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5일 수요일

고은 시인

“기자는 현장에서 다른 존재의 심장과 만나는 사람”

[밖에서 본 기자, 밖에서 본 언론](2)시인 고은

김성후ㆍ강진아 기자2015.02.24 23:50:53
나는 아직 글을 떠날 수가 없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인사동의 한 한정식 집 앞. 낮은 지붕들 사이로 내리는 겨울 햇살을 받으며 시인을 기다렸다. 골목거리 위아래를 번갈아가며 살피길 10여분, 중절모에 마른 체구의 노신사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 고은 시인이었다. 그윽한 두 눈은 생기가 넘쳤고, 낯빛은 미소년처럼 환했다. 인사를 나누고 한정식 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자신의 시대를 살아온 거인 같은 시인을 마주하자 가슴이 떨렸다. 매생이탕에 삶은 꼬막, 소주 한 병을 주문하고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쭈뼛거리며 꺼냈다.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투명한 정신의 시인에게 하찮은 질문이 심연의 존엄에 누가 될까 덜컥 겁이 났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는 질문에 시인은 “아직도 철이 없다. 세상을 잘 살지 못해 연륜이 없는 슬픈 존재”라며 허허허 웃었다.

올해로 등단 57년을 맞는 그의 삶의 변곡점에는 언론이 있었다. 한국전쟁의 충격으로 삶의 환멸과 허무의 늪에 빠져있던 그에게 1970년 술집 바닥에 뒹굴던 신문에서 본 전태일의 죽음은 머리를 울렸다. 그 길로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딛고 지금껏 걸어 왔다. 10여 년간 출가를 했던 그가 문단에 이름을 올린 것도 신문이 연결고리였다. 1957년 불교신문을 창간하고 초대주필이 된 그는 신문 지면을 채우기 위해 시를 써 넣었다. 이를 본 지인의 소개로 미당 서정주를 만났고,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그는 신문을 통해 세상에 인사를 건넨다. 숱하게 밀려오는 인터뷰와 원고 청탁으로 작품 집필이 어려워 꺼려지기도 하지만 ‘세상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에 응한다. 지난 1월부터는 중앙일보에 월간으로 ‘고은의 편지’를 연재하고 있다. “작품을 쓸 때는 시간을 쏟기 힘들지만 끝난 후나 휴식기 틈틈이 해요. 세상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거죠.”

시인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친필로 글을 쓴다. 펜을 들고 백지와 마주한 순간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손이 불편할 때까지 계속 친필로 쓰겠다는 그. “백지에는 영원한 매혹이 있어요. 백지에 손끝이 닿는 순간, 그것은 제 몸 전부를 대표한 거죠. 내가 살아있는 어떤 의식이나 정서, 이런 내용을 종합하는 혼이라고 할까. 정신의 조각이라고 할까. 그래서 나는 아직 글을 떠날 수가 없어요.”

고은 시인은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문명이 발전해도 늘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 가야하는 것은 기자로서 불변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강진아 기자)
▲ 고은 시인은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문명이 발전해도 늘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 가야하는 것은 기자로서 불변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강진아 기자)


70년대 기자들 울고 분노했죠
지금 우는 기자들이 있는지 모르겠어

6·25때 좌·우익 보복학살에 인간 부정 
전태일 죽음 접하고 민주화운동에 참여

이육사의 ‘광야’는 시를 알게 했고 
‘한하운 시초’는 시에 뛰어들게 했어

현장에서 사람 만나는 건 기자의 운명
나흘은 잠들어도 사흘은 깨어 있어야 

“참 눈물이 있는 삶이었지. 그때는.”
고은 시인은 오늘날 미디어에 ‘울음’이 없다고 했다. 차가운 공간에서 취재하고 차가운 액면과 언어로 기사를 쓰면서 뜨거움이, 땀 흘리는 얼굴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고 했다. “70년대만 해도 기자들이 참 많이 울었습니다. 통음(痛飮)을 하면서 술잔을 던지고 비탄에 젖거나 분노했죠. 시인도 똑같았어요. 그것은 일종의 문학 행위였죠. 낮의 직장보다 밤에 더 뜨겁게 흉금을 털어놓으며 우리는 질적으로 교감했죠. 지금은 우는 기자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식민 시대부터 독재정권 시대까지 기자 한 명 한 명의 필봉(筆鋒ㆍ붓끝)에는 지사(志士)적 풍토가 있었다. 하지만 미디어라는 개념으로 넓어진 현재 언론은 이미 탈 지사적인 의미가 됐다. 기자들은 파편화되고 개체화됐고, 언론은 기능화 됐다. 고은 시인은 “굳이 지사적인 성정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며 “지금은 지금대로 언론인의 초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계가 없던 기자와 작가는 완전히 분화됐다. 신채호(황성신문), 염상섭(동아일보ㆍ경향신문) 등 수많은 문인들은 언론을 이끌어왔다. “70~80년대까지 기자와 작가의 분명한 경계가 없었어요. 낮에는 언론인 밤에는 작가였지만, 지금은 밤낮 모두 한곳에만 있죠. 분화가 행복한 것인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자화상을 그리기에는 독자적인 영역이 확실해졌다는 점이 과거와 차이가 있죠.”

하지만 ‘현장’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았다. “기자가 현장에 가는 한 그것은 다른 존재의 ‘심장’과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문명이 발전해도 늘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 가야 하는 것은 기자로서 불변의 원칙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영원히 인간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언론의 언어도 현장에 있다. 1차적인 언론의 언어와 2차적인 시의 언어. “언론의 언어는 직접언어로 필수품처럼 중요하죠. 시의 언어는 현장에는 없지만 본질적이에요. 그래서 언론의 배후에는 반드시 시가 있어요. 최고의 기사는 아마 시적인 기사일 겁니다.”

순수시를 고집했던 시인이 세상과 마주한 계기는 신문 한 귀퉁이의 단신 기사였다. 한국전쟁 이후 허무주의에 빠진 그는 대통령의 이름을 아는 것조차 시 세계를 더럽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1970년 11월, 술에 빠져 살던 여느 날처럼 통행금지에 막혀 술집 탁자에 쪼그려 잠을 청하다 바닥에 툭 떨어졌다. 쓰린 속을 부여잡다가 김치 가닥, 담배꽁초와 뒤엉켜 있던 신문 쪼가리 하나를 주섬주섬 집어 들었다. 2~3일쯤 지난 신문이었을까. 신문 하단의 2단 짜리 기사에 유난히 눈이 사로잡혔다. 11월13일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의 죽음이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죽음을 이루고 있는 모순과 사회 현실이 폐부를 찔렀죠. 순간의 전회(轉回)였어요. 그때 안개가 걷히면서 사회와의 대면이 시작됐죠. 거리에 나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그 길로 지금까지 오게 됐죠. 어쩌면 세상이 제게 ‘너 이제부터 이런 일을 하라’고 위촉한 것 같아요.”

전태일의 죽음을 접하면서 그에게 박혀있던 죽음의 씨앗도 사라졌다. 독주를 몇 병이나 마셔도 쉬이 잠들지 못했던 불면증도 깨끗이 없어졌다. 그는 “현실로 나오면서 육체는 물론 심리적 결함까지 없어졌다”며 “지금은 시인이 이렇게 잠자도 되나 싶을 정도로 돼지처럼 잡니다”라고 웃었다.

1973년 6월9일 한국일보 창간기념호에는 고은 시인(가운데)의 1일 취재기자 체험기인 ‘지금도 記者는 뛰고 있다’가 실렸다. 고은 시인은 6월5일 밤새 서울 시내 경찰서를 돌았고 “밤의 인간상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통금시간에 야근을 하며 사건을 취재하는 모습. (사진=한국일보 DB콘텐츠부 자료제공)
▲ 1973년 6월9일 한국일보 창간기념호에는 고은 시인(가운데)의 1일 취재기자 체험기인 ‘지금도 記者는 뛰고 있다’가 실렸다. 고은 시인은 6월5일 밤새 서울 시내 경찰서를 돌았고 “밤의 인간상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통금시간에 야근을 하며 사건을 취재하는 모습. (사진=한국일보 DB콘텐츠부 자료제공)
세상 밖으로 나온 그는 1974년 11월18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출범을 주도했다. 당시 엄혹했던 독재정권 시절 ‘자유’는 시대의 절실함이었다. 같은 해 언론인들은 10월24일 자유언론실천을 선언했고 이듬해 동아일보ㆍ조선일보 해직 사태로 이어졌다. 10월23일 시인의 일기에는 시대의 통탄이 적혀 있다. ‘나 같은 순수 시인을 참여 시인으로 만들 것인가. 이 군인의 시대야, 이 총검의 시대야, 이 탱크의 시대야, 이 색안경의 시대야. (책 ‘바람의 사상’)’ “그때는 자유가 최고의 명제였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지금은 소박한 원천 같은 것이지만 자유라는 말이 참 중요했어요.”

