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일보의 독재찬양 보도의 몇 가지 사례
조선일보가 해방 이후 역대 독재정권을 찬양하며 나팔수 역할을 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사례들을 모두 모은다면 여러 권의 책이 될 것이다. 웬만하면 다 아는 사실들이 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만 살펴보고 그 근원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대처해야 할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 아는 사실들을 확인하며 분개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것은 증상에 불과한 것이요, 진단을 통해 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확인해서 해법을 찾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두 번째 임기에 들어갔을 때 중임제로 되어 있는 헌법을 개정했다. 1969년 10월 17일 이른바 3선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통과시킨 것이다. 이때 조선일보는 16일자에 <‘영광의 후퇴’보다 ‘전진의 십자가’를… “나는 나를 버리고 국가를 위해 한번 더”>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3선 개헌을 지지해주었다. 더불어 <각계 인사들이 본 ‘성장한국’>이라는 기사에서는 대학총장과 영화배우, 탤런트 등 1명의 인사를 동원하여 개헌을 지지하고 찬양하는 발언들을 소개했다. 개헌안이 통과된 후 19일자 사설 <국민의 심판은 끝났다-다수결에의 복종과 함께 소수파도 존중>에서 “올해 최대의 쟁점이 되었던 개헌문제가 이렇듯 국민의 심판에 의해서 결말을 짓게 된 이상 비록 치열한 반대세력이 있었다 할지라도 민주주의의 원칙대로 이제는 다수결에 복종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의 대변인과도 같은 결론을 내려주었다. 1. 그로부터 3년 후인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가 “남북대화를 뒷받침하며 격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소위 10월 유신을 단행했을 때도 <평화통일을 위한 신체제> 라는 사설로써 “앞으로의 보다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얻기 위하여 진정 알맞은 조치임을 기쁘게 생각”하고, “헌법 기능의 일부 정지와 아울러 이에 따르는 몇 가지 조치가 선포된 것은 새로운 헌정질서의 존립을 위하여 만부득한 조치”요 “비상사태는 민주제도의 향상과 발전을 위하여 하나의 탈각이요 시련이요 진보의 표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라고 찬사를 보냈다. 10월 28일자 사설 <유신적 개혁의 기초-민주주의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헌법>에서는 “발의측의 문제의식이 이렇듯 왕성하고 과감한 개혁이 담긴 개헌안을 우리는 일찍이 본 적이 없”으며, “대통령을 직접 선거함으로써 빚어졌던 여러 가지 폐해와 부작용을 일소하게 된다.”고 대변해주었다. 민주주의의 파괴행위를 민주주의의 번영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1월 21일의 국민투표가 통과된 후 23일자 사설 <새 역사의 출범-유신헌법안 확정의 의의와 평가>에서는, 유신헌법의 통과가 “조국통일과 민족중흥의 제단 위에 모든 것을 바친 그의 뜨거운 애국심과 뛰어난 영도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성원의 발현”이자 “지난 10년간 박 대통령이 쌓아올린 눈부신 업적에 대한 국민적인 찬사” 라고 추앙하였다. 12월 28일자 사설 <새 역사의 전개-제8대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을 경하한다>에서도 “부와 근대화의 씨앗을 뿌려 가꿈으로써 이 나라 국민의 뼈에 젖은 패배 의식과 열등감을 용기와 자신으로써 대체해주고 지난 4반세기에 걸쳐 지속되어 온 냉전 속에서의 동족상잔과 남북결원의 민족사에 10 · 17 구국의 영단으로 종지부를 찍고 평화통일의 새 역사를 위하여 정초한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선출 · 취임토록 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미덥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라고 찬양하였다. 이런 찬사는 전두환에게 복사기처럼 반복되었다. 광주학살을 자행한 후 대통령이 되기 위해 고속승진으로 대장으로 예편한 전두환을 칭송하는 조선일보 1980년 8월 23일자 <『人間 全斗煥』>이란 기사다.
