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방송의 인사와 보도에 진정 청와대가 개입했는가?’2014년 5월 공영방송 KBS에 던져진 질문은 이 시대 공영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의심을 품게 하는 것이어서 사뭇 참담하다. 더구나 이 질문은 외부에서 제기된 의혹이 아니다. 내부, 그것도 불과 며칠 전까지 KBS 보도를 총괄했던 전 보도국장의 폭로에서 불거졌다.
KBS 전 보도국장은 세월호 희생자와 교통사고 사망자 비교로 물의를 빚었고, 이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KBS와 청와대를 항의 방문한 직후 사퇴하면서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바 있다. 그는 KBS 기자총회에서 “길 사장이 직접 청와대의 연락을 받고 사퇴를 종용하며 눈물까지 흘렸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길 사장이 ‘해경에 대한 비판은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는 등 청와대의 보도 개입 정황도 설명했다. 길 사장은 즉각 “이 폭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도 믿지 않는 모습이다. KBS 보도본부 부장단이 일괄 사퇴 의사를 밝히며 길 사장 퇴진을 요구했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투표에선 98%가 그의 퇴진에 찬성표를 던졌다. 또 길 사장의 개인 비리를 종합해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KBS의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만 보기 힘든 이유는 KBS가 소중한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란 점이다. 특히 현재 제기된 논란 자체가 언론의 존재 이유마저 부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안이 중대하다. 정치적 중립,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언론의 독립성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KBS 사장과 전 보도국장, 그리고 KBS본부 노조의 진흙탕 싸움에서 공영방송의 정체성은 찾아볼 수 없다.
길 사장은 오늘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보도에 있어 없는 팩트를 지어내거나 있는 팩트를 부정해선 안 된다는 건 언론인의 원칙이다. 비록 선정적 보도라 해도 팩트의 테두리를 벗어나선 안 된다. 길 사장과 KBS가 언론인의 양심과 원칙에 근거한 정직한 팩트를 고백하는 과정을 통해 침몰하는 KBS호를 구조하게 되기를 바란다.
예산을 정부가 사용하는 자금이라고 할 때 연간 예산의 규모는 얼마일까. 이에 대한 정답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다.정부는 일반회계 201조원 이외에 특별회계 18개 종류에 62조원, 기금 64개 종류에 515조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부가 많다 보니 정부도 혼란스럽다. 일반회계에서는 돈이 부족해 국가 부채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는데, 개별 부처들이 관리하고 있는 각종 기금에서는 여유 자금의 이자 계산을 하고 있다.
기금은 2014년 기준으로 1416조원의 적립금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 적립금의 이자로 사업을 하거나 적립금을 재원으로 융자를 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저금리와 민간의 초과 자금 공급시대에 재검토돼야 할 과제를 제기한다. 저금리 시대에 자금을 묶어 두고 발생하는 이자로 사업을 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저금리로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더군다나 민간에서도 여유 자금이 넘치고 있는데 정부가 별도로 자금을 지원하는 창구를 관리할 필요도 줄어들고 있다.물론 공무원연금기금·국민연금기금 등 연금과 관련한 사회보험성 기금은 원금을 건드리면 안 된다. 그러나 일반회계 사업과 구분되지 않는 44개의 사업성 기금은 개혁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보증 기능을 수행하는 9개의 금융성 기금도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 개혁이 필요하다.기금의 개혁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각 기금의 명칭에 있는 발전·진흥·보호·지원 등의 용어에서 보듯이 개별 기금은 부처 이기주의와 이익집단의 협력을 보장하는 고리가 된다. 한 부처가 여러 개의 기금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지관리기금·축산발전기금 등 8개 기금,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진흥개발기금·문화예술진흥기금·문화재보호기금·국민체육진흥기금 등 6개 기금은 하나하나에 기득권이 자리 잡고 있다.최근 문제가 된 원전 비리, 해양 비리에도 기금이 있다. 수산발전기금·원자력연구개발기금 등을 통해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통로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중소기업진흥공단·문화예술위원회·한국토지주택공사·농어촌공사·국민체육진흥공단 등과 같이 기금을 관리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기금 개혁이 곧 정부 개혁인 이유다.물론 그간 기금에 대한 개혁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개별 부처가 마음대로 설치해 운영하던 기금을 1991년 기금관리기본법 제정 이후 예산실이 통제하고 있다. 99년 법 개정을 통해 기금운용평가제도를 도입했고, 2001년 개정을 통해 국회에서 심의하도록 하면서 기금 존치평가도 도입했다. 2006년에는 기금관리기본법을 폐지하고 국가재정법으로 통합하는 노력도 보였다.그러나 정부 개혁이 결국은 무력화됐듯이 이러한 개혁에도 불구하고 칸막이식 운영의 행태는 여전하다. 기금 존치평가를 하고 있지만 외부 전문가가 작성했다는 보고서를 보더라도 관료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지적만 있지 본질적인 지적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 개혁이 결국은 관료가 수용하는 범위, 아니 어쩌면 관료가 ‘승인’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형식적인 법 개정과 별개로 과거의 행태에 근거한 기금 운영은 여전하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자금을 운영할 필요가 있을 때”에 “세입 세출 예산에 의하지 아니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법 규정에서 보더라도 매우 특이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64개의 별도 기금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의 일상화가 형성돼 있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나.이제 정부 개혁의 어젠다로 재정 개혁이 포함되고 그 한가운데 기금 개혁이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일반회계가 정상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정 정책을 위한 자금을 지출하더라도 일반회계에서 하면 되는 것이지 개별 부처가 별도 장부를 차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유 목적 사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기금은 폐지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사업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일반회계를 통해 우선순위를 평가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융자성 자금에 대해서도 융자의 수요와 사업 효과를 평가하고 과다 적립된 자금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 보증과 관련한 기금도 과다 지원된 정부 출연금을 회수하는 것 또한 개혁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각종 정책금융에 대한 개혁도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기금 개혁은 단순히 자금을 확보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정부 개혁의 연장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이원희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획예산처 기금운영평가단, 경실련 예산감시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쳤다. 전문분야는 재정. 저서는 『시민이 챙겨야 할 나라 가계부』 등.
