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7일 월요일

중앙 [사설] 재산권과 직결된 부동산 거래정보까지 유출됐다니

   신용카드사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년간 약 600만 건의 부동산 거래정보가 저장된 공인중개사협회의 인터넷 서버가 해킹당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이 개인의 재산권과 직결되는 부동산 거래정보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사설단체에 의해 무단으로 수집, 보관돼 온 것으로 밝혀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17일 이 같은 사실을 본지가 보도한 직후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공인중개사협회에 수사요원을 급파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해킹을 통해 이미 유출된 정보가 재산권을 침해하는 불법거래에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경찰은 우선 해킹을 시도한 주체가 누구인지, 또 어떤 정보가 실제 유출되어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신속하게 밝혀내 2차 피해 방지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이번 부동산 거래정보 유출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민감한 개인정보의 수집과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인중개사협회는 1년간 보관할 수 있는 부동산 매매 및 임대계약 정보를 10년치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했었다고 한다. 더구나 협회는 그러한 거래정보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수집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인중개사협회를 감독해야 할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거래정보의 해킹 사실은 물론, 그러한 정보가 법적 근거 없이 전산자료로 저장돼 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개인정보에 대한 기본적인 보안의식조차 없었으니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어디서 또 개인정보가 새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정부는 개인정보가 수집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 조사를 벌일 필요가 있다. 이미 문제가 터진 금융권은 물론, 부동산 거래와 병원과 약국 등 건강 관련 기관, 인터넷 상거래, 교육기관 등 만일의 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는 곳까지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의 불안감을 덜 수 있다. 

중앙 [사설] 또 한국 관광객 테러, 여행사에 안전 맡겨서야

   이집트 시나이 반도를 여행 중이던 한국 성지순례단 탑승 버스를 상대로 한 폭탄 테러가 일어나 한국인 3명이 숨지고 14명이 부상했다. 폭탄 테러는 시나이 반도에 거점을 둔 이슬람 과격단체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외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이번 테러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로 강력히 규탄한다.

 이번 테러는 정부의 대응도 도마에 올렸다. 외교부는 현재 4단계의 해외여행 경보제도를 운용 중이다. 위험 정도에 따라 전 세계를 여행 유의·자제·제한·금지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테러 희생이 일어난 시나이 반도는 3단계인 여행 제한 지역에 속한다. 외교부는 2년 전 이 지역에서 국민 3명의 피랍사건이 발생하자 여행 경보를 한 단계 올렸다. 긴급 용무가 아니면 귀국하고, 가급적 여행을 취소·연기해줄 것을 권고했다. 문제는 정부가 여행지의 치안 상황에 맞춰 신축적으로 경보 단계를 조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시나이 반도는 2011년 이집트 시민혁명 후 치안이 악화돼 왔다. 지난해 이슬람 원리주의자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권좌에서 축출된 뒤에는 아예 이슬람 성전의 근거지가 되면서 크고 작은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치안 악화에 맞춰 여행 금지 지역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 지역은 관광 성수기인 1~2월에 한국 성지순례단이 2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국민 스스로도 해외여행 안전의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한 해 해외 관광객 1500만 명(지난해 1484만 명) 시대를 맞아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인식이 긴요하다. 이번에 성지순례를 떠난 충북 진천중앙교회 관계자는 시나이 반도가 여행 제한 지역인 줄 몰랐다고 했다. 중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지구촌 테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영리가 우선인 여행사의 판단에만 안전을 맡길 순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TV 등을 통해 해외 안전 여행과 직결된 해외 테러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나이 반도 테러 희생이 해외 안전 여행에 대한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중앙 [사설] 민주 질서 강조한 '이석기 내란음모' 판결

법원이 내란음모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 의원 등이 가진 회합을 내란 모의 과정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번 판결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어야 할 때다.

 어제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 김정운)는 이 의원에게 적용된 내란음모·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또 이 의원과 함께 기소된 당직자 등 6명에 대해 징역 4~7년씩을 선고했다. 최대 쟁점이었던 내란음모 혐의와 관련해 재판부는 “2013년 5월 두 차례의 회합은 RO(혁명조직) 조직원들의 회합”이라며 RO의 실체와 국헌문란의 목적성을 인정한 뒤 “이 피고인이 총책”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북한이 적화통일의 야욕을 거두지 않고 휴전 상태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으므로 그 내란 실행의 합의에 실질적 위험성이 상당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민주주의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의원 등이 체제 변혁을 위해 사회혼란을 획책했다”는 검찰 기소 내용을 받아들인 것이다. 판결문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도 정부나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 내지 지지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존립과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내용까지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제시했다. 특히 이 의원에 대해선 “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대한민국과 우리 사회가 특별사면과 복권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관용을 베풀어 주었음에도 다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며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선고 직후 통합진보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명백한 정치재판이자 사법살인”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재판 결과를 놓고 정치적 시비를 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재판 진행 절차에 하자가 없었다면 법원의 판결을 일단 존중하는 게 옳다. 이 의원 자신도 지난 3일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재판을 공평하게 이끌어 준 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결론이 기대에 어긋난다고 해서 판결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헌법이 3심제를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판결 결과에 불만이 있다면 항소 절차를 통해 바로잡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욱이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이 진행 중인 만큼 법리와 증거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번 재판은 대한민국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직결된 사안이다. 모든 사법 절차가 끝날 때까지 한 점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치우침 없이 재판이 진행되길 기대한다. 재판이 이념이나 감정적 대립으로 점철되기보다는 민주주의 질서의 건전성을 높이고 공동체의 분열을 막는, 성숙한 과정이 될 수 있게끔 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중앙-한겨레 [사설 속으로] 삼성 총장 추천제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2014년 1월 30일자 26면>
삼성 사건이 보여준 한국의 갈등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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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는 전국이 전국으로 모이는 특별한 사회 의식(儀式)이다. 남녀노소, 빈부, 보수·진보, 고·저 학력 가릴 것 없이 모든 가족이 모인다. 이런 회동에서 한국 사회가 한번쯤 생각해 볼 화제가 있다. 비판을 받고 유산된 삼성의 대학총장 추천제다. 삼성은 ‘뜻하지 않았던 논란’이었으며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삼성의 실책으로 치부하면 그만일까.

 삼성과 세계 1위를 다투는 미국 애플이 같은 제도를 내놓았다 치자. 하버드대부터 지방 주립대까지 추천 인원을 삼성처럼 나누었다 치자. 미국에서도 반대가 이처럼 거셌을까. 아니다. 미국선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두 나라는 다르다. 미국엔 지방 소외나 지역 감정이 한국처럼 심각하지는 않다. 그러니 단순비교는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점도 크다. 두 나라 모두 대학 서열이 있고 두 기업 모두 자율성이 보장된 사기업이다. 그렇다면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해도 삼성에 쏟아진 비난은 합리적 정도를 넘은 게 아닐까.