“그는 매사에 있어 私에 앞서 公이고, 나에 앞서 나라 걱정식이다. 그의 이러한 사고는 어려서부터 「義가 생명보다 중하니라」고 조상 대대로 口傳돼 내려오고 있는 家訓에 영향을 받은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의 투철한 國家觀과 불굴의 의지, 非理를 보고는 잠시도 참지를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修道생활보다도 엄격하고 규칙적인 육군사관학교 4년 생활에서 갈고 닦아 더욱 살찌운 것인 듯하다.” “나를 버리고 국가를 위해” 십자가를 진 박정희, “조국통일과 민족중흥의 제단 위에 모든 것을 바친” 박정희의 “뜨거운 애국심”, “私에 앞서 公이고, 나에 앞서 나라 걱정”인 전두환. 조선일보의 상투적인 독재자 찬양 어법인 것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은 196년 12월 26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단독 소집하여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을 기습적으로 날치기 통과시킨 바 있다. 안기부법의 경우, 3년 전 인권유린과 직권남용 등 부작용 우려가 있다고 하여 찬양·고무와 불고지에 대한 수사권을 여야합의로 검찰에 넘겼던 것을 다시 부활하는 내용이었다. 조선일보는 12월 17일자 사설 <안기부법과 대공 수사> 에서 안기부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번 정기국회 회기에 이를 처리하지 못할 경우 안기부법 개정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고, 그리되면 안기부가 대공 수사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불구현상’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야당 측은 정치와 언론 학원 종교계를 모두 안기부의 감시 및 수사범위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며 반대입장… 시대상황이 바뀐 지금 단계에서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안기부가 대공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간첩색출 등 대공사범 수사에 있어 중대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사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만큼 지난번에도 본란에서 지적했듯이 안기부의 대공 수사권을 원래대로 회복시켜 주는 대신 이의 악용이나 남용의 소지를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 대안아 아닌가 싶다.… 대공 전문기관의 역할을 축소시켜 놓고 대공 문제가 잘 풀리기를 기대한다면 난센스일 뿐이다.”
이에 앞서 10월 24일 ‘김대중 칼럼’은 <세금을 내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정부가 한총련 사태에 단호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질타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 안기부 고위관리가 울분을 토로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안기부법의 개정을 촉구한 바 있다.
“현재 안기부에는 대공 전문가가 없다. 정권이 바뀌면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대공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 과거에는 안기부가 학생 친공운동의 뿌리를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이번에도 뿌리는 못 건드리고 겉만 훑어가면 수 천 명을 가둬가도 아무 소용이 없다.… 문민정부의 정치적 흥정으로 없어진 국가보안법 7조(고무 찬양 등)가 회복되지 않는 한 그 뿌리를 제거할 수는 없다.”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는 “고무찬양죄와 불고지죄에 대한 수사권을 안기부에 주려는 목적은 대선에서 이를 악용하겠다는 것이다. 안기부법 개정을 저지하지 못하고 대선을 겪고 난 뒤 후회하면 늦으니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뒤로 물러서지 말고 싸워달라”며 비상대기령’을 내렸었다. 결국 고무찬양죄와 불고지죄에 대한 수사권을 회복한 안기부법이 통과되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다시 개정되지 못한 채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이 불법부정선거를 자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선일보는 독재정권의 유지에 필요하다면 악법도 찬양하는 작태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리고 국정원의 부정선거에 대해서는‘대선불복’이라는 레토릭으로 입막음을 해오며 독재정권을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조선일보는 왜 이런 보도를 하는 것인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모르지 않으면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유체이탈적 화법을 구사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조선일보의 정체를 알면 진실이 보일 것이다. 왜곡보도 자체보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
2. 조선일보의 정체
일반적으로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이것은 역사를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17~18세기 유럽에서 부르주아 세력이 성장하여 절대왕정국가에 저항할 때 보여주었던 모습이 신화가 되어 오늘날에는 마치 만고불변의 진실인 것처럼 세뇌된 데서 비롯된 잘못된 사고다. 부르주아 세력은 신문을 통해 권력을 비판하며 혁명세력을 결집했고, 국가권력은 이를 탄압했다. 이러한 탄압에 저항하며 대두된 논리가 언론의 자유였다. 이는 국가권력의 정치적 경제적 통제와 간섭을 배제하는 논리인 자유주의 사상의 일부였다. 자유주의 사상과 언론자유의 주장은 부르주아를 위한 것임은 물론이었다. 그 국가권력에 저항하던 신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정치권력과 타협했으며, 19세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는 광고를 먹고 사는 상업지로 변신하였다. 정론지(政論紙)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대중적 상업지로 바뀐 것이다. 이때 기업들은 보수적인 신문에게만 광고를 주었고, 보수적인 신문들은 광고 수입을 위해 객관보도와 중립(中立)을 표방하면서 정부와 기업에 대한 비판은 최소한으로 하면서 선정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것이 현대 저널리즘의 성격이 형성된 배경이다. 