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8일 화요일

편향동화 biased assimilation

편향동화 biased assimilation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글은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생각과 같은 주장은 현명하고 논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결국 자신의 기존 입장을 더 강화시킨다.


근본주의 fundamentalism

근본주의 fundamentalism

  원리주의라고도 불리는 근본주의는 어느 종교에나 있고, 나타나는 양상도 거의 비슷하다. 우선 종교의 경전을 자구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엄정한 입장을 취하며(순결성), 금욕에 가까운 엄격한 윤리를 내세우고(도덕성), 다른 종교는 물론 같은 종교의 다른 종파에 대해서까지도 적대적이거나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다(편협성).

  사실 근본주의라면 이슬람교보다 그리스도교가 선배다. 제 나라에 살 때는 애국심이라는 걸 몰랐어도 외국에 나가 살게되면 과장된 애국자가 되게 마련이다.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했던 자들이 해방 직후 친일과 색출에 더 열성을 보이는 것처럼, 19세기 초 미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그리스도교 근본주의 운동이 그랬다.

  근본주의자들은 다른 종파에 대해 전투적이고 호전적인 자세로 일관하면서 각종 사회적 문제와 정책 결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사이비 예언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전략은 포기했으나, 냉전시대에 극우적인 반공주의로 대중을 호도한다든가 진화론을 비난하고 성서에 입각한 창조론을 정식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려 하는 등 파괴적인 책동을 서슴지 않았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8년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공화국이 세워진 사건을 계기로 강력해졌다. 이슬람 세력권인 중동의 심장부에 다른 종교(그것도 배타적인 유대교)의 국가가 탄생한 것도 논란거리였지만,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이스라엘 때문에 팔레스타인에 살던 주민들이 수천 년동안 살아온 고향을 빼앗기고 졸지에 난민이 되어버린 사실이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연합국 측이 전후의 어수선한 틈을 타 전쟁 지원의 보상으로 유대인들의 요구를 들어준 결과였다. 비록 유대인들은 3천 년 전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내세웠지만, 그 황당한 명분의 배후에는 힘의 논리가 숨어 있었따. 그 논리대로라면 미국도 불과 수백 년 전까지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땅을 유럽계 백인들에게 빼앗긴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벨푸어 선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이슬람 정권이 이슬람권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비난하면서 코란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새로운 이슬람 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이 주적으로 삼은 것은 이스라엘 공화국의 탄생을 지원한 그리스도 문명권이었고, 그 중에서도 핵심인 미국이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중동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을 몰아내지 못하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전쟁보다 테러의 방식을 택했다. 그들은 군대를 조직해 이스라엘과 크고 작은 싸움을 벌이는 한편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지자인 미국을 대상으로 세계 각지에서 테러를 일으켰다. 그 결과가 2001년 9.11 사태였다.

  문제는 테러로 해결될 게 아니고, 더욱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없지만, 중동에 최종적인 평화가 오기까지 테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중동 문제로 노벨 평화상이 주어진 것은 세 차례나 되지만 분규가 해결될 전망은 여전히 요원하다. 앞으로 이 지역이 얼마나 많은 노벨평화상을 양산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동 분쟁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들
1) 1977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2) 동년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수상 3) 1961년 다그 함마르셸드

니체 원한으로부터의 탈출

니체 <원한으로부터의 탈출> 도덕만큼 부도덕한 것은 없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5:3) 기독교의 가치판단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 '산상수훈' 속에서 가장 정확하게 드러난다. 약한 자, 즉 가난함·추함·불행 등을 운명처럼 짊어진 자들은 '선한 자'로 간주되고, 반대로 강력함·고귀함·아름다움·행복 등을 거머쥔 강한 자들은 '악한 자'로 분류된다. 즉 기독교는 금욕을 추구하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에로스와 쾌락 등을 억누른다.

  니체는 이런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노예도덕'으로 부르면서 철저히 부정했다. 삶의 고통을 실제로는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상상 속의 복수를 통해 위안을 얻으려는 마음의 움직임을 니체는 '원한'이라고 불렀다. 기독교는 이런 원한에 기반해 탄생했으며 유럽에 널리 퍼지게 됐다. 즉 강자에 대한 선망과 복수심에 사로잡힌 대다수의 약자들은 우선 '강자는 악하다'라는 부정적인 가치평가를 내리고, 이런 판단에 의해 '약자야말로 선하다'라는 가치평가를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강함을 긍정(실천)할 수 없는 약자(노예)들의 가치판단이 이런 가치 평가의 근원이다. 이런 기독교 도덕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윤리학도 기쁨이나 괴로움과 같은 인간의 감정적인 요소를 배제해 버렸다.

  이에 반해, 니체는 인간에게 진정한 의미를 지닌 올바른 행위는 감정적인 것, 즉 삶으로부터 실제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것이어야만 하며, 그 중에서도 '기쁨'을 가져다주는 '힘'의 고양감이야말로 도덕의 본래적인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진정한 올바름에 기반해 행동할 수 있는 자를, 니체는 약자에 대해 강자라고 불렀다. 물론 이것은 사회적인 계급의 차이를 지적하는 말이 아니다. 고귀한 자(강자)는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인 반면, 노예는 이런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한 인간인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강자는 단순히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다. <선악을 넘어서>에서 니체는 "고귀한 인간도 인간을 돕는다. 그러나 그것은 동정 때문이 아니라 힘의 충만함에 따른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기독교 도덕에서는 타인을 돕는 행위가 '이타적으로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요청에 기반한 의무적 행위가 되고 말았지만, 고귀한 자에게 그것은 어디까지나 '힘'의 발현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니체는, 자신을 약자로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자의식 과잉의 상태를 버리고 그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 신체로부터 샘솟는 힘(확장된 이성)을 회복하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파리 테러 생각 정리

<파리 테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파리 테러는 억눌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폭발이다. 억누른 주체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였다.
 
 
근본주의자들에게는 무질서와 절대 진리 양자만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질서가 아닌 것은 무질서일 뿐이며, 절대 진리가 아닌 것은 진리가 아닌 것이다.
 
파리테러 핵심 포인트 8가지
 
13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동시다발 총격 테러 127명 사망.
샤를리 엡도 테러는 무하마드 풍자 만화에 대한 맞춤형 보복 테러. 이번 테러는 불특정 다수가 있는 곳에서 일반적인 파리지앵들을 대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테러.
 