‘10·24 자유언론 실천선언’으로 동아일보 기자들이 거리로 쫓겨났을 때 문인들은 함께였다. 12·13대 기자협회장을 지낸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지난해 말 한겨레 특별기고에서 ‘40년만의 뒤늦은 감사’를 전했다. “1975년 3월 기자들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동료 언론인만이 아니라 문인, 종교인, 변호인 등에게 모금을 부탁했다. 그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주도한 고은 선생이 약정한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숨차게 달려와, 두툼한 봉투를 내밀며 씩 웃던 말 없는 웃음이었다. 해냈다는 안도감이 스며있는 겸손한 미소는 그분을 뵐 때마다 소박한 얼굴에 언제나 따스하게 겹쳐 다가온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한국사회를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시인은 분노했다. 독재 정권 시절엔 정치권력이라는 단일성과의 대결이었지만 영혼이 없는 자본의 폭력과 야만에 대응하기가 참 어렵다. “착잡하죠. 우리 아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횡포, 인간을 처참하게 말살시킨 외세 횡학과 다를 바가 없어요. 누군가는 바다의 교통사고로 치부하는데 정말 분노합니다. 또 누군가는 더 중요한 일이 많다며 빨리 지워버리고 싶어 하죠. 그것은 정치문화로서의 ‘자폐’에요. 절대 쉽게 지워질 수 없습니다. 상당 기간 우리사회의 모순이 표출된 사건이죠.” 그는 ‘이름짓지 못한 시’로 동료 시인들과 추모시집을 발간했다.

고은은 이육사를 통해 시를 알았고, 한하운은 그를 시에 뛰어들게 했다. 1947년 중학교 1학년 때 우리말로 된 국어교과서에서 이육사의 시 ‘광야’를 만났다. 시골의 어린 소년에게는 충격이었다. “광야! 어린아이가 본 적 없는 세계였죠. 광야라는 대공간,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의 대시간, 초인이라는 거대한 인간, 더구나 백마 타고 오는 대인간 아닌가. 대공간·대시간·대인간이 한 편의 시에 등장하고 있어요. 어린아이가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바다 앞에 무방비로 서 있는 상태였죠. 시가 무서웠어요.”

그랬던 시는 그를 홀리듯 운명처럼 다가왔다. 1949년 중학교 3학년 시절, 10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가에 무언가 빛나고 있었다. 깜깜한 밤길 호기심 어린 소년은 다가갔고, 매끄러운 표지의 책 한 권이 떨어져 있었다. “시집 ‘한하운 시초’였죠. 그땐 누군가 제게 주려고 놓고 갔다고 생각했어요. 저녁밥이야 먹는 둥 마는 둥이었고, 밤새 책보도 풀지 않은 채 읽고 또 읽었죠. ‘가도 가도 황톳길’은 거의 외우다시피 했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던 소년은 새벽에 ‘한하운처럼 문둥병자가 될 것. 한하운처럼 떠도는 시인이 될 것’이라고 맹세했다.

그러나 시대는 소년의 맹세를 깨버렸다. 몇 개월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그의 삶은 죽음의 장막으로 가리어졌다. 17살, 사춘기 시절 집도 마을도 쑥대밭이 됐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참혹한 보복학살을 목도하며 인간을 부정했고 허무함이 엄습했다. 수많은 시체를 묻고 온 날에는 빨래비누로 사정없이 온몸을 씻어냈지만 송장 냄새는 떠나질 않았다. 그때부터 죽음은 늘 그에게 들러붙어 있었다. 수차례 자살을 기도했고 미수에 그쳤다.

“지금도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의식이 있어요. 남북의 우리세대 절반 가까이가 죽었죠. 우리는 절반짜리에요. 죽은 자들이 살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는 사명이 있죠.”

지난 11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고은 시인은 자신의 시의 근원이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폐허와 ‘애도’라고 말했다. (강진아 기자)
▲ 지난 11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고은 시인은 자신의 시의 근원이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폐허와 ‘애도’라고 말했다. (강진아 기자)


전쟁으로 찢긴 상처는 시의 근원이 됐다. 어느 시나 누구의 영향을 받은 적은 없었다. 스스로를 시의 ‘고아’라는 그는 오로지 세상의 영향을 받았다. 내면으로 깊숙이 침투한 ‘폐허’에서 시가 시작됐고 ‘애도’로 완성됐다. 1986년~2010년 24년간 5600여명에 달하는 인간상을 그린 연작시 ‘만인보’도 지나간 이들에 대한 애도였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구속된 그는 창문 하나 없던 육군교도소 특별감방에서 만인보를 구상했다. “현재가 박탈되면서 기억 속 어린 시절이 현재를 감당하게 했죠.”

여기에 유미주의가 더해졌다. 황혼의 낙조, 밤하늘의 별빛과 꽉 찬 달빛, 자연의 아름다움에 그는 매혹됐다. “달빛이 비치면 황홀함에 울음을 그치지 못했어요.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곡했죠. 슬픈 게 아니라 기뻐서… 그렇게 눈물이 났어요.”

시인이 아니었다면 무엇을 했을까. “모르겠다”면서도 살며시 입을 뗐다. “무덤을 참 좋아했어요. 아마도 장례 지내는 이가 되지 않았을까요.” 고향 군산부터 통영, 제주도 어디든 공동묘지는 그의 ‘단골집’이었다. “제주도 사라봉의 무덤 수를 다 알고 있었어요. 새 무덤이 오면 톡톡 다독거려주고 무덤 옆에 누워 잤죠. 그냥 편안해요. 사람들이 저보고 귀신 들렸다고 했었죠.”

등단은 필연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상처받은 17살의 소년은 자석에 이끌리듯 무작정 한 스님을 따라나섰다. 그렇게 10여년을 불교에 귀의했다. 1957년 불교신문을 창간하고 초대 주필이 된 그는 신문을 제작하면서 빈 공간을 채우려 시를 몇 자 넣었고, 당시 효봉 스님을 자주 찾아오던 교통부 국장에 이끌려 서정주 시인을 만났다. 서정주의 추천으로 그는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 등 3편을 발표했다. 또 같은 해 한 친구가 신인을 발굴한다는 기사를 읽고 한국시인협회에 그의 시를 보냈고, ‘폐결핵’이 기관지에 실렸다. 당시 시인협회 회장은 조지훈이었다.

통일과 평화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고은 시인은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남북으로 흩어진 우리말을 결집시키려는 노력이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몇 년간 어려움을 겪었지만 분단 70년을 맞은 올해 통일을 염원하면서 사업 추진을 기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국어가 금지된 식민 시대를 살았고 우리말을 찾아 시를 쓰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하고 있어요. 남북과 각 나라로 쪼개진 우리말의 짝을 맞추는 겁니다. 통일의 한 기반으로 통일언어의 원천이 될 수 있죠.”

술을 사랑하는 시인 고은. 그의 시 ‘술’의 한 구절엔 모든 것이 담겼다. ‘나 이 세상에 깨닫기 위해 오지 않았다. 취하기 위해 왔다. 취한 것만이 살아있다. 오, 내 이웃인 취한 은하수여.’ (강진아 기자)
▲ 술을 사랑하는 시인 고은. 그의 시 ‘술’의 한 구절엔 모든 것이 담겼다. ‘나 이 세상에 깨닫기 위해 오지 않았다. 취하기 위해 왔다. 취한 것만이 살아있다. 오, 내 이웃인 취한 은하수여.’ (강진아 기자)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기자들에게 “한잔 하자”며 술병을 들었다. 다음 약속이 있어 목만 축이던 시인은 옛 생각에 “열이 난다”며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짧은 시간이지만 쌓인 정에 쉽게 돌아서지 못했다. “얼굴 보니 여기가 더 좋아. 만나면 정 들잖아. 미치는 거지.(웃음)”

애주가로 소문난 그에게 술에 대해 물었다. “모든 세상에 대해서는 겸손해야 하는데 술에 관한 한 참 오만하죠. 얘(술)가 날 참 좋아해요. 자타를 구분하고 마시면 앙갚음할 텐데 뒤를 생각 안하고 마시니 좋아하지.” 고은 시인의 시 ‘술’의 한 구절엔 모든 것이 담겼다. ‘나 이 세상에 깨닫기 위해 오지 않았다. 취하기 위해 왔다. 취한 것만이 살아있다. 오, 내 이웃인 취한 은하수여.’

술만큼 그를 유혹하는 것은 책이다. 서재에는 수만 권의 책이 빼곡히 차 있다. 서점을 직접 찾고 늘 신간을 만난다. 이날도 서점에 들러 책 7권을 부쳤다고 했다. 책을 마주할 때면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는 설렘”에 가득 찬다. “참 좋은 책이 많아요. 난 책이 술이에요. 책에 취하지. (술병을 가리키며) 이것보다 책이 더 좋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가끔 (술과) 헷갈리죠.”

기자들에게 해주고픈 말을 물었다. “나흘은 잠들어도 좋은데 사흘은 깨어 있어라. 그냥 그렇게만 말하소.” 시인은 더 이상 무엇을 말하느냐는 표정이었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강진아 기자 saintse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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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와 호형호제, 천관우·김병익과 술잔 나눠■고은 시인의 친구, 언론인들

고은 시인은 기자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을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리영희·천관우·최일남·선우휘·김병익·김중배·남재희 등과 술잔을 기울이며 1970~80년대 엄혹했던 시절에 맞서고 견뎠다.