 이번 사건은 기업의 자율성에 대한 중요한 시험이다.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유·무형의 비중으로 보면 물론 삼성은 ‘완전히 자유로운 사기업’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사회의 보편적 가치나 질서에 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라면 삼성에도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과 정의당, 진보단체, 호남에서는 이 ‘보편적 질서’를 문제 삼았다. 일개 기업이 공개적으로 대학을 서열화하고, 영남에 비해 호남을 차별했다는 것이다. 서열이라는 사실은 맞다.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순위로 삼성은 서열을 정했다. 그리고 호남에 비해 영남권의 추천 인원이 많은 것도 맞다. 하지만 이미 언론사 등 많은 기관에서 대학 서열을 매기고 있다. 고교생은 더 열심히 공부해 서열이 앞선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고, 서열을 근거로 인생을 설계하며, 서열을 극복하려 노력도 한다. 총장 추천제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연간 20만 명이 몰리는 ‘삼성 입사고시’ 과열을 막고, 총장 등 교수진의 권위를 살려 면학 분위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학교마다 제도를 잘 활용하면 ‘사회적 약자’에게 힘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에서 승자는 없다. 우리 모두 패자다.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우리 사회에 잠복해 있는 온갖 프레임들이 한꺼번에 난무한 점이다. 저마다의 입장에서 지역 감정 프레임, 남녀 평등 프레임, 대학 서열화 프레임을 갖다 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따로 없다. 침대보다 짧으면 사지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라 죽이는 독단적 사고방식이 판쳤다. 이런 곳에서 변화와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는 이번 삼성 사건 같은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기업이나 단체의 실험을 사회가 포용하는 것도 발전 아닐까. 한국 사회는 표면장력으로 팽팽한 갈등의 비눗방울 같다. 솔잎으로도 빵 터진다. 솔잎도 문제지만 비눗방울도 문제다.

한겨레<2014년 1월 28일자 35면>
삼성의 '대학 추천 할당제' 재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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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올해 신입사원 채용부터 적용하기로 한 ‘대학총장 추천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논란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삼성이 대학별 추천 인원을 할당함으로써 대학 서열까지 매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과정에서 대학별·지역적 차별을 두었다는 것이다. 삼성은 이런 비판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삼성은 사려 깊지 못한 채용방식 변경으로 사회적 논란이 야기된 만큼 어떤 식으로든 해소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삼성이 대학별로 총장 추천 인원을 차등적으로 할당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는 취지야 어떻든, 삼성이 대학별 서열을 매기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채용시장의 슈퍼갑인 삼성이 어느 대학에 몇 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는 것은 삼성이 그 대학을 그만큼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의 서열구조는 한국 교육과 한국 사회를 왜곡하는 주범으로 지탄받아왔다. 삼성 같은 초일류기업이 이런 서열구조를 깨뜨리는 데 기여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강화하는 쪽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꼭 총장 추천을 받고 싶으면 학점이나 인성 등 기준을 제시하고 학교 쪽에 재량껏 추천하게 하되, 대학이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을 추천하면 탈락시키면 될 일이다.

 논란이 더욱 커진 것은 할당된 추천 인원이 대학별, 지역별로 상당한 편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 대학’인 성균관대가 가장 많은 115명을 할당받고, 여자대학과 호남지역 대학들의 할당 인원이 적은 것은 이런 논란을 부채질했다. 삼성은 이공계 인력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을 구분했다고 하지만 그 기준의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삼성은 총장 추천을 받더라도 서류전형만 면제해 줄 뿐이기 때문에 총장 추천이 곧 입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굳이 이런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면서까지 대학총장 추천제를 도입하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직무적성검사 응시 인원을 줄이는 게 목적이라면 삼성이 모든 지원자를 대상으로 서류전형을 해 적성검사 응시자를 최소화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총장 추천제로 인한 대학 서열화 문제를 피하려면 그룹 공채가 아니라 각 계열사가 각 대학의 관련학과에 추천을 의뢰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과 같은 총장 추천제는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삼성이 대학 서열까지 매기는 결과로 이어지고, 할당 인원 확대를 위해 대학이 삼성에 매달리는 등 온갖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재고하기 바란다.

논리 vs 논리
중앙 “기업 채용 자율성 줘야” 한겨레 “대학 서열화 안 돼”


‘88만원 세대’는 비정규직 청년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이탈리아 청년의 경제적 상황을 담은 2005년 소설 『천 유로 세대』에 빗대 박권일과 우석훈이 쓴 책 제목에서 유래했다.

 청년세대에 가장 절실한 것은 안정적 일자리다. 2013년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15~29세) 실업률이 8%에 이르며 고용률은 39.7%까지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문 탐구와 비판 지성의 산실이어야 할 대학이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취업준비 기관 구실을 한다. 삼성의 ‘대학 총장 추천제’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한 해 대학 졸업생 3분의 1에 해당하는 20만 명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치른다. ‘삼성 고시’라고 불리는 이 시험을 위해 사교육까지 받는 상황이다.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는 문제를 개선하고 과열 양상 방지를 위해 삼성은 새로운 신입사원 채용 제도의 일환으로 ‘대학 총장 추천제’를 내놓았다. 전국 대학 총장에게 추천권을 부여해 추천권을 받은 지원자는 서류전형을 면제해 주는 제도다. 삼성 의도와 달리 이 제도는 많은 사람에게 대학 서열화로 받아들여졌다. 대학별 할당 인원이 발표된 이후 논란이 가중됐는데, 이는 할당 인원에 대한 삼성의 기준이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결국 삼성은 대학과 취업 준비생·정치권·지역 등의 반발로 새로운 채용시스템을 전면 유보하기로 했다. 유보 발표 이전에 나온 한겨레의 사설과 발표 이후 나온 중앙일보의 사설은 이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한겨레는 삼성 같은 초일류 기업이 대학의 서열구조를 강화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대학 총장 추천제 재고를 요구한다. 반면에 중앙일보는 대학 총장 추천제가 나름대로 장점이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실험이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겨레는 추천 인원을 할당함으로써 대학 서열까지 매기고 있는 것과 대학별·지역별 차별을 둔 것이 논란의 핵심이라고 분석한다. 이에 비해 중앙일보는 ‘사회의 보편적 가치나 질서에 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라면 삼성에도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겨레는 대학별·지역별로 할당된 추천 인원에 상당한 편차를 보였기 때문에 논란이 커졌고, 특히 여자대학과 호남지역 대학들의 할당 인원이 적은 점이 논란을 부채질했다는 점을 들어 삼성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이에 비해 중앙일보는 지역 감정, 남녀 평등, 대학 서열화 등 우리 사회의 온갖 프레임이 한꺼번에 난무한 점이 뼈아픈 대목이라고 분석하며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지적한다. 한겨레가 삼성 쪽에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면 중앙일보는 반대 목소리를 낸 사람에게 논란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두 사설 모두 대학별 서열화는 인정하면서도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다. 한겨레는 대학의 서열구조가 한국 교육과 한국 사회를 왜곡하는 주범으로 지탄받아 왔으며 삼성이 다시 대학별 서열을 매기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미국에도 대학 서열이 있고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순위로 삼성은 서열을 정했으니 문제가 없으며 서열 극복을 위해 노력하라고 주문한다.