테러범들은 알라후 아크바르(알라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다.
유럽 극우 세력은 이번 테러를 반긴다. 프랑스의 국민전선도 그렇고, 독일에서는 페기다(우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가 지속적으로 무슬림의 축출을 주장해왔다. 그들에게 이번 테러 이상의 호재가 있을까. 만약 이번 테러가 IS나 현지 무슬림 거주자들이 한 것. 극단주의자들은 통한다. 서로 이익을 보는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함께 드라이브 걸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절대 다수 아랍과 무슬림들은 테러를 규탄한다. 하지만..IS 세력과 알카에다 세력들이 목소리를 내고 만행을 저지르게 만든 원인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있어 불편해하고 있다.
 
한국이 특별히 테러에 위험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한국에 대규모의 무슬림 공동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 공동체가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고 있지도 않다. 런던이나 파리같이 같은 커뮤니티에 살고 있는 로컬 세력이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도 적다. 다만 서울도 대도시이고, 한국이 중동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폭넓은 대처는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도 위험하다’, ‘IS 잠입 세포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이것이 외국인 혐오로 갈 위험이 있다. 혹시라도 이번 일을 계기로 파리와 우리의 상황을 등치시켜서 우리도 배타적인 인종혐오 등 극우주의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답이 없다.”
 
시리아의 경우, 아사드 정권이 4년동안 2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 우리에겐 IS가 더 잔인하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렇지 않아. IS가 외국인들, 특히 백인 앵글로 색슨을 참수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외부에 있는 우리를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직접 위협으로 느껴졌던 것. 아사드 정부는 더 잔혹했다. 아사드 정부가 25만 명을 죽일 때는 국제사회가 아무 것도 한 게 없었는데, IS에 대해 방방 뛰니까 그 이중적인 면모에 대해 불편해하는 것.
 
#PRAY_FOR_PARIS
 
샤를리 에브도 사건 때 12명이 죽자 전 세계 지도자들이 손을 잡고 나타나 행진했다. 그 곳에는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까지 나타났다. 25만 명이 죽을 때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던 그들인데... 아랍이 더 분노하는 건 러시아다. IS도 궤멸해야 하지만, 아사드를 좀 어떻게 하라는 목소리를 아랍인들이 내고 있다.
 
민족자결주의..민족 집단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그 귀속과 정치 조직,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고, 타민족이나 타국가의 간섭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집단적 권리를 말한다.
 
학자적 자질을 가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연두교서에서 밝힌 <14개조(Fourteen Points)>는 그 정신이나 내용이 승전국이나 패전국측 모두에게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수용하였다.
 
그 내용은 일반론 5개조, 국제연맹안을 포함한 특수문제 9개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약소민족(또는 점령지역)의 독립 및 복귀와 관련된 내용이 7~8개 항에 달하며, 그 기본 정신은 '민족자결의 원칙'(Principle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이 반영된 것이었다. , “피지배민족(식민지나 점령지역)에게 자유롭고 공평하고 동등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自決權)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후 유럽에서의 국경·영토 조정에 많이 적용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식민지 상태의 약소민족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기본권임과 동시에 그 정당성을 주장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3·1운동도 그러한 세계적 추세와 정신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꾸준히 계승되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식민지 민족의 독립에 영향을 주었고, 유엔 헌장, 인도차이나 문제에 관한 제네바협정(1954), 식민지독립선언(1960 유엔 총회) 등에 포함되어, 민족자결주의는 오늘날 모든 민족이 스스로 정치적 선택을 결정짓는 국제법상의 하나의 확고한 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그 정신은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 강대국의 정치적 군사적 힘 앞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존재하는 사례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1차 대전 끝날 무렵 미국이 모든 나라를 앞섰고, 세계의 혼란을 건지려는 것처럼 보였다. 우드로 윌슨은 레닌에 맞서 개혁주의적 호소를 하였다. 민족 자결주의는 레닌에 대한 반격이었다. 윌슨의 미국의 국제연맹가입을 의회가 거부하고 레닌의 국제주의도 실패한다. 국제 정세는 오히려 복고주의적인 성향을 나타내었다.
 
애국법*: 미국의 법. 일반 시민 통신기록의 대량 도감청을 허용하는 애국법 효력이 201561일 만료됐다. 그 대체 법안으로 자유법이 이틀 뒤 통과됐다. 자유법이 시행되면, NSA의 대테러 첩보활동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시민의 통신기록은 원칙적으로 통신회사만 보유하고, 정보기관은 집단이 아닌 개별 통신기록에 대해서만 법원 영장을 발부 받아 접근. NSA9.11 테러 후 도입된 애국법 215를 토대로 미국 시민 수백만 명의 통신기록을 한꺼번에 수집해 5년간 보관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또 휴대폰을 자주 바꾸며 이동하는 테러 용의자도 법원에서 영장을 발급받지 않고 임의로 감청해오기도 했다.
 
미국자유법은 그러나 이동장비를 이용해 움직이는 테러 용의자를 추적도청하거나, ‘외로운 늑대로 불리는 자생적 테러 용의자에 대한 감시추적을 허용하는 애국법 조항은 그대로 유지했다.
 
상원 표결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자유법이 미국 시민의 자유권과 국가 안보를 동시에 지켜줄 것이라며 법안에 바로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권을 위해 도감청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자유법이 애국법을 대체하더라도 국가 안보의 허점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자유법은 하원에서는 민주공화당의 합의를 거쳐 일찌감치 통과됐으나 상원에서는 애국법 원안 연장을 고수한 공화당 지도부의 반대로 난항을 겪어왔다. 그러나 랜드 폴 상원의원의 예상치 못한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로 애국법 215조 효력이 시한 종료로 정지되면서 상황이 반전했다. 정보 당국의 활동이 중단되면서 테러 위협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하원 지도부가 미국자유법 원안 통과를 강력하게 요구함에 따라 상원 지도부도 이날 원안 그대로 표결 처리했다.
 
이날 법안 통과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에 미국자유법안의 처리를 압박해온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모처럼 귀중한 정치적 승리로 평가된다. 2013NS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이 기관의 무차별 도감청 실태가 드러난 직후, 오바마 행정부가 민주당과 함께 주도적으로 자유법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에 맞서 미치 매코널(켄터키) 원내대표를 비롯한 공화당 상원 지도부는 자유법안이 NSA의 기능을 위축시켜 국가안보를 해친다며 애국법 연장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법이 없으면 공인된 외국 테러 조직과 연계돼 있지 않은 자생적 테러조직에 대한 감시능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 이민자나 이슬람계엔 가혹. 기본권 침해 등 위헌 소지도 있다.
 
 
테러의 정의: 특정 집단의 목적을 위해서 군중들에게 가해지는 위협, 공포, 약탈, 살인 등 다양한 폭력을 동반한 행위.
 
