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작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작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6년 2월 29일 월요일

<소녀상을 지키는 남자>

한파 작문
 
<소녀상을 지키는 남자>
 
두 겹 비닐이 부딪히는 소리가 우악스럽다. 남자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샛바람도 이보다 강하진 않았다. 강남 한복판 빌딩 계곡 사이를 타고 부는 돌풍이 속초 바닷바람보다 더 거셌다. 머리가 하얗게 샌 남자가 신을 구겨 신고 밖엘 나갔다. 옛 기억을 되짚으며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비닐 천막 위에 노끈을 얼기설기 엮었다. 비닐 부딪히는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살을 에는 추위는 여전하다. 속눈썹엔 이슬방울이 내려앉았고, 코털마저 차가운 들숨날숨에 얼었다. 그러나 남자는 춥지 않다. 천막 끝에 아기 고드름이 얼어붙어도 남자는 춥지 않다.
 
살을 에는 한파가 일주일째 계속됐다. 남자의 딸을 형상화한 반도체 소녀상이 비닐 천막 밖을 안 나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소녀는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재벌기업에서 일했다. 이 기업 총수는 마누라 빼고 모든 것을 바꾸라는 경영지침으로 유명한 그이다. 소녀가 일한 공장에선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 소녀는 생산라인에 들어가기 전, 눈코입만 밖으로 드러나는 방진복을 입어야 했다. 이 공정에서 저 공정으로 옮겨가기 위해선 클린룸이라 불리는 곳에 들어가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야 했다. 그 곳에서 그녀는 철저히 깨끗해야 했다.
 
그녀의 몸에선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공장에서는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하는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소녀는 정든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몸이 아팠다. 한여름에도 으슬으슬 추웠다. 함께 일한 언니도 같은 병으로 회사를 떠났다. 소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같이 일한 언니도 역시 세상에 없다. 소녀를 형상화한 소녀상만이 사람냄새를 없앤 그 기업 본사 앞에 앉아있다. 소녀는 이제 수은주가 깨지는 한파가 와도 춥지 않다. 그녀의 아버지도 춥지 않다. 천막 안은 사람냄새로 가득하기에 외롭지 않다

<기계는 죄가 없다>

[지하철] <기계는 죄가 없다>
 
지하철 신분당선이 연장 개통했다. 수원 광교에서 강남까지 45분이면 간다. 광역버스를 1시간 10분가량 걸렸다. 버스보다 소요시간이 20분 이상 줄었다. 신분당선 전동차엔 운전실이 없다. 기관사 역시 필요하지 않다. 전동차는 종합관제실에서 원격으로 조종한다. 컴퓨터가 전동차의 운행, 출입문 개폐를 비롯해 모든 것을 주관한다. 다만, 기관사 면허를 가진 안전요원이 승객들과 함께 탄다. 안전요원의 역할은 말 그대로 안전 점검이다. 부지런히 객차를 오간다. 안전요원이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직접 전동차를 제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과학기술문명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했다. 그러나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처칠은 민주주의를 최악의 정부형태라고 했다. 지금까지 존재한 다른 모든 정부 형태를 제외한다면 그렇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과학기술문명도 그렇다. 과학기술은 예전에 없었던 편리함을 선사했다. 그러나 인류에게 새로운 위협 역시 선사했다. 능동·피동적인 죽음이 지하철에서 벌어졌다. 사람들이 전동차 앞에 몸을 내던져 목숨을 끊었다. 자살자들이 늘어나자 역마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다. 스크린도어도 말썽이다. 자살을 막으려고 만든 자동문에 끼여 사람이 죽었다.
 
교통사고로 사람이 많이 죽는다. 그러나 자동차를 괜히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지하철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로봇 또는 컴퓨터가 기계를 작동시키게 된다면 조금 달라진다. 바야흐로 로봇이 체스 대결에서 사람을 이기는 시대다. 지성을 활용하는 작업도 로봇이 인간을 앞선다. 그러나 기계는 딜레마를 겪지 않는다. 경우의 수를 벗어나는 돌발 상황엔 결과 값 오류라는 답을 내놓을 뿐이다. 선로에 사람이 있어도, 부주의로 스크린도어에 사람이 끼여도 동요하지 않는다.
 
지하철은 죄가 없다. 인간이 조작한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신분당선엔 인간의 조작 없이 달리는 전동차가 있다.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 인간의 감성과 상황판단 능력이다. 이 능력은 무엇도 대신할 수 없다. 신분당선 기관사는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이 없다. 휴식도, 임금도 필요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책임이 없다.

<그곳에 헤테로토피아가 있었다>

[작문 제시어: 통과]
<그곳에 헤테로토피아가 있었다>
 
유토피아는 사라졌다. 사실 그 곳은 처음부터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어려움을 잊게 하는 공간, 다른 유토피아라는 뜻을 가진 말이 있다. 헤테로토피아다. ‘다른이라는 뜻의 헬라어 헤테로와 토피아(장소)가 결합된 합성어다. 아이들이 부모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는 다락방, 신혼부부가 일상을 접어두고 떠나는 허니문 여행지, 원양어선 선원이 간만에 정박한 부두에서 찾은 매음굴이 헤테로토피아다. 그곳은 견디기 어려운 시간 또는 공간을 통과한 뒤에야 들어갈 수 있다.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20154,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 인의 장막으로 만들어진 헤테로토피아가 있었다. 청년들은 음악에 맞춰 몸짓을 했고, 어른들은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박수를 쳤다. 슬픔도 눈물도 없는 그곳은 진정한 헤테로토피아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축제의 현장에 들어오려는 사람들과 막으려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날은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이틀 지난 토요일이었다.
 