 또한 한겨레와 중앙일보는 대학 총장 추천제 논란에 대한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한겨레가 모든 지원자를 대상으로 서류전형을 실시해 적성검사 인원을 최소화하면 직무적성 검사 응시 인원을 줄이는 목적을 이룰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비해 중앙일보는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기업이나 단체의 실험을 사회가 포용하는 것도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삼성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국가 경제와 사회 각 분야에 미치는 영향력이 일반적인 기업의 수준을 넘어섰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단순히 삼성의 채용시스템에 관한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이 논란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가 숨어 있다. 그것은 청년실업과 고용문제뿐 아니라 뿌리 깊은 대학 서열과 지역차별, 남녀차별 문제까지 다양하다.

류대성
용인흥덕고 국어교사
 민주주의는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 사회제도다. 또 자본주의는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이룬다. 서로 다른 욕망이 충돌하고 그 갈등을 조정하면서 우리는 보다 나은 사회제도와 규범을 만들어 간다. 이번 논란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기업과 대학의 입장이 다르고 취업 준비생 입장이 또 다르다. 삼성의 대학 총장 추천제 논란을 통해 기업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자.

조선 [사설] 국제형사재판소 문 앞까지 끌려온 北 정권

유엔 인권조사위원회(COI)는 17일 최종 보고서를 발표, "북한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저질러져 왔으며, 국가기관들이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와 반체제 인사, 탈북 시도자 등을 상대로 저지른 인권침해와 외국인 납치는 '반(反)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수령(首領)과 국방위원회·국가보위부 등의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해 개인적으로 형사 책임을 물을 것"을 유엔에 권고했다. '수령'이란 물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代)를 말한다. 조사위는 "북한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므로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을 반인도적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유엔이 북한 '반인도적 범죄자'들의 형사처벌 필요성을 거론한 건 처음이다. 북한 주민 보호 책임이 국제사회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세계가 북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개입할 근거가 된다. 그러나 북에 대한 조치가 당장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ICC 제소만 해도 안보리 결의 사항이어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의 동의(同意)가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북한 정권이 느낄 압박감은 상당할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고를 얕잡아볼 수도 있다. 지금처럼 철통같이 문을 걸어 잠그고 일족(一族) 몰살과 같은 폭압으로 짓누르면서 외부엔 핵무기·화학무기로 대항하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이 끝까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중국조차 차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의 유엔 보고서 한 권이 그때는 철퇴로 바뀌어 떨어질 수 있다.

우리도 언젠가는 북한 정권과 통일을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북 정권이 주민을 한낱 권력 유지의 도구로 이용되는 노동력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인격체(人格體)로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북의 그런 변화가 없다면 통일 논의는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압박을 앞장서 이끌어야 할 우리는 아직도 북한인권법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 조사위 보고서는 사실 우리가 다 알면서도 잊거나 외면해온 내용이다. 우리 모두가 북 인권 조사 보고서를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선 [사설] 법원, 대한민국 파괴 세력이 쓴 가면 벗겼다

수원지방법원 형사 합의12부는 17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형법상 내란 음모와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 소지 등 검찰의 기소 내용을 모두 받아들여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6명에 대해서도 징역 4~7년, 자격정지 4~7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남한 사회의 변혁을 목적으로 체제 전복과 헌정(憲政) 질서 파괴 등을 꾀한 점 등이 모두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내란 음모 판단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RO(혁명 조직)'의 성격에 대해 '지휘 체계를 갖춘 내란(內亂) 혐의의 주체'라고 했고, 이 의원이 'RO의 총책'이라고 명확히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작년 5월 10일 경기도 곤지암 및 12일 서울 합정동에서 열린 RO 조직원들의 비밀 회합에 대해서도 "조직 모임"이라며 "사상 학습을 하는 소모임(분임)은 RO의 세포 모임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130여명에 대해서는 "모두 (북한)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철저한 보안 수칙과 지휘 통솔 체계에 의거하여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는 RO의 구성원들"이라고 했다. 이 회합에는 이 의원 등 이번에 기소된 사람들 외에 통합진보당 김재연·김미희 의원과 통진당 경기도당 간부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재판부는 "주체사상과 대남 혁명론으로 무장한 조직원 최소 130여명을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 규합하여 국가 기간 시설 파괴 등 후방 교란 활동을 구체적으로 모의했다"며 "한 지방의 평온을 해(害)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폭동을 모의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의원 등은 북한이 정전협정 파기를 선언하고 매일 전쟁 위협 수위를 올릴 때인 작년 5월 비밀 회합에서 전쟁 발발 시 평택 유류 저장소, 서울 혜화동 KT 지사 등을 파괴할 대상으로 지목한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던졌다. 참석자가 폭탄 제조법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정황까지 확인됐다.

당시 회합에서 이 의원은 대한민국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정치·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북은 모든 행위가 다 애국적이야. 우리는 모든 행위가 다 반역(反逆)이야"라는 말도 했다. '한 자루 권총 사상' 등 북한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습관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정원이 나를 잡으면 한 명을 죽이려고 칼을 갖고 다닌다" "북이 3차 핵실험에서 엄청난 것을 이뤘다"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 "앞으로 정규전 아닌 비정규전 상태가 전개될 것"이라는 참석자들의 말은 모두가 대한민국을 적으로 보고 있는 이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북의 주장에 습관적으로 동조하는 관념적 종북(從北)주의를 넘어 북의 편에 서서 우리 사회를 물리적으로 공격하고 파괴하려 했다. 실행 단계 전에 체포됐기 때문에 '내란'이 아니라 '내란 음모'로 처벌받게 됐을 뿐이다. 이들의 충격적 행태는 RO 내부자 이모씨가 국가정보원에 제보한 녹취록과 법정 증언 등을 통해 확인됐고, 재판부는 이씨 진술을 거의 그대로 인정했다.