태초에 테러가 있었다. 테러는 질서를 유지하느냐 파괴하느냐의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어보인다. 질서와 무질서, 유지와 파괴, 유지하려는 자와 파괴하려는 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에 테러라는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 테러는 양면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 문명은 자연이라는 카오스 위에 건설된 것이며 이 과정에 포함된 조직적 폭력 없이는 그 결과를 한탄하는 현재의 생태주의 전사들 역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테러는 인류 문명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명을 위한 파괴와 정복이라는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그런 측면이 있었다. 창조와 파괴, 생명과 죽음, 긍정과 부정이 늘 함께 한다. 어느 한 면만이 존재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테러는 양면적이면서 모순적인 성질을 지닌 것이다.
 
법의 제정자가 그것의 위반자이기도 하다. 법치제 자체가 최초의 정복과 혁명, 침략과 전복을 통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국가와 권력의 양면성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들 역시 폭력적인 테러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성스러운 테러의 저자 이글턴에 따르면 문명. 국가. 권력. 자본주의는 파괴와 건설의 양면성을 지닌 테러의 산물이며, 테러를 통해 유지된다는 이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테러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테러를 어떻게 다루든 혹은 테러를 어떻게 이용하든 문명 속에 나름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 테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경외심과 공포, 조심성이 필요하다. 테러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우선 그것의 양가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sacer’라는 단어는 축복과 저주, 성과 속 모두를 의미한다.
창조적인 테러와 파괴적인 테러, 생명을 부여하는 테러와 죽음을 불러오는 테러가 동시에 존재한다. 신성한 것은 위험한 존재로서 유리 상자보다는 우리에 가둬져야 할 무엇이었다.
 
하나의 과잉(아나키)이 또 다른 과잉(독재)를 낳는다.
 
나쁜자유. 자유.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자살테러는 조용히 혼자서 목숨을 버리는 자살과는 다르다. 테러에는 의도가 있다. 자살테러의 의도는 죽는 것이 아니라 죽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것이고 대체로 그 의도는 부당한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살기 위한 것이다. 어쨌든 대체로 그 의도는 자유로운 삶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자살하는 것도 자유이고 자살하도록 만드는 것도 자유이고 그것에 맞서 자살테러를 하는 것도 자유이고 자유로운 삶을 위한 것이다.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가 좋은 자유일까. 이글턴은 절대 자유를 구속하려는 것은 바람을 동아줄로 묶어두려는 시도와 같아서 만약 묶인다면 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헤겔은 절대자유라는 파괴적 자유에 상응하는 것은 일종의 공허와 무, 한계를 가진 모든 실정적 존재들의 잠재적 욕망 내지 환상이라서 자신의 세계를 폐허로 만드는 이런 종류의 자유는 결국 자기 자신 역시 파괴하고 말 것이고 그래서 절대자유는 나쁘다고 봤다.
 
이글턴은 어떠한 경계도 인정하지 않으며 완전하고 절대적인 것을 추구함으로써 결국 파괴를 통해 공허와 무”, “순수하고 맹목적인 부정상태에 이르게 되는 나쁜자유인 절대자유주의자의 예로 근본주의자, 허무주의자를 언급한다. 이글턴이 탈레반 출신이든 텍사스 출신이든 근본주의자와 허무주의자를 나쁜 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이유는 그들이 1원칙에 근거하지 않은 것들을 거부하고 배제한다는 것이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파괴적이라는 것.
 
근본주의자들에게는 무질서와 절대 진리 양자만이 존재한다그들에게 질서가 아닌 것은 무질서일 뿐이며, “절대진리가 아닌 것은 진리가 아닌 것이다. 이글턴이 보기에 이들의 문제점은 자신들 기준에 부족한 것은 무엇이든 무질서로 명명하는 자기만족적 명제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정부상태와 절대주의는 동전의 앞뒷면에 불과하다
자살테러범 역시 비참한 삶보다 죽음이 낫다고 주장하며,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적이 그들에게 늘 가해왔던 바로 그 폭력을 가시화한다. 해서 그들의 죽음은 자신의 존재 상황에 대한 하나의 해결인 동시에 그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존재의 무화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는 더 커다란 무언가가 되기를 기도한다. 또한 다른 비극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자신의 죽음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의 희생이 동반되는지 개의치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의 손에 굴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신을 (살해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그는 찰나 동안이나마 자유로운 주체의 지위를 향유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상처도 불안도 모르는 무소불위의 존재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 삶다운 삶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이글턴은 말했다.
 
절대자유를 추구하는 이들의 자유가 나쁜자유였던 이유는 자유를 구속하는 질서의 내용을 문제 삼으면서 그 내용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유로워지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질서를 이루기 위해 질서자체를 거부함으로써 양보와 타협에 이르지 못하고 자신만 아니라 타자를 파괴하게 되는 파괴성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제거해야 할 존재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비존재는 파괴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에는 언제나 또 다른 유대인과 이슬람인, 동성애자 및 여성들,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비-인간들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지옥의 영원한 지속이란 바로 이런 상황을 지시하는 것일 뿐... 다시 말해 파괴함으로써 살아 있다고 느끼는 악에 의해서 영원히 지속되는 지옥이 현실인 것. 해서 지옥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희생은 불가피한 것.
 
파괴함으로써만 살아 있다고 느끼는 에 의해 영원히 지속되는 지옥이 현실이다. 해서 지옥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다. 순교자들은 함께 살기위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현실을 지옥으로 만드는 악에 대응한다.
 
현실에는 여러 형태의 자유의지를 가진 선과 악이 존재한다. 악이 없으면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악은 선을 파괴함으로써만 존재한다. 더 나아가 악은 파괴할 선을 필요로 한다. 악이 선을 만들어 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글턴은 희생양을 무고한 범법자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폭력이 개인적 잘못이 아니라 일반적 상황으로서 구조적으로 그 안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들 개신으로서는 무구한 존재지만 커다란 착취구조의 악취가 그들에게 선명하게 배여 있다는 점에서 무구한 범법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박탈당한 자들의 상징으로서 희생양은 이 왜곡된 상황 자체의 죄를 자신 안에 각인하고 있는 범법자가 된다.
 
 

2015년 12월 7일 월요일

디지털 미디어 시대 뉴스의 진화 - 두이린투

"저널리즘은 이제 뉴스의 성격만 띠어서는 안 된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27/2015112702962.html


  뉴스는 이제 할리우드 콘텐츠, 각종 엔터테이닝 요소들과 경쟁해야 한다. 전쟁·분쟁 탐사보도 매체 바이스 미디어를 예로 들었다.

  미국 저널리즘은 위기에서 탈출하는 단계다. 2005~2014년 미국 언론 종사자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위기를 겪으며 저널리즘 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과거 저널리즘은 신문과 방송 등 한정된 방법으로만 구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이폰의 스냅챕 앱을 가리키며) 이것이 바로 저널리즘이다. 여기 보듯이 스냅챕을 통해 뉴스를 접할 수 있다. 많은 일자리가 사라진 만큼 새로운 공간과 일자리가 생겨났다. 앞으로 더 많이 생길 것이다. 