이틀 전 마감된 6·4 지방선거 후보등록 상황을 보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로 등록한 8733명 가운데 전과기록을 가진 이가 40.1%(3505명)에 달했다. 후보 10명 중 4명이 전과자다. 민주화운동이나 시국 사건으로 전과를 기록한 후보는 광역단체장 후보군을 제외하면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음주·무면허 운전을 비롯해 폭력·상해·도박·사기·횡령 등의 전과자들이 급증했다. 파렴치범, 잡범 출신들도 많다. 전과 16범이 완도군수 선거에 버젓이 출마했고 마약·윤락이나 분묘 도굴 같은 낯 뜨거운 범죄로 전과자가 된 이들도 후보로 등록했다.
그뿐 아니다. 병역 미필자도 14%에 달했고 10명 중 한 명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더 우려되는 건 전과자 후보 비율이 2006년(10.8%)과 2010년 지방선거(12%)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선관위가 후보의 전과 신고 기준을 금고형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강화한 게 한 원인이라 한다. 그렇다 해도 범죄는 범죄, 전과는 전과다. 8년 새 전과자 후보가 4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건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특히 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 가운데 전과자가 넘쳐나는 건 묵과할 수 없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한 후보 중엔 전과 9범과 8범이 각각 포함돼 있다. 말로는 공천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실제론 전과나 비리 전력을 따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민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다. 그러려고 여야는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뒤집었나. 많게는 연간 400억~500억원씩 국민 세금을 국고보조금으로 받아가는 두 정당의 공천 수준이 겨우 그 정도인가. ‘정당공천이 전과자 공천인가’라는 비아냥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결국 유권자들이 정신을 차리는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간 5차례의 지방선거에 당선된 뒤 선거법 위반이나 비리로 형사처벌을 받아 물러난 자치단체장은 102명(전체의 8.3%), 지방의원은 1230명(4.7%)에 달한다. 정당들이 함량 미달의 전과자들을 대량 공천해도 유권자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뽑아주니 그런 부끄러운 기록이 나오는 것이다. 이들의 낙마로 인한 행정·의정 공백은 물론 재·보궐 선거비용까지 고스란히 유권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재·보선 한 번 치르는 데 평균 7억원이 든다. 2002~2013년 치러진 재·보선 비용만 1900억원이 넘는다. 국민이 무슨 봉인가.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후보의 자질과 정책을 기준으로 투표해 파렴치한 전과자들이 공직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선관위도 개별 후보의 선거 벽보에 전과 경력을 큼지막하게 기록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마치 담뱃갑에 흡연의 위험을 경고하듯 말이다. 그 정도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악화(惡貨)를 걸러낼 수 있다. 유권자가 분노할 줄 모르면, 파렴치한 공천은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양씨는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 아내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 “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다. 수협 통장에 돈 있으니 큰놈 등록금으로 써라. 지금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선체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식당칸에 있던 아르바이트생과 조리담당 직원을 탈출시킨 뒤 한 명이라도 더 대피시키려고 마지막까지 온갖 애를 썼다는 게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결국 세월호 침몰 한 달 만에 한 손에 무전기를 쥔 모습으로 인양됐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15일 공소장을 통해 세월호 침몰 순간과 선원들의 탈출 상황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을 두고 먼저 탈출한 이유가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수사본부는 일부 선원에게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승객이 대기하고 있으면 자기들의 구조가 가장 마지막에 이루어진다는 점을 알고 먼저 탈출했다는 게 수사 당국의 판단이다. 하지만 사무장 양씨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자신의 목숨보다 승객과 동료를 먼저 챙기기 위해 위·아래가 뒤집어지고 물이 차오르는 위험천만한 선체를 뒤지고 다녔다. 세월호 간부급 선원으로는 유일한 사망자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친 선장·선원의 비겁하고 반인륜적인 행위다. 승객에게는 선실에서 대기하라고 해놓고 몰래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는 통렬한 반성을 넘어 집단자학 증상까지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면수심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의인(義人)이 적지 않았다. 승무원 박지영씨는 학생들의 대피를 돕다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김기웅·정현선 승무원 역시 남은 승객을 구하기 위해 선실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 남윤철·최혜정 교사도 끝까지 제자의 탈출을 돕다가 희생됐다. 단원고 정차웅군은 또 어떤가. 구명조끼를 학우에게 벗어주고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들의 모습은 참사 현장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과 같다. 그동안 양씨의 가족들은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당국은 실종 상태인 양씨를 한때 출국금지 명단에 올려놓는 실수를 저질렀다. 가족들은 죄인이 된 심정으로 실종자 가족이 머무는 체육관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숨죽여 슬픔을 달래야 했다. 정부는 박지영·김기웅·정현선씨처럼 양씨 역시 의사자로 인정해줘야 한다. 아울러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여준 다른 이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최대한 예우를 다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경악과 분노, 자책에 짓눌려 있다. 진심 어린 애도와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갈 채비를 해야 한다. 이때 양씨와 다른 승무원·교사·학생의 의로운 모습은 험한 바다의 등대가 될 것이다. 악이 아니라 선,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이 넘쳐흐르는 세상을 받칠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세월호의 실질적 선주(船主)로 알려진 유병언(전 세모그룹 회장)씨가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 그의 자녀와 핵심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청사에 나오지 않은데 이어 유씨까지 수사 거부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이제 검찰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유씨 일가에 대해 법 원칙의 엄정함을 보여야 할 때가 됐다.유씨 일가와 관계사들의 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어제 유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횡령·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다. 유씨에 대한 영장 청구는 불가피했던 것으로 본다. 앞서 검찰이 유씨에게 어제 오전 10시까지 검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했으나 유씨는 별다른 입장도 밝히지 않은 채 불응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자녀들의 연이은 불출석과 잠적, 계열사 임직원에 대한 유씨의 영향력 등에 비춰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 사무국 대변인은 지난 15일 금수원 앞에서 “유 전 회장이 금수원 내에 있다면 정문으로 나올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유씨는 어제 인천지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씨가 금수원 안에 없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대변인의 말이 허언이었는지 허탈감을 자아내고 있다. “깊이 사죄한다”는 침몰참사 6일 후의 사과문도, “법적·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유씨 자신의 입장 발표도 시간 끌기에 불과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 아닌가. 신도들의 보호막 뒤에 숨어 있는 유씨 일가의 모습에 환멸만 느껴질 뿐이다.
