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30일 일요일

1201_남북 실용적 화해 해법 보여 준 나진하산 사업 등

남북 실용적 화해 해법 보여 준 나진하산 사업 등

- 러시아산 석탄을 싣고 북한 나진항을 출발한 화물선이 그제 오전 포항 앞바다에 도착
ㆍ 남북 물류협력사업인 나진 하산 프로젝트 시범사업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탄

- 이번 시범사업의 성공은 여러 가지 이유로 눈길을 끈다.
ㆍ 5.24 조치의 예외로 인정한 정부의 자세
ㆍ 제3국을 경유한 간접적 대북 투자나 경협은 실용적 잣대에 따라 허용
ㆍ 남북관계의 경색을 풀어 나갈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리란 기대

-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본격 참여의 발판
ㆍ UNDP가 주도한 두만강지역개발계획이 GTI로 전환한 이래 적극적 관심에도 참여 X

- 러시아의 시베리아ㆍ극동 에너지 자원에 대한 안정적 획득 가능성을 끌어올림
ㆍ 나진항 경유, 육해로 복합운송은 타경로에 비해 약 1.5일의 시간과 15~20% 비용 절감

- 물론 리스크는 있다. 남북관계의 불안정이라는 정치 리스크는 여전하다.
ㆍ 어려운 남북관계의 현실에서 경협 기반강화와 확대는 의미 있는 위기대응 방안



‘정규직 과보호'

유행하는 웹 용어로 말한다면 “아, 쫌!!”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규직 과보호’론을 펼치고 기획재정부가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입에 담은 상황 말이다. 
사실 정규직의 정리해고 요건 완화는 굳이 정부가 나설 필요도 없다. 최근의 ‘쌍용자동차 판결’을 비롯한 몇몇 판결을 보면, 이미 대법원이 알아서 판례를 ‘정리해고 요건 완화’ 쪽으로 바꾸어내고 있다. ‘해고하기 어려운 정규직’이란 것은 이제 그저 보수정부와 대기업의 수사 속에서나 존재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한국 노총 출신인 새누리당의 김성태 의원마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에 우려를 표한다. 김성태 의원은 28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방안을 찾자는 차원에서 엉뚱하게 화살을 정규직으로 돌려 노동시장 전체를 하향평준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보수격차가 크다면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높여 문제를 해결해야지, 오히려 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낮추겠다는 발상은 자칫 실효성이 없는 사회적 갈등만 초래할 위험성이 상당히 높다”고 비판했다.
▲ 28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또 김성태 의원은 “최경환 부총리나 정부 관계자들이 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쉽게 만들고 고용유연성을 높여야 비정규직의 처우가 향상된다는 것은 넌센스”라며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계약직 근로자로 2년을 채우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법이 되려 기업 입장에서는 2년이 되면 근로자를 잘라야 된다는 법으로 통용돼 버렸다. 기업들의 노력과 배려는 전혀 가져가지 않은 채 갑자기 ‘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쉽게 만들어서 고용유연성이 돼야 지금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가 원하는 것은 ‘수사’가 아니라 ‘실질’일 것이기에, 갑자기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 조건이라는 금단의 영역을 건드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정규직 노동운동에 대한 비난과는 별개로, 현재 정부와 대기업과 대공장 정규직 노조는 암묵적 협력관계에 있다. 더 이상의 정규직을 충원하지 않는 대신 그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방식의 협약이다. 이처럼 눈에 뻔히 보이는 공모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조합에게 삿대질하는 평론가들의 자세야 사회문제 해결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집착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어쨌든 이 상태로 이십 여년 정도 지나면 대부분의 산업 영역에서 ‘정규직 노동자’는 멸종할 것이다. 현장에선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나, 대기업의 연구소에 다니는 이들은 “사실 이젠 자동차산업도 기계화가 많이 진행되어서 숙련노동자가 거의 필요가 없다”고 증언한다. 예외가 있다면 매번 개별 계약으로 ‘다른 배’를 만들어 내야 하는 조선업 정도라고 한다. 운동세력에서야 안 그래도 10%에 불과한 노조조직률이 1~2%로 떨어질 수 있는 이십년 후의 디스토피아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만, 정부는 사실 무리한 일을 벌일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 28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그렇기에 정부의 노림수는 다른 곳에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정리해고 요건 완화’ 건은 빠르게 번복하고 임금체제 개편 얘기를 꺼냈다. 고령화-저성장 시대에 맞춰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임금피크제를 확산하고 호봉제 연봉 대신 직무급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공공기관 개혁과 관련해 공기업 등에서 먼저 추진하고,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대기업들에게도 적용하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정책 취지에 합리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정년을 늘려야 할 필요성이 있고, 그 경우 지금처럼 근속연차에 따라 계속해서 임금이 올라가기를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일단 특정 나이를 지나면 오히려 임금이 줄어들게 되는 피크제를 실시하면서, 호봉제가 아닌 직무급 전환을 시도하는 것도 필요하기는 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정규직 과보호’를 비난하면서 나온 비정규직 대책이 될 지는 의문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목적이 격차해소가 아니라 ‘부자감세’로 축난 재정을 확충하는 것이라면, 임금제도 개편의 목적 역시 격차해소가 아니라 새누리당의 주요 지지층인 중장년층을 배려하면서 기업의 출혈을 최소화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28일자 한겨레 9면 기사
결국 이 정부는 다양한 이해관계 집단의 충돌을 조장한 후 원하는 정책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지지율 관리’의 차원에서 “유능하다”라고 평할 수는 있겠으나 사회개혁은커녕 문제해결과도 큰 관련이 없는 일이다. 
진보파를 자임하는 이들 중에서도 사실상 정규직 노동을 비난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와 비슷한 인지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언제나 정규직의 과도한 임금 때문에 비정규직이 착취를 당하고 있으므로 격차해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높은 비율의 최저임금 인상안이나 호봉제 약화 대신 초임 상승 정도의 제안은 들고 나와야 한다. 정규직 노조는 자신들의 권리를 내려놓을지 말지만 결정할 수 있을 뿐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물론 정규직 노조에 대해 그들의 몫을 떼어내서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라고 요구할 수는 있겠으나, 그런 요구를 할 거면 정부와 사측에 대해서도 비슷한 제안을 들고 나와 정규직 노조를 설득하라고 말해야 한다. 
▲ 28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기업의 이윤추구는 신성한 원칙으로 받아들이면서 정규직 노조는 이기적이라 욕하고, 그 이기성을 욕하면서도 이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인구구성상 청년층이 적고 비정규직은 애초에 투표하기가 힘들다는 얄팍한 정치적 판단이 있겠지만, 그와 같은 안이한 생각에서 사회문제를 방치해서는 장기적으로 보수의 지지층을 좀먹을 뿐이다.
제1야당이 하도 무능하니 일본식 자민당의 장기 집권체제, ‘1.5당 체제’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안정적으로 작동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제1야당이 무능하고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이 무력한 시대, 보수정당은 꽃놀이패를 들었다 믿을 수 있지만 사회가 황폐화되면 사람들의 욕망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혼돈의 카오스’의 세상이 올 뿐이다. 아니, 지금도 이미 반은 왔다. 
그런 실정에서 자기 잇속만 교묘하게 차리는 보수정당의 미래는 담보받을 수 있을까. 지금은 정규직 노조라도 욕할 수 있지만 그들이 멸종당한 이후의 세계, 공무원 연금도 사라진 세계에서 1대99의 갈등구도가 나타나게 된다면 1은 어떤 식으로 자신을 방어할 것인가. 새누리당은  몇 백년 후 ‘한민족 멸종 시나리오’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으니 이십년 후 정도는 고민해볼 일이다.   