TV 대신 페이스북, 트위터로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 비디오 게임에서도 뉴스가 제공된다. 디지털 뉴스 스타트업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전통 미디어가 고전하고 있지만, 미디어 산업 전체를 보면 위기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위기는 미디어의 ‘비전’ 유무에 달려 있다."

*쿼츠의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는 독자에게 필요한 뉴스를 적절히 제공한다. 웹 페이지는 단신, 추천 기사, 인기 기사, 이슈 크게 네 가지 섹션으로만 구성된다. 

*바이스 미디어

미디어 기업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 

2015년 12월 2일 수요일

임금 노동과 자본 - 맑스

  고전 경제학은 어떤 상품의 가치가 그 것에 들어있는, 그것의 생산에 요구되는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예컨대 노동자가 노동을 하면 6마르크가 생긴다. 이 가운데 3마르크는 자본가가, 3마르크는 노동자가 챙긴다. 노동자의 노동으로 2개의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다.

  맑스는 그의 노동이 실제로 시작되자마자 그것은 이미 그에게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더 이상 그에 의해 판매될 수 없다고 말한다. 노동력은 아주 특수한 상품으로 그것은 가치를 창출한다는, 가치의 원천이 된다는 툭수한 속성과 힘을 가지고 있다. 적절히 다루면 그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의 원천이 된다는 속성 또한 가지고 있다.

  자본가들은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이 지닌 특징은 아래와 같다. 자본가들의 전투는 노동자 군대의 징집을 통해서가 아니라 퇴역을 통해서 승리를 거둔다. 사령관인 자본가들은 누가 가장 많은 산업 병사들을 떠나게 할 수 있을까를 놓고 고심하며 가장 많이 떠나게 한 자본가가 승리한다.

  자본이 급속히 성장하면,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급속히 성장하며, 다시 말해 노동자 계급을 위한 고용수단, 생산수단은 더욱 감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급속한 성장이 임금 노동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인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자본주의는 완전한 모순 덩어리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속하지 않는다. 자신의 노동력을 응당 바라는 기준에 못 미치게 지불하는 자본가에게서는 떠나면 그만이다. 그런데 자본가 계급에는 속한다. a자본가에게서 떠나도 b자본가 아래 속해야 하는 것이 노동자의 숙명이다. 단순 노동력의 생산 비용은 노동자의 생존 비용과 번식비용을 더한 값이다. 이는 임금의 최소치다.

  생산적 자본이 성장하면, 노동에 대한 수요가 성장한다. 노동의 가격, 즉 임금이 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생산적 자본의 성장은 기술 혁신을 비롯한 노동력의 소외를 전제로 가능하다.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퇴역시키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떼 지어 부유한다.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서 자연을 소외시키고, 그 자신을 즉 그의 고유한 능동적 기능을 소외시켰다. 맑스의 현실 비판은 소외의 극복에서 시작됐다. 노동자가 새로 생산한 가치 가운데 일부는 임금으로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자본가에게 돌아간다. 맑스는 훗날 노동자들이 생산했으나 임금으로 지불하지 않은 가치를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어슐러 케이 르 귄

한 아이가 있다. 불행한 아이다. 말을 걸면 도시 하나가 불행해진다. 시민들은 이 아이를 보러는 간다. 그러나 절대 말을 걸지 않는다. 비참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낀다. 이 무력감을 인정하면서 시민들은 겸손해졌다. 한 아이의 불행이 있어야 유지되는 아름다움과 행복을 차마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은 이 도시를 떠났다. 

산재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는 같은 해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의 111배다. 파업보다 무서운 게 산재다. 

예방해야 경제가 산다고 말한다. 비용 많이 드는 산재는 그냥 둬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가 지칠 때까지 회사는 버틸 돈이 있다. 영업비밀 운운하면서 버티는 이유가 있는 거다. 

너는 왜 다 알지도 못하면서 나대고 그러냐는 말이 무서웠다. 그래서 알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도무지 알아지지가 않는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항상 다짐했다. 그러나 이젠 나대냐는 말이 두렵지가 않다. 이에 맞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충고는 고맙지만, 모든 걸 다 알 때까지 기다리면 아무 것도 못해. 그럼 사람들은 다 죽고 세상은 정말 이상해질 거야. 내가 지금 아는 선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면서 살 거야. 그게 옳아. 

종교는 필요악인가

종교는 필요악인가!

나는 진리라는 것은 당위성을 갖기에 진리가 아니라...그저 존재하기에 진리라 생각한다.  현생인류와 공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및 그 이전 인종들의 유적에선 종교행위와 관련한 어떤 흔적도 발견치 못했으며 현생인류만이 종교행위를 하여온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왜 현생인류는 종교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알수 없다. 상상력이 뛰어나선지 유전되는 지배논리와 이에 길들여진 탓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생인류는 분명 종교와 공존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의 당위성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사회적 존재기에 자신의 선택에 상관없이 종교로부터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아가며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한 정신적 안식처를 얻거나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에 가치기준이며 인간의 내면에 정신적 지주나 안식처에 대한 본질적욕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왜 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란 존재의 태생이 그러함으로 이를 옳다 그르다 말하는 것은 개의 다리가 네 개인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처럼 의미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원래 인간은 그러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밥이 있어야 생존할수 있듯이 존재가치의 의미성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어야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이는 인간만의 독특한 욕구라 생각되며 어떤식으로든 충족시켜가며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특정한 존재가치에 대한 의미성이 배타성, 폭력성 이기성에 의존할 때 이다. 의미성에 대한 욕구는 선악을 가리지않고 자신을 충족시켜준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을 때 도둑질한 음식이라해서 맛이 없거나 포만감을 못주는 것이 아니듯이 의미성에 대한 욕구 역시 무엇이 되었든 채워지기만 하면 충족감을 준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미성을 충족시키려는 행위는 정신적 강도질이다. 그가 신을 부르든 진리를 외치든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 의미성에 대한 욕구가 비록 충족될지라도 이러한 포만감은  강도들의 만찬에 불과하다.
 
그것은 단지 정신적 욕구충족행위다. 전혀 거룩하지도 선하지도 핞은 욕정의 배설물을 토해내는 과정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훔쳐야만 도둑은 아닌 것이다. 자신의 정신적 만족을 위해 타인의 존가치를 깍아 내리고 폄하한다면 이는 분명 탐욕이며 추잡함이다.
 
모든 인간은 왜 인지는 몰라도 "존재에 대한 의미성"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다. 본질적으로 존재되는 욕망이라면 충족되어져야 하지만 타인의 존재가치를 뭉개어 취득되어선 안된다.
 