이후 20년 동안 이 성격에 어떠한 근본적인 변화도 없었다. 무릇 모든 개념은 몽상가의 머릿속에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의 산물이다. 정론지 시대를 풍미하던 정치적 편향과 주관적 보도는 산업자본주의의 대량생산 시대가 되면 정치적 중립과 객관보도로 바뀌게 된다. 종합하여 공정보도라는 개념도 이때 등장한다. 공정보도는 불편부당(不偏不黨), 기계적 중립(neutrality), 양적 균형 등을 수반한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치적 성향을 초월하여 독자를 확보해야 하는 신문사의 입장에서 표방해야 하는 슬로건이자 저널리즘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선정주의(sensationalism)가 수반된다. 모두가 영리를 추구하기 위한 장치였다. 조선일보의 사시(社是)가 ‘불편부당’이라는 사실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 저널리즘이 일본을 거쳐 조선에 유입되었고, 미국의 영향력 하에 대한민국 언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일제시대에 조선일보는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권력에 충성했으며, 해방 후에는 미군정에 협력했다. 이승만 정권이 민심을 완전히 잃게 되었을 때 권력을 비판했지만, 박정희 정권 이후에는 권력의 충견이 되었다.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시기에는 스스로 권력이 되어 언론행세를 하고 있다. 서구의 언론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정부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이 시민사회의 성숙과 더불어 공적 기능이 부분적으로 강화되면서 언론의 자유가 신장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19세기에 형성된 저널리즘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자본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부를 옹호하거나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구 언론의 기본적인 태도는 국가이익을 앞세운 자본이익의 관철이다. 그 원칙에 크게 거스르지 않는 한 일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취재보도의 자유가 존중된다. 부시정권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미국의 언론이 이를 지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다르다. 특히 일제시대에서부터 존재해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친일파를 보호하는 것이 최고의 임무였고, 지금도 상당 부분 그러하다. 그 자신이 친일파였던 조선일보는 해방 후 미국에 충성하면서 친일파의 득세를 위해 일로매진하였다. 프랑스 같으면 청산대상이었을 친일파와 그 일원인 조선일보는 오히려 정권을 장악하고 기득권집단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그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미군은 남한지역을 점령한 이후 독립운동을 해온 건국준비위원회를 해산시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을 배제한 반면 일제에 협력해 온 친일파들을 원직에 복귀시키고 중용하여 통치하였다. 친일파들은 한민당을 조직하여 활동을 시작했고, 신탁통치반대운동이라는 거센 파도가 일어나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의 과제가 휩쓸려 실종되었다. 신탁통치반대운동은 동경의 맥아더 사령부나 미군정, 혹은 둘의 합작품으로 추정되는 바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왜곡 · 날조하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희대의 날조극이었다. 동아일보는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공식 결정이 발표되기 전인 1945년 12월27일 1면 머리기사로 <外相會議에 論議 朝鮮獨立問題 / 蘇聯은 信託統治 主張 / 蘇聯의 口實은 38線 分割占領 / 米國은 卽時獨立 主張>을 실었다. '워싱턴 25일發 合同至急報'라고 돼 있는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3국 외상회담을 계기로 조선독립 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이 농후하여 가고 있다. 즉 번즈 미 국무장관은 출발 당시에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3국간에 어떠한 협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명하나, 미국의 태도는 카이로 선언에 의하여 조선은 국민투표로써 그 정부의 형태를 결정할 것을 약속한 점에 있는데, 소련은 남북 양 지역을 일괄한 일국 신탁통치를 주장하여 38도선에 의한 분할이 계속되는 한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렇게 미국이 제의한 신탁통치안을 소련이 제의한 것이라고 왜곡하였다. 이 기사는 오보가 아닌 날조였다. '관측이 농후' '받았다고 하는데' '불명하나' 등의 표현에서 보듯이 추측으로 일관하며 번즈 장관이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 등 사실과 다른 허위 보도를 하고 있다. 신탁통치는 애시당초 미국(루즈벨트)의 구상이었으며, 소련(스탈린)은 미국의 구상에 적극적 동의를 하지 않는 가운데 즉시 독립을 기본으로 하여 민주적인 임시정부를 세우고 최소한의 후견(Oπéka) 기간을 두는 정도로 하는 입장이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의 출처에 대해 '워싱턴 25일發 合同至急報'라고 해놓았다.1) 우선 보도시점이 의문을 갖게 한다. 모스크바에서 3상회의의 결정 내용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일시는 12월 28일 정오, 서울 시간으로는 28일 오후 6시였다. 적어도 2일 전에 기사를 받아 인쇄를 한 셈이다. 주한미군 사령부는 결정내용을 29일에야 입수했다. 사정이 이러했기 때문에 당시에도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에 올린 미국의 한국 통일행정체제안(한국신탁통치원안)은 "미·영·중·소 4개국이 신탁통치체제의 최고권한자가 되어 유엔헌장 79조에 규정된 기본목적에 따라 행동한다" 등 4개안을 준비했고(1945년 12월 17일), 소련은 '미국측안에 대해 소련이 제출한 대안'은 "조선을 독립국가로서 재건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조선임시민주정부를 수립한다" 등 4개안을 준비했다(12월 20일)(이정복·윤종일, 194, 501~502쪽). 전문은 다음표와 같다.
