 자유의 보장에 필수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분산된 권력들간에 상호 통제가 작용하도록 하는 것은 권력의 남용을 권력 메커니즘 내부에서 스스로 통제하고 완화시키는 것이 되어 권력의 남용에 의한 자유의 침해를 방지한다. 자유의 침해가 있는 경우 국가 배상을 통해 국가로 하여금 침해에 대해 배상하게 하는 것도 자유의 보장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침해가 발생할 수 없게 사전에 통제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우리 헌법은 이러한 권력 분립을 제도화하고 있다. 크게 보면 우리 나라의 국가 권력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헌법재판권 등 4권으로 나눠져 있다. 다시 말해 4권 분립이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4권 분립의 구조는 구체적으로 정부 형태로 제도화돼 있다. 국회가 있고, 행정부가 있고, 법원과 헌법재판소로 나눠져 각기 그에 배분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헌법상 보장된 권력 분립이 작동하는 현실은 권력 통합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것은 과거 독재나 권위주의 통치에서 보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민주화의 기치를 내건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에서도 이런 권력의 통합 현상은 극복되지 않고 있다. 4권 분립이지만 행정부, 그 중에서도 대통령을 중심으로 권력이 통합돼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제왕적 대통령으로 표현되는 권력 통합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국회가 거의 자기 기능을 못해 권력 분립의 한 축이 붕괴된 상태에서 대통령 우위의 권력 행사가 이뤄지는 한 이것은 현대판 군주제이며, 결코 민주정치가 아니다. 국회가 대통령의 권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이 붕당 구조를 가지는 정당의 보스로 군림하고 있으면서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입후보 공천권을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그 본질에서 전체주의적이거나 권위주의 또는 독재이기 때문에 결코 우리 헌법이 구상하고 있는 권력 분립의 현실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도 미국의 대통령제를 형식으로만 수입한 제3세계 국가들과 같이 대통령제는 권위주의 통치를 합법화하는 수단으로 전락돼 있다.
아무튼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 하더라도, 헌법이 원래 구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므로 헌법이 원래 구상하고 있는 상태를 실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 헌법이 취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적 성격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고 이를 현실에 관철할 수 있는 담론의 형성과 제도의 모색이 필요한 것이다.
사유재산의 보장
경제적 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유재산의 보장과 계약과 거래의 자유다. 우리 헌법은 사유재산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제2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재산권은 소급입법에 의해 박탈되지도 않는다. 헌법 제13조는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해 재산권의 박탈을 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유재산의 보장은 경제적 자유와 함께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바탕을 형성하고 있다. 생산 수단의 사유야말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다.
그런데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사유재산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개인 소유가 인정되는 재산권이라 하더라도 그 행사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의 재산이라는 의미를 가져야 한다.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 이것은 헌법 제23조 제2항에서 정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통상 재산권의 사회적 성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재산권이 사회적 성격을 가진다고 해 사유적 성질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유재산이라고 하더라도 공공 필요에 의해 수용 또는 사용, 제한이 필요하면 국가는 재산 소유자의 의사와 관계 없이 강제로 수용, 사용, 제한할 수 있다. 댐을 건설하거나 공공의 필요에 의해 토지를 수용하거나 군사적 훈련을 위해 일정한 토지 또는 재산을 사용하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토지 또는 재산의 사용에 제한을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재산 소유자의 의사에 반해 행해질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재산이 가지는 사회적 성질에서 용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성질도 개인 소유적인 성격을 압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강제적인 수용, 사용, 제한의 경우 반드시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보상은 기본적으로 완전 보상을 의미한다. 한편 토지 사용 문제에 있어서는 개인 소유와 그에 대한 제한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헌법은 이 문제에 대해 따로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헌법 122조). 토지의 특성상 토지 재산권은 다른 재산권과 다를 수밖에 없다. 토지를 미래 세대까지도 향유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 보는 이상 이것은 전적으로 개인적 수준에서만 볼 수 없는 본질적 한계가 있다. 다만 토지의 소유가 시장경제 질서와 얼마만큼 연관이 있는가를 살펴 토지의 개인 소유를 인정할 것인가, 개인 소유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헌법은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기 때문에 토지가 다른 재산과 달리 특성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경제 활동에서 재산으로서의 가치와 기능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
재산의 의미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천한다. 거기에는 개인 소유의 성격을 인정받지 못한 것도 새로 개인 소유의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오늘날 정보 지식 사회에 지적 재산권의 보장은 이런 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지식의 개인 소유 인정 문제에서는 어디까지 공유하고 어디까지 개인 소유로 할 것인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지식 사회에서 모든 지식을 개인 소유로 할 때 지식에서의 빈부의 격차는 엄청난 사회적 문제를 가져오고 지식과 정보의 지배가 경우에 따라서는 인적 지배를 초래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가 정보 지식의 그물망으로 둘러싸여 있는 오늘날, 이 문제는 이제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국제적인 문제다. 정보와 지식에서 강국과 빈국의 문제는 국제 사회에서 남북 문제 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지적 생산물에 대해서도 개인 소유를 인정하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법률로 정하고 있다.