'자신이 진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한낱 욕구충족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http://blog.hani.co.kr/mokisesang/26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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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악인가 선인가 그도 아니면 필요악인가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를 통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다윈주의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아브라함의 종교로 불리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에 대한 종교비판을 중심으로 <The God Delusion>을 출판하여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국내에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책으로, 당시 샘물교회 사건으로 불렸던 피랍사건과 출판 시기가 일치한 덕에 더 큰 관심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도킨스는 이 책을 통해 종교는 무익할 뿐 아니라 유해한 망상으로 폐기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하면서 ‘신은 없다. 모든 종교는 틀렸다’라고 단정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근본주의 종교인들에게는 엄청난 반발과 함께 마치 악의 한 축과 같은 파장을 일으켰고, 무신론자들에게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책으로 찬반양론이 뜨거웠던 만큼 이후 이에 대한 비판(?) 서적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만들어진 신>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쓰인 수많은 책들 가운데 근본주의 기독교 입장을 취한 저자들의 저서는 도킨스가 과학자로서 종교학(신학)을 무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학(종교학)자로서 과학을 무시함으로 인해 도킨스를 비판하는 그 비판과 동일한 오류를 각도만 살짝 돌린 채 범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합니다.
이러한 책들은 근본주의 종교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입장을 강력하게 잘 드러내 반갑고 좋은 책으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비종교인들에게는 도킨스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으며 역시나 종교는 ‘다수의 망상에 불과하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도킨스는 인류사를 통해 나타난 미신적 요소들의 불합리성과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의 작용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전쟁의 옹호자 역할을 한 종교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그가 무신론자라는 사실을 떠나 역사적 사실로 종교인들이 머리 숙여 사과해야할, 기독교언어로 말하자면 회개해야할 분명한 점입니다. 이러한 사과 없이 도킨스의 비판에 대해 재 비판 하는 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선언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염려에도 불구하고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을 통해 아브라함의 종교, 그 가운데도 특히 근본주의 기독교에 대한 강한 비판에 대해서 인류사, 종교사, 과학사를 포괄하면서 과학과 신학 어느 한편에 서거나, 어느 한편을 무시하지 않고 신학과 과학의 만남을 통해 우리들의 삶이, 우리들의 신앙(종교)가 얼마나 풍성해 질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책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소개할 세권의 책은 도킨스가 지적한 종교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도킨스가 신(종교)학을 무시함으로 인해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이 무엇이며 그로인해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에 대해 논할 뿐 아니라, 종교와 과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길로 안내하는 세 권의 책을 소개하려 합니다.
<신을 위한 변론 The Case For God>의 저자 카렌 암스트롱은 수녀였으나 환속하여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다시 종교인이 된 이력을 지니고 있고,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의 저자 김기석 교수는 성공회 사제로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데 과학과 신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입니다. 또한 <신을 옹호하다-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 Reason, Faith, And Revolution : Reflections On The God Debate>의 저자 테리 이글턴은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로 자랐으나 실존주의의 영향과 도미니크수도회의 영향 그리고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주의자이자 가톨릭 신자입니다. 이들은 각기 종교학자 이면서 소설가인, 신학자 이면서 과학에 관심이 많은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 이면서 가톨릭 신자인 각기 처한 독특한 입장과 인생의 여정에서 도킨스의 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신을 옹호하다>를 번역한 이가 ‘옮긴이의 글’ 제목으로 ‘종교는 사랑인 것을’이라고 했는데 이 짧은 한 마디는 위 세권의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종교인들에게 들려주는 하늘의 소리가 아닌가 합니다. 평화~

『신을 위한 변론』 카렌 암스트롱 지음 / 정준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 김기석 지음 / 동연
『신을 옹호하다』 테리 이글턴 지음 / 강주헌 옮김 / 모멘토

2015년 11월 12일 목요일

대한민국의 진보를 비판하다.(3)

  고단함이란 생산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다.

  억울함은 1차 분배과정의 문제다.

  불안함은 2차 분배과정 곧 재분배의 문제다. 

  이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은 경제적 차원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남북한의 긴장관계 탓에 고단한 병영생활을 거쳐야 하며,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감옥행이다. 이명박정권하에서 진행된 민주주의 후퇴로 '미네르바' 사건처럼 억울하게 구속되는 일도 발생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검찰과 법원에서 억울한 처우를 받는 일도 흔하며, 진보개혁세력은 보수수구언론에 의해 억울한 중상모략을 당하기 일쑤다. 

  양극화가 심하고 복지가 취약하니 치안이 불안해 아파트를 선호하고, 고급아파트에선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부자들도 불안한 것이다. 광우병 같은 일로 인해 먹을거리에 불안을 느끼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왕따나 폭력에 시달릴까 불안하기도 하다.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햇볕정책을 걷어찬 이명박정권의 비바람정책으로 인해 남북관계 역시 연평도 포격 같은 준전시사태까지 발생해 국민 전체가 불안함을 떨칠 수 없게 됐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따위의 이념 대립을 넘어서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그러나 진정한 통합이란 차이에 따른 대립을 무조건 덮어버림으로써 가능한 게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온존시키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서로의 대립지점과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고, 양립 가능한 대립과 해소해야 할 대립을 구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대립전선을 확인하는 것은 바람직한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제다. 

  공자는 정치를 하면 무얼 먼저 하겠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으며,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재벌. 친북. 종북.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의 진보를 비판한다.(2)

<장하준 비판>

  장하준 교수는 경제현실의 인과관계를 시장만능주의 또는 주주자본주의라는 개념으로 과도하게 단순화해버렸다. 시장만능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다룬 셈이다. 그러면서 사실을 자의적으로 왜곡했다. 대중들에 대한 호소력은 커지지만 그건 기만에 가까운 행태다. 모든 것을 좌파 탓으로 돌리는 한국의 한심한 수구적 보수파나,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예쩐 종속이론의 오류가 바로 이런 단순논리에 있다. 한국의 진보파들이 신자유주의 반대 타령에 몰두했던 것도 장 교수와 마찬가지 오류였다.

  장 교수는 재벌의 총수체제를 개혁하면 재벌이 주주자본주의의 화신인 외국금융자본에 넘어간다고 한다. 적화통일의 위협으로 박정희 독재체제를 옹호하던 것과 비슷한 논법이다. 재벌개혁이란 총수의 소유권을 무조건 박탈하자는 게 아니다. 총수의 부당한 그룹 지배력 부분을 해소하고, 그걸 국민연금 등 한국의 기관투자가를 통해 보완하면 된다. 그러면 재벌을 외국금융자본에 넘기지 않으면서 개혁을 수행할 수 있다.