이 의원 등은 공판 과정에서 늘 그랬듯이 자신들이 표적·조작 수사를 당하고 있다고 반격하는 전략을 폈다. 변론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핵심 논리로 동원했다. 수사를 받는 과정에선 예상대로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들은 속으로는 극단적 반(反)민주 전제(專制) 체제인 북한을 숭상하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활동하기 위한 방편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부여한 권리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집회 시위의 자유를 이용해 국정원 정문 앞에서 시위하던 옛 민노당 당원 중 간첩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번 재판은 피고인들조차 공정했다고 인정했다. 이 의원 등은 지난 3일 최후진술에서 "재판부가 공정한 재판을 이끌어줘 감사하다"고 했다. 피고인들에게 변론 기회를 충분히 보장했고, 증거 채택 여부 등에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자유를 이용해 자유를 파괴하려는 이들의 시도, 민주주의 제도를 활용해 민주주의를 허물려는 음모는 단호히 배척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이번 사건을 국정원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보장된 방어권 행사 범위를 넘어 진실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誤導)하려는 시도"라고까지 지적했다. 우리 사회는 34년 만의 내란 음모 사건 재판에서 헌법 파괴 세력을 단죄(斷罪)하면서도 헌법이 보장한 자유민주 정신은 모두 지켰다. 자부심을 느껴도 될 일이다.

사실 이석기와 같은 사람들의 존재, 그들의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초 이후 최근까지 '민혁당' '일심회' '왕재산'과 같은 명백한 간첩단이 적발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낮은 형량, 습관적 사면·복권으로 관련자 대부분이 종북 활동에 복귀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의 경각심 부족이 이런 '괴물'들을 키웠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이석기 일파가 쉽게 존립하고 국회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화 세력에 편승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세력과 주사파 세력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면 이 대한민국 파괴 세력은 다시 민주화 간판을 들고 나타날 것이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反)민주 주사파 세력을 떼어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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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사설]여행지 테러에 대한 경각심 높여야

이집트 동북부 시나이반도 타바에서 지난 16일 이슬람 과격 단체의 관광버스 폭탄테러로 한국인 3명과 이집트인 운전기사가 사망했다. 충북 진천 중앙장로교회 신도인 한국 관광객은 구약성서에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이 지역을 성지순례하고 이스라엘로 입국하던 중이었다. 알카에다와 연계된 한 테러조직은 이 범행이 자기들의 소행임을 천명하며 이집트 경제와 관광산업, 군부 지도자 공격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축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의 지지기반이었던 무슬림형제단은 이날 공식 트위터에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 3명이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이번 테러는 현 이집트 군부 체제를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자행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오니스트’ 운운한 것으로 미루어 종교적 이유가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집트 군부 체제를 흔들기 위한 것이든, 한국인 기독교인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든 그 어느 것도 테러를 정당화할 이유가 될 수 없다. 명분도 없는, 시대착오적인 목적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일은 전 인류의 이름으로 단죄해야 마땅한 범죄행위일 뿐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언론성명을 통해 한목소리로 이번 테러를 규탄했다. 이번 사건은 테러가 발생한 국가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테러리즘 근절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고 있다. 

이제 한국인들은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위험지역도 적지 않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선교 목적이나 성지순례를 위해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 다수인 지역을 방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만큼 해외에서 한국인이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잦아졌다는 뜻이다. 이미 그런 지역에서의 한국인 살해 행위나 납치 등 끔찍한 일 때문에 한국인들이 큰 충격을 받은 바도 있다. 그렇다면 위험을 피하기 위한 노력도 배가되어야 마땅하다. 

이번 사건은 정부가 여행경보 3단계인 여행제한 조치를 내린 상태에서 발생했다. 이는 여행자들이 사전 경고를 잘 인식했으면 피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여행자의 안전 의식이 절실하다. 여행사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당국도 여행자들에게 위험 정도를 적극 알려야 한다. 여행자, 여행사, 당국 모두 더 이상 불행이 재발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경향 [사설]‘안현수 현상’이 말하는 것

어떤 압도적인 사회 현상에는 그 사회의 구조적 병폐나 모순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게 마련이다. 평소에는 대중의 관심 밖에 있던 모순과 병리가 어떤 구체적 계기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고, 대중은 그것을 바라보며 분노를 터뜨리거나 열광적으로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2011년 개봉된 영화 <부러진 화살>이나 1000만 관객을 넘긴 <변호인>이 당초 예상과는 달리 흥행대박을 터뜨린 것도 재판의 불공정성, 사법 정의의 실종과 같은 한국 사회의 엄연한 사실이 영화를 통해 새삼 대중의 큰 호응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 국적을 바꾼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 선수가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따자 그를 둘러싼 칭찬과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안현수는 2006년 2월 토리노올림픽 3관왕에 이어 3월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명실상부한 한국의 ‘쇼트트랙 황제’로 등극했다. 그러나 이후 빙상연맹 내부의 파벌 싸움과 패거리 문화, 연맹 유력인사와 지도자의 독선 등으로 상처를 입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겹쳐 연맹으로부터 ‘버린 카드’ 취급을 받자 좋은 조건을 제시한 러시아를 선택했다고 한다. 지금의 ‘안현수 현상’을 들여다보면 국적을 바꾸면서까지 자신의 꿈을 성취한 안현수에 대한 응원·환호·열광과, 그를 내친 연맹에 대한 비난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안현수의 ‘조국을 버린 행위’에 대한 비난도 있기는 하지만 다수는 아닌 듯하다.

‘안현수 돌풍’이 지속되자 “빙상연맹의 파벌 싸움과 비리 등은 과장됐다”거나 “안현수는 자신의 개인적 삶을 위해 러시아 귀화라는 선택을 했을 뿐 희생양이 아니다”라는 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는 빙상연맹과 안현수 개인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일들의 사실관계를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안현수 현상’이 담고 있는 핵심적 메시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의 불공정성을 대중이 크게 공감하고 있으며, 안현수가 겪은 일에 자신들이 경험했던 온갖 불합리와 부조리를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현수는 새로운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동시에 그는 ‘옛 조국’에는 사회의 공정성을 확립하고 불공정성을 타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능력있는 개인이 집단으로부터 핍박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의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온갖 역경과 우여곡절을 겪고도 올림픽 금메달 획득이라는 성과를 이룬 그에게 다시 한번 축하를 보낸다.