“최일남은 훌륭한 작가이면서 품위를 잘 지키는 훌륭한 언론인이죠. 요만한 부정도 없을 거에요. 아주 무섭지. 그렇게 자신을 억제하고 공공성을 지속시키는 참 위대한 사람이죠.” 고은 시인은 기자협회 사무실에서 천관우 선생을 만났다. “맥주잔에 소주를 넘치게 부어 캭 소리가 나게 먹었죠. 통음을 하다가 싸움도 하고 부둥켜안기도 했죠. 돌이켜보면 귀한 황금기였죠. 그이는 세상에 대한 예절이 아주 돈독해서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제게도 꼭 선생으로 호칭해줬어요. 김병익·선우휘와도 참 술 많이 먹었죠.”

고 리영희 선생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복역하다 풀려나면서 다시 술을 입에 댔어요. 그때 리영희 선생과 보문동 어느 술집을 갔었죠. 통행금지 시간이 다 돼가는데 술집 주인이 안 가도 좋다고 하는 거야. 특혜였지. 아마도 우리가 노는 걸 듣고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아. 다음날 아침에 깨보니까 내가 동생이 돼 있더라고. 리 선생이 나한테 ‘적은이 속 괜찮어?’라고 하기에 무슨 소린가 했지. 알고 보니까 평안도 말로 ‘적은이’가 동생이란 뜻이야. 취중에 형제를 결의한 거지. 그 뒤로 완전히 형제로 굳어졌죠.”

고은 시인은 남재희 선생과 인연도 풀어놨다. “술 많이 얻어 먹었어. 조선일보 논설위원이니까 돈 있고 나는 땡전 한 푼 없으니까…. 그처럼 공부하는 언론인이 지금은 없죠. 글도 좋아요. 심정이 있는 글을 쓰잖아요. 울리잖아요. 담백하고 떠벌이지 않고….” 그 시절, 기자들을 회상하는 고은 시인의 얼굴에 발그스레한 홍조가 떠올랐다.

김성후·강진아 기자

2015년 1월 1일 목요일

CMS

콘텐츠 관리의 해결책, CMS(콘텐츠 관리 시스템)

WCMS란?


WCMS(Web Content Management System, 웹 콘텐츠 관리 시스템)란 말 그대로 웹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관리해주는 솔루션을 말합니다. 비 전문가라도 웹 접근성을 준수한 콘텐츠의 생성 편집을 손쉽게 수행 할 수 있으며 하위 관리자 권한 제어 및 메뉴 제어, 다양한 게시판 제공 및 팝업 게재 등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체계적인 콘텐츠 관리가 가능 하도록 사용자 편의 기능을 강화한 체계적인 콘텐츠 관리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효율적인 관리에 최적화 된 방안을 제시합니다.

비 전문가라도 웹접근성을 준수한 콘텐츠의 생성 편집을 손쉽게 수행 할 수있으며 하위 관리자 권한 제어 및 메뉴 제어, 다양한 게시판 제공 및 팝업 게재 등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의 효율적 운영 및 관리 효율성 증대로 웹사이트 관리에 필요한 리소스를 줄이고 서비스 안정성을 강화 할 수 있습니다.


본 칼럼은 “커빙(cubbying)” 서비스를 운영 중인 (주)내일비의 임준원 대표가 연재하는 칼럼으로 콘텐츠와 콘텐츠 관리에 관한 이야기를 4주간에 걸쳐 기고할 것입니다.

CMS(content management system)란 무엇인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데이터의 바다에 빠져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생겨난 이래로, 이 고민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정보가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데이터들의 범람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 인생 들의 온라인 흔적인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를 관리하고 정제하고 쓸모 있게 만드려는 시도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졌고, 미래에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는 CMS(콘텐츠 관리 시스템)가 바로 이번 주 칼럼의 주제입니다.
multi-channel life

CMS라는 단어는 1990년대 말에 나와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주로 사용자가 글, 사진, 동영상 등의 콘텐츠를 작성, 편집, 출판 할 수 있게 하여 콘텐츠의 효율적인 관리를 돕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접근하기 쉬운 인터페이스와 효율적인 관리 및 모니터링 툴의 대한 요구는 계속되었고, 웹이 출범한 이후로 급속도로 웹 환경에서의 CMS 툴들이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단순히 읽고 보는 수준의 웹 1.0 에서 개방과 참여, 공유로 대표되는 웹 2.0 시대 이후로는 CMS 툴들이 사용자들의 요구를 대응하고, 그 기능을 갖추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현재는 대부분의 CMS가 Web CMS라는 단어와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에 더 나아가 현재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CMS가 블로그 소프트웨어 형태이기에 종종 CMS라 함은 블로그 개설 및 관리하는 웹 소프트웨어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물론 CMS는 전사적자원관리(ERP)와 같은 기업의 내부 콘텐츠 관리를 하는 시스템도 맞습니다. 웹사이트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인 것은 현재의 모습이며, 이는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홈페이지 저작도구를 비롯해 B2C용 콘텐츠관리시스템, B2B 전자상거래에 필요한 전자 카탈로그 관리시스템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 되었고, 최근 선보이는 CMS는 전사적자원관리(ERP)를 비롯해 다양한 정보시스템과 연동되면서 웹서비스에 필요한 소스코드까지 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국내 CMS 시장은 인터넷 콘텐츠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전자상거래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1]


CMS의 변화 및 적용
초기의 CMS는 기업에서 서로 다른 부서 간에(inter-office) 네트웍 또는 웹을 통해서 컨텐츠를 공동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공통 양식(non-proprietary form)으로 만들어진 문서들의 저장소(archival)로 CMS를 활용했는데 서버를 기반으로 하는  소프트웨어로 운영되었으므로 이런 문서들을 쉽게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점차 웹의 중요성이 커지고 웹 콘텐츠나 웹 사이트 관리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웹 콘텐츠 관리 시스템(Web Content Management System)’이 도입되었고  WCMS에는 웹 관련 작업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여러 가지 기능들이 추가 되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CMS는 WCMS를 포함하는 상위 개념이지만 최근에는 WCMS의 대체 용어로 많이 사용됩니다.
기업들도 자사 홈페이지를 CMS를 활용한 블로그 형식으로 운영하여, 고객과 편하게 소통하고 고객의 피드백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자사 서비스에 대해 친근하게 설명하는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2]
yahoo official blog
<야후에서 운영하는 워드프레스 블로그형 홈페이지 http://ycorpblog.com >


국내외 CMS 사례
현재 많은 사람들의 콘텐츠가 웹에서 관리되고 이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CMS는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블로그 소프트웨어 형태로 변화되었는데, 그렇다면 얼마나 다양한 CMS가 우리 곁에 있을까요?
먼저 국내의 CMS를 보면 XE, 킴스큐Rb, 그누보드 등이 있습니다.
xe
 <XE www.xpressengine.com>
XE는 제로보드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어 현재는 XE(XpressEngine)이라고 변경된 CMS로, 고영수님이 개발한 홈페이지용 게시판 소프트웨어로 네이버에서 인수 후에도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한국 CMS시장의 50% 이상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미친 존재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속도가 약간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세계 1위 CMS인 “워드프레스” 보다도 확장성 측면에서 더욱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 글로벌 확장에 대한 기대도 있습니다. 

kimsQ
 <KIMSQ www.kimsq.com>
대학교 벤처기업에서 시작된 킴스큐Rb는 XE와 비교하여 가볍고 빠른 장점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오픈소스 커뮤니티를 운영 중이며, 오픈 비즈니스를 지향하는 비전을 갖고 있는 기대되는 국산 CMS 솔루션입니다. 개인적으로 킴스큐Rb의 CEO, CTO님과 본 칼럼의 저자와 실리콘 밸리 연수를 함께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국 현지에서의 반응 역시 긍정적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해외의 서비스의 경우에는 워드프레스, 줌라, 드루팔 등이 있습니다.
wordpress
 <워드프레스 www.wordpress.org>
워드프레스는 공개블로그나 뉴스룸 등을 비롯해 순차적으로 아이디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는 웹사이트에게 가장 적합합니다. 워드프레스 스포트웨어는 수백 명의 커뮤니티 소속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개발한 소프트웨어입니다. 워드프레스를 이용하는 방법에는 가장 최신 버전을 다운로드하여 사용하거나 워드프레스 설치를 지원하는 웹호스팅 업체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워드프레스에는 웹사이트에 쓸 수 있는 수천 개의 플러그인과 테마가 있으며 많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사용법을 알려주는 온라인 지원 포럼과 ‘WPLift’ 같은 학습 사이트까지 있습니다. 상당히 사용자 친화적인 면이 강하여 워드프레스는 사용하기 쉬운 소프트웨어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블로깅이나 뉴스가 주된 목적이 아닌 웹사이트를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워드프레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테크크런치(TechCrunch), 펩시 리프레시(Pepsi Refresh), 코메디닷컴(Comedy.com)을 들 수 있습니다.[3]

drupal
 <드루팔로 만든 소니의 myplay.com>
드루팔은 웨드프레스 보다는 더 발전된 형태의 첨단 CMS로서 워드프레스와 정반대로 블로그에서 e커머스,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웹사이트에 적합합니다. 그러나 개발자 급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을 때만 사용이 용이한 면이 있습니다. 즉, 다약하게 적용이 가능하지만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숙련과정이 필요합니다.
드루팔의 강점은 개발 커뮤니티입니다. 오픈소스 CMS 중에서도 그 커뮤니티의 규모나 개발자들의 참여도가 상당하며, 이런 강점이 바로 드루팔의 기술과 접목되어 시너지를 내며 상당한 양의 모듈(1만4,000개 이상의 모듈과 1,500개 이상의 테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지속적인 개선과 새로운 모듈의 생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joomla
<줌라로 만든 Uxbridge College 홈페이지>
줌라는 워드프레스와 드루팔의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는 웹 오픈 소스 CMS입니다. 다시 설명하면, 워드프레스보다는 정교하지만, 드루팔 같이 지나치게 개발자 중심은 아닙니다. 따라서 줌라는 중소기업에 가장 인기 있는 CMS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줌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호주의 micro international이라는 회사에서 개발된 mambo라는 상용 CMS에서 오픈소스화를 지향하는 개발팀이 따로 나와 joomla라는 이름을 붙여 독립하게 되었고, APM 환경에서의 쉬운 설치와 매력적인 관리 인터페이스를 제공하여, 대중성을 띄게 되었습니다. joomla는 강력한 기능과 편의성으로 OpenSource와 관련한 e-book 출판사로 유명한 Paket사에서 2007년도 발표한 PHP로 작성된 CMS에서 가장 우수한 CMS로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4]

