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주도의 경제 성장이 여전히 유효한가?>
<종횡무진 한국경제> 김상조
반복되는 을사(乙死)조약.
모피아는 유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피아는 개혁의 필수적 도구다. 그러나 통제받지 않는 모피아는 개혁의 최대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특히 재계의 이해관게와 유착된 모피아를 방치하는 것은, 보수진보 정권을 불문하고 개혁의 실패를 초래하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피아에게 정책적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고, 모피아를 개혁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국정철학과 컨트롤 타워를 확립하는 것이 성공적 개혁의 필요조건이다.
경제정책은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1) 실업, 물가상승 등 경기변동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1997년 또는 2008년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단기거시안정화정책
2) 새로운 성장산업을 육성하고 낙후지역을 개발해 5년, 10년 후의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중기 산업정책 또는 지역개발정책’
3) 재벌, 중소기업, 금융, 노동, 복지 등 각 영역별로 신상필벌의 유인 구조를 정렬함으로써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장기 미시개혁정책’이다.
‘박정희 신드롬’이 여전하다. 개발독재 모델이 가지는 정치적 질서정연함에서 비롯되는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향수가 박정희 신드롬이다. 박정희 모델이 1960~70년대 한국경제의 급속한 성장일 이끌어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 고도성장을 이룬 건 부정할 수 없다.
박정희 모델이 ‘압축과 비약’의 경제성장을 달성한 핵심 요소가 있다. 바로 정부에서 재벌, 재벌에서 금융, 금융에서 노동·시민사회로 이어진 수직적 자원배분 체계다. 당시 경제개발5개년 계획엔, 누가 어느 지역에 어떤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고 이에 필요한 내외자는 어디서 조달하며 생산제품은 어떤 경로로 판매한다는 것까지 상세히 기술돼 있었고, 기술된 그대로 집행됐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질서는 초기 경제성장 국면에서는 매우 효과적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박정희 모델의 성공 자체가 역설적으로 그 성공의 조건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경제 성장이 자본의 축적인 동시에 노동의 축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박정희 모델의 경제적 성공은 독점자본으로서의 재벌 성장과 조직화된 노동세력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박정희 모델은 그 성공의 결과물인 동시에 자본과 노동의 도전을 받아 붕괴할 수밖에 없는 모순에 직면했다.
죄수의 딜레마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 첫째, 서로 소통해 협조적 게임 상황으로 변화시키거나, 둘째,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강한 벌칙을 부과하는 수밖에 없다. 즉 갈등보다는 협력이 낫고, 신뢰를 깨면 벌을 주라‘는 말이다. 복잡한 경제이론도 쉽게 풀이하면 거의 공자님 말씀 수준이 된다. 그러나 이런 공자님 말씀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경제이론이 강조하는 것은, 협력과 신뢰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정하게 설계되고 엄정하게 집행되는 제도와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서비스업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는 맑스의 자본론에 대한 오독이 한몫 거든 게 아닌가 싶다. 노동가치론에 입각한 맑스는 잉여가치가 생산자본에 고용된 노동력에 의해서만 창출되며, 상업자본과 금융자본 등의 활동은 이미 창출된 가치를 분배하는 과정에만 관여한다는 의미에서 불생산적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불생산적’이란 낭비적이라는 의미의 ‘비생산적’과는 전혀 뜻이 다르다. 불생산적 활동도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그 생산성을 제고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맑스는 누차 강조했다.
<성장의 엔진인가, 탐욕의 화신인가>
재벌은 한국경제의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드러내는 야누스의 두 얼굴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재벌’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
경제력 집중 억제.
삼성과 현대, LG그룹은 다수의 친족 그룹으로 계열분리됐다. 이들 친족그룹을 모그룹에 합친 범4대 재벌이 GDP대비 자산 비중이 2010년 58.6%로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훨씬 초과했다. 범4대 재벌 중에서도 범삼성그룹의 경제력은 놀라울 정도로 팽창했다. 1987년 범삼성그룹의 자산은 GDP의 5.7%였으나, 2010년에는 무려 20.0%로 증가했다. 총설비투자에서의 점유 비중도 16.9%다.