언론운동은 정치투쟁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조선일보는 정치집단이지 언론이 아니다. 언론의 탈은 쓰고 있지만 정치적 목적을 분명히 하면서 정치행위를 하는 정치집단이다. 언론으로 대하고 잘못된 보도를 지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모니터를 하는 목적은 조선일보의 정체를 확인하고 투쟁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를 목적으로 가두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언론으로 대하는 비판은 백날 해보아야 소용이 없다. 전혀 긴장하거나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간혹 들리는 ‘조선일보는 언론이기를 포기했는가’ 따위의 구호는 공허하다. 조선일보는 애시당초 언론이 아니었다. 친일파 상공인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으며, 해방 후에는 신분을 세탁하고 기득권집단에 편승하여 대변인 역할을 하는 목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친일 · 친미파 기득권집단의 콘트롤 타워로서 기능하고 있다. 적을 정확히 알아야 이길수 있다. 문제는 조선일보의 아성이 매우 견고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조선일보의 정체를 꿰뚫고 민주언론의 회복을 도모하고 있는 다른 한편에선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학자군들이 있다는 사실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 친일을 미화하는 뉴 라이트는 물론이고 언론사를 전공한다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학자들도 있다. 일제시대 조선일보는 항일을 하다 총독부로부터 탄압을 받았다는 식이다. 아주 일부의 사실을 전체 역사로 과장 왜곡하면서 친일의 역사는 언급하지도 않는다. 전 외국어대 교수 정진석의 《일제하 한국언론 투쟁사》, 《언론조선총독부》, 선문대 교수 이 연의 《일제 강점기 조선 언론 통제사》 등이 그것이다. 장기적인 투쟁을 고려할 때 후세 교육에 미치는 이런 역사왜곡에 대해서도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학술원에서는 이런 책들을 우수도서라고 선정해주기도 한다.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을 때(사실은 나라가 바로 서야 언론이 바로 서겠지만), 잘못된 언론사 교육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그것이 기본이다.
4. 세월호 참사보도
(1) 기레기가 된 언론
세월호 참사는 언론참사라는 말까지 나올 정보로 언론보도와 관련하여 온갖 불미스러운 일들이 벌어졌고, 급기야 ‘기레기언론’이라는 규정까지 받고 말았다. 30여명이 숨져가고 있는 현장에서 그 과정 전체를 생중계하다시피 하는 무감각, 사건을 사람 중심으로 보지 않고 흥미 위주로 보는 비인간적 보도, 센세이셔널리즘에 매몰되어 무차별적으로 보도하는 비이성과 반인륜적 행태,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정부와 덩달아 헤매는 언론, 구조작업을 진행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현장에 있는 유가족을 무시하고 정부발표만을 중계하는 보도, 상식을 뛰어 넘는 무리한 인터뷰, 현장을 무시한 탁상행정식 보도 등은 기레기언론이라는 호칭을 자초한 요인들이다, 백선기(201)는 일본 동북지방 대지진에 대한 미국, 일본, 한국 언론의 보도를 비교한 연구에서 일본과 미국 언론은 사실적 언어를 주로 사용한 반면, 한국 언론은 부각적·자극적·주관적 언어를 많이 사용했음을 밝혔다. 미국 언론은 속보가 아닌 분석·탐사보도에 주력하며, 한국·일본보다 훨씬 많은 기획·심층 보도를 내보냈다. 미국과 일본언론은 재난학·지질학·원전학 등 전문가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도한 경우가 한국 언론의 2배였다. 한국 언론은 극심한 피해를 부각하는 편집 기법을 썼지만, 일본 언론은 원거리 영상을 주로 활용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는 2014년 5월 8일자 노보의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KBS 재난보도’라는 기사에서 사고가 일어난 4월 16일 이후 KBS의 보도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① “학생 전원 구조” “선내 엉켜있는 시신 발견” 사고 초기 잇따른 오보
② “인력·장비 총동원 구조활동” 검증 없는 받아쓰기
③ ‘언딘’ 의혹에는 침묵
④ 박근혜 대통령 진도체육관 방문 보도, “가족들은 박수로 호응”
⑤ 실종자 가족 목소리도 왜곡
⑥ 과도한 유병언 관련 보도
⑦ 정권에 불리한 보도는 잇따라 누락
방문신(2014)은 세월호 참사보도에서 문제가 되었던 보도유형으로 유형별 문제 구체적 사례 정보의 일방적 전달(정보 소스), 피해자에 대한 배려와 공감 부족(취재 태도), 미확인 선정성(과잉 경쟁)을 들었다. 정보의 일방적 전달이란 정부발표에 대한 사실검증이나 비판적 질문 없이 일방적으로 전달한 것을 말한다. 그로 말미암아 중대한 오보가 속출했으며, 결과적으로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을 불러 일으켰다. 공감과 배려 부족이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배려 와 공감이 부족했음을 말한다. 미확인 선정보도는 정보원 통제라는 측면에서 정부정보의 일방적 전달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민간이 제공한 정보를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각 보도함으로써 오보를 범한 것을 말한다. 홍은희(2014)는 세월호 참사보도에 대해 사건 초기 실종자 가족들의 울부짖는 모습을 전달하고 단원고 재학생들의 모습을 담는 등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많은 등 한국 재난보도의 고질적 병폐가 적잖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 병폐로는 오열하는 실종자 가족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생존자들의 사진을 지면에 담는 등의 선정성, 실종자 가족을 식당까지 따라붙어 몰래 녹취하다가 발각되거나 가족으로 위장해 바지선을 타려다 신분이 발각되는 등 비정상적인 취재방법을 남용한 점, 그리고 가짜 민간잠수부 사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정보원에 대한 검증 미흡 등을 들었다. 