세월호 운영사인 청해진해운과 유씨 일가의 검은 커넥션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숨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더욱이 유씨가 상습 과적과 무리한 운항에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나온 마당이다. 지금이라도 유씨와 그 일가는 국민 앞에 나와 검찰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피의자로서의 방어권은 조사 과정에서 행사하면 된다. 만약 유씨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까지 거부한다면 검찰은 수사력을 총동원해 유씨 일가와의 전면전에 나서야 한다. 사법정의에 도전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유씨 일가가 깨닫게 해줘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앞으로 규명돼야 할 핵심 사안 중 하나는 연안 여객선 안전관리와 정부 감독 부실 문제다. 해양수산부와 산하 기관·협회가 세월호의 무리한 증축 등을 제대로 감시했다면 운항 허가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박 구조 변경의 안전 검사를 하는 곳이 한국선급이다. 해수부 업무 수탁 기관이다. 동시에 세월호의 화물 과적과 부실 고박(화물을 묶어 고정하는 것)이 적발됐다면 세월호는 사고 당일 출항도 못했을 것이다. 이 업무를 맡는 곳이 한국해운조합이다. 세월호 침몰의 핵심 원인은 증축 등에 따른 복원력 상실과 고삐 풀린 화물 관리다. 두 기관의 부실 검사는 해수부 출신 관료들이 재취업하면서 정부 감독의 칼날을 무디게 한 것과도 맞물려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사안인데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유착과 비리는 국회와 감사원 감사의 사각지대가 됐다. 여객선 안전관리의 적당주의·온정주의가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었겠나. 감사원이 해수부·해양경찰청·한국선급·한국해운조합 등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한국선급은 감사 대상인데도 10년 동안 감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감사원이 사고 발생 한 달이 다 돼서 선박 안전관리에 대한 고강도 감사에 나섰으니 뒷북 감사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전원 구조”의 집단 오보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정부 초동 대응의 혼란을 부른 그 문제의 전말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된 국민의 안전에 관한 감사는 상시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대형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필요 시 민간 전문가를 수시로 활용하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의 상당수는 회계사다. 변호사·경제학자·공공정책 분석가를 비롯한 전문가들도 포진해 있다.
감사원은 정부, 공공기관 회계 감사와 행정기관 직무 감찰을 하는 헌법 기관이다. 요체는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를 감사하는 곳이다. 감사원이 그 원점에 서면 우리 사회는 더 깨끗해지고 안전해진다.
세월호 선사(船社)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 유 전 회장과 장남 대균씨가 검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해외 체류 중인 다른 자녀들도 귀국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검찰은 그동안 유 전 회장의 측근과 관계사 대표 등 9명을 구속했지만 이들은 ‘깃털’에 불과하다. 정작 몸통은 손도 못 대고 깃털만 뽑은 채 수사가 장기화하는 것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다.유 전 회장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터다. 그는 1999년 설립된 청해진해운의 ‘1호 사원’임을 보여주는 사원번호 ‘A99001’을 갖고 있으며, 청해진해운에서 매달 고문료 명목으로 ‘사실상 급여’ 1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청해진해운의 수익이 유 전 회장 일가로 흘러들어가 회사 재무구조가 악화됐고, 이로 인해 세월호의 안전과 인력관리에 필요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유 전 회장이 그럼에도 종교와 신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온 국민을 우롱하고 사법질서에 도전하는 행태이다. 유 전 회장은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사죄하고 조사에 응해야 마땅하다.수사가 난관에 부딪친 근본적 원인은 유 전 회장 일가에게 있지만, 검찰 또한 안이하고 무능했다. 유 전 회장 일가가 순순히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은 수사 초기부터 제기됐던 바다. 당연히 검찰은 이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일과 함께 소재 파악에도 총력을 기울였어야 한다. 그러나 신병 확보 대책에 손 놓고 있던 사이 유 전 회장 일가의 행적은 오리무중이 돼버렸다. 수사를 지지하는 여론만 믿고 방심하다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검찰은 지난 16일 유 전 회장이 출석 요구에 불응하자 전격적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내일로 예정된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나오기를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출석할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실질심사를 위한 구인영장이 유효한 22일까지 유 전 회장이 나오지 않을 경우 검찰은 어찌할 텐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검찰은 이제라도 가용 수단을 모두 동원해 유 전 회장과 자녀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법망을 유유히 피해다니는 그들을 세월호 참사의 희생·실종자 가족들이 본다면 어떠한 마음이 들겠는가.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망정 피눈물을 흘리게 해서야 되겠는가. 검찰은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해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끝까지 추적해 검거하겠다. 법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한다. 반드시 이 다짐대로 하기 바란다.