시장경제 질서의 보장
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전형은 자유 경쟁 시장을 전제로 한 시장 경제 질서다. 우리 헌법은 이런 시장경제 질서를 보장한다. 우선 개인 소유권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계약의 자유를 보장한다. 계약의 자유는 헌법 제10조와 제37조 1항에서 도출할 수 있다. 계약의 내용, 상대방, 시기를 자유롭게 정하는 것은 시장경제 질서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다. 이러한 것은 한편으로 사적 자치의 보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논리적으로 보건대 국가가 생겨나기 전에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의 삶에는 사적인 자치 부분이 가장 우선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사적 자치의 우선은 헌법이 생겨난 근대 국가 이후에도 여전히 보장되고 있다. 인간의 사회적 생활에서 사회성이 강조되더라도 이런 사회성이 사적 자치보다 우위에 설 수는 없다. 우리 헌법은 이런 사적 자치를 보장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 헌법 제119조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것은 우리 헌법이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경제 체제로 채택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관치 경제’라는 것은 이러한 헌법의 조항과 조화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시장경제 질서는 자유방임주의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재산권의 보장에서도 보았뜻이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해야 한다고 되어 있찌만, 동시에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국가의 관여가 필요한 경우에는 경제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헌법이 상정하고 있는 완전 경쟁 시장을 전제로 한 자본주의 경제 질서이며, 이러한 경제 질서가 왜곡되고 시장 질서가 깨질 때에는 국가 권력이 개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시장에서의 독점이나 과점의 발생을 국가가 강제력으로 억제하며, 불공정 거래는 거래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규제하는 것이다. 경제 주체간의 힘의 균등을 통해 시장의 실패를 방지하는 것에서 헌법이 구상하는 시장경제 질서의 모습이 드러난다. 한편 기업의 자유와 시장에서의 활동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돼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비자의 권리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힘의 균등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헌법 제124조는 “국가는 건전한 소비 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 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 보호 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시장경제 질서에서 자유와 대치되는 지점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 복지와 분배의 정의다. 분배의 정의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할 경우 경제적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 그러나 복지와 분배의 정의가 경제적 자유와 조화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은 복지와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에 관한 권리를 기본권으로 정하고 있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정하고 있고, 근로의 권리(헌법 32조 1항)와 노동 3권(헌법 제33조)을 헌법적 수준에서 보장하고 있다. 국가는 사회 보장과 사회 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질 뿐 아니라(헌법 34조 제2항), 노인.연소장.여자의 근로와 복지 향상에 국가가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다(헌법 32조 4항, 5항, 제34조 3항, 4항). 이와 같이 복지와 분배의 정의는 복지국가 원리로 우리 헌법에 규범화돼 있고, 자유주의 국가 원리와 조화를 이루며 헌법에 융합돼 있다. 따라서 헌법이 정하고 있는 자유주의는 복지와 배분의 정의를 배제하는 자유주의가 아니며 이를 포용하는 자유주의다.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적 자유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요소로는 정치적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것과 국가 의사 결정 방시겡서 대의제를 채택하는 것이 거론된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예외 없이 대의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대의제 민주주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징표로 거론된다.