미디어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709

래디컬 독후감

하나님 아저씨께

  아버지랑 친했던 동네 아저씨가 원천동 삼성전자 맞은편 주유소 한켠에서 카센터를 하고 계신다. 가끔 타이어 바람 넣으러도 가고 엔진 오일 교환하러 가기도 한다. 가끔 찾아뵈면 취업 준비하느라 고생한다며 어깨도 토닥여주신다. 내게 하나님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카센터 아저씨처럼 가끔 찾아뵙고 인사드리면 나를 격려해주시는 그런 분이었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 아버지" 말로는 수만번도 더  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고백하기까지 무척 오래 걸렸다. 



 
한국사회의 양극화 현상의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양극화 해소 방안을 제시하라
지난 1129, 저널리즘스쿨 입학 논술 시험 문제였습니다. ‘뭐 이런 식상하고 답이 없는 문제를 내냐하면서도 내심 쾌재를 불렀습니다. 식상하지 않은 답을 쓸 자신이 있었거든요.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해 자본가들이 임금 노동자들의 재산 몇 배를 가지고 있다뭐 이런 답 말고 참신하고 독특한 생각을 원고지에 옮길 자신감이 갑자기 막 생겼습니다. 그리고 시험 당일 아침, 신문 1면에 제조업 정규직 30년차 직원과 신입직원의 평균 연봉 차이가 2.8(OECD 평균은 1.5)라는 걸 봤어요. “아침에 내 눈에 들어온 고마운 통계 자료도 써먹을 수 있겠구나하고 쾌재를 불렀죠. 80분의 시험 시간 중 20분 동안 이것저것 기억나는 것들을 긁어모아서 배운 대로 뼈대를 잡고 60분 동안 열심히 원고지를 채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시간 조절을 실패해서 해소 방안을 적은 문단을 날림 글씨로 썼고, 심지어 마지막 2줄은 못 채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전 아마 떨어진 것 같아요.(라고 일단 적어놓고 붙으면 수정해서 다시 드리겠습니다.^^)
 
누구나 자기 생각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시대가 이렇게 금방 올 줄은 몰랐어요. 한국사회의 민낯을 본대로 기록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되고 싶어졌어요. 기자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세상을 돌아보고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기록해서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직업이니까요. 처음엔 막연히 꿈꿨어요. “그냥 멋있으니까, ‘자 붙은 직업을 가지기에 나는 너무 멍청하니까,”
 
무엇보다, 내가 위선적으로 주님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보다 나를 비워내고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주님의 꼭두각시가 되는 거죠.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어떤 한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양극화는 최근 갑자기 생긴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 현상이 시작된 특정 시기를 나름대로 판단해서 쓰는 게 논리적일지도 고민하면서 20분 동안 논술문의 뼈대를 잡았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사회를 바꾸려고 일어난 의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탁월한 하나님.
 
래디컬. 결국 정답은 예수님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의 어떤 문제도 우리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전작권 자료 모음

전작권 전환 재연기 보도태도_초고
 
그때 그때 달라요
 
예전에 내가 아니야
 
무엇이 문제인가
 
미국 꽁무니에 숨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국방이고 뭐고 그냥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자
 
환수 계획과 일정을 밝히고 사회적 논의를 충분히 했어야 했다.
 
취재원이 없다. 모든 것이 해설기사다.
 
진짜 우리 미국 없이 북한이랑 맞장 뜨면 지는 거야? 알려줘 봐 좀.
 
불통이 가장 큰 문제
 
조선 동아일보 읽다가 암 걸리겠다.
 
‘통일은 대박이다’ 슬로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중 잣대
 
어쨌거나 능력 없는 나라임을 인정한 거야. 전작권 연기하고 아직도 못 돌려받는 건.
 
바닥으로의 경주. 군비경쟁
 
엘리너 오스트롬 “스스로 정한 규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자치, self-governance)
여성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경제 거버넌스 분석을 통해 공공의 자산이 다수의 경제 주체들에 의해 어떻게 성공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공공선택이론”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주요 합의내용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전작권 전환 때까지 한미연합사 용산기지 잔류
▲동두천 주둔 주한미군 210화력여단 2020년께까지 잔류
▲북핵 및 미사일에 대한 한미일 간 정보공유 중요성 재확인
▲우주 및 사이버 공간에서의 협력 강화 필요성 재확인
군비경쟁의 늪에 빠졌다. 미사일방어 체계는 만들어놓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사일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보다 그 대응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다. 상대의 미사일 개발에 맞춰 지속적으로 보완 개발해 나가는 끝없는 군비 경쟁의 시작.
 
안보상 불가피한 조치라는 보수층 주장과 군사주권 포기라는 반대 여론이 맞부딪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아래 전작권) 전환 시기가 또 연기됐다. 계속 주한미군에게 전작권을 떠넘기는 것이 이득이라는 의견과 이미 오래 전에 우리군이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전작권을 둘러싼 6개 중앙일간지의 보도태도도 극명하게 갈렸다.
전작권은 2012년 4월 17일자로
 
00일보 <[사설]‘김정은 위기說’ 속 北의 연천 총격 도발, 확실히 응징하라>(10/11)
경향 <[칼럼]만신창이가 된 전작권>(10/24, 이수훈 경남대 교수)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에서 한미 간의 합의였던 전작권 전환 시기를 재연기했다. 우려해온 일이 현실이 됐다. 이로써 한국 정부의 전작권 전환정책은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전작권은 2007년 한미간 엄중한 합의를 통해 2012년 4월 17일자로 우리 합참으로 전환될 예정이었다. 중대한 동맹국과의 합의를 이명박 정부가 변화된 안보 상황과 우리 군의 준비 부족을 빌미로 삼아 연기해버렸다.
전작권 문제는 주권국가로서 우리의 면모를 완성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한국의 대외전략이나 동북아 외교를 펼침에 있어 다각적인 파장을 갖는 이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북한과 군사회담을 할 때, 중국과 전략대화를 할 때, 전작권을 우리가 갖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전작권을 보유하고 있을 때 우리가 고유한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당당하게 우리 입장을 펼칠 수 있다. 북한당국도 우리 군이 전작권을 갖고 있을 때 함부로 도발적 군사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전작권 전환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 조치로서 한국의 보수가 보수답게 해결해야 할 이슈다.
그간에 한미 간 전작권 전환 준비가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동북아의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의 한국 배치 이슈가 있다. 여러 분석가들이 이미 사드와 전작권 재연기가 한 패키지로 묶여 있다고 지적해왔다. 즉, 미국은 전작권 전환을 재연기해주고 우리는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는 패키지란 말이다. 전작권 전환은 연기하고 미국의 동북아 군사젼략의 일환인 사드 배치를 수용하는 것은 추후 한국의 입지라는 차원에서 최악의 조합이다. 북한을 어떻게 다뤄가고, 중국과 어떻게 대립각을 피해갈지 우려가 크다.
경향신문 <[사설]전작권 무기한 연기는 무책임・무능의 결과다>(10/24)는 전작권 전환 충족 조건으로 ‘한국군이 북한 위협에 대응할만한 독자적 능력을 갖춘 때’라는 막연하게 명시했다며 비판했다. 나라의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군대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연기한 것은 군사적 문제가 아닌, 보수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평이 많았다. 정부는 앞으로 미국의 첨단 무기를 대량구매하겠지만 그런 무기, 미군, 군비 증강이 안보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경향신문 <전작권 전환 조건 충족에 60조 필요…2023년 환수도 불투명>(10/25, 유신모・유정인) 전작권 연기의 대가 전작권 전환을 위해 새로 설정한 조건을 충족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국방부는 핵심조건인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를 갖추는 데 17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 글로벌 호크, 이지스 구축함, 미사일 탐지 장비 도입 등에 드는 예산을 합치면 60조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한 해 국방 예산이 35조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조달이 불가능한 액수다. 이번 전작권 전환 연기가 사실상 ‘백지화’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정 전 분야 공약 파기 ‘먹튀 정부’ 공약 파기 시리즈의 최종판이다. 대선 당시 “2015년 전작권 전환을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던 박 대통령이 본인의 브랜드인 ‘신뢰와 원칙’을 스스로 깼다. 대표적 외교안보 분야 공약까지 무너지면서, 취임 1년 8개월여 만에 국정 전분야에서 대선 당시 약속이 깨졌다.
(대통령의 정치, 경제, 사회복지 분야 대표공약들을 줄줄이 파기했다면서 기초연금, 경제민주화 등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 24일 “전작권 전환은 공약의 철저한 이행보다는 국가의 안위라는 현실적 관점에서 냉철하게 바라봐야 할 사안”이라며 현실론을 폈다.
 