경찰은 정오부터 버스와 펜스로 철의 장막을 펼치기 시작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사흘째 광화문 앞에서 연좌농성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유가족 앞엔 차벽을 설치했고 시청 앞에서 이동하기 시작한 집회 참가자들 앞엔 펜스를 설치했다. 펜스와 버스 차벽으로 분리된 유가족들과 시위대가 경찰에게 길을 열라고 외치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이내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소란은 밤이 깊도록 계속됐다. 그곳은 디스토피아였다.
 
시위대는 물줄기를 뚫고, 경찰 버스 유리창을 박살낸 뒤에야 유가족과 만날 수 있었다. 디스토피아를 통과한 사람만이 축제의 현장, 헤테로토피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낮에 시작한 집회는 자정이 돼서야 끝났다. 시위대는 물줄기에 젖어 무거워진 몸을 막차에 실었다. 경찰들도 만신창이가 된 버스를 타고 복귀했다. 각기 다른 버스를 타고 헤테로토피아를 떠났지만, 흥얼거리는 노랫말은 하나였다. ‘나도 행복에 나라로 갈 테야. 다들 행복에 나라로 갑시다.’

<북핵보다 위험한 핵발전소>

제시어:
<북핵보다 위험한 핵발전소>
 
대통령은 취임 첫 해에 에너지계획을 세운다. 대통령 임기와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기간이 5년으로 같기 때문에 에너지계획은 임기 중에 딱 한번 발표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에너지계획이 발표된 뒤, 두산중공업과 한국전력기술의 주가가 폭락했다. 핵발전 비중이 현재 34%에서 2035년엔 27%로 줄어든다는 소식이 알려진 탓이었다. 그런데 주가가 폭락한 다음 날, 두 회사의 주식은 다시 급등했다. 증권가에서 에너지기본계획 보고서를 잘못 해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는 사실 핵발전소를 더 짓기로 했다. 핵발전 비중이 지금보다 낮아진다는 건 눈속임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핵발전소는 24기가 있다. 박근혜정부는 2035년까지 핵발전소 16개를 더 짓겠다고 발표했다. 보고서엔 2035년이 되면 지금보다 전력 소비량이 80%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혀 있었다. 전력수급은 현재의 화력·수력·핵발전 외에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키워 지속가능한 에너지 획득을 하겠다고 했다. 전력 소비량을 과다 책정하고 에너지 안보를 위해 모든 발전 수단을 증설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계획은 모호하다. 대신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계획은 구체적이고 확실하다. 현재 노후 핵발전소 연료봉을 봉인할 장소도 찾지 못해 골칫덩이로 전락할 우려가 되는 마당에 16곳이나 더 짓겠다고 한다.
 
집을 지을 때는 꼭 화장실을 고려해야 한다. 집 안에 화장실을 설계하지 않을 작정이라면 바깥에라도 독채로 지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산다. 배설을 못하거나 이곳저곳에 하면 좋지 않다. 핵발전소 증설은 화장실을 고려하지 않고 집을 짓는 것과 똑같다. 인분은 비료로라도 쓴다. 그러나 핵연료봉은 어디 쓸 데도 없다.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곳에 오랜 시간을 묵혀둬야 한다. 핵발전소 증설은 세계적인 흐름에도 역행하는 에너지정책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파괴됐다. 이 사고를 기점으로 전세계는 핵발전소를 안전하게 해체하는 방법을 찾으려 고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핵발전소를 증설할 계획만 세우고 있다.
 
한국은 원자력 발전이라는 말로 핵발전을 미화한다. 그 무시무시한 핵발전의 위험성을 원자라는 이름 뒤에 숨겼다. 한국에선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규모의 사고가 발생하면 전국토의 절반을 포기해야 한다. 일례로 부산 고리원전 반경 30km 안에는 320만 명이 산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320만 명 이상이 위험하다. 북한이 언제 쏠지 모르는 핵미사일보다 한국의 핵발전이 더 무섭다. 체르노빌로 가보자. 체르노빌은 폭발한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죽은 땅이다. 이 사고에서 벨로루시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사고 이전 벨로루시 국민의 10만 명당 암 발병률은 80명에 그쳤다. 그러나 사고 이후 6천 명으로 늘었다.
 
핵발전소를 짓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건설회사들이 돈이 필요하다면, 증설할 게 아니라 안전하게 해체하는 기술을 고안해 해체하면서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독일의 지멘스는 대표적인 핵발전소 건설회사였다. 메르켈 총리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을 천명하자 핵발전소 해체하는 회사, 신재생에너지 개발 회사로 탈바꿈했다. 해체 비용은 최대 9천 억원가량이라고 한다. 이제 그만 지었으면 좋겠다. 핵발전소는 수명이 있다. 수명이 다하면 해체한 뒤 연료봉을 봉인해서 10만 년 동안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10만 년은 우리의 세월이 아니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핵의 위험성에 비해 인간의 도덕성은 한없이 작다. 이제 우리도 탈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