대의제는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의제는 국가 의사 결정에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자와 국가 의사를 결정하는 자를 선정하는 자를 분리시킨다. 즉, 국가 정책 결정 기관과 이를 구성하는 국민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구조로 하고 있다. 이런 것은 직접민주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대의제에서 국가 의사를 결정하는 자는 국민의 대표자인데, 예컨대 국회의원이 그들이며, 직선 대통령제에서 선출된 대통령이 그에 해당한다. 대의제에서 국민은 국가 의사 결정 기관을 구성하는 존재인데, 그렇다고 해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대표자에 대해 단순히 통치를 받는 지위에 머누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의 지위에서 대표자를 선출하는 지위를 가진다. 이런 점에서 대의제는 국민 주권과 민주주의 이념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거는 대의제가 민주주의적 성질을 가지는 본질적인 요소이며, 선거권의 보장과 선거의 자유의 보장은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의 보장과 함께 정치적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요소다. 국가 의사 결정에서 대표자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순전히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양심에 따라 결정한다. 이런 결정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선거 구민의 지시나 명령은 금지된다. 만일 선거구민의 지시나 명령을 받게 되면 대표자는 자기 선거구민의 대리인이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고 그 결과 대표자의 결정은 선거구민의 특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된다. 이런 것은 공동선의 실현이나 국민의 전체 이익을 실현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특수 이익이 지배하는 구조가 되면 국가는 특정 세력의 이익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사적인 도구로 전락한다. 대의제에서는 언제나 전체 이익이 특수 이익보다 우선시 되는 관점에서 국가 의사를 결정하고 정책을 수립한다. 그리고 이런 정책 결정에서 대표자는 국민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지지 않고 오로지 차기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정치적 책임만을 진다는 의미다.
이런 대의제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렵게 돼 차선으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대의제는 공동체의 의사 결정에서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고자 하는 장치이므로 직접민주주의와는 그 이념에서 전혀 다르다. 직접민주주의는 경험적인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가 의사를 결정하고 그런 결정이 잘못 돼도 국민이 직접 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뿐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대의제는 이런 사고가 대단히 위험하다고 본다. 이미 버크가 지적했듯이, 이익과 의사는 언제나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즉 국민의 경험적인 의사에 따라 국가 의사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정책을 수행한다고 해서 반드시 국민 전체에게 이익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국민의 경험적인 의사는 잘못된 것일 수가 있으며, 그러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대의제는 의사와 이익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국민 전체의 이익과 항상 일치하는 국가 의사를 정하는 방법을 고안해 제도화한 것이다. 아무튼 대의제는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직시하고 이를 배격하는 새로운 국가 의사 결정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국가 의사 결정의 방식으로 이런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이 선거권을 행사해서 국회의원을 선출해 국회를 구성하고(헌법 제41조 1항) 대통령을 직접 선출한다(제67조 1항). 공동체의 구성원이 가지는 이익이 동질적인 것이 아닌 한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질적인 이익들이 대립하는 상태에서 직접민주주의는 공동선을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직접민주주의를 배격하고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일상적인 국가 의사 결정을 대의제를 통해 수행하면서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는 국민의 직접 결정을 인정하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즉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헌법 제72조)라고 정하고 있다. 이런 것은 국정 운영에서 극히 예외적으로 국민의 대표자가 판단하기에는 고도의 어려움 때문에 국민의 직접 결정에 따라 정책을 확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정에서 잘못 결정한 것에 따르는 결과는 국민의 운명으로 치부한다.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지만 이런 예외적인 제도를 마련해두고 있다. 이런 국민투표도 순전히 직접민주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국민투표에 회부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국민의 대표자인 대통령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예외적인 제도는 그 예외성으로 인해 통상 활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제도는 신임 투표로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 그런 것은 이미 우리가 1970년대 유신 체제에서 경험한 바 있다.
헌법재판의 제도화
자유주의의 충실한 보장은 규범에 의해 자유의 가치가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실현은 실정법에서 자유를 보장하는 것에서 확실해진다. 그런데 규범에서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의 완성은 자유를 재판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자유를 침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재판을 통해 방어하는 것이다. 개인에 의한 개인의 자유의 침해는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으로 해결한다. 이러한 재판 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충실히 지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국가 기관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국가 행위는 구체적으로 입법행위·행정행위·법원의 재판 행위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국가의 행위에 의해 자유가 침해되는 경우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근대 국가의 탄생 이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방법으로 대처해왔으나 그 결과는 헌법재판으로 귀결됐다. 헌법재판은 자유를 헌법에 기본권으로 정해놓고 이런 자유권을 침해하는 일체의 국가 행위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제도다. 통상 자유를 침해하는 행정 행위는 행정 소송으로 먼저 다퉈지고 이를 통해 해결되지만 통상의 행정 소송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 경우는 헌법재판을 통해 해결한다.