<[칼럼]전작권 전환 협상 다시 해야 한다>(10/28, 유신모)
가장 큰 문제점은 언제 넘겨받을지 시한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설정해 전작권 전환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 문제다. 정확히 말하면 전작권 전환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백지화한 것이며 더 나아가 어느 정권이 들어와도 전작권 전환을 할 수 없도록 대못질을 한 것이다.
한민구 국방장관 “갑자기 통일이 된다거나 비핵화가 된다든지 하면 전작권 전환을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 능력을 갖춰야 전작권을 가져오겠다는 것은 영원히 안 갖고 오겠다는 말의 동의어다. 미국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 전작권을 맡겨놔도 이 문제는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
스스로 나라를 지킬 능력이 없다고 자기비하를 하고 동맹국의 선의에 안보를 위탁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못난 국가를 존중해줄 나라는 없다. 이미 한국은 이를 경험하고 있다. 남북 간에도 핵문제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부가 아무리 주장해도 북한은 남측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고 미국만 찾는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당장 미국과 전작권 전환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
<[칼럼]풀리지 않는 의문>(10.30, 이대근)
2006년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버시바우 주한미대사는 한국군의 작전수행 능력이 충분하니 전작권을 환수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환수 연기를 결정했을 때는 국방부가 이렇게 밝혔다. ‘당초 예정대로 2012년 전작권 전환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 전환 작업이 65% 진척됐다.’ 이 정도면 박 대통령인들 환수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환수 쟁점을 바꾸는 것이다. ‘조건에 기초한 환수’, 즉 한국군에 위협 대응 능력이 없는 한 환수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노 대통령은 환수의 옳고 그름을 떠나 환수 계획과 일정을 밝히고 사회적 논의를 충분히 했다. 이 대통령은 이미 대선 때 “연장할 필요가 있으면 연장하겠다”고 당당히 밝혔다. 작전 능력이 제일 중요한 조건이라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았다. 보수 여론 때문에 연기한 걸 두고, 군사적 문제 때문이라고 뻔뻔하게 둘러대지도 않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대선 때 “전환을 착실히 준비하겠다”는 공약으로 시민을 안심시켜 놓고는 갑자기 뒤집었다. 두 개의 정부를 거쳐 확정된 정책을 공론 과정 없이 폐기했다.
대통령이 환수 포기에 대해 한마디 설득도 못하면서 시민에게는 60~70조원의 무기 구매 비용을 조용히 떠넘겼다. 남북 군비경쟁을 촉발, 눔북 군부 모두 살지게 하면서도 자기 군대는 무능력자로 낙인찍고 시민을 북한과 미국 앞에서 부끄럽게 만들었다.
왜 전작권을 피하는 것인가. 60년된 고정관념 때문일까?
 
동아일보
<“전작권 전환, 북핵대응력 갖출 때까지 연기”>(10/24,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전작권 전환의 조건 北위협 대처할 수 있는 한국군의 대응능력
전작권 전환의 조건 “군사위협 외에 北체제 불안정성까지 감안”
 
동아일보는 1면에 실린 <“전작권 전환, 북핵대응력 갖출 때까지 연기”>(10/24, 윤상호 군사전문기자)를 뒷받침하는 기사로 전작권 전환의 조건이라는 소제목을 달아 2, 3면에도 채웠다.
 
<국방부 “2023년 전환 목표” vs. 전문가 “구체 계획 담았어야”>(10/25, 정성택)
쟁점 놓고 한미당국 전문가 시각차
다수의 전문가를 등장시켜 주장-반박을 반복한 것은 좋았다.
 
<“전작권 전환 연기, 올바른 결정”>(10/27, 신석호, 이승헌)
역대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들은 한목소리로 ‘올바른 결정’이라고 지지했다.
 
<전작권 전환 재연기 ‘부끄러움’ 공방>(10/28, 정성택)
27일 국회에서는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놓고 여야 간 날선 공방이 이어졌다. 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은 “6.25전쟁 이후 60년이 지나도록 전작권 행사를 못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냐”며 “전작권 무기한 연기는 군사주권을 포기한 것이며 국방부 스스로 무능함을 자인한 것과 진배없다”고 질타했다.
야당의 파상공세에 새누리당은 북한의 현실적 위협을 강조했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북한이 현 정부의 전작권 전환 공약 발표 후 3차 핵실험을 했고 핵무기 소형화도 가시화되는 등 안보상황이 완전히 변했는데 야당은 공약 파기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세연 의원은 “작전의 통제권한을 뜻하는 전작권과 군수, 행정, 훈련 등 군 전반에 대한 권한을 포함하는 군사주권을 동일시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사설]문재인, 北核 소형화하는 판에 ‘전작권 연기’ 사과하라니>(10/28)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라고 말했다. 2008년에는 “유사시에 미국이 작통권을 행사하는 상황은 북한을 더욱 두렵게 해 남북 간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북이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전작권 전환을 결정했다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 취지는 지금 돌아봐도 대한민국 영토를 보전할 책무가 있는 국가원수로서 부적절한 안보관이었다.
친노 수장으로 꼽히는 문 의원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의 사고방식에서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전작권은 전쟁 승리를 위한 군사적 지휘 수단인데도 ‘군사주권’과 연계시키는 것은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의도적 왜곡이다. 독자적 핵 개발이 불가능한 우리로서는 한미연합사 체제를 유지해 미국의 핵우산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용산 주민들 “공원-주변 개발 미뤄지나” 동두천 “이전 계획 툭하면 바꿔 안믿어”>(10/28, 홍수영) 한미 전작권 전환 연기 미군기지 관련 부동산시장 르포
경기 평택시로 이전하려던 한미연합사령부와 미 2사단의 210화력여단이 각각 서울 용산기지와 경기 동두천시에 그대로 남게 되면서 해당 지역 부동산 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떠나기로 했던 부대 일부가 남는 것이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집값 등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은 “평택에는 기존에 없던 수요가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 일부 부대가 오지 않는다 해도 규모만 약간 조정되는 것일 뿐 여전히 호재“라고 말했다.
 
