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 개방을 둘러싼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농민과 시민단체들은 엊그제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위를 통해 개방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정부는 개방 강행 입장에 변함은 없지만 어수선한 정국 때문인지 6월 말로 예정했던 쌀시장 개방 발표를 미뤘다. 다만 9월 말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관세화 유예 여부를 통보해야 하는 만큼 발표는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관세화 유예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상 이후 지속된 것으로, 의무적으로 일정물량을 수입하는 대신 쌀 개방(관세화)을 미루는 조치다.
정부는 “더 이상 관세화는 유예할 수 없다”(이동필 농식품부 장관)며 이미 개방을 기정사실화했다. 지난 20년간 두차례 개방을 유예하는 과정에서 의무수입물량이 5만t에서 40만t(전체 생산량의 9%)으로 늘어 부담이 커졌고, 추가 유예할 경우 의무수입물량이 더 늘게 돼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쌀시장을 열고 수입 쌀에 300~500%의 고관세를 매겨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득이라는 논리다. 일본과 대만이 10여년 전 개방을 통해 쌀 산업을 안정화시켰고, 필리핀은 최근 관세화를 추가 유예했지만 대가가 컸다는 얘기도 개방의 논거로 활용된다.
쌀은 시장경제 논리를 넘어 농민의 생존권 및 식량주권 문제와 연계된 예민한 사안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면 정부가 밀실에서 결론을 내려놓고 공청회 등의 요식행위를 거쳐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당장 정부는 쌀 개방에 따른 세밀한 이해득실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쌀농가의 미래가 걸려 있는 구체적인 관세율과 훗날 예상되는 미국 등의 관세율 인하 압력 우려에 “상대가 있어 말할 수 없다”거나 “인하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등 성의없는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상유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협상력을 발휘해달라는 주문에는 “의견을 타진했으나 실현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등 어느 나라 정부인지 모를 얘기를 늘어놓는다. 국회 동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통상법을 앞세워 WTO 통보와 검증절차가 끝난 뒤에나 법제처 판단을 구해 비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쌀 개방은 양곡관리법 개정 사안이어서 통보 전에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는 게 법조계 판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쌀시장 완전 개방 발표를 강행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국론만 분열시킬 게 뻔하다.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앞서야 할 것은 정부의 진정성 있는 여론 수렴과 절차의 투명성이다. 정부는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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