국가 질서 안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가에게 주어진 제1의 사명이고 과제다. 그런데 이런 과제를 수행해야 할 국가가 도리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것에서 경험적으로 발견해낸 최종의 제도는 헌법재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헌법재판이 등장한 것은 1948년 헌법, 즉 제헌헌법이지만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실제에서도 법에 정한대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헌법, 즉 현행 헌법이 시행된 시점부터다. 1987년 헌법에서 정한 헌법재판은 한국 민주화의 상징적 징표로 등장한 것이기도 하다. 현재의 헌법재판은 위헌법률 심판(미국에서 말하는 사법심사), 헌법소원 심판, 위헌정당해산 심판, 탄핵 심판, 기관쟁의 심판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 가운데 헌법 소원 심판은 1987년 헌법에서 최초로 도입했다. 헌법소원 심판은 국민이 국가의 권력 작용에 의해 자신의 기본권을 침해당한 경우 바로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하는 제도다. 국가가 당연히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입법을 해야 함에도 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러한 입법부 작위에 대해서도 위헌이라고 다툴 수 있다. 이렇듯 헌법소원 심판 제도는 국민의 기본권의 보호에 있어서 강력한 것이다. 그래서 헌법소원 심판을 헌법재판의 꽃이라고도 한다. 다만 현행 우리 제도에서 빠진 것은 법원의 재판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한 경우 이 법원의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하는 길이다. 이것은 헌법재판 제도를 입법화할 때 법원의 집요한 로비에 의해 제도가 비틀린 것이다. 재판은 본래 그 기능상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재판도 사람이 하기 때문에 오판도 발생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재판에서의 오판은 상소 절차를 통해 바로잡히지만 대법원의 재판까지 다 거친 경우에도 바로잡히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바로 통상의 재판 절차에서 최고심인 대법원의 재판이 형식에서는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실제에서는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경우 이에 대해서도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런 제도가 현행 헌법재판에서는 빠져 있다. 우리는 현재까지 재판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적지 않게 경험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해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채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은 자유의 보장을 위한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헌법재판을 실시해 지금까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 한국의 헌법재판은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으며, 그 성과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헌법재판은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고, 입헌 민주국가를 유지하는 안전판이다. 정치적 자유주의이든 경제적 자유주의이든 이것이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결국 법에 의한 보장으로 귀결되고 이런 법에 의한 자유의 보장은 재판으로 보장될 때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재판에 의한 자유의 보장에서 최후의 안전판은 헌법재판이다. 따라서 오늘날 입헌 민주국가에서 자유 민주주의의 완성은 헌법재판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헌법은 이렇듯 현대 어떤 국가의 헌법과 비교하더라도 상당히 체계적이고 충실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우리 헌법은 자유 민주주의를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 규범 체계나 자유 수호의 법 시스템은 단단하게 구축돼 있다고 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아마 이런 헌법을 차근히 읽고 그 규범적인 의미를 곰곰이 되씹어보면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 미래에 대해 희망적인 전망을 가지고 신나게 헌법을 실현시키는데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런 제도보다도 현실이다. 시스템보다도 시스템의 운용에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을 만든 것은 우리 국민이다. 지금까지 정치.경제.사회.복지 등에서 많은 논의들이 꼬이고, 무리함이 발생하고 더 나아가서는 대형 권력형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 것은 헌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역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권력자들이 주권자인 국민과 헌법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우리 형편은 현저하게 달라졌으리라. 물론 우리 헌법에는 시대에 합당하게 고쳐야 할 부분도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에 가장 잘 응답할 수 있는 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형태에서 현재의 대통령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더 나은 대통령제로 개선할 것인가 또는 의원내각제로 변경할 것인가 하는 점은 우리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길을 찾아야 한다. 또 헌법재판 제도를 더 충실하게 하며, 국회의 기능을 더욱 활성화시킬 방안을 헌법에 정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헌법은 여전히 시대와 우리의 삶의 변화에 열려져 개방된 것이다.
국민이 정한 헌법을 실현한다는 것은 국민의 뜻을 현실의 삶에 구현한다는 것이다. 이를 헌법 실현이라고 한다. 헌법이 실현된 나라를 헌법 국가라고 하고, 입헌주의 국가라고 한다. 헌법을 실현하는 일은 국민과 국가가 함께해야 한다. 헌법이 생활화되고 국가의 작용과 국민의 생활이 헌법에 합치될 때 자유 민주주의가 살현된다. 이것의 출발점이 헌법을 구체화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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