그에 따라 그는 세월호 침몰사건 보도가 저널리스트의 올바른 직업윤리의식 함양이 절실하다는 것을 숙제로 남겨 주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불어 세월호 침몰사건 보도가 한국 재난보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집중적으로 이어지면서 스케치 위주의 사건현장 보도나 상투적인 원인규명에 머물지 않고 관-업계 간의 유착관계, 재난대책기구의 문제를 비롯한 안전시스템에 관한 본질적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대책수립을 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백선기(2012)는 일본 대지진을 보도하는 국내 4대 일간지들의 보도 태도를 분석해본 결과, 보도준칙에 있어서 기사와 사진 그리고 그래픽에 있어서 정보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목들이 준수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째, 재난보도의 정보전달에 있어서 보도언어가 사실성이 있어야 하며, 사고현장이나 피해상황은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나 단지 재난상황을 묘사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재난보도의 전달방식이 객관성을 준수하지 못해 선정적이었다. 셋째, 제공되어야 하는 정보가 피해상황과 더불어 피해예방과 피해복구를 포함하여야 하는데, 보도준칙의 파해 최소화를 준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넷째, 재난보도에 있어서 사고 원인 등과 같은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재난대책 공식기구의 책임자나 대변인을 통해야 하며, 전문가 검증을 명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다섯째, 피해상황과 피해자 보도에 있어서 추정적이 아닌 공식기관의 통계를 보도해야 하는데 준수되지 못하고 있었다. 여섯째,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흥미위주나 인명구조활동을 방해하는 인터뷰는 자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일곱째, 사진 보도에 있어서 자극적 장면을 시각적인 흥미위주로 제공함으로써, 정보를 제공하는 객관적인 크기와 내용이 준수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 출처도 지나치게 해외통신사에 의존하고 있었다. 여덟째, 그래픽 보도에 있어서도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객관적인 내용과 색채가 아니라 사진과의 합성과 컬러를 사용한 시각적인 흥미와 선정성을 가지고 있었다. 기자들 스스로 고백했던 것과 같이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재난보도의 품질과 수준을 그대로 드러냈다.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반성하고 대안을 마련해보기도 했지만 다음에 유사한 재난이 일어날 경우 보도의 재난은 거듭되었다. 세월호 참사 보도의 특성과 한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① 발표저널리즘
사고 초기 학생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허위정보를 보도할 때 언론매체들은 이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현장에서 기자들은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뱃속에 갇혀 있다는 보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스크에서 무시되었다. 정부 발표 받아쓰기,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와 의존은 언론활동의 출발점인 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언론이라는 가치와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와 권력과 자본에 순치된 언론보도 시스템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 사태다. 정부나 기업의 발표자료를 그대로 또는 약간 수정해서 보도하는 방식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데서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정부와 유가족이 어떤 사안을 가지고 대립할 때, 정부가 하면 ‘발표’이고 ‘밝힌’ 것이며, 유가족이 하면 ‘주장’한 것이라고 보도하는 비대칭성도 정부에 대한 과도한 신뢰에 길들여진 탓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② 진실확인 부재의 저널리즘
바다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현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까닭에 지휘부의 보도자료만을 가지고 보도하는 전쟁보도와 비슷하게 정부 발표만을 거듭 중계하는 일이 자주 있어났다. 기자들이 주체적으로 취재하거나 정부발표가 맞는 지 확인하는 취재의 기본적 요구와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언론매체들이 일정한 보도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보도도 있었다. 구원파가 배후로 지목되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행과정에 대한 보도는 뒷전으로 밀리고, 구원파 유병언과 그의 본거지인 금수원 수색에 선정적으로 초점을 맞춘 것도 잘못된 보도의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가짜 여성잠수부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취재원의 진실성을 검토하지 않고 그들의 주장을 여과없이 전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③ 떼거리 저널리즘