이상으로, 현재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국내외 CMS 솔루션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확실히 웹 환경에서 사용자가 콘텐츠의 생산, 발행, 유통을 편리하고 효과적이게 할 수 있는 많은 기능을 확보하고 개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CMS들은 비용은 적게, 그리고 더 쉽고 빠르게 누구나 자신의 웹 사이트를 만들고, 그 곳에서 콘텐츠를 효과적이게 다룰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앞으로도 CMS가 웹으로만 한정될까요?


CMS의 미래
본 저자는 스마트폰 시대라는 점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대중화로 인해, CMS의 패러다임이 현재의 웹 사이트와 블로그 중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라 예상합니다. 예를 들면, 저작 도구(Authoring Tool)라고 불리는 툴이 그 한 모습입니다. 유투브의 창업자인 스티브 첸이 얼마 전 출시한 zeen 의 경우 간단하게 자신만의 웹 매거진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간단한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하는 콘텐츠를 큐레이션 하여 잡지형태로 제작하고 소셜 네트워크 상에 공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 베타 서비스 중이라 완성도는 높지 않지만 자신만의 매뉴얼이나 레시피를 만들기에는 전혀 문제 없습니다. 또 다른 형태의 저작도구로 국내에서도 인터랙티브 이북 빌더를 제공하여, 누구나 손쉽게 전자책을 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툴을 북잼, 모글루 등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zeen
<Zeen.com>
콘텐츠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CMS의 모습 역시 다양해질 것이며, 이는 1주차 칼럼에서 언급 한 콘텐츠의 범람으로 인한 빅 데이터 문제가 사람들의 온라인상 콘텐츠를  이용하는데 불편을  발생시킬 것 입니다. 쉽고 편리하게 콘텐츠를 관리하고 싶어서 사용하는 CMS 역시 다수가 된다면, CMS들 역시 관리해야 되는 또 하나의 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를 위한 CMS의 앞으로 모습은 다양한 종류의 디지털 콘텐츠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일원화하여 관리함으로써 다양한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하나의 플랫폼을 통하여 다양한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 플랫폼 멀티서비스(OPMS)를 제공 할 수 있게 될 것 입니다. 이는 종래의 각 서비스 플랫폼 별로 콘텐츠를 관리함으로써 발생하는 제약적인 콘텐츠 서비스, 중복 개발에 따른 비용증가의 문제점을 개선 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 입니다.[5]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개발하게 된 것이 “커빙(Cubbying)”이며, 그렇기에 “커빙(Cubbying)”을 또 하나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아니라, 사용자의 콘텐츠를 관리 할 수 있는 CMS의 발전된 형태로 보고 있는 것 입니다.
cubbying as CMS
<커빙(Cubbying)의 CMS 요소>

커빙(Cubbying)은 웹 기반으로 사용자의 모든 소셜 콘텐츠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저장한 후, 기존의 CMS들이 제공하는 정리하고 관리하는 기능 역시 제공하고 있으며, 큐레이션하여 배포하는 기능도 제공합니다. 모든 사용자의 모든 콘텐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Azure 클라우드에 저장되기 떄문에 콘텐츠의 소실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와 Bizspark Plus 파트너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http://goo.gl/Z5NiD)
물론 아직 베타버전이라, 커빙(Cubbying)이 바라보고 있는 CMS로서의 모든 요소는 아직 다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커빙(Cubbying)은 사용자의 콘텐츠를 핵심으로 바라보는 “콘텐츠 허브”가 목표이며, 아래와 같은 가치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나아갈 것 입니다.
  1. 콘텐츠 자동 수집 및 저장
  2. 콘텐츠 관리 및 분석 툴 제공
  3. 큐레이션 및 공유/배포 기능 제공 
콘텐츠 자동 수집의 경우, 자신의 온라인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소셜 콘텐츠(사진, 글, 동영상, 링크)를 원 클릭으로 한번에 모아주고 안전하게 저장하는 기능으로, 사용자의 빅데이터 피로도를 해결해줄 수 있으며, 타 CMS가 갖고 있지 못한 커빙(Cubbying)만의 핵심 기능입니다. 단, 사용자의 모든 콘텐츠(수집 된 콘텐츠와 직접 업로드 하는 콘텐츠)가 한 곳에 모아오므로 그 양이 상당하기에  곧 있을 업데이트에서는 이를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고, 그 콘텐츠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분석하여 리포팅해주는 기능이 추가 됩니다.
 cubbying key features
<커빙(Cubbying)의 핵심 기능>
마지막으로, 커빙(Cubbying)이 진정한 “콘텐츠 허브”로 나아가는 동시에, 사용자의 소셜 활동을 지원하는 큐레이션 기능과 타 SNS로의 배포 기능 역시 제공됩니다. 콘텐츠 관리 및 분석에 버금가는 큐레이션과 배포 기능은 사용자의 콘텐츠를 훨씬 가치있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새로운 트렌트가 된 것입니다. 

이에, 다음 주에는 콘텐츠의 관리 뿐만이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수단으로 큐레이션이 최근 떠오르게 된 이슈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국내외 그 사례와 효과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글 : 임준원(james@nalebe.com)편집: 신율(shinkumsa@gmail.com)About Cubbying : 커빙 / 페이스북 / 블로그 / 트위터

<참고자료>
[2] ibnetwork
[3] CIOKOREA
[4]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기반의 LMS 비교 평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기반의 LMS 비교 평가, 한국컴퓨터정보학회 2008년도 제38차 하계학술발표논문집 16권 1호, 민두영, 백영태, 이세훈
[5]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를 위한 콘텐츠 관리 시스템 및 서비스 방법, 2009년도 한국멀티미디어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 논문집 제12권 1호, 박훈규, 김진한, 진영민

포털 어드밴티지

사라진 ‘포털 어드밴티지’, ‘뉴스의 위기’ 보여주는 조선닷컴 트래픽1등신문 닷컴도 휘청거리는 상황 “한국 온라인저널리즘에는 관계도 기술도 없다”
박장준 기자  |  weshe@mediaus.co.kr

실시간급상승검색어 기사와 어뷰징(동일기사 반복전송), 그리고 낚시질은 아닌 것 같다. 포털이 뉴스서비스 포맷이나 검색알고리즘을 조금이라도 바꾸면 트래픽이 휘청거린다. 벌써 소싯적 얘기가 됐지만,네이버가 뉴스스탠드를 본격 시행한 2013년 5월 주요언론사의 페이지뷰는 2008년 12월에 비해 46.2%나 빠졌다. 네이버가 포털 대문에서 연합뉴스를 제외하고 모든 매체의 기사를 내린 결과다. 네이버는 이용자가 PC버전에서 로그인하면 미리 설정한 ‘마이뉴스’가 뉴스캐스트 방식으로 뜨게끔 추가로 뉴스서비스를 설계했지만, 트래픽 급감을 막을 수 없었다.
위기다. 스마트폰도 SNS도 트래픽을 보전해주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용자들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기 시작하면서 뉴스에 접근하기는 쉬워졌지만, 트래픽은 여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이용자들은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 이용자들은 포털사이트의 ‘광고 없는 뉴스’를 링크하고 공유한다. 여기에 ‘뉴스 큐레이션’을 하는 매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한 시대가 열렸지만, 인터넷언론들은 여전히 검색어 기사와 어뷰징으로 일관하고 있다. 타깃 오디언스도 못 잡고, 콘텐츠 질도 그대론데 ‘양’만 늘리고 있다.
1등신문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조선닷컴의 실적도 처참하다. 조선일보 12월26일자 사보에 실린 ‘조선닷컴 게재 기사 중 PV(페이지뷰) 상위권 기사 톱10(2014년 12월22일 기준)’을 보면, 1등 기사는 <학생부에 적힌 한 줄, 52대 1 大入경쟁 뚫다>로 PV는 78만2362건이다. 2위는 31만21건이고, 3위부터는 30만 건이 안 된다. 조선·중앙·동아일보의 닷컴은 연예·스포츠매체가 과점하고 있는 온라인뉴스 시장에서 트래픽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데도 이렇다. 네이버 뉴스스탠드에 입점하지 않은 언론사와 큰 차이가 없다. 이제 포털 어드밴티지는 없다고 봐야 한다.
  
