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님 저의 탄원을 들어주십시오. 새로 밝는 날마다, 더불어 죽음이 다가옵니다. 더 이상 제 삶의 어둠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가 죽지 못해서 그래서 이렇게 죽습니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 제가 아직 숨을 쉬는 겁니까? 유일한 목적은 죽음의 고통을 늦추는 것입니다만 그러나 제 삶 또한 죽음만큼 괴롭습니다. 제가 죽지 못해서 그래서 이렇게 죽습니다.
고통을 덜어보려고, 거룩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서, 당신을 바라봅니다만 당신 얼굴 뵙지 못하매 제 가슴은 무너져 내립니다. 제가 죽지 못해서 그래서 이렇게 죽습니다.
하늘나라 기쁨을 향하여 나아가다가 마침내 당신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면 당신 아니 계셔서 맛보는 저의 이 고통도 끝나겠지요. 제가 죽지 못해서 그래서 이렇게 죽습니다.
이 어두운 땅에서 거두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이 어두운 육신에서 풀려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때 저는 황홀한 기쁨으로 울겠지요. 당신 안에 살아서 그래서 제가 삽니다.
죽지 못해 살아요...라는 고백을 하다가 "당신 안에 살아서 그래서 제가 삽니다."라는 고백으로 끝나는 산문시다. 이 시가 복잡한 내 마음과 머릿속을 통째로 덮었다. 요즘 아버지 사랑을 삶 속에서 느끼면서 말씀 속에서 뜻을 구하지 않았다. 옳은 열심인지 그른 열심인지 나는 판단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정죄했다. 그들에게 '왜?' 사는지 속으로 묻고 혼자 판단하고 결론지었다. 그 사람을 거울삼아 나를 돌아봐야 했는데 내 민낯을 드러내기보다 숨기고 덮어버리기 급급했다. 못났다 손성배 정말.
나를 바라보는 창문을 더 크게 틔워야 하는데 다른 이를 정죄하느라 시간을 몽땅 허비하고 있다. 하나님이 일부러 세상을 방치한다는 생각만 하면서 비난의 날을 갈고만 있다. 그 세상엔 나도 포함돼있다. 내 글쓰기와 생각하기의 원천은 분노다. 분노가 의심을 낳고 의심은 불신을 낳는다. 아무 것도 믿지 못한다. 다른 이만 못 믿는 것이 아니라 나도 믿지 못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옳다고 말하기 위해서 분노하는 것인데 그 분노가 결국 나를 믿지 못하게 한다.
외롭고 힘들고 어렵다. 그래도 당신 안에 살아서 내가 산다. 이 와중에 아버지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게 나를 몰고 가시는 것도 은혜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다. 삶 속에서 십자가 고난을 알게 하시니 감사하다.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지만 말씀으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질질 끌려가겠다. 스스로 짊어진 멍에보다 그리스도의 멍에가 훨씬 가볍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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