외환위기 이전에 삼성그룹은 5대 재벌 중 하나였으나, 이제는 경쟁 재벌들조차도 근접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 총설비투자에서 30대 재벌이 2분의 1, 범4대 재벌이 3분의 1, 삼성그룹 단독으로도 7분의 1을 차지한다. 어느 정권이 이들의 요구, 특히 삼성의 요구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투자를 무기로 한 재벌의 위협(일명 자본파업)을 물리치고 재벌개혁정책을 일관되게 집행할 정권이 있겠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개혁이 어렵고, 더욱 재벌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경제력 집중의 폐해는 단지 경제 영역의 문제로만 국한될 일이 아니다. 특히 총수 일가의 사익을 위해 경제력을 오남용하게 된다면, 이것이 경제 영역을 넘어 정치사회문화이데올로기적 지배력으로까지 확장되는 이른바 경제권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위협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 또는 ‘재벌에 좋은 것은 한국사회에도 좋은 것이다’라는 관념이 국민들의 경제인식을 지배하게 될 때, 우리의 현실 진단은 심각하게 왜곡될 것이고, 미래를 위한 대안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이론. Y=f(L,K) 대학교 1학년 경제학원론 강의에 나오는 수식이다. 이것이 많은 오해와 혼란을 야기한다. 이것만 보면 기업은 이윤극대화라는 유일 목적을 가진 단일한 의사결정체처럼 생각될지 모르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기업은 절대 그렇지 않다. 기업은 서로 충돌하는 목적을 가진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연결하는 명시적·암묵적 계약의 총합이다.
신인의무: 소수 의사결정자들이 준수해야 할 의무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 법을 준수하면서 충분한 정보에 의거해 신중한 경영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뜻
충실의무: 사익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오직 회사의 이익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투명성과 책임성이다. 소수의 의사결정자들이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에게 회사의 사정ㅇ을 투명하게 알려줘야 하고, 실망스러운 경영성과가 나타났을 때 그것이 부주의나 부당행위로 인한 것이 아님을 설명하지 못하면 책임을 지라는 뜻이다. 지배구조 개선은 혁명이 아닌 진화의 문제다.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감독기구와 사법기구가 공정하고도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와 후진적 지배 구조 문제 중 상당 부분은 현행 법체계에서도 시정 가능하다.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현행법의 공정하고도 엄정한 집행 차원을 넘어 새로운 법제도적 접근이 요구된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개혁 조치는 개별법인, 특히 개별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제도 등 앞서 언급한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모델에 입각한 지배구조 개선 조치가 다 그렇다.
초과이익공유제. 이건희 회장은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나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매도했다. 원래 초과이익공유제는 삼성그룹이 내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이미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이를 준내부조직적 관계에 있는 하도급 기업으로까지 확대하자는 것뿐인데, 사회주의적이라는 색깔론까지 동원한 이유가 무엇인지 통 알 수가 없다.
극소수 재벌 가문이 제조, 건설, 유통, 금융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모든 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이래서는 한국 경제가 견뎌 낼 재간이 없다.
<재벌들의 밥그릇> 곽정수
현대차가 1975년 첫 고유모델 승용차인 포니의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국산차의 품질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외제차 수입을 제한하는 등 각종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장남에게 대학 교육을 시키기 위해 다른 형제들은 모두 희생했다. 누나가 식모나 방직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뒷바라지하고, 다른 동생들도 진학을 포기했다. 그러다 보니 장남이 나중에 출세하면 다른 형제들과 조카들을 돕는 게 당연시됐다. 현대차의 성공도 혼자 잘해서 된 게 아니라 정부와 국민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현대차가 주주뿐만 아니라 종업원, 비정규직, 부품업체 등 회사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도와야 할 때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로 큰 위기를 맞았을 때, 정부가 고환율 정책(원화가치 하락)을 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거다. 현대차나 삼성전자처럼 수입보다 수출이 많은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지원을 받은 셈이다.