떼거리저널리즘의 요소도 지적할 수 있다. 정부 고위인사가 현장을 방문할 때와 같이 특정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는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취재경쟁을 하고,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사안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에는 막상 기자들이 없는 일도 허다했다. 박근혜 대통령 진도체육관 방문 보도 같은 경우가 그 예이다. 방문현장은 기자들로 넘쳤으며, 가족들은 박수로 호응했다는 식의 보도를 했다. 가족들이 강력히 항의했지만 그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다. 사고현장과 가까이에 있는 팽목항과 유가족들이 자리잡은 진도실내체육관은 기자들 만으로도 넘칠 정도였다. 기자들은 주요 방문자들이나 유가족들에게서 유별난 행동이 나오길 기다리며 경쟁적으로 취재활동을 벌였다.
④ 휴머니즘의 부족과 과도한 센세이셔녈리즘
오랜 기간 계속된 세월호 참사 관련 현장중계에서 속보경쟁과 센세이셔녈리즘에 내몰려 휴머니즘을 상실한 보도가 자주 일어났다. 통곡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방송되었고, 구조된 사람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친구의 죽음을 아느냐고 물어보고, 구조된 6살 아이에게 엄마 아빠 행방을 물어보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TV조선, 채널A, MBN 등은 참사 당일 밤 예능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빈축을 샀으며, 사고승객들이 보험금을 얼마나 받는지를 따지는 경우도 있었다. 방송화면에 상시적으로 등장하는 사망자와 실종자 현황 자막도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와 관심을 스포츠 중계방송에 대한 관심처럼 변질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⑤ 매스미디어를 뛰어넘는 소셜미디어 유가족들은 언론을 불신했다. 그 이유는 유가족들이 실제로 보고 아는 것과 언론보도 사이에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 그리고 유가족들의 증언은 무시하고, 그와 다른 정부발표만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가운데 언론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었다. 유가족들의 이야기는 신문이나 방송으로부터는 무시당했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공식매체에 보도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그중 상당부분은 사실로 드러났다. 개인들 사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된 유언비어는 양적으로도 신문이나 방송을 뛰어 넘었고, 그 정확성이나 신뢰도도 신문이나 방송의 그것을 뛰어 넘었다.
(2) 세월호 참사 보도 관련 언론사의 반성
세월호 참사에 관한 보도가 현장의 상황을 사실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유가족들로부터 거부당하기까지 하는 등 파행을 거듭하면서 기레기언론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자성의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나 진실보도를 막는 취재보도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반성의 뜻을 표했으며, 일부 언론사에서는 자사의 보도에 대한 반성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 04/26 YTN, 세월호 보도 반성 프로그램
▲ ‘봄꽃은 지는데 우린 무얼 했나’ 방영
○ 05/07 KBS 38~40기 막내기자들, 세월호 참사 보도 반성문
▲ “팽목항에선 KBS 로고 박힌 잠바조차 두렵다”
○ 5/12 MBC 30기 이하 기자 121명 반성문
▲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 5/15 KBS <뉴스9> ‘세월호 참사 보도’ 사과
▲ ‘검증없고 혼란만 부추긴 언론 보도… 실망·분노’
▲ ‘대통령 부각·유족 소홀’ KBS보도 반성합니다
5. 대안으로서의 재난보도준칙
세월호 참사 초기 지나치게 많은 루머가 온나라에 퍼지고, 선정적인 뉴스가 판을 치는 등 언론보도가 혼미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한국기자협회는 2014년 4월 20일 세월호참사 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은 발표 후에도 별다른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언론보도는 파행을 면치 못했다. 준칙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참사 보도는 신속함에 앞서 무엇보다 정확해야 한다. ▲ 피해 통계나 명단은 구조기관의 공식발표에 의거해 보도한다. ▲ 현장취재나 인터뷰는 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보도한다. ▲ 생존 학생이나 아동에 대한 취재는 엄격히 제한한다. ▲ 보도내용이 오보로 드러나면 신속히 정정보도를 하고 사과한다. ▲ 자극적 영상이나 선정적 어휘 사용을 자제한다. ▲ 불확실한 내용은 검증보도를 통해 유언비어 발생을 막는다. ▲ 영상취재는 구조활동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며, 근접촬영을 삼간다. ▲ 개인적 감정이 반영된 보도나 논평을 자제한다. ▲ 가족과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 전달에 노력한다. 이 준칙이 발표될 당시 한국의 언론보도는 이미 정도를 벗어나고 있었고, 기자협회의 자율규제기준으로는 통제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준칙은 한국기자협회가 2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직후 논의하다가 결론을 맺지 못했던 '재난보도준칙(가이드라인)' 초안을 계승한 것이었다. 