어제 광주광역시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34주년 기념식은 박근혜 정부 들어 훼손되어온 5·18민주화운동의 ‘자리’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기념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둘러싼 논란으로 5·18유공자와 유족, 시민사회단체 상당수가 불참해 반쪽 행사에 그쳤다. 박 대통령은 기념식에 불참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별도의 추념식을 가졌다. 5·18기념식의 파행은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은커녕 참석자들의 제창도 거부하면서 예고된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월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고,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이다. 지난해 이미 새누리당이 여당인 국회에서 이 노래를 기념곡으로 지정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무엇보다 5·18유공자와 유족, 광주 시민들이 절실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를 원하는데도 한사코 정부가 이를 거부해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기념식마저 최악의 파행을 빚게 한 것이다.5·18민주화운동의 가치에 대한 뒤틀린 역사인식은 이날 반쪽 기념식 행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기념식장에 마련된 유족석의 상당 부분은 보훈단체 회원과 동원된 사람 등이 채웠다고 한다. 급조된 합창단의 일부 단원은 ‘오월의 노래’가 연주되는 동안 입조차 열지 못하거나 립싱크를 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오죽하면 유족들이 “가짜 추모객들까지 동원해 정부가 지키려는 가치가 무엇이냐”고 울분을 토했을까 싶다. 보훈처는 경과보고에서 5·18민주화운동의 발발 배경과 진행, 무자비한 정부 폭력에 의한 희생의 실상을 축소하거나 왜곡했다. ‘계엄군의 광주시민 해산 시도’라는 표현으로 계엄군의 폭력진압을 불법시위 해산 정도로 둔갑시켰다. 박근혜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벌어져온 5·18민주화운동의 의의를 부정하고 폄훼·조롱하는 반역사적 책동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알 만하다.세월호 참사로 슬픔과 고통에 빠진 국민을 보듬고 하나로 모으는 통합과 화해의 리더십이 절실한 때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와중에서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이념적으로 편향된 대선 캠프 출신 인사를 내정하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주임검사를 임명하는 반통합 인사를 계속하고 있다. 반쪽짜리 5·18기념식을 초래한 것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여전히 통합의 정치보다는 국민을 편 가르고 갈등을 야기하는 분열의 정치에 빠져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안전행정부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진에 뉴라이트와 기독교계 인사를 대거 임명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안행부는 세월호 침몰사고 중간 수사 결과가 발표되던 지난 15일 이사진과 감사 등 5기 임원 9명의 명단을 사업회에 전격 통보했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등 뉴라이트재단(현 시대정신) 출신이거나 박상증 목사와 개인적·종교적으로 연결된 인사가 주축이라고 한다. 가뜩이나 지난 2월17일 박 목사의 이사장 임명에 반대해 이사장실 점거 농성을 벌이던 민주·시민사회단체는 “민주화운동 전체를 희롱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난국에 어쩌자고 이런 무리수까지 두는지 놀라울 따름이다.우리는 박 목사의 이사장 임명이 부적절한 점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적극적 지지자로서 비정파성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임원추천위원회와 이사회에서 이사장을 추천하도록 한 사업회 정관, 그리고 그동안의 관례와도 어긋나는 인사였기 때문이다. 상위법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이사장과 임원 임면권이 안행부 장관에게 있어 문제가 없다는 식의 안행부 논리는 옹색하다. 낙하산 인사는 현 정부에서도 척결 대상이고, 기본 정신이나 취지에 맞지 않은 각종 편법과 비정상은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으로까지 지목되는 마당이다. 안행부는 박 목사를 이사장에 임명한 것과 똑같은 방식과 논리로 임원추천위와 이사회 추천 인사를 무시하고 이번 인사를 강행했다. 강병규 장관이 국회에서 세월호 구조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질타를 당한 바로 다음날 말이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지 않았음을, 아니 달라질 뜻조차 없음을 확인해준 꼴이다.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일은 정권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뉴라이트가 현대사에 이어 민주화운동사까지 자기 입맛에 맞게 다시 쓰려고 한다면 큰 오산이다. 소모적인 논쟁과 거센 반발을 부를 뿐 결코 성공할 수 없다. 90일 넘게 이사장실 점거농성을 벌이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불법임명 거부 국민대책위원회’는 농성을 계속하며 5·18민주화운동과 6월항쟁 기념식 등 정부가 주최하는 행사에도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세월호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든 국론을 모으려고 혼신의 노력을 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안행부의 인사 재고와 정치권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민주화운동의 업적까지 침몰시켜서는 안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세월호 참사 관련 대(對)국민 담화를 발표한다. 담화엔 세월호 사고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국가 재난 방재 능력을 끌어올릴 복안이 담길 것이라는 예측이다. 박 대통령은 앞서 17일엔 청와대에서 유가족 대표들을 만나 "정부의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다시 사과드린다"고 했고, 18일엔 명동성당의 세월호 희생자 추모 미사에 참석했다.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무회의(4월 29일), 종교 지도자 간담회(5월 2일), 진도 사고 현장(4일),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6일)에서도 사과했다. 19일 사과하게 되면 여섯 번째가 된다. 유가족과 국민은 대통령의 사과를 들을 만큼 들었다. 이젠 앞으로 세월호 같은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재난 방비 능력을 정비할 것인지, 공직 사회의 무능·비리는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구체 실천 방안을 듣고 싶을 것이다.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밝힌 세월호 대책 가운데는 총리실 산하에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이 있다. 재난 담당 조직은 일이 터질 때마다 덩치를 키워왔다. 행정자치부 산하 1급 조직(소방본부)이던 것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후 차관급 독립 외청(소방방재청)으로 격상(格上)했고, 이 정부 들어 행정안전부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바꾸면서 장관이 책임을 맡는 안전관리본부를 신설했다. 국무총리 직속 기구로도 재난 대응에 실패하면 다음번엔 청와대가 재난 행정을 직접 관장하겠다고 할 것인가.대한민국을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로 탈바꿈시킬 획기적 묘책은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없다. 