경향 [사설]내란음모 유죄, 오직 증거에 따른 판단인가

법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인정했다. 어제 수원지법은 내란음모 및 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이 의원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내란음모의 주체로 내세운 RO(혁명조직)가 실재하는지 여부, 내란음모죄를 구성할 만한 구체적 폭동 준비가 있었는지 여부다. 재판부는 이들 쟁점을 판단하면서 공소사실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이 의원 등이 남한 사회주의혁명 완수를 목표로 RO를 구성했으며, 지난해 5월12일 서울 합정동 RO 회합에서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 실행을 모의했다고 결론지었다. 제보자 이모씨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라는 점과 RO 회합 녹취록에 무기 탈취나 제작을 통한 무장 방안이 포함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우리는 이 사건 수사 사실이 공개됐을 때 이 의원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조악하고 황당한 현실인식을 비판한 바 있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한 발상은 국회의원이기에 앞서 시민적 상식에 비춰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형사재판에서 내란음모라는 중범죄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법원의 판단이 오로지 사실과 증거에 입각한 것인지 묻고자 하는 까닭이다. 제보자 이씨는 공판에서 기존 진술을 번복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했다. RO에 가입했다면서도 가입식 날짜와 장소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5·12 회합 녹취록 역시 ‘선전 수행’이 ‘성전 수행’으로 잘못 기록되는 등 수백 군데 오류가 드러나 수정됐다. 설사 제보자 진술과 녹취록의 신빙성을 인정한다 해도 이 의원 등의 행태가 ‘대한민국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실질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수준인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실제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폭동의 세부적인 계획에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점을 밝힌 터다. 

내란음모 사건이 터진 것은 지난해 8월 국가정보원에 대한 초유의 국정조사가 종료된 직후였다. 당시 국정원 개혁이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부상한 시점이어서 국면전환용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런 만큼 사법부가 어떠한 외부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엄정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해왔다. 향후 상급심에서는 보다 치밀하고 정교한 심리가 이뤄지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법 논리에서 벗어난 ‘이석기 사건 판결’

법원이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등 사건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징역 12~4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아르오’(RO)가 내란음모의 주체라는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아르오 자체가 국가정보원과 제보자의 추측으로 만든 소설이라고 주장해온 이 의원과 변호인단의 주장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의 유죄 판결이 법리적 측면에서도 그렇거니와 그간의 사건 전개 과정에 비춰봐도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와중에 터진 이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로서는 공안당국과 정권의 국면 회피용 ‘희생양 만들기’에 법원이 들러리를 선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가질 법하다.
내란 음모 및 선동죄에 대한 유죄 판단은 우선 법리적으로 무리한 측면이 있다. 재판부는 아르오가 주체사상을 수용한 비밀 지하혁명조직으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국헌문란의 목적 아래 내란 수준의 모의를 했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다. 언론에 이미 공개됐듯이 이들의 모임에서 녹취된 속기록에 “유조창 탱크 폭파”나 “철탑 파괴” 또는 “후방 교란” 등 황당하다고 할 정도의 표현이 다수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 제보자 이아무개씨를 비롯한 3명의 대화를 담은 별도 녹취록에는 사상 학습을 진행하면서 북한의 3대 세습을 용인하는 듯한 표현도 등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내란 음모나 선동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형법 87조에는 내란죄에 대해 ‘국토의 참절 또는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하여 폭동하는 죄’로 규정하고 있다.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폭동’이어야 할 뿐 아니라 일반적 추상적 합의를 넘는 구체적 모의도 있어야 한다. 판결문에서 “음모가 계획의 세부에까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밝혔듯이 이들이 과연 이런 정도의 구체적인 내란 계획을 세웠는지, 실제 그럴 실행 능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장난감총’ 운운하고, 어린아이 우는 소리까지 들리는 회합이 내란 음모를 위한 조직 모임이라는 게 합당한 판단인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2010년 제보를 받고 지난해 7월까지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규정해 감청영장을 받아오던 국정원이 갑자기 8월에 내란음모 사건으로 둔갑시킨 것은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국기문란의 범죄행위에 대한 반발로 시국선언과 촛불시위가 이어지면서 국정원 자체가 위기에 몰리자 사건을 과대포장해서 내놓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녹취록을 미리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을 시도한 것으로 미뤄봐도 이런 정치적 의도는 읽을 수 있다. 이 사건에 앞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리하게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정부가 법무부를 통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는 등, 이 사건을 전후해 정권 차원의 ‘종북몰이’가 기승을 부렸다는 것은 이 사건의 정치성을 잘 말해준다.
결국 이런 정치적 사건에 법원이 엄격한 법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공안당국의 여론몰이에 휘둘린 게 아닌지 유감스럽다.

한겨레 [사설] 간첩사건 증거조작, 즉각 특검 도입하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재판에서 검찰이 제출한 3가지 문건이 모두 위조된 것이라는 중국 대사관의 발표가 있었는데도, 검찰이 엉뚱한 배짱을 부리고 있다.
검찰은 위조된 문서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함으로써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검찰은 “위조라고 생각도 못했고, 지금도 위조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고 우긴다. 심지어 검찰은 공소유지를 담당한 공안1부에서 진상 규명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예를 들어 경찰이 공문서를 위조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다가 들통이 나자 위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스스로 밝히겠다고 한다면 검찰은 이를 내버려두겠는가.
문서 위조의 주범은 아무래도 국정원 쪽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검찰도 위조를 미리 알고 있었을 법한 정황 증거가 너무 많다. 우선 검찰이 제출한 문서가 너무 조잡하다. 검찰이 제출한 기록에는 문서 발송 주체가 ‘허룽(화룡)시 공안국 출입경관리과’로 돼 있으나 이런 과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출입경관리대대가 정식 명칭이라고 한다. 또 검찰 문서에는 외교문법에 어긋나게 중요한 조사가 빠져 있어 누가 수신자인지 불분명하다. 공증도장의 위치마저도 제각각이어서 공문서로서 최소한의 요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항소심 법정에서 오류가 있는 진짜 출입국 기록을 수사 단계에서부터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가 번복한 점도 가짜 서류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간접 증거다.
검찰이 설사 몰랐다 하더라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한-중 간에는 이미 사법공조조약이 있어서 중국 문서의 진위 여부는 검찰이 중국 쪽에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만약 검찰이 자료를 입수할 당시 중국 쪽에 미리 문서의 진위를 확인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검찰은 수사지휘권, 공소유지권을 갖고 있다. 국정원은 검찰의 지휘를 받는 사법경찰에 불과하다. 모든 권한과 책임이 검찰에게 있다는 뜻이다. 남 탓을 할 처지가 아니다.
수사기관의 증거 위조는 심각한 범죄다. 국가보안법상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증거를 위조·인멸·은닉한 자는 그 범죄에 정한 형에 처하도록 돼 있을 정도다. 그만큼 국가보안법의 남용 위험이 크기 때문에 증거 위조 행위를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즉각 특검을 도입해 하루빨리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국정조사도 가능하나, 조사 과정에서 여야가 번번이 부딪히며 정쟁으로 흘러간다면 시간만 지체될 뿐 진상 규명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여당의 결단을 촉구한다.