  박정희시대의 개발독재 유산을 극복한다고 해서 시장만능주의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장 교수는 경제개혁론자들을 시장만능주의로 매도한다. 하지만 이는 박정희 식 개발독재 아니면 시장만능주의 밖에 없다고 하는 편협한 사고의 산물이다. 박정희 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복지주의적 국가의 역할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다. 금융, 노동, 환경과 관련된 국가의 규제는 과거에 비해 더욱 강화돼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하고, 기초 인프라 발전 차원에서 국가가 연구개발 투자에 나서야 할 경우도 있고, 구조조정 등을 위한 정책금융의 중요성도 사라지지 않았다.

  재벌에 경영권 세습을 인정해주되 그 댓가로 증세하자는 장교수의 제안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재벌들이 콧방귀를 뀌니 가능하지 않다. 또 부당한 경영권 세습마저 인정해 IMF 금융위기 때처럼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재벌총수 3, 4세가 기업과 나라 경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재벌을 개혁해 재벌의 부당한 사회지배력을 약화시켜, 복지국가를 위한 증세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진보를 비판한다.(1)

'자본↔노동'의 대립구도에만 주목하는 진보파는 노동자 사이의 차별이나 자본가 사이의 차별 즉 재벌과 중소기업 사이의 억압·수탈관계를 소홀히 한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더라도 민주주의 질서를 위배하지 않는 한 문제될 게 없다. 비록 틀린 꿈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남에게 꿈을 버리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 헌법에도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보장돼 있다. 더구나 사회주의의 이상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다만 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가 어떻게 작동 가능한지에 대해 논의를 심화시켜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활발한 토론을 위해선 국가보안법이 개정되거나 철폐되어야 한다.

<NL과 PD의 거듭나기>

  NL과 PD는 이제 변화된 현실에 걸맞게 거듭나야 한다. 그것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재구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NL과 PD의 비합리적 부분은 과감히 버리되 합리적 핵심은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NL 특히 주사파 NL의 비합리적 부분이란, 북의 항일 무장투쟁 역사에 너무나 감동해서 분별력을 잃고 오늘날 북한체제의 시대착오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PD의 비합리적 부분이란 오늘날 사회주의 혁병의 비현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NL의 합리성이란 민족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한민족과 미국의 관계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주성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PD의 합리적 핵심은 계급과 계층 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자본주의 사회인 이상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은 필연적이다. 여기에 대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PD적 문제의식의 표출이다. 또 일터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노동자로 길러지는 양육 및 교육 과정 속의 인력, 일터에서 일시적으로 이탈한 실직자,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인력에 대해서까지 제대로 배려하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게 복지의 확대·강화다. 

  한국사회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이라는 원론적 접근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중층적인 모순구조로 신음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한편으로 자본 사이 즉 재벌과 중소·중견기업 사이,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 사이 즉 거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시아에도 심각한 모순구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성격을 겸비한 수많은 영세자영업자가 과도한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경우 고용안정성이 높으면서도 그런 점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높은 임금수준이 유지되는 현실이 사회적 위화감을 증대시킨다. PD적 문제의식의 발전이란 이런 뒤엉킨 모순에 대한 해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다. 

  급진적 사상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일제지배나 독재체제로부터 벗어난 뒤에도 과거의 사상들을 그대로 이어갔다는 점이다. 강을 건너는 데 도움을 준 뗏목이 고맙다고, 강을 건너고 나서 뗏목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짐에서 해방돼야 한다.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NL과 PD의 진보적 사상에는 계승할 부분도 있다. 민족문제와 계급·계층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현실에 맞게 응용하되 낡은 사고틀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2015년 4월 29일 수요일

POKER FACE

감사합니다. 순교하지 않아야 살아서 시계추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구절이 와닿았습니다. Poker face를 하고 와신상담, 절치부심하는 것이 위기 상황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제는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사회학 도서를 읽었습니다. 여성주의적인 내용이 주로 담긴 책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장은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상처 받은 마음이 사유의 기본 조건이다. 상처가 클수록 더 넓고 깊은 세상과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현재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면 이무기는 흙탕물 가득한 연못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월왕 구천도 오나라왕에게 패하고 3년간 오왕구차의 하인이 되는 상처를 입지 않았더라면 월왕으로 만족하고 여생을 보냈을 것입니다.

인류잔혹사의 원인, 인간의 상품화에 있다.


연락이 없다.



연락이 없다. 아무래도 떨어진 것 같다.
그렇다면 자체적으로 하겠다.
스브스은 1990년 11월 14일 창립했고 1991년 3월 20일 개국했다.
스스브는 1989년 12월 25일 태어났고 2015년 4월 30일 블로그 뉴스를 시작한다.

SSB(Sung-Bae, Son / Son's Social Broadcasting)
일명 스스브, 지금 시작합니다.

2015년 4월 26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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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폴라니

시장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전통적인 경제학을 비판하며 역사적 고찰을 통해 19~20세기 전체주의, 전쟁, 기아, 폭력 같은 인류 잔혹사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

고심한 끝에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 인간ㆍ자연ㆍ토지의 상품화에 있다고 봤다.
시장이 알아서 수요와 공급을 조정한다는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관념이 유토피아, 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2015년 4월 2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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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절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특별사면에 대한 여당의 노골적인 문제제기에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지원사격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부가 당시 특별사면 관련 사실 관계를 확인해주지 않아 오히려 여당의 문제제기를 부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향신문은 당시 사실관계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지만 법무부는 함구하고 있다. 사면과 관련해서 그 경위나 검토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주요 내용

사용후 핵연료 관리
- 핵연료 저장ㆍ처리 시 미국 기술적 지원
- 해외 위탁재처리 허용
- 파이로프로세싱 전 단계 전해ㆍ환원 과정 허용

핵연료 공급
- 저농축 우라늄 생산을 위한 절차와 기준 마련
- 핵연료 안정적 공급을 위한 미국의 지원

원전수출 증진
- 핵물질, 장비, 부품 제3국 이전 포괄적 동의
- 수출입 허가 절차 간소화

주권 존증
- 평화적 핵이용 권리 재확인
- 상호 권한행사 체제로 전환


세월호 인양

선박 측면에 구멍을 내 와이어로 연결, 대형 해상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뒤 수중에서 플로팅 독 위에 선체를 올려 인양한 뒤 안전지대로 이송하는 방식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단말기 지원금 상한 폐지 주장 유통업계 시민단체 한목소리
분리공시제 도입 논란도 가열 정부는 "법안 개정ㆍ폐기 없다"

경실련 "법 시행 후 담합적 성격이 있는 보조금 상한제 탓에 소비자가 기존에 받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

참여연대 "가계통신비를 인하하려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단말기 가격을 인하하는 게 필수적" 투명한 단말기 가격 산출을 위한 분리공시제 도입이 필요하다.