▲조선일보사보 2014년 12월26일자.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조선닷컴은 조선일보와 TV조선, 자체 콘텐츠로 독자를 유입하는데도 트래픽이 저조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보수·극우 독자를 끌어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사들의 트래픽도 마찬가지다. 조선닷컴 트래픽 상위 10건 기사 중 세월호 참사 관련 기사는 총 4건인데 이중 가장 많은 PV를 기록한 기사는 5월12일자 <左派 총집결한 원탁회의가 서울 집회 주최>로 PV는 31만21건이다. <유민 外家, “저 사람 지금 이러는 거 이해 안 돼”> 기사 PV는 23만5993건, ‘대리기사 폭행사건’ 기사 PV는 21만2322건이다. 세월호 참사 최초보도 기사 PV는 29만5086건이다.
조선닷컴이 예상보다 저조한 트래픽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 언론사 관계자들은 ‘이유’를 궁금해 했다. 조선일보 사보를 본 한 종합일간지 디지털뉴스팀 기자는 “0이 하나 빠진 것 같다”고 촌평했다. 포털을 최대 플랫폼으로 삼는 인터넷언론들도 연간 PV 100만 건 이상 ‘대박’ 기사가 수 건, 30~50만 건 ‘중박’ 기사가 수십 건씩 있다. 그런데 왜 이럴까. 종합일간지가 운영하는 닷컴은 모기업 신문과 통신사, 계열사 매체까지 최소 4~5개 이상 매체의 콘텐츠가 실리는 까닭에 기사 한 건이 메인페이지에 머무르는 시간은 중소 인터넷언론에 비해 적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선닷컴의 트래픽 저조 현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네이버 같은 포털의 뉴스서비스와 검색알고리즘이 변했고, SNS와 큐레이팅매체가 트래픽 일부를 흡수했고, 뉴스 소비 행태가 ‘단건 구독’으로 변했다는 분석도 충분하지 않다. 콘텐츠 ‘질’이 낮아져 온라인저널리즘에 대한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진부하고, “특정 집단을 타깃으로 한 기사를 쓰면 된다”는 이야기는 사실상 복불복에 가깝다. 어쨌든 언론은 가장 핫한 이슈에 대한 스트레이트 기사로 시작해 분석, 해설, 칼럼, 사설 등을 배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실패한 ‘유료화’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한국경제 디지털전략부 최진순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프리미엄조선 전면 유료화’가 실패한 이유로 “낮은 이용자 반응”을 꼽았다. 그 동안 조선닷컴과 조선일보 기자들이 제공하는 ‘진짜 뉴스’를 읽을 독자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언론이 ‘진짜 독자’를 찾지 못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포털사이트 다음의 뉴스펀딩과 비교할 수 있다. 다음 이용자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내며 뉴스를 의뢰하고, 뉴스를 기다린다. 뉴스펀딩은 지금 다음에서 가장 ‘공감’ 받는 콘텐츠가 됐다.
포털을 드나드는 이용자, 즉 언론사가 타깃으로 해야 할 수용자는 달라졌다. 그런데 온라인매체들은 종이신문과 방송의 기사를 건별로 올려놓는다든가 아니면 검색어기사로 경쟁하는 초기 온라인저널리즘 모습 그대로다. 신문쟁이의 ‘찍어내기’ 버릇과 포털의 ‘검색어’ 장사가 부정적으로 결합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 결국 온라인뉴스시장에서 모든 매체는 ‘무가지’가 됐다. 대다수 언론은 자신만의 수용자를 만들어내지 않았고, 오히려 기존 독자를 피곤하게 했다.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지만 새로운 수익구조는 고민하지 않는다. 온라인저널리즘은 분명 후퇴하고 있다.
  
▲ 언론은 포털에서 낚시를 하며 폭탄을 건져 올리고 있는 건지 모른다. 아니, 폭탄을 터뜨려 고기를 잡고 있다. (이미지=구글)
이를 두고 최진순 기자는 “기존의 프레임은 기술도 관계도 없는 위계적-폐쇄적-일방적(하향적) 정보 생산과 전달인데 이제는 새로운 프레임 기술(독자를 파악하고 니즈에 부응하는)과 관계(독자를 파트너로 수렴하는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한 저널리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혁신은 어려워 보인다. 최진순 기자는 “이를 위해서는 기존 기자들의 태도와 스킬이 달라져하지만 우리나라 전통매체는 기자들의 업무내용(수준)을 재설계하기 어렵고, 현재의 경영구조(매출구조)가 기자들의 출입처에 기대고 있고, 뉴스 콘텐츠의 배포모델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언론사가 원했건 원하지 않건 주로 포털(검색)에서 유입되는 독자들에 의해 뉴스가 소비되는 한 양질의 트래픽, 좋은 뉴스를 찾아서 보고 공유하고 (댓글을 남기는 등 구체적 행동을 하는) 참여하는 소비자들이 일으키는 트래픽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시장 구조는 특정 매체가 만드는 좋은 뉴스가 돋보이는 환경이 아니다. 이 구조에서는 언론사의 뉴스 트래픽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고 (정량적으로도) 광고주들을 유인하기 어렵다.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강정수 연구원 표현대로 ‘뉴스의 서비스화’가 필요하다.”
‘혁신’은 의미 있는 트래픽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포털 실시간급상승검색어에 기생하는 것부터 ‘포기’해야 한다. 지금 온라인저널리즘이 포털 검색 중심의 왜곡된 뉴스 소비 구조에 기생하고 있고, 유통업자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와 관계를 맺으며 자신만의 수용자를 만드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다. “단순히 기술(연결)로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독자관계) 즉, 서비스가 수반돼야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본원적인 문제이지만 기존 전통 저널리즘의 프레임을 깨는 변신이 필요하다”는 게 최진순 기자 설명이다.
오프라인 종이와 방송에서 ‘디지털’로 뉴스 플랫폼이 옮겨가는 만큼 뉴스 트래픽에 대한 설계가 새로 필요한 시점이다. 최진순 기자는 자신의 독자를 파악하고, 편집국과 수용자의 관계를 강화하는 일상적인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뉴스 랜딩 페이지를 더 구조화해서 깊이(depth) 있는 연결구조를 만들어 내야 하다”고 강조했다. 뉴스 콘텐츠뿐 아니라 자신의 수용자에 최적화한 포맷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저널리즘과 방송통신업계, 진보정치와 사회운동 콘텐츠가 핵심인 <미디어스>는 그에 맞는 포맷을 구축하면서 트래픽을 설계해야 한다.
‘카드뉴스’와 ‘인터랙티브 뉴스’ 같은 콘텐츠가 나오고 있지만 수도 적고 ‘경쟁’ 상황은 아니다. <민중의소리> 인터랙티브뉴스팀 김동현 기자는 18일 미디액트 포럼에서 “독자들은 메뉴와 제목 나오고 기자이름 나오고 텍스트 밑에 사진 한 장 나오고 관련기사와 댓글, 화면 오른쪽에 광고와 ‘많이 읽은 기사’가 나오는 것을 뉴스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신문의 포맷도 많이 변했다. 지금 같은 온라인 뉴스의 포맷을 깨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웹에서는 뉴스 콘텐츠의 핵심인 ‘텍스트에 담긴 소식’을 구현하는 모든 방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온라인저널리즘은 분명 위기다. 1등신문의 닷컴마저 휘청거리는 상황은 결국 뉴스의 위기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국 온라인저널리즘에는 관계도 기술도 없다. 그래도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시도가 있다. 출입처시스템을 과감히 포기하고 탐사보도를 시작한 <뉴스타파>와 100분짜리 뉴스로 리포트 길이를 늘린 <JTBC>는 벌써 자신만의 수용자를 만들어 가고 있다. <팩트TV>도 생생한 현장을 원하는 수용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블로터>도 혁신 중이다. ‘기관지’를 자처할 게 아니라면 고민해 볼 길은 많다. 그렇지 않으면 실시간검색어에 더 휘둘릴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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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9일 월요일