<[칼럼] 박 대통령은 군을 아는가>(10/29, 배인준)
북한은 자립경제 실패, 한국은 자주안보 실패 상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다시 무기 연기해 핵심안보를 미국에 위탁하고, 국방장관이 “북의 핵탄두 소형화 기술이 상당 수준에 이른 것 같다”고 국민 앞에 보고하는 상황은 착잡하다.
박근혜 정부와 군은 북핵 위협 증대라는 상황 변화를 근거로 내년에 받기로 한 전작권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렇다면 ‘안보상황 변화’에 맞춰 군 구조도 바꿔야 한다.
우리 군이 충분히 미덥지 않다. 미군 등 뒤에서 골프 칠 궁리, 폼 나는 선글라스에 머릿기름 바르고 사복 입을 궁리, 군인정신은 팽개치고 바른 진급, 좋은 보직, 출세영달을 위해 로비할 궁리에 너무 바쁘지 않은가.
북한의 10배 이상 쓰는 국방비가 아깝지 않을 국군이어야 한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피터팬 군대라면 정말 대한민국의 수치가 될 것이다. 그런 군대는 국민을 부끄럽게 하기 이전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태롭게 한다.
조선일보 戰作權 전환 10년 이상 늦춘다
<“자주 명분보다 안보 실리” … 전작권 8년 논란 마침표>(10/24, 유용원)
노무현 대통령은 전작권을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주권 침해이자 국민적 자존심을 훼손하는 사안으로 보고 2007년 2월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2012년 4월 전환’을 결정토록 했다. 반면 예비역 단체 등 보수 단체는 전작권은 한미 대통령이 공동으로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권 침해가 아니고 한미연합사는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연합사령부 시스템이기 때문에 존속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가 안보 흐름은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전작권 재연기가 확정됨에 따라 한미연합사 체제를 통해 당분간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갖게 됐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지난 8년간 전작권 전환에 대비해 높아졌던 한국군의 경각심이 이완되고 정보 감시 능력 등 독자적 방위 역량을 확보하려는 투자와 의지가 약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킬체인, KAMD 등 17조원에 이르는 돈이 든다. 사실상 무기 연기에 가까운 형태로 전작권 재연기가 결정된 상태에서 목표 시한인 2022~2025년쯤까지 이 천문학적인 돈이 과연 제대로 투자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선 미국의 전작권 재연기 수용에 대한 사실상의 반대급부로 우리 정부가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연합사의 용산 기지 잔류와 210화력여단의 동두천 잔류를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사설]9조원 쓰고 의미 퇴색해버린 용산 기지>(10/25)
조선일보 사설 아닌 것 같은 사설
전작권 전환 무기 연기를 합의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는 서울 용산 미군기자가 2016년까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더라도 한미연합사령부는 용산에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전체 용산기지 면적의 8~9%에 해당한다.
무려 9조원 가까운 돈을 들여 평택에 통합 미군 기지를 짓고 있다. 연합사도 당연히 평택으로 이전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평택으로 가면 유사시 원활한 지휘체계를 가동할 수 없다고 한다.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이 용산 기지 이전에 드는 엄청난 비용을 우리가 모두 부담하는 데 동의한 것도 이런 구상과 의미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돈은 돈대로 다 쓰고 용산 기지 반환의 의미는 크게 퇴색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무원칙, 무계획, 무능으로 얼마나 더 국민을 실망시키고 세금을 낭비할 것인지 걱정이다. 정부는 용산 기지 문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국회와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문재인 “부끄럽지 않나” 한민구 “부끄럽지 않다”>(10/28, 정우상・박수찬)
국정감사 마지막 날, 국방부와 외교부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최근 한미 양국이 2015년으로 예정됐던 전작권 전환 시기를 재연기한 것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칼럼]전작권 논란이 불러온 ‘잃어버린 10년’>(10/29, 박두식)
전시작전통제권 논의가 또다시 엉뚱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10년 전쯤 이 문제를 처음 거론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팩트 틀림.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거론한 것이 아님) 당시 전작권은 대한민국의 주권 되찾기 운동 차원에서 접근했다.
한미가 최근 한국군이 전작권을 넘겨받는 시기를 2020년대 중반 이후로 미루기로 합의한 뒤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의원은 며칠 전 국회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전작권 무기한 연기는 군사 주권을 포기한 것”이라며 “부끄럽지 않으냐”라고 따져 물었다. 문 의원만 그런 게 아니다. 야당과 좌파 진영은 하나같이 ‘주권 포기’라고 몰아세웠다. 이병박 박근혜 보수 정권의 뿌리 깊은 ‘식민지・노예 근성’이 빚어낸 참사라는 주장까지 폈다.
결론부터 말해 전작권은 지금이라도 우리가 원한다면 당장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은 전작권 문제가 처음 거론됐을 때부터 철저하게 비용과 부담의 측면에서 접근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한반도 방위에서 더 큰 몫을 떠맡아 주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과 그 주변 외교・안보 참모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독립운동에라도 나선 듯 전작권 ‘환수’를 밀어붙였다.
노무현 정부 때 추산한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군 현대화 자금만 67조원에 이르렀다. 연간 30조원 안팎의 국방 예산을 빼고도 그렇다. 게다가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대북 정찰 및 정보 자산을 갖추는 것까지 포함하면 추가적으로 막대한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껏 전작권 논의는 주권과 동맹을 대립시키는 잘못된 틀에 갇힌 채 진행돼 왔다. 주권 포기라는 감성적 구호에 휘둘려 섣부르게 전작권 환수를 추진했던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지불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엄청나다. 서울 용산의 미군 기지 이전 계획이 대표적인 예다. 돈만 들었다. 이런 식으로 전작권 논란 때문에 우리가 몸살을 앓는 사이 북은 세 차례나 핵실험을 했고, ICBM급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안보 분야의 잃어버린 10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군은 전작권 문제에서 줄곧 임기응변으로 일관해 왔다. 애초에 노무현 정권 인사들에게 2012년이면 전작권 전환 대비 군 전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보고했던 것도 바로 우리 군이었다.
앞으로 10년을 우리 안보의 ‘골든타임’으로 삼겠다는 국가적 차원의 결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너 회색 분자니? 합리적 중도 신문이니? 중앙일보
<[사설]불가피한 전작권 연기…강군 개혁은 계속돼야>(10/24)
전작권 전환 연기는 안보 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북한의 대남 위협 증대 때문이다. 북한은 세 차례 핵실험을 실시해 핵무기의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 중단거리 미사일 성능 개량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 들어 21차례에 걸쳐 미사일과 장거리 방사포를 시험 발사했다.
전작권 전환이 이뤄지면 우리 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가 되는 만큼 국방비 증가 부담도 생긴다. 우리 군의 전반적 대북 억지력도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도 과거 같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전작권 전환 연기는 현실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동맹을 통한 억지력 강화나 유지는 자주 국방의 한 요소다.
그렇다고 해서 전작권 전환 작업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주권국가로서 우리가 전작권을 행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국방부는 전작권 전환 연기에 대해 한 점의 궁금증이나 의혹도 남지 않도록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칼럼]전시작전통제권과 군사주권>(11/7, 최명상 전 공군대학 총장)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군사주권은 별개 사안임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완벽한 연합방위 체제다. 그런데도 전작권 연기가 군사주권을 포기했다는 질문은 국제정치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우리 국민은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에서 보았듯이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이 얼마나 국력을 소모하고 국론 분열로 이어지는지를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전작권 전환 사실상 무기 연기…박근혜 정부 ‘군사주권’ 포기>(10/24, 박병수, 석진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외교안보 분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전작권 환수’ 공약을 스스로 파기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청와대는 이날도 한미 DIDRR의 전작권 전환 연기 합의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은 채 “국방부가 설명할 일”이라는 태도를 유지했다.
 