국내 전세 가구의 보증금 합계 476조원
LTV DTI 공부하자.




2015년 4월 22일 수요일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도입의 외교적 득실은?

국내 안보 및 외교 현안으로 떠오른 고고도미사일방어 도입을 둘러싼 찬반 양론을 들어본다. 지난 회(8일자)에는 군사적 차원에서 사드 기술의 신뢰성과 관련한 찬반 양론을 다룬 데 이어 이번엔 이를 둘러싼 한미중 역학 관계의 분석과 외교적 쟁점에 대해 다룬다.

사드 배치 찬성 입장

2015년 4월 2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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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목 쳐달라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불신 말바꾸기 거짓해명 불능 국정총괄 권위 상실 불가보고체계 아이러니


황순원 목넘이 마을의 개 버려진 개 신둥이의 강인한 생명력과 그 새끼들을 돌보는 간난이 할아버지의 배려, 생명의 고귀함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이태준 <해방 전후>

아베 과거 담화와 같다면 낼 필요가 없다.


종로경찰서 이규환 경비과장 경질


서울, 2018년까지 300개 공유기업ㆍ단체 육성
다양한 공유로 교통주차주거난 등 도시의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서울의 비싼 임대료를 나눠 내기 위한 셰어하우스는 16곳에서 117명이 거주하고 있다. 사업을 하는 곳에 연간 10억원 정도 투입해 4840억원의 효과를 봤다는 게 서울시의 분석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독신일 때보다 세금 부담이 거의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OECD가 내놓은 2015 임금과세에서 34개 회원국 근로자의 실질 세부담(소득세+사회보험료)을 가족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 결혼해 외벌이로 자녀 둘을 키우는 근로자의 실질 세부담은 세전 소득의 19%였다.

자녀 없이 독신인 근로자(21.5%)보다 2.5%포인트 낮았다. 실질 세부담은 회사가 지출한 총임금에서 근로소득세와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료로 얼마를 떼가는지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OECD 34개 회원국 중 28개국이 출산 근로자에게 한국보다 많은 세제 혜택을 주고 있었다.


정치부패, 줄일 수 있다.

다시 정치부패다. 차떼기다 뭐다 해서 그만큼의 홍역과 대가를 치르고도 아직 정치부패는 남아 있는 모양이다. 강력한 사후처벌만으로는 부패를 막기 어렵다.

정치하는 사람은 권력을 추구한다. 베버의 이 말대로 정치는 불가피하게 권력을 다룰 수밖에 없다. 권력을 다루다 보니 그 권력을 활용해 부당한 이익을 쉽고 편하게 얻고자 하는 지대추구 행위에 유혹당하기 쉽다. 유혹에 안 넘어가야 하지만 권력을 가진 터에 유혹이 있으면 부패할 가능성은 늘 있기 마련이다.

정치인이 부패하지 않도록 사전에 제어하려면 몇 가지가 중요하다. 검찰경찰과 법원 등 사정 권력의 정상화가 필수적이다. 차별과 부패는 공생관계다. 사정권력이 공정하게 집행된다면, 즉 권력이 있다고 해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게 확실하면 정치부패는 줄어들 것이다.

정치부패는 불공정 경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권력자와의 인연에 따라 경쟁의 결과가 달라진다면 누구라도 부패할 인센티브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실력이 아니라 연고에 따라 경쟁의 성패가 달라지면 실력을 키우기보다 연고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건 당연하다. 강자가 곧 승자가 되는 강자독점, 승자가 혼자 다 먹는 승자독식은 부패의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정치부패가 줄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정치구조다. 우리 정치는 일반 선거보다는 당내 공천 중심이다. 일반 선거에선 유권자가 서로 다른 정당의 후보들을 놓고 선택권을 행사한다. 당내 공천은 지도부나 실세가 선택권을 행사한다.

인물 중심의 정치나 선거를 조장하는 제도도 문제다. 정치의 주체가 정당이

2015년 4월 20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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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기업 한복쇼 다음날 채권단 자금지원 결정

성 회장, 의원직 상실과 워크아웃 신청이 임박하자 박 대통령을 베트남 랜드마크72로 초청하는 데 주력했다. 


박 정부 들어 교육투자 확 줄었다

교육교부금 증가율 0.3% GDP 증가율의 10% 못 미쳐
박 정부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증가율이 10분의 1도 안되게 급락한 것으로 분서고댔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선 교부금 증가율이 GDP 증가율을 앞섰지만, 박 정부 들어 교육 투자가 한참 뒤로 밀리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 셈

"박근혜 정부의 연평균 교부금 증가율은 명목 GDP 증가율 3.8^의 10분의 1도 안되는 0.3%에 그쳤다" "GDP보다 교부금 증가율이 웃돌았던 노무현ㆍ이명박 정부와 대조적"

교육의 균형 발전을 위해 국가는 내국세의 20.27%를 지자체 교육 예산에 쓰도록 하고 있으며, 이 교부금은 교육청 예산의 70% 가량을 차지한다.

"현 정부에서 감세 정책 때문에 내국세의 20.27%로 정해져 있는 교부금 자체가 줄어 교부금 증가율이 급락했다" 교부금 자체가 줄어 교부금 증가율이 급락했다. 이명박 정부 후기부터 경제성장률 예측에서 비현실적인 낙관론으로 일관해 예결산이 맞지 않은 것도 교부금 증가율이 줄어든 이유다.

교부금은 예산보다 세수가 적으면 결산 때 반영돼 2년간의 시차가 있다. 
"영국 정부가 2014년부터 초등 1~3학년 학생들에게 국가 단위 무상급식을 시작하고, 독일에서도 2014년 모든 주에서 대학 교육이 다시 무상으로 돌아왔다" "교육의 경제성장 효과가 입증되며 세계적으로 교육 투자를 늘리는 양상인데, 한국만 교육재정을 줄이며 반대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저성과자 통상해고 길 넓힐 지침 필요" 정부 용역 드러나

해고제도의 합리적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고용노동부 "정부 차원에서 통상해고의 유형과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 개괄적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가이드라인은 법원이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문제를 판단할 때 유용한 참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경영에 중대한 지장 또는 손해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는 정도의 적격성 불량이 존재하는 경우 ▲시정을 위한 주의ㆍ지도ㆍ교육 및 적정한 배치 전환을 시행해도 개선 기미가 없는 경우

지금까지의 판례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저성과가 매우 현저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등 기업의 저성과자 해고를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고 분석. 


AIIB 57개국. 