한윤형 기자

'전략가'와 '선수'들의 아수라장에서 기자로 산다는 것



종종 자신이 지금 십대를 보내고 있거나 이십대 초반이었다면 장래에 글을 쓰며 살고 싶어 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지 않을 거란 대답을 내놓는다. 적어도 ‘비소설 산문’을 쓰고 싶어 하진 않았으리라.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사회는 ‘말의 힘’이 사회변혁에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이 가능했던 곳이었다. 지금은 충분치 않더라도, 시간이 나아질수록 더더욱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이 가능했던 곳이었다. 물론 현재도 그러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의 견해에 반대하거나 그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도 그러한 믿음을 간직하려면 그때보다 더한 낙관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낙관’ 쪽에 서거나 ‘비관’ 쪽에 서는 것이 개개인의 선택이라면, 아마도 자신은 그러한 환경에선 ‘비관’ 쪽에 섰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한때 누군가들에겐 ‘공론장’이 될 거라 여겨졌던 우리의 인터넷 소통이 어떤 식으로 ‘오염’되었는지를 본다면 놀라울 정도다. 한편은 검찰이 국정원 수사를 시작했을 때 특정 패턴의 댓글이 ‘사라졌다’고 증언하며, 다른 한편은 북한의 인터넷이 멈췄을 때 특정 패턴의 댓글이 ‘사라졌다’고 증언한다. 사실 여부를 가릴 방법은 없지만, 그러한 의혹 제기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편으론 차라리 우리의 인터넷이 ‘북한’과 ‘국정원’의 사이버심리전의 현장이라 믿고 싶을 만큼 참혹할 때가 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들 그대로가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면 그거야말로 더욱 비관적이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현 시대를 살아가는 소설가들이 부럽느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비록 한때 소설가를 지망한 적이 있었고 그것이 좌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찬찬히 돌아봐도 이것은 단지 박탈감에서만 나온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소설가도 근본적으로는 ‘이야기꾼’이다. 그리고 현실이 이미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사회에서, ’이야기꾼‘은 그것에 대해 말을 덧붙이려는 욕망을 억제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왕 떠들어야 한다면, 좀 더 그럴듯하고 심층적인 얘기를 떠들 수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것은 ‘정치’가 불가능한 듯 보이나 외려 그렇기에 회피할 수 없는 시대에 ‘이야기꾼’ 기질을 가진 이가 지닌 어떤 딜레마다.

▲ 성탄절인 25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가 나들이 나온 인파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4개월간 ‘기자’로서 글을 썼다. 그전엔 더 오랜 시간을 ‘자유기고가’ 내지는 ‘칼럼니스트’로 글을 썼다. 학문의 영역에 속하지 않거나 직능 전공이 없다면 ‘자유기고가’의 글쓰기와 ‘기자’의 글쓰기는 비슷한 측면도 있다.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물어 가면서 써야 한다. 그런 글쓰기에 ‘깊이'를 갖추려면 다양한 맥락을 교차검증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물론 자유기고가 때도 여기저기 묻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는 누군가에게 들은 얘기를 글 속에 표시하기는 조심스러웠다. 뒷 얘기는 모른 척하고 추론으로 알게 된 것처럼 지나가는 것이 공정하다 여겼다. 들은 얘기는 맥락적 차원에서 고려될 뿐이었다. 그 시절엔 그렇게 썼는데도 “어디 물어보지도 않고 소설을 쓴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한편 기자가 되니 다른 이의 발언을 빌리지 않고는 견해를 밝히는 것이 금기시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매체비평지에서 신문비평이나 정치비평을 쓰는 처지는 일반적인 기자들보다는 훨씬 자유기고가에 가까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기자적 글쓰기’에 대한 압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유기고가 시절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 코멘트를 요구한 건 본인의 잘남과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특정한 결을 필요로 할 땐 다만 몇 명만 전화를 받지 않아도 코멘트할 사람이 없어 본인의 코멘트를 받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아마도 다른 기자들도 그런 심정으로 내게 전화를 걸었으리라.

또한 기자들 역시 자신들의 뚜렷한 주관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자의 글쓰기'에 파묻혀 살다 보니 그 주관을 표시할 기회를 잃는다. 칼럼니스트들은 자신의 견해를 마음대로 표출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몇 안 되는 직업군에 속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관이 굉장히 독창적이며 시대를 앞서간다는 착각에 쉽게 빠진다. 하지만 비록 옥석을 가려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런 종류의 통찰은 생활인의 술자리에서도, 기자들의 발화에서도 있는 것이었다.

▲ KB금융의 전산·통신 납품비리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24일 새벽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검찰 청사를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지만 그 기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지면에 표현하기 어렵고 사실전달을 하거나 다른 이의 발언에 숨어야만 했다. 그런 상황은 매체비평지 기사를 ‘독창적으로 보이게' 쓰도록 하는 데엔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에게 좀더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가 가능한 여유나 매체환경이 주어진다면 더 많은 양질의 정보가 유통되지 않을까란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흔히들 한국 정치가 지나치게 당파적이라서 문제라고 한다. 생활인들이 이런 말을 할 때는 주로 여권과 야권의 극한 갈등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가까이서 관찰한 한국 정치는 야권 내부의 당파적 행태가 더욱 문제였다. 이해당사자들이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서사'를 쓰고 거기에 맞춰 내부정보를 회람하고 전문가의 견해도 동원하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는 ‘서사' 중 특정한 하나에 몸을 던져도 논리적으로 매끄러운 글을 쓰기에 무리가 없다. 그런 각각의 주장들은 내적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나 각각 현실의 일면만을 대변하기에 서로 모순을 일으킨다. 이 경우 그들은 서로에게 “정치를 몰라서 그런다", “속사정을 몰라서 그런다"는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문지식으로 검증할 수 없는 맥락적 글쓰기의 ‘질'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결국엔 각자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현실성을 판단하게 하지만 대부분의 생활인이 이미 당파적으로 어느 편을 들고 있다면 그 판정은 ‘팬심'을 벗어나기 어렵다. 기사를 쓰면서 서로를 욕하는 그 당파들이 특정한 기사가 서로 상대 당파를 편들고 있다고 공격하는 우스운 꼴을 많이 당했다. 그렇지만 시간을 두고 꾸준히 쓰면 그런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특정한 상황에선 그런 기사를 인용하기도 한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한국 정치의 큰 문제 중 하나는 평범한 생활인들조차 모두가 ‘전략가'인 양 처신한다는 것이다. 어떤 진보지식인들은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정치적 주체'가 없다고 혀나 끌끌 차고 말겠지만 이 역시 어쩌면 환경의 산물이다. 한국 사회에선 개인이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신념을 가진 이들이 늘어날 경우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까지 설명해야 한다. 심지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소수자적 입장에 선 이들 중 하나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평화주의자들조차도 “나는 평화주의자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화주의자가 (가령) 정치적 유권자의 1할을 차지하는 사회는 우리 사회와 많이 다르다"며 사람들을 설득해야만 한다.

역설적으로 이토록 당파적인 상황에서 모두가 전략가인 양 처신하기 때문에 야권에겐 어떠한 전략도 가능하지 않다. 원칙의 문제라면 토론이 가능하지만, 각 이해당사자가 전략을 자기정당화의 근거로 삼는다면 논의는 쳇바퀴를 돌게 된다. 상대방이 멍청하다는 공박이나 소수자라는 빈정이 설득을 대신하게 된다.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상대 당파의 책임을 묻는 ‘전략적 분석'이 난무하게 된다.

정치판과 운동판에서 흔히 쓰는 말로 ‘선수'라는 말이 있다. 활동하는 사람, 혹은 활동의 영역의 판세를 잘 읽는 이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선수'인지는 누가 정할까. 자칭 ‘선수'들은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가 ‘선수'인지에 대한 합의 자체가 이미 당파적이다. 여기선 ‘대단한 선수'인 사람이 저기선 ‘저능아'다. 물론 결국에는 모든 것이 그렇듯 시간이 검증하는 측면이 있으나,  ‘선수'가 ‘선수'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은 결국엔 또 한 번 모든 논의를 피로하게 만든다.

이 아수라장을 조금 더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은 물론 소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영역에서나 ‘선수'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자칭 선수'들이 상대방이 선수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일이 빈번한 이 세계에서 그런 종류의 평가가 실제의 정치현상을 이해하는데에 도대체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질문은 필요할 것이다. 누군가는 ‘선수'들의 시선이 아닌 좀 더 거시적인 문맥에서 이 아수라장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변혁의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는 시대라도, 그렇기에 그 가능성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간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부족한 글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그보다 과한 미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 부분은 생략하기로 하자). 이 글은 연말특집을 제외하면 <미디어스>에서의 34개월 기자 생활을 통해 작성된 마지막 글이 될 예정이다. 글을 쓰는 일이 세상사에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까란 의문은 ‘자유기고가' 때에도 ‘기자'일 때에도 늘상 가진 것이었다. 본인의 역할에 대해 큰 환상이나 기대를 품고 있지는 않지만, 이곳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도 이 세계와 사회를 드러내는 진솔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기자 생활을 마쳐도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고, 이왕 이렇게 살게 된 바에야 무언가 사회에 기여를 하는 글을 써야겠다는 불가능한 욕망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 23일 화요일

대한민국 대중 바보

»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9명 중 가운데)이 12월19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을 읽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사건에서 헌법재판관의 의견은 8 대 1로 갈렸다. 박한철 헌재 소장과 주심 이정미 재판관을 포함해 이진성·김창종·안창호·강일원·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이 해산 결정을 했고, 김이수 재판관만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헌재 결정문 347쪽 가운데 소수의견이 180쪽에 이른다. 찬반 의견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가 진보당의 ‘주도세력’인가 △주도세력은 북한에 동조하는가 △진보정당은 필요한가의 쟁점을 놓고 엇갈렸다. 진보정당에 대한 견해는 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이 보충의견에서 좀더 분명히 드러냈다.


#쟁점1 이석기 등은 진보당 주도세력인가?