<공론화・의견수렴 없이 일방 결정…전작권 전환 조건도 ‘모호’>(10/24, 박병수, 최현준)
양해각서 소개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 구비와 미국의 보완 및 지속능력 제공
▲국지도발과 전면전 때 초기 단계 북한 핵・미사일 대비 한국군의 필수대응ㄴ으력 구비와 미국의 확장 억제 수단과 전략자산의 제공 및 운용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 등
한반도 안보환경과 관련해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 강화를 꾸준히 추구할 경우 전작권 전환은 다시 미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될 경우 남북간에는 군비경쟁의 악순환만 남게 될 공산이 크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포함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기 때문이다.
김종대 “전반적으로 조건들 자체가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언제 달성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역내 안보환경’이 포함된 것은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 미국이 센카쿠 열도나 스프래틀리 군도 등을 둘러싼 영토분쟁에서 중국 견제에 나설 경우 한국이 전작권을 되찾아오지 않은 것이 족쇄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이 분쟁에 휩쓸려 들어갈 우려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미, 작년만 해도 재연기 반대…한국 무기 대량구입에 ‘급선회’>(10/24, 박현)
전작권 전환의 재연기 요청에 내심 불만을 터뜨렸던 미국 쪽이 또다시 재연기에 합의한 데는 미국산 첨단무기 구매 등 한국 정부의 집중적인 물량공세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천문학적인 돈이 소요되는 미 첨단무기들을 구매하기로 결정한 시점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1월 말 차기전투기 사업의 작전요구성능에 스텔스 기능을 넣음으로써 유일한 후보인 미 록히드마틴의 F-35를 사실상 낙점한 데 이어, 올해 3월 40대(약 7조 3418억원)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글로벌호크 4대(9000억), 패트리엇-3 미사일(1조 3천억)도 도입하기로 결론 내렸다.
전작권 전환 재연기에 대한 미국의 동의가 공식화한 시점은 4월 25일 한미 정상회담 때였다. 두 정상은 이때 전작권 전환 시기를 재검토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정부의 미 첨단무기 구매 및 방위비분담 협정 비준과 절묘하게 시기가 맞물린다.
 
 
<[사설]무엇을 위한 전작권 무기연기인가>(10/24)
한 나라의 최고 주권 사항인 작전권 문제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우선 박 정부가 전작권 문제에서 얼마나 국민 의견을 수렴해서 기존 결정을 뒤엎는 협상을 추진한 것인지 절차적 정당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남북의 경제력 차이뿐 아니라 남한의 국방예산이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상황에서도 “독자적인 작전권을 행사할 준비가 안 됐다”고 한다면, 도대체 우리 군의 자주적인 운용은ㅇ JS제 가능한 건지, 현 정부의 정책담당자들은 대답해야 한다.
전작권 사슬에 매여 막대한 액수의 불필요한 방위비용까지 국민이 연년세세 부담해야 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현 정권은 이런 문제들을 국민에게 분명히 설명하고 역사적 평가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용산기지 반환 다시 불투명…동두천 주민들 반발 예고>(10/24, 박병수)
 
<‘전작권 전환 연기’ 근거엔 냉전프레임 고스란히>(10/25, 이용인)
전작권 전환이란 목표를 먼저 세워놓은 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를 끼워맞춘 식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가장 큰 문제점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한미가 외교적 수단은 도외시한 채 군사적 수단을 통해서만 억제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한미의 외교적 실패로 북핵 고도화를 방치하고 있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데도, 한미가 이에 전작권 재연기로 대응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미 관계 개선이나 6자회담 재개 등을 통해 북핵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는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미는 전작권 전환의 조건으로 북핞의 재래식 무기 위협에 대한 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이 북한을 압도할 수 있는 재래식 무기를 갖춰야 전작권 이전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남북관계 정상황에 대한 밑그림 없이 북한 위협을 군사력으로만 방어하겠다는 것은 위협을 감소시키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남북관계만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김준형 교수는 “냉전을 벗어나자면서 냉전 프레임에 갇혀 있고, 통일 대박을 얘기하면서 분단 비용을 과도하게 지불하는 것“이라며 안보 중심으로만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박근혜 정부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고 지적했다.
전작권 전환이 재연기됨으로써 단순히 ‘군사주권 포기’라는 감정적 차원을 넘어 주변국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작권 전환 시기가 기약이 없어지면서, 굳이 북한, 일본, 중국이 군사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밀도있는 협의를 할 까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선땐 “전작권 차질 없는 환수” 정부출범 직후 재연기 밀실추진>(10/25, 석진환)
박 대통령 전작권 발언 변화
1. “전작권 환수를 요구하는 것은 정말 바보짓”(2007.1)
2.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 차질없이 준비”(2012.11)
3. “전작권 전환 정상 추진 및 신연합방위체계 구축”(2013.2)
4. “전작권 전환은 한미 연합 방위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준비・이행되는 것으로 의견을 같이 해”(2013.5)
5. 전작권 시기와 조건 재검토 발표(2014.4.25)
6. “공약 이행보다 국가안위라는 현실적 관점에서 냉철하게 바라봐야”(민경욱, 2014.10.24)
 
<청와대 뒤늦게 해명…그마저 황당>(10/25, 석진환, 박병수)
“할말 없다” 침묵 일관하다 비판 커지자 입장 밝혀 / 공약보단 안보라면서 공약 파기는 아니라고.
 
<동두천 미 2사단 잔류 소식에 시민들 “정부가 뒤통수 때렸다”>(10/25, 홍용덕)
“며칠 전까지도 이전 계획에는 절대 차질이 없다더니…”
‘동두천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 한종갑 위원장은 “한마디로 배신감을 느낀다. 정부가 이전을 약속해놓고 이렇게 뒤통수를 때릴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동두천시는 반환될 미군 공여지 중 1000제곱미터를 산업단지로 조성해 대기업을 유치한다는 내용의 발전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경기도를 거쳐 안행부 승인까지 받아둔 상태였지만 이번 미군 잔류 결정으로 물거품이 될 상황에 놓였다.
동두천시는 한국전쟁 뒤 60년간 시 전체 면적의 42.5%인 40.63km를 미군기지로 내주면서 한국의 대표적 ‘기지촌 도시’라는 오명과 함께 수조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도시가 낙후돼 재정 자립도가 20%에 불과하다.
반면 미군기지가 2016년까지 이전하는 평택시는 담담한 표정이다. 평택시 한미협력단 관계자는 “미군기지 70%가 조성이 끝났다. 일부 부대가 잔류한다고 큰 영향을 받을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설]‘종미’라고밖에 볼 수 없는 전작권 포기>(10/25)
한미가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사실상 무기 연기한 것은 국가주권 포기와 진배 없는 중대 사안이다. 비난이 빗발치자 청와대는 오후에야 ‘공약 이행보다는 국가 안위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간략한 해명을 내놨다.
합의 내용에서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용산과 동두천 미군기지 잔류 문제다. 용산의 한미연합사와 동두천 210여단의 평택 이전은 전작권 전환과는 직접 관련 없이 별도로 합의돼 국회 비준동의까지 마친 사안이다. 그런데도 공론화 과정도 없이 합의를 번복했다. 미국에 애걸하듯 전작권 전환 연기를 얻어내려다 보니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올 일을 서둘러 결정하고 말았다. 미국으로서는 용산과 동두천의 기지를 두고 평택의 미군기지 하나를 거저 얻은 셈이다. 우리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기지를 만들어주느라 막대한 비용을 퍼부은 꼴이 됐다. 주권국가라고 할 수 없는 우스운 짓이다.
주민들의 반발도 불을 보듯 뻔하다.
 
