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사설]‘또 하나의 약속’ 상영 기피 논란이 남긴 교훈
오늘 개봉하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일부 대기업이 운영하는 영화관이 상영을 기피한다고 해서 어제 하루 종일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누리꾼과 영화 팬의 항의가 빗발쳤다. 예매점유율 6.8%로 전체 3위이자 이번주 개봉작 중 1위이고 9.7~9.9의 높은 관객 평점인데도 불구하고 그제 롯데시네마가 7개 상영관을 배정하는 데 그치고 메가박스가 3개 상영관으로 예매 창구를 줄이면서다. 일부 상영관에서는 예매를 마친 관객에게 상영 취소 통보와 함께 환불 조치까지 했다고 한다. 흥행이 예상되는 영화의 상영관 수를 애써 줄이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로서 누리꾼들이 의혹을 가지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처음으로 딸의 백혈병 산재 인정 판결을 받아낸 아버지의 실제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해묵은 노동현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 ‘삼성전자 노동자 백혈병 문제’는 세계 일류기업을 자부하는 삼성으로서는 가능한 한 감추고 싶은 부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제작 단계에서도 대기업의 투자 외면으로 제작두레 방식 등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 전액을 모았고, 그로 인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상영관 축소 파문과 관련해 외압 또는 눈치보기 의혹이 제기될 만한 배경이 있는 셈이다.
대중문화의 영역에 외압이나 눈치보기가 작용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서글프고 참담한 일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정황 자체가 반문화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그런 징후가 자꾸 나타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지난해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에 이어 이번 <또 하나의 약속> 상영관 축소 파문으로 권력이나 정파뿐 아니라 거대자본까지 그런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벌써 <또 하나의 약속>을 ‘제2의 변호인’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둘 다 실화를 소재로 삼았고, 개인의 문제에서 출발해 사회 모순에 직면해 주인공의 삶이 달라지는 과정을 그렸으며,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세력의 견제나 외압이 오히려 흥행 돌풍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또 하나의 약속>이 복합상영관의 전횡이나 거대자본의 영향력을 넘어 또 다른 ‘변호인 현상’을 불러올 것인지는 결국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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