[다수의견]은 진보당을 장악한 주도세력은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부산울산연합 등 자주파라고 했다. 이들의 방침대로 당직자 결정 등 주요 사안을 결정하며 당을 주도했다는 이유에서다. 주도세력의 핵심인 이석기 의원은 당원들과 모여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과 동조해 국가 기간시설 파괴, 무기 제조·탈취, 통신 교란 등 폭력 수단을 실행하려고 계획했다. ‘이석기=경기동부연합=진보당’이라는 논리 구조를 형성하며 내란음모 사건을 진보당 활동과 동일시했다. 비례대표 부정선거,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및 관악을 지역구 여론 조작 사건 등도 국가의 존립, 의회제도, 법치주의, 선거제도 등을 부정한 활동으로 판단했다. 특히 폭력·위계 등을 적극 활용해 민주주의 이념에 반했다고 덧붙였다. “진보당은 주도세력이 장악했기에 그들의 목적과 활동은 진보당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에 귀속한다.”

[소수의견]은 내란음모 사건이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배한 행위로 볼 수 있다며, 찬성 의견과 출발을 같이한다. 하지만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고작 130명이라는 데 주목했다. 그들이 모두 이석기 의원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전체 당원 수 10만 명에 비하면 극소수에 그친다. 회비를 내는 진성당원만 따져도 진보당 당원은 3만 명이다(2012년 11월 기준). 대다수의 일반 당원은 내란음모 사건이 말하는 ‘은폐된 목적’(북한식 사회주의 추구)을 고지받거나 확인할 수 없었다. 이들을 “옛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대변해온 ‘진보정당’의 활동과 강령에 공감한 당원”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공공교육이나 공공급식, 공공의료 등 진보정당의 정책은 여당과 제1야당에도 영향을 끼쳤고 일정 부분 수용되기도 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여야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것도 한 예다. “진보당 기본 노선에도 어긋나는, 이석기 의원과 그를 지지하는 소규모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이념이나 신조가 곧 정당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쟁점2 주도세력은 북한에 동조하는가?

[다수의견]은 진보당 주도세력이 과거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1997년 해산) 및 영남위원회, 실천연대(2000년 결성), 일심회(2006년),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등에서 자주·민주·통일 노선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북한과 연계돼 활동했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북한 관련 문제에 대해선 맹목적으로 북한을 지지하고 한국 정부를 무리하게 비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력들이 내란음모 사건에도 다수 참석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진보당 자주파가 내세운 강령인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로 안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기 체제로 설정했다.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전략이다. “진보당의 진정한 목적이나 활동은 한국 사회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친다.”

[소수의견]은 이념적 성향을 가리려면 현재 활동이나 발언이 판단의 근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다수의견은 10여 년도 더 지난 국가보안법 위반 형사 판결이나, 오랫동안 진보당 구성원들과 직접적 접촉이 없었던 증인의 진술을 근거로 주도세력의 과거와 현재의 사상, 신념을 판단했다. 물론 주체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이를 고수한 자주파가 있을 수 있음을 원칙적으로 부인하지 않는다는 소수의견은 밝혔다. 그러나 현재까지 주체사상이 내면화됐다고 판단하려면 적어도 이석기 의원처럼 현재도 그 활동 내역이 드러나야 한다. 사람의 생각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향 선언을 하지 않으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추단해선 안 된다. “납득할 만한 증거가 제시돼야 한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가치를 일부 포괄하는 광의의 사회주의 강령으로 소수의견은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것도 증거가 부족하다. 옛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브라질 노동자당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을 당선시켜 집권 정당이 된 점을 베네수엘라와 칠레의 사례와 함께 중요하게 검토한 점 등을 보면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이 아닌) 남미의 모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진보당은 선거에 의한 집권을 주장하고 있지, 폭력혁명 또는 폭력적 방법에 의한 집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쟁점3 진보정당은 필요한가?

[보충의견]은 맹자의 고사에 나오는 피음사둔(淫邪遁)을 인용해 “번드르르한 말 속에서 본질을 간파해야 한다”고 했다. “진보당 주도세력과 북한의 각종 전술을 간파할 수 없는 능력이 없이 그들의 글을 읽고 주장을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가면과 참모습을 혼동하고 오도하는 광장의 중우(衆愚), 기회주의 지식인·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 영합 정치인 등과 같은, 레닌이 말하는 ‘쓸모 있는 바보들’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뻐꾸기와 뱁새도 끌어왔다.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이를 모르는 뱁새는 정성껏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그러나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알과 새끼를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낸 뒤 둥지를 독차지하고 만다.” “아주 작은 싹을 보고도 사태의 흐름을 알고 사태의 실마리를 보고 그 결과를 알아야 한다”는 옛 성현의 가르침도 내세워 보충의견은 관용을 경계했다.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그 근본을 무너뜨리려는 행위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소수의견]은 진보당의 주장이 소수의 지지를 받으며, 언뜻 보기에 고개를 젓게 만들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역시 우리 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성장시키는 자원이라고 봤다. “모름지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다양한 견해와 새로운 발상을 포용하고 받아들인 나라는 융성했고, 문을 닫고 한 가지 생각을 고집한 나라는 결국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바다는 작은 물줄기들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그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는 법이다. 민주주의야말로 바다와 같아서 다양한 생각들을 포용해가는 것을 그 제도의 본질로 한다.”
국가안보에 대한 제재나 공당에 대한 엄중한 질책은 헌재의 몫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형사절차와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진보당이 자기비판 능력을 발휘해 당원의 일탈행위를 바로잡을 가능성도 소수 의견은 열어뒀다. 다만 “헌법이라는 탐조등으로 우리 사회의 갈 길을 찾아나설 때” 헌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때) 우리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두 축으로 하는 민주적 기본 질서의 바탕이자 토대가 되는 ‘자율과 조화’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헌법 전문의 근본 정신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1224_부동산3법 정주영 돼지몰이론-빈대론 그래도 진보정당은 필요하다

부동산 3법(주택법,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분양가상한제를 공공택지에는 현행대로 적용하되 민간택지에는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 적용키로 했다. 재건축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이사해야 하는 세입자의 전월세난이 ㅅ미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 발생 시 적정 임대료를 산정하는 주택임차분쟁조정위원회 설치


정주영의 돼지몰이론-빈대론

정주영 회장은 고정관념과 적당히 주의를 무엇보다 싫어했다.
고정관념이 사람을 멍청이로 만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이 역발상을 강조한 정 회장의 돼지몰이론이다. 돼지를 우리에서 내몰 때는 앞에서 귀를 잡아당기는 것이 안리ㅏ 뒤에서 꼬리를 잡아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을 많이 걷기 위해 법인세를 올리자거나, 기업이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내부유보금에 과세를 하는 등의 발상이 모두 앞에서 돼지 귀를 잡아당기는 행동이다.

적당히 주의를 배척하기 위해 평소 강조했던 것은 빈대론이다. 빈대론은 정 휘장이 인천 부두에서 막노동을 할 때 직접 겪었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밥상 다리 네 개를 물이 담긴 큰 그릇 4개에 담그고 밥상 위에서 잠을 잤다. 하지만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빈대의 공격이 재개됐다. 빈대들은 밥상 다리를 기어오를 수 없게 되자,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에서 사람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고공침투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찾지 않으니까 길이 없는 거다. 빈대처럼 필사적인 노력을 안 하니까 방법이 안 보이는 것이다.

내년에는 우리 모두가 이렇게 자문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해보기는 했어? 빈대만큼이라도…."


그래도 진보정당은 필요하다


중무장한 대왕개구리가 다 죽어가는 토종개구리를 상대로 우물 안에서 전쟁을 벌인 것이다. 통진당의 시계가 5,60년대에 멈춰져 있다면, 이번 헌재의 시계는 유럽의 19세기,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 멈춰져 있다. 종북이라는 기호는 그냥 정치적 반대파를 역적으로 몰던 조선시대 수구세력의 담론과 유사하다.

통진당을 희생양 만들어 죽이고 나면, 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위기는 순간적으로 모면되고, 이후 야당과 비판적 사회 세력의 도전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상 섬나라인 남한의 정치와 사회는 단색으로 칠해진 곽 막힌 암흑천지가 될 것이며, 국제사회에서는 더욱더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고, 자신의 언어와 지지할 정치지도자를 잃어버린 시민, 노동자의 좌절감과 정치적 무관심은 국가와 사회를 붕괴시키는 독소가 될 것이다.



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1223_진보당 보선 출마 금지. 가계 경제.

여권 '진보당 보선 출마 금지'

새누리 하태경 "의원직을 상실한 통진당 의원들이 현행법상 내년 4월 보궐선거 출마 가능" "김진태, 이노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있다." '위헌정당 재보선 출마금지법'으로 통하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아. 국민의 선거에 의한 정당 선택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짓밟은 독단이자 폭거라고 바라보는 진보 진영에는 뼈아픈 대목이다. 국민 다수가 통진당 자체를 북한 추종 세력과 동일시하는 사태. 대중정당으로서 통진당이 국민들의 마음을 잡는 노력에서 실패한 부분이 있었다. 