<[칼럼]막대한 군사비 쓰면서도 작전능력 못갖췄다?>(10/27,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북 압도하는 국방예산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작전능력 없다는 건 말이 안되는 핑계일 뿐이다.
 
<북 핵탄두 소형화 능력 보유 밝혀놓고 주한 미사령관 “사실에 기반한 건 아냐”>(10/27, 박현)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은 24일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하고 이를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실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선 북한의 기술이 어느 정도 효과적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에 기반해 말하는 건 아니다라며 북한의 관련 기술 역량과 개발에 투자한 시간을 고려할 때 아마도 그러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칼럼]전작권과 처가살이>(10/27, 박병수)
(국제전략문제연구소 2014년 군사균형보고서)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보다 40배나 크고, 한 해 군사비도 남쪽이 36배나 더 쓴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엄청난 격차다. 미국이 한국보다 경제력은 14배, 군사비는 19배밖에 안 된다.
 
<[사설]‘역내 안보’를 왜 전작권 전환조건에 넣었나>(10/27) 109번 슬라이드
 
한국일보 1면: 한미 전작권 전환 사실상 무기한 연기
 
한겨레 1면: 전작권 전환 사실상 무기 연기…박근혜 정부 ‘군사주권’ 포기
 
중앙일보 1면: 전작권 환수 2020년 중반으로 연기
 
조선일보 1면: 전작권 전환 10년 이상 늦춘다
 
동아일보 1면: “전작권 전환, 북핵대응력 갖출때까지 연기”
 
국군 능력부족?…전작권 환수 ‘무기한 연기’
조선 동아의 과거
안보분야로 눈을 돌려보면 이들의 말 바꾸기는 더욱 가관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조선일보는 "자기 나라는 자기들 힘으로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우리의 명실상부한 자주국방 태세와 정신을 더욱 굳게 다져야 할 것"(1971년 2월 9일)이라고 자못 비장하게 다짐했다. 동아일보 역시 "나의 생명과 재산보호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나간다는 자주국방 작업이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음은 흐뭇한 일"(1977년 1월 31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받들어 모시던 "자주국방"을 참여정부 들어서는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자주국방이 멋지다는 것을 몰라서 강대국과 동맹을 맺고 그들과 협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지혜롭다는 이야기"(조선일보 2004년 5월 21일)라며 정부의 어리석음을 질타하고, "더 근본적이고 시급한 일은 정부가 이제라도 어설픈 자주론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한미동맹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동아일보 2004년 6월 7일)이라고 타박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변화된 미국의 역할을 수용하면서도 종속적이지 않은 외교안보 노선을 찾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과제"(조선일보 1996년 4월 19일)라고 했다가 참여정부 때는 "공허한 구호인 자주국방이란 말에 매달려 엄청난 재정부담을 껴안으면서까지 기존의 동맹체제를 허물어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조선일보 2005년 10월 23일)이라며 혀를 찼다.
노태우 정부 때는 "현재 한미연합사 체제로서는 자주국방의 주인으로서 전쟁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다"(동아일보 1989년 10월 25일)는 인식을 보이더니, 참여정부를 향해서는 "노 정부는 실속 없는 자주국방 타령부터 중단하고 이완된 한미동맹을 서둘러 재정비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안보는 안볻로 취약해지고 국민 허리만 더 휠 수밖에 없다"(동아일보 2005년 11월 8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작통권 환수 문제에 이르러 이들 언론은 말 바꾸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작통권 환수는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의 선거 공약이었다. 그것을 1994년 김영삼 대통령 때 전시와 평시를 구분해 평시작통권만 돌려받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를 '제2의 창군'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미 1990년에 "인식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며 "지략과 능력이 있다면 전시라 해도 굳이 미군 측에 작전통제권을 의탁하지 않아도 될 것"(2월 17일)이라고 자신했다. 1994년 평시작통권을 돌려받자 "다음은 전시작통권"이라며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돌려받을 것"을 촉구했다.
한국군이 평시 작전통제권을 드디어 돌려받았다. ... 냉전 이후 국지분쟁의 귀결에서 보듯 국가 보위의 궁극적 책임은 당사국에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의 작통권은 우리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 (1994년 12월 1일)
동아일보도 1994년 10월 9일 "우리가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사령관에게 넘겨준 것은 전쟁 중 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면서 "휴전이 성립된 지도 41년이나 지났으니 작전권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하루 속히 되찾아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군에 대한 작전통제는 주권국가인 한국이 단독으로 행사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며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민족 자존의식을 높여줄 것이다. 또 자주국방 능력을 단계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며... 통일정책 추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계기로 유사시 작전통제권도 되찾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1994년 10월 11일)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2007년 2월 25일 한미 양국은 한반도 전작권을 2012년 4월 17일 한국군에 이양하기로 합의했다. 조선, 동아일보가 그토록 염원해 마지않던 전작권 환수까지 이뤄져 명실공히 자주 국방의 기틀이 마련됐다. 박수를 치며 감격해 했을까?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와 성토가 터져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이며 강력한 전쟁 억지체계가 사라지고, 한반도의 운명이 이유 없이 실험대에 오르는 날이 바로 그날이다. ... 정권의 이 시위 성공으로 국민은 수백조 원의 안보 부담을 지고서도 안심하고 살 수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하게 됐다. (조선일보 2007년 2월 26일)
노 정권이 임기 1년을 남겨 둔 시점에 국민의 어깨에 혹독한 짐을 지우고 말았다. ...무모한 전시작전권 환수로 인한 한미 군사동맹의 이완 및 안보공백을 메우는 일이 다음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돼버렸다. (동아일보 2007년 2월 26일)
이번엔 정치, 행정 분야로 가보자. 개헌이나 인사검증에 대한 말 바꾸기는 앞서 얼추 언급했으므로, 간략하게 덧붙이고 넘어간다. 이들 언론은 얼마나 궁색했으면 "미국에선 4년 중임제가 다음 선거 준비로 책임 있는 국정운영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6년 단임제로의 개정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동아 2007년 1월 10일)면서 스스로 "실패한 제도"(동아 2004년 4월 29일)로 규정했떤 단임제를 거꾸로 옹호하고 나섰다. "단임은 대통령이 권력을 생산(집권)할 때만 선택받고, 권력의 소비(정책)에 대해선 심판받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후보끼리 경쟁형(단임형)'을 '정권 심판형(중임형)' 헌법으로 바꿔야 한다"(중앙 2006년 7월 8일)고 했던 이들이다. 그처럼 중요한 개헌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180도로 확 바뀔 수 있는 걸까.
 
한국일보는 우리 정부가 밀실에서 중대한 안보 현안을 결정했다는 것을 비판했다.
사설 주요 내용: 우리 측의 요구로 향후 전작권 전환에는 조건이 충족해야 한다. 재연기 사유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한국군이 전작권을 가졌을 경우에는 막아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재연기로 인해 평택・용산 기지 이전은 도루묵이 됐다. 한국일보는 이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는 논조의 사설을 썼다.
 