재난 대응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재난 대처 인프라 강화, 재난 예방과 신속 대처를 위한 정부 시스템 정비, 공무원 조직의 무사안일 방지책, 안전·인명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국민 인식의 전환 같은 일들이 종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남은 임기 45개월 안에 '국가 개조(改造)' 수준의 이 모든 일을 이뤄낼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임기 중 반드시 이뤄놓을 수 있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되, 그와 함께 다음 정부가 추진해갈 장기(長期) 청사진과 그 청사진의 기초를 임기 내에 어떻게 닦아놓을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대통령의 진심은 사과를 되풀이하고 유가족들을 면담한다고 해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을 안도하게 하는 정책을 하나하나 실행함으로써 대통령이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갈 수밖에 없다.뭣보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총리와 장관 인선(人選)을 통해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대통령 지시만 맹목적으로 따를 듯한 인물들이 다시 전면에 나서면 아무리 막강한 조직을 신설하고 어떤 안전 대책을 내놔도 대한민국이 더 안전해질 것이라는 신뢰를 주기 힘들 것이다. 국민은 저 사람이라면 대통령에게 쓴소리 해가며 소신 있게 일할 것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서 대통령의 진짜 속마음을 가슴속에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17일 밤 KBS 메인 뉴스 '뉴스9'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전날 밤 KBS 기자 총회에서 한 '청와대 보도 개입' 주장을 보도했다. '뉴스9'은 길환영 사장이 김 전 국장의 주장을 부인했으며 19일 사원과 대화하며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고도 전했다. 세월호와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 논란으로 지난 9일 물러난 김 전 국장은 기자 총회에서 "내 사퇴가 청와대 뜻에 의한 것이었고 경영진이 정부 눈치를 보며 보도에 수시로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KBS 내부 갈등을 공영방송 주요 뉴스를 통해 접한 시청자들은 참담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갖가지 부조리와 불법· 탈법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였다. 그 와중에 나라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에서 내부 폭로로 보도국장이 교체되고 기자들의 제작 거부 결의와 부장·팀장들의 보직 사퇴로 번졌다. 노조는 파업 투표와 사장 출근 저지에 나서겠다고 했다. 신임 보도국장 임명에도 청와대 입김이 있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보고 있기 민망한 일들이 하루가 다르게 이어지고 있다.청와대가 보도국장 인사에 간여하고 경영진이 뉴스 보도를 부당하게 간섭했는지 여부는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그러나 정치 개입 논란, 사장 퇴진 요구로 이어지는 내부 갈등 행태는 우리 공영방송에서 익히 보던 것이다. 이념 성향별, 노조별, 직군별로 복잡하게 갈린 사내 조직들은 정권이 바뀌거나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을 정치 쟁점으로 확대하곤 했다.KBS는 국가 재난 방송 주관사다. 재난이 터지면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방송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속에서도 제 역할 못하고 비틀거리는 KBS를 어느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겠는가. KBS는 이번에 다시 공영방송으로서 목숨처럼 지켜야 할 보도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적지 않은 의문을 남겼다. KBS 경영진은 인사와 보도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할 경우 자신들의 거취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KBS 내부 갈등은 정치권이 독점한 사장 선임 방식부터 경영 비효율까지 총체적 개혁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일깨우고 있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지난 13일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23층 규모의 신축 아파트가 무너져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북한은 사고 발생 닷새 만인 18일 관영 매체들을 통해 "시공을 되는 대로 하고 그에 대한 감독 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일군의 무책임한 처사로 엄중한 사고가 발생해 인명 피해가 났다"고 전했다. 그러나 피해 규모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아파트 완공 이전에 92가구가 먼저 입주한 상태에서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이번 사고는 규모가 커서 어떻게든 외부에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해도 북한이라면 지금껏 해 온 것처럼 뻔히 드러난 사실까지 딱 잡아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엔 관영 매체들이 노동당과 내각, 군·평양시 책임자들이 일제히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것까지 상세히 보도했다. 그만큼 북 내부 사정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평양은 '평양 공화국'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로 북의 핵심층 250만 명이 사는 곳이다. 김정은은 '혁명 수도(首都)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10만 호 살림집 건설 사업'을 밀어붙였다. 이번에 무너진 아파트도 이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졌다. 평양 민심이 흔들리면 김정은 정권 역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북한 권력이 이례적으로 머리를 조아린 것은 평양 주민의 분노가 김정은에게까지 번져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북은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 전체가 슬픔에 잠겨 있는데도 불구하고 온갖 비방과 욕설·막말을 퍼부어댔다. 그렇더라도 북의 아파트 붕괴 참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북이 세월호 사태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달라야 한다. 대형 재난과 사고 지원은 같은 민족으로서 해야 할 인도적 조치다. 북에 인명 구조와 사고 수습 지원을 제안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만하다. 이런 일이 쌓이게 되면 언젠가는 북 주민들이 김정은 권력과는 근본이 다른 대한민국의 진면목을 깨닫게 될 것이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을 공식화한 15일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헌법 해석으로는 우리의 자녀, 손자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며 "필요성이 인정되면 각의(閣議) 결정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올여름쯤 해석 변경에 성공할 경우 연말까지 자위대법 및 미·일 방위지침을 개정해 집단 자위권 행사에 필요한 법적 기반을 정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하고 있다.