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31일 총사퇴했다. 새정치연합은 전날 전국 15곳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재·보선은 그간 '여당의 무덤'으로 불려왔다. 국민이 재·보선을 집권 세력을 심판하는 기회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1997년과 2002년 대선 두 번과 2004년 총선에서 패한 뒤 전열(戰列)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것도 거듭된 재·보선 승리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지금의 야당은 재·보선에서도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작년에 실시된 두 차례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패한 데 이어 이번에도 15곳 중 호남 3곳과 수도권 1곳 등 4곳에서 이겼을 뿐 11석을 여당에 내줬다. 재·보선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야당의 참패다.
야당에는 31일 무거운 침묵만이 가득했다고 한다. 한 야당 의원은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하다"고 했고, 다른 의원은 "대선에서 졌을 때보다 더 충격적"이라고 했다. 지난 10년간 현 야권은 2010년 지방선거 한 번을 빼곤 총선·대선 등 큰 선거에서 모두 졌다. 특히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올해 6월 지방선거와 이번 7·30 재·보선까지 '야당이 질 수 없는 선거'로 평가됐던 선거에서 연달아 졌다.
야당은 선거에 지면 낮은 투표율을 패인(敗因)으로 꼽곤 했다. 이번에도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낮은 투표율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 재·보선의 최종 투표율은 32.9%에 그쳤다. 그러나 야권은 투표율이 46%를 넘었던 서울 동작을에서도 패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출마한 순천·곡성의 투표율은 51.0%로 전국 최고를 기록한 반면 야당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법원으로부터 '거짓말' 판결을 받은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전략 공천한 광주 광산을의 투표율은 22.3%로 전국 최저였다. 이것이야말로 야당의 아성으로 치부돼 온 호남 민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일 것이다.
야당의 근본 패인은 결국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 이 나라는 정치·사회·경제적 전환기에 놓여 있다. 저성장·저물가·저금리의 경제 체질이 고착되면서 국민은 급진적 변혁(變革)보다는 안정 속의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그나마 이번 재·보선을 앞두고 새 당대표를 뽑고 '보수 혁신론'을 앞세웠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심판론'에만 매달린 채 야당이 왜 대안(代案) 세력인가를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 새누리당의 '보수 혁신론, 경제 우선론'에 맞선 야당의 무기는 선거 때마다 들고나오는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낡은 수법이었다. 50대(代) 이상 유권자 수가 20~30대를 넘어선 세대 간 인구(人口) 구조 변화에 대해서도 젊은 층 투표율이 높아지기만 기대할 뿐 속수무책이다.
여(與)와 야(野)는 한국 정치가 온전히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두 날개다. 그 한 축이 지금 붕괴 직전의 위기에 내몰렸다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이기도 하다. 견제와 균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정치 체제는 특정 세력의 일방적 독주(獨走)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 어떤 속성(速成) 해법이나 지름길이 있을 수 없다. 판에 박힌 야성(野性)만 강조하는 소수 지지층의 닫힌 시각을 뛰어넘어 국민 다수의 상식에 다가가면서 국가를 경영할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는 것이 야당이 되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활로이다. 야당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모든 것을 부정(否定)해보고 근본적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다. 그러나 야당이 이번에도 정파 이익을 앞세우면서 정쟁(政爭)을 통한 반사이익에서 살길을 찾는다면 야당의 미래는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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