아들아 정의다. 우리가 상실한 것이, 우리가 경제를 위해 팔아버린 것이, 그래서 우리가 이렇듯 비천한 존재가 된 것이, 아들아 정의다. 아직도 울부짖는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이 난파된 배에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이, 그리고 이제 너에제 물려주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이 정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로 기록될 것이다. 우회로는 없다. 정면으로 직시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유일한 '공통의 것'은 산업화도, 민주주의도 아니고 그 허약한 파편 위에서 겪고 있는 세월호라는 고통과 슬픔이다. 여기서 출발하는 수밖에 없다. 이 고통과 슬픔을 기억하고 해결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여기에서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곳에서 살아가려고 할 것이다. 그럴 때 역사는 비로소 이 시대를 "세월호라는 가슴아픈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섰다고 기록할 것이다. 그게 이 시대가 살 길이다. 그러니 지겹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는 세월호로 기억될 것이다.


경찰버스를 사용한 차벽 설치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이다.
시민의 통행을 원천적으로 막은 것은 행동자유권을 침해해 위헌이다. 
법령상으로도 경찰버스를 이용해 사람의 통행을 가로막거나 집회현장을 봉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경찰장비가 아닌 것이다.

버스라는 탈을 쓰고, 경찰이라는 위장을 하였을 뿐 저웁가 시민들에게 행사하는 가차없는 폭력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그것은 집회현장을 떠나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정부의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 

경찰은 질서유지라는 말을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내뱉는다. 그러면서 질서를 지키며 평화롭게 이뤄지는 시민의 집회를 짓밟는다. 하지만 이는 시민들에 대한 기만에 불과하다. 민주국가의 최대의무는 대중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교통이나 질서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원래 거리는 일상의 정치공간이다. 힘없고 서러운 장삼이사의 서민들이 가진 자들의 권력에 맞서 자신의 애환을 나누고 삶의 희망을 말하는 유일한 통로는 바로 이 공간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슬픔까지도 차벽으로 가로막고 나서는 경찰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여기엔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과 함께하며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민의 국가는 이제 이곳에 없다. 

2015년 4월 19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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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500 불티, 매출 50% 껑충


일본이 다른 나라 침략한 것은 사실. 상대국이 됐다 할 때까지 사죄해야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은 과거 다른 나라를 침략한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 나라가 됐다고 할 때가지 사죄해야 한다" 역사 인식은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사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국이 그 정도 사죄했으니 알겠다, 이제 됐다고 말할 때까지 사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2014년 신조어 키워드는 취향. 배제. 극단

국립국어원 2014년 신어 335개 선정

찍먹파와 부먹파, 개인의 취향과 선호를 나타내는 말이다. 덕밍아웃(한 분야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사람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 맥덕(맥주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 같은 말도 개인의 취향과 선호를 나타내는 단어로 신어 335개에 포함됐다.

새로 만들어 쓰는 단어는 우리 역사나 사회의 거울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는 개인의 취향과 선호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찍먹. 부먹 같은 말은 오히려 취향을 단순하게 범주화하는 것" "정말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탕수육 소스를 찍어 먹든 부어 먹든 개의치 않아야 한다" "요즘 세대는 굉장히 개성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집단에 묶이길 원한다"

표준 집단에 속하려는 욕구는 집단 외 사람에 대한 공격성으로 이어진다. '닥눈삼' '진지병자' '쿨몽둥이' 같은 신어들이 여기 해당.

닥눈삼 닥치고 눈팅 삼개월, 인터넷 게시판 문화에 적응할 때까지 지켜보기만 하라는 뜻.
진지병자, 지나치게 진지한 사람을 비판하는 단어
쿨몽둥이 쿨하거나 멋있는 척하는 사람을 때리는 방망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배제한다는 점에서 맥락이 통한다.

취향에 따라 서로를 구분짓고 공격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도 증가, 극혐오, 극호감, 개소름과 같은 단어가 2014년 신어로 등재된 센 표현들이다.


생각은 죽지 않는다. (저자 클라이브 톰슨)

소크라테스는 글쓰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머리로 기억하지 않고 종이에 적으려고만 한다면, 그리스의 웅변술 전통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소크라테스의 불찰이었다. 마주치는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인간은 비로소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 점을 간과했다.

소크라테스의 우려와 불찰은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에 대한 현대인들의 태도와 맥락상 동일하다. 이를테면 첨단 기술이 읽고 기억하는 능력을 퇴화시킨다거나, 결국에는 디지털 치매를 일으켜 생각하는 뇌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점점 대체하고 검색이 일상화되고, 스마트폰이 생활의 필수품이 되면서 우리가 갖게 되는 두려움은 소크라테스의 우려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사고 패턴을 바꾼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의 패턴이 더욱 좋은 쪽으로 바뀔 것이다. 글쓰기가 인간의 사고 능력을 향상시켰듯이, "디지털 툴로 인해 우리의 인식은 더욱 확장될 것이며, 인간은 지금보다 더 똑똑해질 것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구식 문해력을 바꾸는 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문해력을 만들어낸다. 동영상, 이미지 데이터 등 새로운 정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과거에는 대기업이나 정부에서 넉넉한 기금을 받은 일부 전문가들만이 동영상이나 데이터를 활용했지만, 이제는 보통사람들도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게 됐다. 이런 물리적 툴은 우리의 정신적 툴까지 활짝 열어줌으로써,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유형까지 정탐하게 해준다.

기계의 기억 능력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퇴화하지 않는 반면, 사람은 무언가를 요약해 보존하는 성향을 지녔고 세부적인 내용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전반적인 골격은 잘 파악하지만 작은 활자에선 맥을 못 춘다. 분산기억의 파트너인 컴퓨터 툴과의 공생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계와 사람의 협업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클라이브 톰슨은 웹과 위키피디아와 쉽게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은 창의적 인간 정신을 위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이슬람교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고독한 사막에서 천사의 계시를 받아 창건한,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종교가 아니라 당시 여러 종교의 요소를 융합하면서 만들어졌다.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 경전, 기독교 구약과 신약, 무함마드 전기, 코란 주석서 등을 대조하면서 코란에서 다른 종교들의 흔적을 찾아낸다. 로마 제국을 통해 널리 퍼져나가면서 힘을 발휘한 기독교의 유일신 관념은 이슬람교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함마드가 이끈 이슬람제국은 당시 초강대국들과의 경쟁, 기독교와 유대교라는 강력한 일신교와의 대결을 통해 탄생했다. 텅빈 사막 한가운데 있는 이교도 도시 메카에서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초자연적 아우라도 코란에서 벗겨낸다. 그럼에도 이슬람교가 인류사에 미친 대단한 역할은 변함이 없다. 각자 유일신 관념에 따라 나눠 가진 당대의 대립구도가 15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