2015년 가계 경제

가계소득을 늘리는 차원에서 기업 배당을 촉진하고 고객 편의를 높이기 위해 보험사 계좌로도 자금이체 등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전세난 완화를 위해 기업이 대규모로 주택을 지어 임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표현.사상의 자유 위축…변화 모색은커녕 생존 걱정할 판


박근혜정부 위기때마다 꺼낸 만병통치약 '종북'

국정원 댓글 사건: NLL 포기 논란으로 국면 전환
국가기관 대선개입: 내란음모 논란으로 국면 전환
비선 국정개입 의혹: 이념 대결로 국면 전환


*반달리즘: 문화예술 파괴 행위


인간은 선과 악, 이기와 이타가 공존하는 유전적 키메라다. 사람과 집단이 어느 때는 선을 더 행하고, 어느 때는 악을 더 지향하는가. 변수는 공감, 의미, 시스템, 규율과 법, 수행, 이 다섯 가지다. 인간은 거울신경세포를 통해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를 구원한다. 의미의 존재인 인간은 진리와 정의, 무한과 같은 거창한 것에서 사랑하는 이의 행복이나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의미를 좇아 순례하고, 때로는 그 의미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선한 자에게 보상하는 시스템이 잘 발달한 사회일수록 선행은 늘어난다. 


올해의 한자 법(法)

중국의 2014년 한 해를 상징하는 올해의 한자로 파(법)가 선정됐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도덕성이라고 말했다. 도덕성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타인이 모방하는 품성이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비공개적으로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기업을 사고 파는 것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펀드로 제약이 없고 고수익이지만 위험율이 큰 것이 특징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펀드와는 달리 회원들의 구성이 제한적이다. 부도위기의 기업을 싼 가격에 사서 전문경영인을 세운 후 정리해고 등의 방식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높여 다시 파는 펀드이다. 노동력 악화등의 문제점이 나타나며 특히 기업의 인수 합병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생산성의 증가가 없다.



2014년 12월 21일 일요일

1222_통합진보당 해산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헌재가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다면 진보-자유주의 정치세력 전체의 위축"
정당해산 결정은 종북에 대한 단죄 차원을 넘어 통합진보당의 강령 자체에 대한 위헌 판단을 내린 것이기 때문.
사회 전반에 공안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정국이 급속하게 얼어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른바 강경진보들을 고립시키는 상황이 이어질 것.
<절제의 형법학>(조국),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형법을 비판적으로 검토. 국가형벌권의 남용 문제 제기. 평소엔 질서보다 자유와 행복을 중시하고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를 위해 형법의 개입을 저지한다는 것이 헌법 정신.

정당해산제도는 소수정당을 함부로 해산할 수 없도록 보호하기 위해 도입. 그러나 헌제가 이번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제를 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최소한의 증거로 쉽고 빠른 정당해산이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사태의 시작과 끝을 추동해놓고 외견상 총리에게 미루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바 대통령이 진보당 해산이란 극단적 조치를 허용함으로써, 국론분열 및 진보보수 편가르기에 앞장선 꼴이 됐다. 

동아 <'종북' 통진당 해산, 민주헌법 수호 위한 역사적 심판이다>
경향 <민주주의 후퇴시킨 진보당 강제 해산>
조선 <종북 통진당 대한민국 헌법이 심판했다>
중앙 <통진당 해산, 분단 상황 고려하면 불가피했다>
한겨레 <민주주의의 죽음, 헌재의 죽음>


진보당의 역사

2011년 12월 진보 드림팀이라는 기대까지 받으며 탄생한 통진당. 창당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소멸했다. 지난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사법기관에 의해 정당이 해산당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통진당은 뿌리깊은 종북 논란과 당내 비민주성, 폭력성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며 스스로 고립의 길을 걸어왔다.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민노총 기반 국민승리21을 이어받아 2000년 1월 노동자와 서민의 정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창당했다. 2004년 총선에서 13.1%의 높은 정당득표율을 얻으며 10석으로 화려하게 원내에 진입했다.

민노당 내 자주파(NL)와 평등파(PD)라는 양대 정파는 북한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내부 갈등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대중적 신뢰 확보보다 정파주의와 패권주의를 키워갔다.

최기영 사무부총장 등 당 간부가 북한 지령에 따라 국내 정보 등을 북한에 넘겨준 혐의가 2007년 12월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된 일심회 사건은 당내 종북 논란을 폭발시키며 1차 분당 사태를 낳았다.

자주파의 반대로 일심회 관련자 제명이 좌절되자,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평등파 의원들은 "주사파의 종북주의를 확인했다"며 민노당을 떠나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종북이란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9년 강기갑 의원의 이른바 공중부양 사건과, 2011년 11월 김선동 의원이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반대하며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터뜨린 일은 국민들에게 민노당의 폭력성을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2011년 12월 민노당 유시민 등 참여정부 인사들의 국민참여당,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진보신당 탈당파가 합쳐 만들어졌다. 2012년 통진당은 진보정당 역사상 최다 의석인 13석을 얻으며 원내 제3당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이념과 정책을 공유하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선을 위해 급히 손잡은 탓에 분란의 화약고는 금방 터졌다.

지난해 8월 공안당국이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하면서 통진당은 회복하기 어려운 추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민주연합 등 다른 야당들도 통진당과 거리를 두면서 고립이 깊어졌다. '진보' 가치에 동의해 표를 몰아줬던 진보적 지지층마저 통진당의 종북과 비민주적 불법을 비판하며 등을 돌리자 통진당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국민이 뽑지 않은 헌재가 국민이 지지하는 정당을 해체했다. 그 정당을 지지하고 표를 줬던 국민들까지 위헌적 국민이냐.

헌재가 밝힌 보편적 헌법원리를 적용하면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됐어야. 남북 대치 상황 이유로 보편적 법원칙을 무시하고 정치적, 자의적으로 판단.



*방어적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형식논리를 악용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타난 개념. 민주주의는 국민주권 ·자유 ·평등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일정한 세계관 내지 가치관과 결부된 것이기 때문에, 결코 무개성 ·무방비한 통치형태는 아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형식원리를 악용하여 민주주의가 가지는 일정한 가치를 침해하려는 적()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적 혹은 방어적 장비를 갖추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방어적 또는 투쟁적 민주주의이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모든 다양성을 허용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라 생각되어 왔으나, 절대주의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민주주의의 전복을 꾀하는 민주주의의 적에 대해 방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방어적 민주주의는 반드시 방어할 가치가 있는 일정한 실질적 요소를 전제로 할 때만 성립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단순히 치자()와 피치자()가 동일하다는 논리나 다수결의 원리에 의하여 이해하던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에는 방어적 민주주의 이론은 성립될 수 없었고, 단지 헌법의 보호문제만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형식논리를 자신들의 정권획득과 유지에 이용한 나치스 독재정권이 탄생한 경험을 토대로 방어적 민주주의의 문제는 서독기본법의 탄생과 더불어 성립되었다.


헌재 구성 편향

보수정권이 이어지면서 헌재도 보수 성향 인사들로 채워졌다.
대검 공안부장을 지낸 박한철 소장이 헌재소장으로 임명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돘던 민변 회장 출신 송두환 전 재판관이 퇴임하고 나서는 그나마 한 자리 있던 재야 변호사 출신 몫도 아예 사라졌다.
법관은 기본적으로 법질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법을 해석하는 사회 안전판 역할을 맡고 있어서 기본 성향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을 의회가 선출한다. 정족수를 3분의 2 이상으로 한다. 51% 다수당이 재판관 선출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헌재 재판관은 절반 이상이 헌법학 등 공법을 전공한 교수다.

최초의 마취제

사상 처음 공개적으로 에테르를 사용해 마취.
마취제 발견자 크로퍼드 롱


빅데이터

데이터의 생성량, 주기, 형식 등이 기존 데이터와 비교하면 너무 크기 때문에 기존 방법으로는 수집, 저장, 검색, 분석이 어려운 방대한 데이터를 말한다. 빅데이터는 거대하고 복잡하지만 대용량 정보분석을 의미하는 '빅 인사이트'를 구축할 수만 있다면 기업은 소비자의 심리.행태를 파악할 수 있는 미래 열쇠를 쥐게 된다. 


서울의 정치경제학: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긴박한 생존상의 필요'

근로기준법상 기업주가 정리해고를 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이때 긴박함이란 그저 '어려우니까 양해해달라'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애기봉

애기봉의 옛 이름은 쑥갓머리산.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가 피란길에 조강을 건너지 못하고 청군에 붙잡혀 끌려갔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애기)이 '임'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죽어 이곳에 묻혔다. 1971년 십자가가 달린 18m 짜리 드높은 철탑을 세워 성탄 때마다 불을 밝혔다. 개성시내에서도 그 불빛이 눈을 찔렀다. 북한의 불만을 샀다. 긴장.갈등.공포를 키우는 트리는 존재 의미가 없다. 


중국의 고급정보지: 내참(내부참고)

중국 특유의 정보 공유 시스템. 당.정.군 핵심 지도층이 기본 독자. 


2014년의 책

투명인간, 현기증. 감정들, 가라앚은 자와 구조된 자, 세상물정의 사회학, 작가란 무엇인가, 21세기 자본,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킨포크
모멸감, 나의 한국현대사, 철학자와 하녀, 백석 평전, 공부 논쟁, 사회를 바꾸려면
소년이 온다, 여자 없는 남자들, 계속해보겠습니다. 눈먼 자들의 국가
한국 자본주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 
숲에서 우주를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