그에 앞서 KBS, MBC 등도 재난방송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2014년 1월 공동으로 “재난방송 및 민방위경보방송의 실시에 관한 기준”을 고시했다.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7조 재난방송 등의 준칙에서는 ① 재난상황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보도, ② 재난지역과 이재민 등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다양하게 제공, ③ 재난수습 및 복구상황은 물론 이재민 등 피해자의 생활과 관련된 정보의 제공에 비중을 둘 것, ④ 각 방송사업자 별로 재난방송매뉴얼을 제작·비치할 것을 규정했다. 제8조 사생활 보호에서는 ① 사상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에는 신중을 기할 것, ② 이재민 등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장면을 무분별하게 촬영하여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 것, ③ 이재민 등 피해자에 대한 인터뷰를 함에 있어 인터뷰를 강요하는 행위, 장시간의 인터뷰를 하는 행위, 대답하기 곤란하거나 수치심을
일으키는 질문을 하는 행위, 기타 피해자의 심리적·육체적 안정을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말도록 했다. 제9조 정확한 보도에서는 재난 등의 피해 및 복구와 관련된 통계 또는 명단 등을 방송할 경우에는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의 발표내용을 최대한 반영할 것을 규정했다. 제10조 취재질서 유지에서는 ① 취재를 할 경우에는 인명구조와 재난 등의 수습 및 복구를 방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② 출입이 제한되거나 통제된 현장에서의 카메라 설치, 관계자 인터뷰 등 필요한 사항은 재난관리 책임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정한다고 규정했다. 세월호 참사 진행과정에서 다수의 언론인 단체들이 재난보도준칙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제정작업에 착수하여 2014년 9월 16일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재난보도준칙을 제정·발표했다. 재난보도준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확하고 신속하게 재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도 언론의 기본 사명 중 하나라고 규정했다. 준칙은 또한 재난 보도는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준칙은 일반준칙, 피해자 인권 보호, 취재진 안전 확보 등의 분야에서 모두 4개 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준칙은 정확한 보도에 힘쓰고 무리한 속보 경쟁을 자제하며 보도가 사실과 다를 경우 신속하고 분명하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재난관리당국의 공식 발표의 진위와 정확성을 최대한 검증해야 하며, 취재보도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와 주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사생활·안정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재난 현장에서 준칙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협의·협력하기 위해 현장 데스크 등 각사 대표가 참여하는‘현장 취재협의체’ 운영 방안 등을 규정했다. 일반준칙에서는 정확한 보도, 인명구조와 수습 우선, 재난 피해의 최소화, 피해 예방 정보 제공, 신분 사칭이나 비밀 촬영 및 녹음 등 비윤리적 취재 금지, 병원, 피난처, 수사기관 등 출입을 통제하는 곳에서의 취재는 관계기관의 동의를 얻을 것, 충실한 재난보도를 위해 가급적 현장 데스크를 둘 것, 속보경쟁 등 무리한 보도 경쟁 자제, 피해 규모나 피해자 명단, 사고 원인과 수사 상황 등 중요한 정보에 관한 보도는 책임 있는 관련기관의 공식 발표에 따르되 그 진위와 정확성에 대해서도 검증할 것 등을 규정했다. 준칙은 또 취재원의 신뢰성과 전문성에 대한 검증, 유언비어 방지와 모든 정보의 출처 공개와 실명 보도, 단편적인 정보의 보도 시 부족하거나 더 확인돼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를 함께 언급할 것도 규정했다. 준칙은 또한 피해자 가족의 오열 등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위주의 보도,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의 지양, 그리고 불필요한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와 감정적 표현 자제도 규정했다. 아울러 보도한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에는 독자나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으로 신속하고 분명하게 정정·반론보도를 할 것도 규정했다. 피해자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하지 말 것,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할 것,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에게 인터뷰를 강요하지 말 것, 비밀 촬영이나 녹음 금지, 인터뷰시 질문 내용과 질문 방법, 인터뷰 시간 등을 세심하게 배려해 피해자의 심리적 육체적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할 것을 규정했다. 13세 이하의 미성년자는 원칙적으로 취재 금지, 피해자 대표와의 접촉, 과거 자료 사용 자제도 규정했다. 취재진의 안전 확보를 위해 적절한 안전 조치 강구, 재난법규의 숙지, 충분한 취재 지원을 규정했다. 각 언론사로 하여금 취재현장에서 서로 협의하고 협력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현장 데스크 등 각사의 대표가 참여하는 ‘재난현장 취재협의체’구성을 제시했으며, 언론사별 준칙 제정도 권고했다.