경제민주화의 열쇠는 재벌개혁이다. 경제민주화는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기본 정신 중 하나다.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 방지’ 그리고 ‘경제력의 남용 방지’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구현은 ‘건전한 시장경제체제’의 정립을 통해 가능하며, 재벌개혁은 건전한 시장경제체제 정립을 위한 선결 요건이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 문제의 핵심은 ‘총수가 있는 대기업 집단’에서 총수 일가의 불법·편접적 지배권 승계가 용인되도록 만드는 경제력 집중의 문제다. 재벌의 지배권 승계와 경제력 집중은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 행위의 결과다. 누구든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부와 권력을 세습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다. 그러나 이런 욕구가 항상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다. 사회 이익과 부합되지 않은 사익 추구 행위는 철저히 막고, 개인의 사익 추구라는 에너지의 발산이 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유인하는 법과 제도를 확립하자는 게 시장경제체제다. 그런데 재벌의 지배권 승계와 경제력 집중은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이 되는 사유재산권, 법치주의, 주시고히사 제도 등을 무력화시킨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인 소액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분식 회계, 배임, 횡령 등의 범죄가 저질러지고, 불법·편법적 탈세가 이뤄진다.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행위들을 규율하는 최종 수단은 사법적 강제다. 그러나 현행 공정거래법의 미비로 부당내부거래, 기업 집단의 자금력을 이용한 문어발식 사업 영역 확장, 순환출자와 지주회사제도의 맹점을 이용한 출자 구조의 자의적 변경 등과 같은 행위들이 제대로 규율되지 못한다. 편법을 용인하는 법과 제도가 당연히 개선돼야 한다.
1,128억 원의 조세 포탈과 969억 원의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1,200억 원대의 횡령과 4,000억 원대의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정몽구 현대차 회장, 1조 5,000억 원대 분식 회계로 기소됐던 최태원 SK 회장...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언론계, 법조계, 정치계, 관계, 학계에 대한 관리와 영향력 행사를 통해 사회의 이익과 부합되지 않은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 행위를 용인하게 한다. 따라서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재벌세습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의 개정뿐 아니라, 재벌의 경제력 집중의 해소와 공정한 법 집행을 위한 사법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재벌개혁은 공정한 경쟁과 기회를 보장하고 기득권 진입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을 위한 기본적인 산업 및 사회구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적정한 소득의 분배’와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이라는 경제민주화 요건의 달성을 위해서는 재벌개혁과 더불어 ‘건전한’ 시장경제체제 정립을 위한 추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 정책의 핵심은 경쟁의 패자에게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적 장치라고 할 수 있으며,이를 ‘복지 안전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사회적 장치는 시장경제체제와 모순되지 않는다. ‘건전한 시장경제체제’는 지속 가능하고 시민의 참여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체제다. 이런 의미에서, 건전한 시장경제체제는 복지 안전망이라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어야 한다.
파레토 개선이라는 용어가 있다. 특정 자원 배분 상태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의 만족도가 더 증가하거나 최소한 감소하지 않는 또 다른 자원 배분 상태로 이행할 때, 파레토 개선이 일어난다고 한다. 어떤 정책으로 인해 만족도가 증가한 구성원으로부터 만족도가 감소한 구성원으로 소득 재배분을 통해 파레토 개선이 일어난다면, 이런 정책은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소득 재분배 정책은 사회 전체의 만족도 총합의 증가를 파레토 개선이 일어나는 상태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에서 시작돼 복지 안전망의 확립으로 달성될 수 있으며, 건전한 시장경제체제는 경제민주화와 정치 민주주의라는 헌법의 기본 가치들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다.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선결 요건일 뿐 아니라, 헌법의 기본 가치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확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기업 집단의 해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부의 축적을 죄악시하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재벌개혁은 총수 일가의 역할이 건전한 주식회사 제도에서의 대주주의 역할로 전환되도록 만들 것이다. 황제 경영과 재벌세습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누가 회사의 경영을 맡는 것이 주주들의 이익과 가장 부합되는지를 고민한 결과, 대주주 일가의 일원이 경영을 맡는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고 전문 경영인이 경영을 맡는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재벌 총수의 황제 경영과 세습이 불가능하도록 법과 제도가 구비된 경우엔, 기업이 가장 능력 있는 경영자에 의해 운영돼 가장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이 대주주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법이며, 이런 맥락에서 누가 경영자가 되는가라는 결정의 결과는 사회적으로 수긍될 수 있다.
방법은? 순환출자의 금지.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계급화는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체제를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재벌 총수 일가의 탐욕은 우리 경제와 정치를 위기로 몰고 갈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들도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뜨릴 수 있다.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도, 유지되어서도 안 될 기형적 재벌 경제체제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건전한 시장경제체제에서 그들이 스스로 기업의 대주주로 자리 매김하는 것이 결국 국민도 재벌 총수 일가도 모두 윈윈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재벌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는가> 이동연
분명히 나라의 부는 엄청나게 늘었다. 그런데 국민의 다수는 훨씬 더 가난해져 상대적 박탈감이 하늘을 치솟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99%가 벼랑 끝에 서 있다. 꿈은 잠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1%만 행복한 나라에선 어떤 꿈도 길 위에 잠들고 만다. 대한민국은 점점 재벌이나 고위층의 자녀로 태어나지 않으면 꿈조차 꿀 수 없는 경직된 사회가 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으며 어떻게 하면 이 양극화된 사회를 치유할 수 있을까?