한겨레 [사설] 성지순례 관광객을 테러 대상으로 삼다니

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 16일 저녁 일어난 버스 폭탄 테러로 한국인 3명과 이집트인 운전사가 숨지고 한국인 10여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는 어떤 경우든 용납할 수 없다. 버스에 타고 있었던 충북 진천 중앙장로교회 신자 31명은 한국인 안내인 2명, 이집트인 안내인 1명과 함께 성지를 순례하던 순수한 관광객이었다. 이들이 테러의 대상이 돼야 할 까닭이 있을 리가 없다.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한 과격 이슬람 단체는 최근 시나이반도에서 벌어진 여러 폭력사태의 배후로도 지목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어떤 변명을 하건 이번 테러는 반인륜적 범죄행위일 뿐이다.
이번 테러를 막지 못한 데는 이집트 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아 보인다. 최근 들어 이집트에서는 정부군과 경찰, 기독교계 인사 등을 대상으로 한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가 늘어나는 추세에 있었다. 게다가 테러가 발생한 곳은 이스라엘로 가기 위해 출국 수속을 하는 국경초소 부근이었다.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이집트 정부는 시나이반도에서 이번처럼 관광객을 상대로 한 테러는 2004~2006년 120명이 희생된 이후 처음이라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집트 당국은 범인을 철저하게 추적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관광객들이 안전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7월 이슬람주의자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축출된 이후 시나이반도는 중동 내 이슬람성전(지하드) 세력의 새로운 근거지가 됐다. 이집트 당국도 이 지역의 상황이 ‘치안 불안정’에서 명백한 ‘무장 소요’로 바뀌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우리 정부도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퇴진 이후 시나이반도를 2단계 ‘여행 자제’에서 3단계 ‘여행 제한’ 지역으로 상향 조정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면밀하게 고려해 일정을 짰다면 테러에 노출될 위험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테러는 지구촌의 평화와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이번 테러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대상이 관광객이었다는 점에서 분노는 더 크다.

2014년 2월 16일 일요일

조선 [사설]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위조 논란, 나라 체면 걸렸다

국내 거주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겨준 혐의로 구속 기소된 탈북자 출신 유우성씨 재판 과정에서 검찰·국정원이 법정에 제출한 증거 자료가 조작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유씨는 2004년 4월 한국에 들어왔고 2011년 6월부터 탈북자 담당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다 작년 2월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작년 8월 핵심 증인인 유씨 여동생이 '수사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강압으로 허위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하고 나서자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금 문제가 된 것은 유씨가 2006년 5~6월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증거로 검찰이 2심 재판부에 제출한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龍)시 공안국 발급 '출입경(출입국) 기록' 등의 진위(眞僞) 여부다. 검찰은 이를 혐의 입증의 핵심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변호인 측이 위조 가능성을 제기하자 작년 12월 중국 대사관에 진위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유씨 변호인 측은 지난 14일 '중국 대사관이 주요 자료가 위조된 것이라는 답변을 재판부에 보냈다'면서 답변서 내용을 공개했다. 서울중앙지검도 16일 해명 기자회견을 열었다.

검찰의 공안(公安) 관련 수사는 내용에 따라 정국(政局) 흐름을 뒤바꾸고 사회 전체에 충격파를 던질 수도 있다. 그만큼 한 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철저한 증거 위주 수사를 해야 하고 증거 능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절차적으로도 완벽해야 한다. 만에 하나 검찰이나 국정원이 간첩 사건 피의자의 혐의를 억지로 입증하려고 중국 당국의 공문서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이건 보통 큰 문제가 아니다. 검찰이 누군가 다른 목적으로 제공한 위조문서에 대해 진위를 확인하지 못하고 법정에 제출했다 하더라도 검찰의 공신력(公信力)은 회복하기 힘든 손상을 받게 된다. 어느 쪽이든 검찰이나 국정원 차원을 넘어 나라 체면이 걸린 일이다.

지금 단계에서 사건 진상을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국 대사관이 법원에 보냈다는 답변서는 출입경 기록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인지, 그런 기록을 발급한 사실이 없다는 것인지, 발급 자격이 없는 기관이 내준 서류여서 공식 서류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지가 확실치 않다. 검찰이 중국 정부와 협력해 최대한 빨리 정확한 경위를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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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중국의 새 '北 비핵화' 제안 이번엔 믿을 만한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4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왕이 외교부장 등을 차례로 만난 뒤 "미·중 양국이 북한 비핵화 촉진과 관련한 서로의 안(案)을 제시했다"며 "사안의 긴급성을 고려해 앞으로 수일간 매우 진지하게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미·중은 지금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매우 구체적인 조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국의 구상을 보고하겠다"고 했다.

미·중은 그간 2008년 이후 중단된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놓고 외교적 협상을 벌여왔다. 6자회담을 다시 열려면 북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미국은 북이 과거 6자회담에서 약속했던 영변 핵 시설 가동 중단 같은 조치를 먼저 취해야만 회담을 다시 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이에 맞서 일단 6자회담부터 다시 열어 관련 이슈들을 다루자는 주장을 펴왔다. 중국이 이런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새 제안'을 내놨다. 미·중 모두가 이 제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과거 북의 행태를 보면 북이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은 2005년 6자회담에서 핵 포기에 합의했고 그 대가로 경제 지원을 받았다. 그러고선 2006년부터 세 번이나 핵실험을 실시했다. 김정은은 아예 '핵과 경제 발전 병진(竝進) 노선'을 내걸고 있다. 이런 북한이 과거와 달리 이번 6자회담에선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한·미가 6자회담 재개에 앞서 북에 비핵화 조치를 요구한 것은 북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키 위해서다. 이런 조치도 없이 6자회담을 열었다가 유엔의 대북 제재(制裁)만 느슨하게 만들어 북의 숨통을 틔워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케리 장관은 "북이 6자회담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지도 않으면 중국은 북한에 대해 추가적 (제재)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6자회담 재개 후 북이 비핵화에 협력하지 않으면 중국이 직접 나서서 북을 압박·제재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의 새 제안 역시 '북을 일단 믿어보자'는 과거 중국의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벌써 "과거에도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했다가 흐지부지되곤 했다"며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주장대로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 가장 큰 책임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6자회담 결과에 따라 중국의 국제 리더십도 적잖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이 '북핵 포기와 한반도 비핵화'에서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한 북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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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韓電 부채 95조원 자식 세대에 떠넘겨서야

조환익 한전 사장이 지난주 "전기 요금 원가엔 원전·송전탑 건설에 따른 갈등 처리 비용도 포함돼야 하는데 현재는 설비 건설·유지 비용만 들어가 있다. 앞으로 원가 책정 부분을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한전이 작년 두 차례(1·11월) 전기 요금을 인상했지만 전기 요금의 원가 회수율(回收率)은 90%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100원을 투입해 생산한 전기를 90원 받고 팔고 있는 것이다. 조 사장 말처럼 송전탑 갈등 비용 등까지 원가에 반영하면 전기 요금엔 다시 새 인상 요인이 생기는 것이다.