6. 좋은 언론보도를 향하여
언론이 신뢰를 잃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는 언론참사라 할 정도로 언론에 대하여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언론의 정도를 가지 못하고, 시민들과 유리된 방식으로 보도를 함으로써 불신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책임하고 무한정한 속보경쟁과 지나친 발표저널리즘, 희생자 가족은 외면하고 정부의 발표에만 춤을 추는 엇박자 보도 탓이었다. 언론매체의 신뢰도는 전반적으로 급전직하했다. 특히 KBS에서는 기자들이 제작거부 운동을 전개하고, 결국 사장이 해임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기회만 있으면 이들을 능멸하며, 정권이나 정당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세월호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둔갑시키는 행위를 하고 있는 언론이 있다.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재난이나 5·18 광주항쟁과 같은 사회적 위기에 관한 보도에서 취재진이 입었을 정신적 외상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겪은 아픔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처절한 아픔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서는 트라우마가 나타난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 살펴보면 온 국민이 거대한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 생사의 현장에서 살아난 생존자와 유가족, 그 동료와 지인들, 성과를 내지 못한 구조인력과 자원봉사자들, 관련 공무원들도 외상이 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건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지켜보며, 저널리스트로서는 좌절에 휩싸여 지낼 수밖에 없었던 기자들도 깊은 정신적 외상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마치 5·18 광주항쟁의 피해자는 사망자와 유가족, 부상자, 구속자 등 직접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광주시민 전체, 나아가서 전국민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해를 앓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시의 광주시민을 폭도로 규정한 언론보도, 전두환 정권하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광주와 호남을 고립시키기 위한 선전전, 1987년 대통령선거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지역분열책 등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국민들 가슴과 뇌리 속에 깊은 상처를 내고 있다.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언론의 자유는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자신의 소중한 기본적 권리를 언론매체들에게 위탁관리시키고 있다. 언론인들은 시민들로부터 위탁받은 권리를 성실히 관리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으며, 따라서 언론은 더욱 윤리적이어야만 한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Bil Kovach and Tom Rosenstiel)는 저널리즘이 지키고 추구해야 할 목적을“시민들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또 자치정부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그들에게 제공하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본원칙으로 다음과 같이 10가지를 제시했다(B. Kovach and T. Rosenstiel, 209: 24-25).
1. 저널리즘의 첫 번째 임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다.
2.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다.
3.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다.
4.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들이 취재하는 대상들로부터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
5. 저널리즘은 반드시 권력에 대한 독립적 감시자로 봉사해야 한다.
6. 저널리즘은 반드시 공공의 비판과 타협을 위한 포럼을 제공해야 한다.
7. 저널리즘은 반드시 최선을 다해 시민들이 중요한 사안들을 흥미롭게, 그들의 삶과 관련있는 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
8. 저널리즘은 반드시 뉴스를 포괄적이면서도 비중에 맞게 보도해야 한다.
9.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10. 시민들은 뉴스에 대해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코바치와 로젠스틸이 제시한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이 저널리즘의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세상의 저널리즘 전반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한 것들은 저널리즘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상식적인 기준에 해당한다. 한국언론은 이 원칙을 얼마나 잘 준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수많은 언론매체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다만 한국언론이 보여주는 모습은 불행하게도 이 원칙들로부터 상당히 거리가 멀다는 점을 지적하는 선에서 응답할 수 있을 뿐이다. 진실, 시민, 사실확인, 시민의 권리와 책임 등 기본적인 저널리즘 원칙들을 다시 세우고 지키는 것은 한국언론과 저널리스트들이 반드시 이행해야만 할 과업이요 책임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