한국의 부자들, 특히 재벌들은 국민들을 똑바로 쳐다볼 자격조차 없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의 적산불하부터 시작해서 박정희 정권의 긴급 사채동결조치 등을 통한 각종 특혜와 정경유착을 통해 오늘의 부를 이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엔 2개의 경제 주소가 있다. 1%가 사는 재벌시 정치인구 관료동과, 99%가 사는 서민도 자영업자군 비정규직면이다. 이 두 지역 사이에 거주 이전의 자유는 형식일 뿐 실제론 완전히 단절돼 있다. 소통이 멈춘 사회는 흐르지 않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 서민도의 도민들은 재벌시를 엿보며 흠모할 필요가 없다. 그럴 시간에 경계를 허물고 소통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처럼 선별복지를 시행한 남유럽 나라들은 금융위기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보편복지를 펼친 북유럽, 특히 ‘국가는 국민의 집’이라는 이념을 갖고 있는 스웨덴은 연일 상승일로에 있고,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도 높다. 물론 스웨덴에도 재벌과 유사한 기업체가 있다. 하지만 그 나라 재벌들은 우리와 달리 검소하고 절제하며 사회 환원에 적극적이다.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기업도시법’은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재벌 특혜법이라 불리고 있다. 이 법에 의하면 특정지역에 기업이 도시를 만들 경우 토지수용권, 토지처분권 등 ‘국가의 고유 권한’을 기업이 대신 행사할 수 있다. 즉 일정한 보상만 하면 ‘기업이 국민의 사유재산을 수용할 수 있다’는 법안이다. 해외에서도 기업이 도시 전체에 대해 수용권을 행사한 적은 아직 없다.
잔여적 복지와 능동적 복지
복지재원 마련은 OECD 평균만큼만 부자 증세를 해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조세부담률이 2% 오를 때마다 세수가 연 25조 원 늘어난다. OECD 평균인 24.8%에 맞춰 조세부담률을 올리면 해마다 63조 원이 더 걷히고 5년이면 300조 원이 넘는다.
복지의 형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국식의 ‘잔여적 복지’로 시장에서 낙오된 사람들만 굶어죽지 않을 만큼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이런 선별식 복지는 주는 측에는 우월감을, 받는 측에게 낙오자라는 심리적 낙인이 찍힐 수 있다. 경제는 심리인데 이런 오만과 낙오감이 뒤섞였을 때 국가 경제도 병들 수밖에 없다.
능동적 복지라는 용어를 MB정부가 표방했다. 굉장히 오만불손한 표현이다. 복지 대상자들도 수혜를 최소화하고 근로의지를 발휘해 자활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권이니 초등학교 보편적 급식에 기를 쓰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 함정은 변화하는 미래 시대에 맞게 충분히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복지가 아니라, 현 상태에서 당장 소모적인 노동이라도 찾아서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살라는 데 있다.
생산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영미식 선별복지에 반대되는 개념이 북유럽의 ‘생산적 복지’ 또는 ‘보편적 복지’다. 여기선 극빈자 뿐 아니라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모두가 골고루 혜택을 받는다. 영국이나 스웨덴의 의료도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이고 의사는 공무원화 되어 있다.
IMF의 2007~2011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가 재정지수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보편적 복지 국가가가 평균 2.15%로 제일 좋았고, 다음이 독일 등의 보수조합주의형으로 -3.55%, 열악한 나라가 미국 등 선별적 복지국가로 -3.91%였다. 보편복지를 대표하는 노르웨이는 13.85%였으나, 선별복지를 대표하는 미국은 -8.59%였다.