집단 자위권은 1945년 채택된 유엔헌장 51조에 따라 모든 나라에 부여되고 있는 권리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헌법 9조의 정신에 비춰볼 때 '헌법이 인정하는 필요 최소한도의 자위권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해석을 지금껏 유지해왔다. 일본 헌법 9조는 전력(戰力·군대) 보유와 교전권(交戰權)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을 통해 일본은 국제사회에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자민당 의원들로 구성된 내각에서 이 해석을 바꿔 집단 자위권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다.일본 역대 정부는 만약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하려면 해석 변경이 아니라 정식 개헌(改憲)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금 일본 국회의 의석 분포나 국민 여론을 볼 때 개헌 시도는 불가능하다. 개헌 발의에만 중의원·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이 필요하지만 현재 참의원에서 자민당과 연립 공명당 의석을 합해도 절반을 살짝 넘는 수준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도 집단적 자위권에 반대하는 의견이 훨씬 많다. 국민투표에서 국민 과반(過半)의 찬성을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당초 개헌을 하려 했던 아베가 중도에 포기하고 '해석 개헌'이라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방식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헌법 조문이 담고 있는 정확한 뜻을 알고 싶다면 최고재판소(대법원)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는 것이 민주국가의 상식이다.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할 수 있는 나라는 삼권분립(三權分立) 정신이 해체된 비정상 국가라 할 수 있다. 아베가 해석 개헌을 통해 일본 헌법 9조를 파괴한다면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민주주의 법치국가로 대우받지 못할 것이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여야(與野)는 오는 27일부터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원내대표들이 바뀐 뒤 두 번 만의 공식 회담에서 나온 합의이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국정조사는 필요하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조사로 안전 사회에 대한 종합 보고서가 나왔으면 하는 기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야가 국정조사 개시 시점을 불과 10일 뒤로 정한 것은 서둘러도 너무 서두른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우선 진도 현지의 실종자 가족들이 "실종자 수색이 끝날 때까지 정치권 차원의 조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27일까지 실종자를 다 찾을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조사 대상인 해양수산부장관과 해양경찰청장만 해도 지금 실종자 구조와 사고 수습을 총괄 책임지고 있다. 해수부장관은 진도에 상주하고 있다. 이들에게 국정조사에 응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다. 이들은 16일 국회 상임위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정치 일정상으로도 27일 국정조사 개막 후 1주일 뒤에는 지방선거가, 7월에는 '미니 총선'이라고 불리는 국회의원 재·보선이 예정돼 있다. 정치권 속성상 눈앞에 닥친 선거보다 국정조사에 더 힘을 쏟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미국 정치권이 9·11 테러를 당하고 초당파적인 조사위원회 활동을 시작한 건 사건 발생 후 442일이 지나서였다. 미국 의회가 우리보다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번 세월호 국정조사에서는 사고 원인과 구멍 난 구조 체계, 이번 사태를 불러온 업계와 감독 기관의 유착 실태를 파헤쳐야 한다. 더 나아가 나라 전반의 안전 시스템과 국민 의식을 개혁할 수 있는 방안까지 찾아내야 한다. 이 일을 제대로 해내려면 여야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사전 검토와 준비 기간을 가져야 한다. 조사 대상인 정부와 업계, 관련자들도 마찬가지다. 27일까지 불과 열흘 동안 뭘 할 수 있겠는가. 이 상태에서 국정조사에 들어가면 TV 카메라 앞에서 증인들을 호통치고 여야가 삿대질만 주고받다 끝나는 '정치 쇼'가 되풀이될 게 뻔하다.지금 중요한 건 국정조사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통해 얼마나 완성도 높고 실천 가능한 안전 보고서를 내놓고 그걸 토대로 얼마큼 실행하느냐가 핵심이다. 이 목표만 이뤄낼 수 있다면 조사를 언제 시작하느냐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렇게 날림으로 국정조사를 하려는 것은, 여당은 빨리 문제를 넘겨버리고 싶고, 야당은 선거에 이용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민의 안전'은 겉으로 하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한 원인은 여객선 안전에 대한 감시·감독이 엉터리였다는 점이다. 인천항 운항 관리자가 화물 과적과 고박(固縛) 상태를 철저히 점검하기만 했어도 세월호가 침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항 관리자들은 화물 과다 적재 여부를 자기 사무실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할 정도로 운항 감독을 소홀히 했다. 그 운항 관리자들은 한국해운조합 소속이다. 해운조합은 해운사들 회비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운항 관리자가 까다롭게 여객선에 대해 시비를 걸면 그의 일자리가 온전할 수 없다.이런 말도 안 되는 여객선 감독 시스템은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이 기안(起案)했다. 해수부 공무원들은 자신들 업무를 해운조합에 위임해놓고는 그 조합에서 퇴직 후 일자리를 챙겼다. 역대 해운조합 이사장 12명 가운데 10명이 해수부 출신이었다.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세월호 수사에서 한국해운조합·한국선급 등 해수부 산하기관 관계자들이 수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감시 대상에게 감시를 맡기는' 말도 안 되는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그 단물을 빼먹은 해수부 공무원들의 책임을 물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감사원이 해수부의 '정책 실패'를 어느 정도 추궁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관료들이 만든 제도는 실무자에서 장관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결재(決裁) 라인을 거치면서 책임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누가 만든 제도인지 알 수 없으니 책임 규명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정책 실패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것은 내 책임'이라며 사표를 던지는 공무원도 없다.2009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52개 중앙부처 공무원 26만명 가운데 직무 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 성적이 불량해 면직·해임·파면으로 퇴출된 공무원은 연평균 20명에 불과했다. 2009년부터는 3급 이상 고위 공무원 경우 근무 평가에서 2회 이상 최하위 등급을 받으면 적격 심사를 거쳐 직권면직이 가능한데도, 실제 이런 사유로 적격 심사를 받은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문제가 생겨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으로 넘어가곤 해왔다.관료들의 명백한 실책에 대해선 책임 추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정책 결정의 각 단계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히 기록으로 남기는 정책 실명제(實名制)가 시행돼야 한다. 