경남 밀양을 비롯해 경북 청도, 충남 당진, 전남 진도·해남 등에서 송전선·변전소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져 있다. 지역 주민들 요구대로 고압(高壓) 선로를 땅 밑에 묻게 되면 어마어마한 경비가 추가로 든다. 최근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원전 입지 선정에 따른 갈등 비용과 원전 해체 비용, 핵폐기물 처리 비용, 사고가 터졌을 경우의 복구 비용까지 따질 경우 원자력 전기의 발전 단가는 현재 책정된 39.2원보다 훨씬 비싼 54.2~254.3원에 달한다는 계산을 내놨다.

그러나 우리 전력 요금은 뻔히 나와 있는 비용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산업용 전기 요금은 2011년 기준으로 일본·독일·프랑스의 41~60%에 불과했다. 일본 소프트뱅크,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외국 IT 기업들이 전력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짓겠다고 하는 이유도 우리 산업용 전기료가 워낙 싸기 때문이다.

95조원에 이르는 한전 부채(負債)는 다음 세대가 갚을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식 세대에선 요금을 원가보다 훨씬 비싸게 내게 되는 것이다. 다음 세대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도 전력 생산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원가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요금 체제를 바꿔가야 한다. 대규모 원전·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초고압 송전선을 통해 원거리(遠距離)의 대도시·공장에 공급하는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개별 기업·공단에 지역별 소형 발전소 설립을 대폭 허가해 전기를 자급자족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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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사설]희대의 ‘간첩 조작’ 특검으로 낱낱이 규명해야

설마 했지만 의혹은 사실이었다. 허위 자백을 강요한 것도 모자라 조작된 서류로 한 개인을 간첩으로 내몰려 한 공안당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공판 과정에 피고인 유우성씨에게 간첩 혐의를 씌우기 위해 조작된 증거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군사정부 시절 용공조작의 망령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자유 민주주의와 법치를 표방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간첩 조작사건이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공문서 위조 파문의 핵심은 유씨의 북한 출입경기록이다. 국정원이 유씨의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기 위해 중국 허룽시 공안국을 통해 받은 자료다. 여기에는 유씨가 2006년 5~6월 사이 중국을 통해 두차례에 걸쳐 북한을 드나든 것으로 돼 있다. 유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포섭돼 자신이 관리해온 탈북자 명단을 건넸다는 혐의를 입증할 중요 문건이다. 하지만 국정원·검찰의 증거자료는 모두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정부가 “허룽시 공안국은 문서 발급자격이 없는 데다 공문서 형식이나 도장도 위조됐다”고 한국 법원에 정식 통보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위조된 공소 서류를 제출한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공신력을 먹고 사는 정부가 증거자료 조작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이는 특정 개인의 범죄 혐의 입증을 떠나 공권력의 신뢰와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다. 과거 일본 검찰도 이와 유사한 사건 때문에 검찰 총수가 옷을 벗고 검찰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된 전례가 있다. 공소 유지를 맡은 검찰이 1차 책임을 져야 한다. 국정원이 제출한 문서를 제대로 된 확인절차도 없이 법정에 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한 개인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이토록 허술하게 처리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누가 보더라도 총체적인 책임은 국정원이다. 수사 부터 혐의 입증까지 모두 국정원이 관여한 사건이다. 1심 재판 때도 증인을 상대로 한 무리한 자백 강요와 허위 자료 제출이 일찌감치 논란이 됐다. 문제가 된 허룽시 공안국의 출입경기록도 국정원이 현지 영사관을 통해 입수한 자료다. 국정원은 “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확보한 자료”라고 하지만 중국 정부가 “조작된 자료”라고 밝힌 이상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혹 유씨의 유죄 입증을 위해 무리하게 서류 조작에 관여했다면 국정원의 존립 근거를 뒤흔들 수 있는 문제다.

무엇보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사건에 연루된 검찰과 국정원-외교부가 폭탄 돌리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낯 부끄러운 일이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서류 조작에 관여했는지를 밝히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국정원장과 외교·법무 장관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진상조사를 위한 검찰총장 직속의 특임검사나 특별조사본부 설치도 검토해볼 수 있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가 진상규명 대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 자체 조사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특별검사 임명을 통해 신속하게 이 문제를 매듭짓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 정부 여당도 특검에 반대하거나 망설일 이유가 없다. 불의한 공권력을 방치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자초할 뿐이다.

한겨레 [사설] 김무성 의원의 얄팍한 ‘5·16 혁명론’

새누리당의 차기 당권을 겨냥하고 있다는 김무성 의원이 지난 14일 한 토론회에서 5·16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했다. 김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적화통일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무능하고 부패했던 우리 정치권을 뒤집어엎어 혁명을 했다”며 “우리 국민이 좀 억압을 당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우리 경제가 북한 경제를 따라잡아서 오늘날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 발언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무엇보다 국민의 상식적 역사인식과 동떨어져 있다. 5·16은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라는 평가가 명확해진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런 인식 아래 정치조직화한 하나회를 척결했다. 그런데 김 전 대통령의 상도동 출신이라는 김 의원이 이제 와서 역사를 거스르는 5·16 혁명론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당 대표 경선에 나서겠다는 여권 중진이 이렇게 국민 일반과 괴리된 역사인식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5·16은 누가 뭐래도 민주헌정을 총칼로 짓밟은 쿠데타이고, 그로 인해 수십년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신음했다. 박 전 대통령 치하에서 경제개발이 이뤄졌다는 것은 이와는 다른 범주의 문제다. 역사적·정치적·법적으로 명백한 쿠데타를 다른 이유를 들이대 혁명으로 미화할 수는 없다.
그동안 김 의원의 막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에는 저출산 문제를 두고 “자녀 한 사람 갖고 계신 분은 반성해야 한다”고 덜컥 말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지난 대선 때는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대통령이 (2008년 촛불시위를)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 했다”는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중견 정치인으로서 자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김 의원의 5·16 혁명론이 이른바 ‘박심’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참으로 가벼운 일이다. 김 의원은 당내 계파갈등에 대해 “내가 원조 친박, 친박 1번으로 친박을 다 만들었다”고 했다. 김 의원이 당권 경쟁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접근하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 의원까지 ‘박심’ 얻기 경쟁에 나섰다면 집권당 모양이 우습다.
집권당 대표를 하겠다는 사람이 편협하고 퇴행적인 역사인식과 분열적 정치노선을 추구해선 안 된다. 이념 대립이 심하고 빈부 격차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갈등을 치유하고 나라를 한데 묶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우향우 행보로 보수 표심만 얻겠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김 의원이 정말 집권당의 대표를 하고 싶고, 나아가 나라를 이끌고 싶다면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외국 문서까지 위조해 간첩사건 조작하나