현실이 이런데도 재벌과 그 주변세력들은 보편적 복지는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보수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이런 여론 공세로 국민 사이에 갈등과 불화가 유발돼 보편적 복지에 대한 합의가 어려워진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의장이었던 페르 알빈 한손 ‘국가는 곧 국민의 집이며 국민 모두는 이 하나의 가정에 속해있다’는 복지 이념을 내놓았다. 시장경제를 맹신하는 사람들은 교조적 공산주의자들과 비슷하다며 그들은 오늘의 열악한 현실을 참으며 언젠가 다가올 ‘미래의 유토피아’를 기다린다고 했다. 한손 의장은 그런 환상 속의 유토피아를 버리고 현실의 잠정적 유토피아를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은 ‘국가는 재벌의 집’이고 나머지 국민들은 하인 노릇이나 해야 하는 분위기다. 이런 나라에서 재벌과 그 주변인물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자식을 낳고 싶을까? 그래서 출산율이 자꾸 떨어지는 것이다. MB정부가 낙태를 금지하고 종교단체에서 나서서 출산을 장려한다해도 출산율은 절대 높아지지 않는다.
이 땅에 태어날 때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든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존엄성을 지니고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출산율은 자연히 회복된다. 복지는 시혜도 아니고 낭비도 아니다. 그 자체가 국가의 경쟁력이며 효율적 시장경제를 꽃 피우는 여건을 조성해 기업경영에도 큰 도움이 된다.
재벌 법칙 1조 1항은 ‘너를 이겨야 내가 산다’다. 이런 승자독식의 문화가 모든 분야의 공공성을 질식시키고 있다. 문제를 파악한 미국이나 서구국가들은 지금이라도 공공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MB정권은 공공성의 무차별적 파괴가 선진화라 착각하고 있다.
자연의 법칙 1조 1항은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다. 너를 이겨야 내가 사는 재벌의 속성이 이런 자연을 그냥 놓아둘 리 없다. 그래서 자연을 소유하고 자연에 값을 매겨 수탈하려 한다. 사람이나 생태계나 이용가치가 올라갈수록 그 본래가치는 하락한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사는 자연을 우리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오해하고 있다. 만일 자연계가 약육강식으로만 움직였다면 지구 위에는 맹수만 가득하다가 인간이란 종은 발생하기도 전에 자연만물이 사라졌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양적 수치의 상승이 아니라 삶의 질과 만족도의 상승을 말한다. 질적 성자으로 전환한다면 대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지금의 경제성장은 육식, 개인용 승용차 그리고 낭비적인 미국의 생활양식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 질적 성장은 과소비주의를 버려야 가능하다.
2012년 전 세계의 돈 많은 1%들의 모임이라는 다보스 포럼이 스위스에서 열렸다. 이들 모임에서조차 ‘자본주의는 실패했다’는 자성이 터져 나왔다. 포럼의 회장 클라우스 슈바츠는 “우리가 죄를 지었다”며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고백했고, 대전환을 위한 새로운 대안을 만들자고 했다. 그러나 대안은 나오지 않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무기력한 모습만 보였다.
로마 법언 중에 ‘법은 자기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지켜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내 권리는 내가 지켜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명확히 요구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도 국정감사를>
국회의원들이 진행하는 국정 전반에 관한 감사는 당사자들이야 어떻든 연구자로서는 감춰진 자료들이 나오는 귀중한 통로다. 국정감사는 다다익선이다. 많이 하면 할수록, 자세히 하면 할수록 세금 낭비도 줄고, 부패도 줄어들 것이다.
정부 기관과 공기업 말고, 대기업들도 국정감사를 받게 할 방법이 없느냐는 것. 현재도 가능은 하다. 다만 ‘본회의가 필요하다고 의결한 경우’라는 단서가 달렸다. 정부 사업에 참여해 돈을 받은 기업 혹은 정부 발주 사업을 수주한 곳들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다. 국회 본회의 의결이라는 절차를 밟으면 국정감사를 할 수 있다.
한국의 공기업 등 정부 기관은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다. 그렇지만 국정감사법 7조 3항은 이와는 별도로 한국은행, 농협, 수협 이 세 곳을 콕 짚어서 국정감사를 받게 한다. 정부 위탁 사업을 많이 하고 정부 돈도 들어가니까 국정감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4대강 참여한 건설사들, 정부의 장기 연구 개발에 주요 파트너로 참여하는 기업들에 대해 국정감사를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부 돈을 많이 쓰면 당연히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대기업이 국정감사를 받게 되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기업경영이 최소한 지금보다는 투명해지고, 그 안에서 개선이든 혁신이든 새로운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 국회가 최소한 1년에 한 번 정도 그 기업을 들여다보면서 시어머니 노릇을 한다면, 기업 신인도도 국제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국민이나 기업이나 전부 좋은 일이다. 국정감사에서 기업의 모든 걸 탈탈 뒤질 수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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