그래야 국가에 기여를 한 성공한 정책의 담당자에 대해선 합당한 포상도 가능할 것이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민주화 투쟁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다. 그 한복판에 5·18 민주화운동이 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 운동의 유혈진압과 관련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오랜 투쟁 기간 동안 국민들이 애창했던 노래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여러 나라로 수출돼 즐겨 불리는 인류 공통의 유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노래를 백안시하는 정부 탓에 18일 광주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34돌 기념식은 의미가 크게 퇴색했다. 예년과 달리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고, 유족과 관련 단체, 지역사회 등이 바라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도 이뤄지지 못했다. 5·18에 관련된 많은 사람과 야당 인사들이 참석하지 않은 관제행사였을 뿐이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기념사에서 ‘어려운 때일수록 국민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국민통합을 방해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
국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의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이미 지난해 6월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바 있다. 전국 시·도의회와 시·군·구의회 의장협의회도 같은 결의를 했다. 국민들의 절대다수도 이를 지지한다. 하지만 정부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등 일부 극우세력의 주장을 대변하는 이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며 기념곡 지정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고, 대통령도 이를 방치했다. 그 바람에 5·18 민주화운동 국가기념식이 시작된 1997년 이후 계속된 이 노래 제창이 기념식에서 사라졌다. 정 총리는 최근 ‘국회 결의안은 권고사항’이라며 “기념곡 지정에 강한 반대 여론이 있어서 잘못하면 국론이 분열될 수 있다”고 했다. 총리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부인한 꼴이다.
정부의 ‘고의적 태업’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국회의 책임도 적잖다. 국회가 의지가 있다면 특별법 등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항목을 집어넣으면 된다. 아울러 5·18 민주화운동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이들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 규정도 함께 만들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철저하게 따지고 비극의 재발을 막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 지난주 곳곳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는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 범국민진상조사위 구성 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으며, 이를 위한 시민 서명운동도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16일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과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19일 대국민 담화에선 한층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기 바란다. 여야도 이미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한 만큼, 이번 임시국회에서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의 뜻을 담은 방안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은 이번 비극을 제대로 성찰하고 그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나라 전체를 새롭게 바꿔나가기 위한 것이다. 몇몇 관련자를 처벌하고, 새 기구나 제도 몇 개 만들고, 경제적 지원을 하는 등 과거 여러 차례 되풀이했던 땜질식 처방으로는 희생자 가족들과 온 국민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병을 덧나게 할 뿐이다. 희생자 가족들이 성명에서 밝힌 대로 “치유의 시작은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자기반성이고, 그 완성은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비극의 재발을 막을 확실한 재난방지시스템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있은 다음에야 가능하다. 특별법에는 이런 정신이 담겨야 한다.
그 출발은 범국민적 조사위원회의 구성이다. 세월호 참사는 선원들이나 선사 말고 해경과 정부에도 큰 책임이 있다. 침몰 이후 구조와 수습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 언론에 대한 실망과 불신은 심각할 정도로 커졌다. 국민적 신뢰를 잃은데다 책임의 당사자이기도 한 정부가 진상규명과 수습책 마련의 온전한 주체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이 그 자체로 국민적 치유의 과정이라면, 가장 먼저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할 피해자 가족을 비롯한 범국민적 참여는 당연하다.
조사 대상에도 성역과 제한이 없어야 한다. 비극이 배태됐던 참사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 과정에 걸쳐 하나하나 잘못을 살펴보고 그 책임을 묻거나 고칠 방안을 찾자면,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접근도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 이번 참사를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어설픈 이해득실 계산 대신 허심탄회한 자세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난 12일 물러난 <한국방송>(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두 차례에 걸쳐 케이비에스의 보도 독립성과 관련한 폭로를 했다. 폭로 내용은 1985년 ‘보도지침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비슷한 경험을 찾아 3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 이유는, 그동안 권력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언론에 간섭한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30년 전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와 한국방송 김시곤 국장의 자세는 다르다. 김 국장이 뒤늦게 각성을 한 것인지 아니면 배신당한 데 대한 앙갚음인지는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건 외압이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김 국장의 폭로 이전에도 국민들은 청와대와 케이비에스의 관계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케이비에스 쪽에 “사과하라”고 요구하다 문전박대를 당하자 바로 청와대로 발길을 돌렸다. 케이비에스가 독립된 공영방송이 아니라 청와대의 지시를 따르는 곳이라는 걸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예상은 적중했다. 콧방귀만 뀌던 길환영 사장이 청와대 앞으로 달려가 직접 사과를 하고 김 국장이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으니 말이다.