경향신문은 전작권 전환 충족 조건으로 ‘한국군이 북한 위협에 대응할만한 독자적 능력을 갖춘 때’라는 막연하게 명시했다며 비판했다.
사설 주요내용: 나라의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군대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연기한 것은 군사적 문제가 아닌, 보수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평이 많았다. 정부는 앞으로 미국의 첨단 무기를 대량구매하겠지만 그런 무기, 미군, 군비 증강이 안보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는 전작권 전환 재연기 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이 배제된 것에 대해 비판했다.
사설 주요내용: 국민의견을 수렴해서 기존 결정을 뒤엎는 협상을 추진한 것인지 절차적 정당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작권 전환 재연기는 국민을 속이고 무시하는 처사다. 한미 연합 방위를 주도할 핵심 군사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군사 무기를 훨씬 많이 구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조선일보는 전작권을 가져오려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한다. 망할 신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작권 전환 노력은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였다. 노무현 정부에서의 전작권 전환을 반대한 역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조선일보의 노력이 가상하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전작권 전환을 반대한 이유는 정쟁 때문이었다.
사설 주요내용: 노무현 정부는 전작권을 전환해야 자주국방인 것처럼 몰아갔다.
전작권 재연기는 불가피하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기로 해놓고 이를 대신할 안보체제를 만드는데 필요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중요한 것은 전작권이 어디 있느냐가 아니고 전쟁 억지와 유사시 전승(戰勝)이다. (미국 꽁무니 뒤에 숨어도 부끄럽지 않다고 선언을 한다). 향후 전작권 전환은 북핵 미사일을 막기 위한 KAMD*, 킬체인*의 완성여부에 달려있다(우리 군이 형님 미국의 꼬붕이 된 모양새다).
 
중앙일보는 전작권 전환 충족 조건을 제시하며 안보를 고려했을 때 전작권 재연기는 불가피했다는 국방부의 입장을 다시 한번 명시하고 있다.
사설 주요내용: 전작권 전환 충족 조건은 첫째, 한미 연합 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핵심 군사적 능력을 갖춘다. 둘째, 북한 국지도발과 한반도 전면전 초기 한국군의 대응 준비 능력을 구비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 전작권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환 작업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 일국주의는 신화에 불과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방위는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전작권 전환 연기에 따른 과제도 적잖다. 킬체인, KAMD, 관계부처와 지자체 간의 협의와 조정이 필요하다.
 
동아일보는 전작권 전환을 연기한 것은 전쟁 발발시 미국의 즉각 개입을 담보하는 안전 장치의 작동을 확실히 보장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사설 주요내용: 한국과 미국이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합의했다. 대한민국 안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전작권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작전 수행을 위해 부대를 지휘하는 권한이다. 이번에 전작권 전환을 연기한 것은 전쟁 발발시 미국의 즉각 개입을 담보하는 ‘안전장치의 작동’을 확실히 보장받은 것과 다름없다.
 
조동은 보수적인 신문이 아니다. 보수적이라면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며 하루 빨리 한미 종속 관계를 청산하고 자주적인 국방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외쳐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다분히 정치적으로 미국 없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KAMD(Korea Air and Missile Defense, 한국형 공중 및 미사일 방어체계)
*킬체인(Kill Chain, 한미연합 선제타격 체제): 탐지 평가 결심 타격 4단계. 탐지 정찰수단이 미국에 의존적이고 결심 타격에도 미국 눈치를 봐야하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사회정의란 무엇인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정 운영 캐치프레이즈는 "정의 사회 구현"이었다.
불의한 권력이 정의사회를 부르짖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부르짖은 정의 사회는 우리 실정에 너무 멀리 있다.

사회정의란 무엇인가

개인에게 정당한 몫을 부여하고 그 몫에 대한 권리, 책임의식, 이익을 정당하게 부여하는 것이다. 기회의 균등한 분배와 투명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함축시킨 사회-철학 용오가 사회정의다. 어느 한 개인에게 희생을 부여하는 것을 반대하며, 그 희생 강도가 약하나 강하나 차등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권리에 대한 책임의식 또한 주장한다.

사회정의에 대해 처음으로 정립화시킨 미국의 진보주의자이자 철학자인 존 롤스가 1971년 저작한 정의론에서는
1) 모든 이에게 자유를 완벽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정의의 첫째 원칙이고,
2) 가장 빈곤한 사람들의 복지에 대해 우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정의의 둘째 원칙이고,
3) 결과의 불평등은 존재하되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정의의 셋째 원칙이라고 사회정의를 정의했다.

사회정의는 형식적 정의와 실질적 정의를 모두 중시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정의로운 현상에 대한 것을 총망라해 나타낸 의미다.

인간의 부정적인 면을 포함하지 않고, 인간의 긍정적인 면을 포함하여 점진적인 사회혁신을 위한 철학적 가치로 여겨왔다.

이타주의
평등주의
인본주의
풀뿌리민주주의
여성주의
진보주의
법치주의

신문의 자유와 책임

신문은 정치와 더불어 가장 현실적이다. 그때그때 현실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권력이 독재적 성향을 띨 적에 어느 권력이고 독재를 하겠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우선 국가적 사명이 중대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언론에 대해서는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정치는 현실의 상황변화에 따라서 적절하게 국민을 지도하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그것을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데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오늘날 권력이 정치발전과 언론자유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언론은 여기에 덩달아 권력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있다. 권력이 언론의 국가적 사명이다, 책임이다, 윤리라는 것을 강조하고 독재를 할 때 언론은 자유를 내걸고 투쟁하고 저항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와 책임보다는 언론의 독립이 더 중요하다.'

지금은 결코 책임을 강조할 때가 아니다. 자유를 강조할 시기이며 따라서 신문의 날 표어로 자유와 책임을 내세운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언론의 독립이다. 우리 언론은 지난 10여년 간 제도적, 구조적으로 권력과 기업에 완전히 예속돼 있었다.

언론의 독립을 위한 참된 길

편집권의 독립은 제도적으로 구체적인 보장이 필요한데 나는 언론기업을 특수법인체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언론사주가 '나는 바지사장이냐'는 반발을 할 수도 있지만 가당찮은 소리다. 언론이나 교육사업은 그 사업 자체에 막중한 국가의 공공성이 있기 때문에 기업시, 사물시해서는 안된다.

독재자: 으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 집단.

권력자는 반드시 자유를 내세우면서 책임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자유행사를 견제하자는 데 뜻이 있는 것이다.
언론의 책임은 지난 몇년 동안 억압당하거나 외면 당한 공중의 절규를 듣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니다.

직필과 곡필

언론인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수 없는 하찮은 직업이다. 옳은 기자 노릇하기가 어렵다. 글 쓰는 생활이란 참으로 책임이 무거운 직업이라는 것을 느낀다. 비단 우리 사회에서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그러하다.

지식인들의 활동은 언제나 공개된 곳에서 행해진다.
신문기자는 활동이 활자로서 오래도록 남기 때문에 절대로 속일 수 없고 음성적으로 할 수도 없다. 그만큼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
신문기자는 언제나 반드시 자기의 믿는 바에 따라 글을 써야 하며 어떤 다른 사정에 의해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일시적 필요에 의해 글을 어떤 방편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글은 활자로 후세에 남는다.
감출 수도 속일 수도 없다. 자기의 글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때그때 시대적 여건을 무시하고 소신대로만 글을 쓸 수도 없다. 옳은 말을 한 글을 정론이라고 하고, 시대에 아부한 글을 곡학아세한 글이라고 욕하고 비웃는다.
청사에 빛날 정론을 춘추직필이라고 하고 시대에 아부한 글을 곡필이라고 욕한다. 그리고 정론은 언제나 건설적이며 곡필은 불건전하고 파괴적 글인 것으로 생각한다.