이른바 ‘탈북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공판 과정에서 검찰이 “중국 공문”이라며 낸 문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주재 중국 영사부는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가 사실 확인을 요청한 데 대해 최근 회신서를 보내 “한국 검찰이 제출한 3건의 문서는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엔 중국 길림성 화룡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 조회 결과’와 삼합변방검사창(세관)의 ‘유우성씨 출입경기록 정황 설명서에 대한 회신’, 화룡시 공안국이 심양 주재 대한민국총영사관에 발송했다는 공문 등이 포함된다. 1심 때부터 구타와 강압 수사 논란이 제기되더니 급기야 공문서까지 조작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국정원은 여전히 “고등법원에 제출한 자료는 사실과 부합하는 것”이라며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 대해 유감”이라고 적반하장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검찰 역시 위조 사실을 몰랐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믿기 어렵다. 이 사건 경과를 보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증거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법에 따라 엄히 처벌해야 한다.
항소심의 쟁점은 화교 출신 탈북자 유우성씨가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2006년 5월23일부터 27일 사이 북한을 다녀온 뒤 다시 북한에 들어간 적이 있는지 여부였다. 5월27일 북에 다시 들어갔다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검찰은 2심에서 유씨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중국 세관이 발급했다는 ‘회신’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변호인 쪽이 반박자료를 내자 이번엔 화룡시 공안국이 한국영사관에 보냈다는 확인서를 추가로 냈다. 그러나 중국 영사부는 검찰이 낸 모든 증거자료가 위조된 것이라며 오히려 “공문 위조 범죄에 대해 조사를 진행할 것이니 협조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유씨 쪽은 지난해 초 국정원이 조사할 때 중국 영사부가 이번에 ‘진짜’라고 밝힌 출입국기록을 보여줬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가짜’로 판명된 다른 출입국기록을 냈다면 최소한 국정원은 위조 사실을 알았다고 봐야 한다. 검찰 역시 항소심 법정에서, ‘진짜’ 출입국기록을 수사 단계에서부터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가 번복한 적이 있다는 걸 보면 항소심에 낸 것이 ‘가짜’란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수사기관이 증거까지 위조해가며 사건을 만들었다면 보통 심각한 범죄행위가 아니다.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조작 간첩 사건이 일어난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고문 여부까지 포함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6자회담 재개 노력 구체화해야

남북이 고위급 접촉을 계속해나가기로 합의하는 등 남북 관계가 조금씩 진전되는 가운데 북한 핵 문제를 풀려는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2008년 12월 이후 중단된 6자회담이 이번에야말로 재개되길 기대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이다. 14~15일 중국을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두 나라가 북한 비핵화 촉진과 관련한 서로의 안을 제시했다”며 앞으로 며칠 동안 매우 진지하게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나라가 6자회담 재개 조건과 대북 대응 등에 관한 새 안을 내놓고 조율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 핵 문제를 놓고 관련국들 사이에서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밀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두 나라의 태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강조한다. 케리 장관은 ‘북한이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고 구체적이고 비가역적인 조처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드니 사일러 미국 백악관 한반도담당 보좌관도 북핵대응 6대 원칙으로 군사적 억제와 제재 유지,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른 외교적 대안 제시, 말이 아닌 행동에 대한 평가 등을 제시했다. 반면 중국은 ‘관련국이 모두 성실하게 자신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중국을 대북 압박에 동참시켜 북한의 행동을 이끌어내려는 데 비해 중국은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와 더불어 ‘북한의 요구를 고려한 대화’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다. 두 나라의 이런 차이는 북한의 일정한 행동을 전제로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이 핵 문제 해결 노력을 강화해야 할 때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태도가 중요한 상황이다. 방향은 두 갈래다. 하나는 남북 관계를 착실하게 진전시키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말 그대로 출발점일 뿐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조처 완화·해제 등 교류·협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조처가 먼저 검토돼야 한다. 다른 하나는 6자회담 재개를 앞당길 수 있는 구체적인 노력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관련국들의 통일된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유연하면서도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좋은 남북 관계는 북한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어떤 한반도 관련 현안도 제대로 풀릴 수 없다. 남북 관계 진전과 핵 문제 해결 노력이 서로를 강화시키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할 때다.

2014년 2월 13일 목요일

중앙 [사설] 국민 얕잡아 본 청와대의 '천해성 파동' 해명

중앙 [사설] 국민 얕잡아 본 청와대의 '천해성 파동' 해명


청와대는 최근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처를 부활하면서 국가안보실 내에 안보전략비서관을 신설했다. 이 자리에 통일부 엘리트 관료로 분류되는 천해성 통일정책실장을 앉혔다. 그런데 근무 1주일 만에 그를 남북회담본부 상근대표로 보내고 전성훈 통일연구원장을 새로 골랐다. 인사대상을 바꾸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보여준 태도는 신중하지 못한 소통과 인사의 문제를 다시 드러냈다.

 청와대의 설명은 너무 엉성한 것이다. 민경욱 대변인은 천 내정자는 통일부 핵심 요원으로 통일부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돌려보내 달라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수준 낮고, 황당한 변명이다. 부처 핵심 관리를 국가안보 요직에 차출하면서 사전에 장관의 양해를 얻지 않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로서는 밝히기 곤란하다고 판단한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국민에게 좀 더 성의 있게 설명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 국민이 이런 엉터리 설명을 납득하리라고 생각했다면 국민을 얕잡아 본 것이다.

 철회를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천 내정자가 과거 정권에서 보여준 언행에 대해 정부 내 안보나 검증 부서에서 문제를 제기했다거나 아니면 그가 기존의 국가안보실 인사들과 마찰을 빚었다는 것 등이다. 외교안보 관련 요직에서 미스터리 인사 파동은 처음이 아니다. 정권 출범 직전엔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안보 분야에서 활동하던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돌연 사퇴한 적이 있다.

 김정은 정권의 대남 도발과 장성택 처형 등 불투명한 사태로 한반도 상황은 유동적이다. 이럴수록 외교안보팀은 허점이 없이 잘 짜여져야 하며 그런 구성과 업무자세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다.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비밀스러운 사안이 아니라면 정부는 최대한의 투명성으로 국민에게 성의껏 설명해야 할 것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치밀한 인사시스템으로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