김 국장 발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청와대 쪽이 해경을 비난하지 말 것을 여러 번 요청했다”는 부분이다. 길 사장은 김 국장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지만, 이미 방송된 내용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같은 화면을 놓고도 <에스비에스>는 “3번째 빠져나온 승객 구경만 한 해경, 대피 지시도 없었다”고 해경을 중점적으로 비판한 데 반해, 케이비에스는 “구조 안간힘 해경 뒤로 줄행랑 선원들”이라는 타이틀로 해경보다는 선원들 비판에 중점을 둬 보도하는 등 증거는 여기저기 널려 있다. 청와대는 아마도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한 데 대한 원망이 청와대로 번지는 걸 두려워했는지 모른다. 해경의 무능력과 안이함이 부각되면 그에 대한 비판이 해양수산부와 안전행정부를 타고 올라가 국무총리 그리고 결국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도달할 것이기에, 미리 끊어내자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공영방송은 권력과 거리를 두고 진실을 보도해야 할 책무가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을 청와대가 정권 보위의 수단쯤으로 여겼으니,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은 물론이고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방송법마저 무력화시킨 것이다. 또 박 대통령이 지난 3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며, 그 문제는 국민 앞에서 약속드릴 수 있다”고 한 말을 스스로 어긴 것이기도 하다.
김 국장의 폭로는 박 대통령이 요즘 습관처럼 되뇌는 ‘국가 개조’의 대상이 과연 누가 돼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길 사장은 물론이고,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 등 공영방송에 대한 통제와 간섭에 관여한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 철저히 조사하고 해임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인 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일에도 즉시 착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박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초기처럼 머리 숙일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6년 전 화재로 소실된 국보1호 숭례문의 부실 복구도 기본과 원칙이 무시되고 편법과 비리가 끼어든 탓임이 밝혀졌다. 감독관청의 무책임한 대충주의도 문제였다. 감사원이 어제 발표한 '문화재 보수 및 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보니 그렇다. 준공 후 단청이 벗겨진 것은 전통 단청 재현에 실패한 단청장이 남몰래 화학접착제를 아교에 섞어 사용한 결과임이 드러났다. 그 둘 사이의 장력 차이가 단청이 갈라져 일부가 박리되게 했다. 단청장은 이 같은 속임수로 3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이런 일이 벌어진 데는 애초 문화재청이 시험시공 등 사전검증이 필요하다는 숭례문복구자문단의 의견을 무시한 탓이 크다. 문화재청은 공사기간 맞추기에 급급해 단청장의 명성만 믿고 그가 제시했으나 검증은 안 된 단청 기법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기와도 문화재청이 기존 숭례문의 기와 규격대로 만들면 시공하기가 번거롭다는 제조업체의 말만 듣고 모양이 다른 현재의 KS(한국산업표준) 규격으로 바꿔 만들게 했다. 지반 역시 조선 중기 이후 높아진 부분을 전부 걷어내기로 해놓고는 시공상 편의를 이유로 중단했다. 대목장이 목재를 바꿔치기한 일에 대해서는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이번 감사원 감사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장의 속임수와 감독관청의 대충주의가 결합한 결과다. 이리하여 '전통기법으로 원래 모습대로'라는 숭례문 복구 원칙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숭례문 부실 복구의 원인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다를 게 없음이 확인된 셈이다. 매뉴얼은 있어도 지켜지지 않았다. 대충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습관이 장인정신이나 직업윤리를 압도했다. 속도와 효율이 우선되면서 내실과 안전은 뒷전으로 밀렸다. 원칙과 기준은 문서상으로 수립됐지만 실제로는 있으나마나했다. 감독관청 공직자들은 현장의 일탈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아니, 비정상 행위를 묵인하고 방조했다. 진도 앞바다의 인명피해와 서울 한복판의 국보 1호 부실 복구는 같은 원인이 낳은 두 개의 결과다. 대한민국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나라였던 것이다. 희생당한 세월호 승객과 귀한 문화재를 물려준 선조에게 죄스러운 마음과 함께 밀려드는 자각이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괴물이 돼버린 우리 자신을 스스로 두려워할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20명의 실종자가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한 달은 슬픔과 좌절, 분노의 시간이었다. 승객을 버리고 먼저 빠져나온 선원들과 304명의 실종자 중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못 구한 채 책임을 떠넘기는 당국의 모습에 국민은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졌다. 온 국민이 한 달동안 눈물을 짓고, 반성하고, 분노했지만 주변을 보면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지하철과 철도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준공을 앞둔 건물이 기울었고, 공장에선 폭발사고가 터졌다. 건물 비상구와 계단에 물건이 쌓여 있고,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려도 차량들이 길을 터주지 않는다. 수도권 광역버스는 여전히 입석 승객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국회에 불려간 장관은 남 탓을 한다. 우리는 지난 한 달 과연 무엇을 반성하고 실천에 옮겼는가. 나머지 실종자에 대한 수색에 박차를 가하면서 이제 슬픔과 좌절, 분노의 시간을 뛰어넘어 '안전 대한민국'에 대한 다짐과 실천, 재기의 나날로 바꿔야 한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고 반성과 교훈의 역사로 삼는 데 온 국민이 나서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사고를 막고, 우리가 바라는 안전한 나라, 단 한 명의 생명도 끝까지 책임지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정부는 사고원인 규명과 함께 인명구조가 왜 늦어졌는지도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한다. 확실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책임지고 실천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곧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다고 한다. 사과와 함께 국가재난 안전제도 개편, 관피아 척결 등 공직사회 혁신 방안이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사의를 표명한 총리를 포함한 개각도 예고돼 있다. 대통령 담화는 사태의 마무리가 아닌 안전한 나라를 건설하는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현장을 찾아 안전실태를 점검하는 등 보다 철저한 '안전경영'에 나서야 한다. 각종 산업재해로부터 근로자를 지키고 경제적 손실을 줄이려면 안전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종업원에 대한 안전교육과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인 개인들도 변해야 한다. 교통신호부터 제대로 지키면서 안전의식을 생활화해야 한다. 숱한 사고를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면 '안전 3류국'을 벗어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