정론은 반드시 건설적이고 긍정적이며 곡필은 반드시 파괴적이며 부정적이라고 단순히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정론은 표면상 부정적이며 따라서 그 시대에서 볼 때 파괴적인 듯 보이며 곡필이야말로 자신을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것처럼 자처한다.

정론을 펴고자 하는 사람은 부조리하고 부패한 정치를 반대하고 새 질서를 주장한다. 정론이 파괴,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시대를 긍정하고 현상 유지하고자 하는 언론은 따라서 자연 부정적이기를 기피한다.

정론과 곡필의 관계는 이와 같이 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정론이라 일컬어지는 언론일수록 부정적, 파괴적인 듯이 보이며
곡필이라 일컬어지는 언론일수록 일견 긍정적, 건설적 양상을 나타낸다. 따라서 정론은 항상 소수의견이고 곡필일수록 다수의견인 듯이 보인다.

글과 생활의 일치

글 쓰는 사람은 절대로 기분에 따라 이렇게 혹은 저렇게 횡설수설해서는 안 된다. 글에는 논리가 일관돼 있어야 하고 전에 쓴 글과 다음에 쓴 글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한다. 어떤 때는 이런 소리를 하고 어떤 때는 또 저런 소리를 하는 식의 글을 써서는 안 된다. 글은 사람의 인격표현이라고 했다. 내용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글의 내용이 자기의 숨김 없는 생각을 나타내지 않고 어떤 필요에 의해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글 쓰는 사람은 독자에 의해 글에 따라 하나의 상이 그려진다. 한 줄의 글도 마음에 없는 글을 무책임하게 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

글 쓰는 사람은 글의 내용과 자기의 생활에 모순이 있어서는 안 된다. 글로써는 부정부패를 증오하는 듯이 주장하면서도 실제 생활은 글 내용과 전혀 다른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 부패의 지탄을 받는 인사가 부패를 가장 증오하는 듯한 글을 쓰는 것은 사람을 웃긴다.

글과 사람과는 모순이 있어서는 안된다. 일제 때 아부하고 자유당 때 아부하며 바람 부는 대로 자신과 민족을 더럽힌 인사가 나라를 걱정하고 부정부패를 규탄하고 지조를 운위하는 것은 가소롭기 비할 바 없다. 글의 내용과 자기의 생활 사이에는 큰 모순이 없어야 한다. 평소 부정과 부패를 지탄하는 글을 쓰면서 자기 자신 남한테 지탄받을 생활을 한다면 큰 모순이다 .

사회의 부정, 부패 , 그 밖의 각종 악과 싸우는 언론인들은 우선 자신의 생활부터 모범적이 되어야겠다. 언론인은 떳떳해야 한다. 정치인이 국민에 이것저것 공약을 했으면 꼭 지켜야 하듯이 언론인도 독자 앞에 어떤 주장을 했을 때 그런 생각과 최소한 모순되는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한다. 글과 생활을 한 인간의 인격을 통일시켜야 한다.

곡필의 논리

직필하기가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은 검토가 없는 듯하다.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대부분 조소의 대상인 바로 그 '곡필'이며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는 '직필'은 놀랄 만큼 읽어보기가 어렵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곡필은 그 자신이 결코 곡필이라고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곡필일수록 '대국'을 논하고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고 때로는 '민주주의'와 '헌법'과 사회의 안녕질서와 반공을 내세우기를 잘한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곡필의 근거는 반민주부패권력이다.

곡필은 어떤 의미에서 볼 때 현실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곡필도 논리를 갖추고 있다.
곡필의 위장논리를 폭로하는 곳에 직필의 임무가 있다. 조선민족은 독립할 필요가 없고 일본에 예속돼 있어야 한다는 매신의 망국론이나 4.19의 학생데모를 끝내 폭동으로 일관 주장한 당시의 서울신문 논조도 매우 이로정연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바야흐로 이 나라 언론계가 위기에 빠진 오늘 지난날의 '훌륭한' 곡필들을 검토해ㅐ보는 것도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을 듯하다. 서명곡필은 일절 인용을 보류했음을 밝혀둔다.

'보도'가 내포하는 의미

기자라는 직업은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주고 해설해주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라는 표현은 흔히 생각되듯 객관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고 높은 차원에서의 주관적 존재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다. 저널리즘이 '객관적 사실'을 주관적 요소가 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은 일반적으로 19세기 이후의 일로 알려져 있다.

신문의 판매정책상 커다란 변화가 생기면서 객관성, 공정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어느 특정계층 사람만이 신문을 읽어왔으나 사회가 근대화, 대중화되면서 위에서 말한 것처럼 특정계층 사람만을 독자로 상대할 수 없게 됐다. 모든 독자에 다같이 만족을 주는 신문을 만들어야 하게 된 것이다. 공정, 객관성 개념은 저널리즘의 본질이 아니라 신문사상 일정단계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사안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데, 그 사건 또는 그 문제에 대한 입장, 즉 이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국가이익, 집단이익, 심지어는 개인이익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즉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의 이익에서 보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을 저널리즘의 이데올로기성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신문학과의 문제점: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게임, 마케팅, PR관련 수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사회 인문과학에 속하는 강좌는 8,9개에 지나지 않는다.
신문학과 강의의 목적은 사회와 인간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 돼야 한다. 한데 우리나라 대학 신문학과는 매스 미디어에 관한 전문적 교수만으로써 족하다고 믿고 있다.
언론인이란 사회과학적 눈(내용)과 신문학적 눈(형식)을 겸비한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
3분의 2를 사회과학강좌로 채워야 한다. 역사, 경제, 법률, 사회학, 철학 이밖에 많은 사회과학 계통의 강좌를 선택과목으로 해서 사회를 보는 전문적 안목이 상당히 높도록 양성해야 한다. 전문선택과목제를 활용해서 전문화의 교육을 했으면 한다.

언론인의 기본자세

한국신문윤리실천요강 "사실은 부분만이 아니라 그 전모와 의의를 포괄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즉 정확한 보도를 하는 데 있어 먼저 필요한 것은 사실이 가지는 이른바 전모와 의미란 무엇이냐가 먼저 구명되지 않으면 안된다. 전모와 의미를 알리는 보도는 먼저 사실의 구조가 다원적 존재라는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외부의 바람 속에서 언론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바람에 따라서 방풍의 길도 다를 것이다. 어떤 바람은 방풍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방풍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바람 속에서 지난 몇 해 동안 언론계의 양상은 많이 변했다. 이 변화에 적응하는 일이 힘들다. 살기가 힘들다.

언론인이 순수성을 잃으면 안된다. 순수성이란 오로지 기자로서의 직무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직무에 충실하다는 것은 행동과 주장을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란 어떤 일관성을 의미하며 때와 장소에 따라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주장하지 않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기사는 기자의 양식과 사상의 소산이다. 기자의 활동에도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지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언론이 나아갈 길

첫째,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언론기업이 정치, 경제적인 독립을 확보하는 일이다.
둘째, 언론을 규제하는 모든 악법을 철폐해야 한다.
편집권을 사주가 독점적으로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문은 어느 개인이 이용할 수 없고 이용해서도 안된다. 모든 사원이 공동으로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편집강령을 내걸자. 사시는 무어니 해서 표어를 내걸지 말고 신문의 제작방침을 구체적으로 밝히자는 것이다. 그러면 정치적으로 어떤 노선을 따라서 어느 단체를 지지하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는 어떤 방침이라는 것을 다 알게 된다.

김수환 추기경 "민주화를 위해선 개헌보다 언론자유의 실현이 더욱 선결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