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2일 일요일

중앙_[사설] 쌀 시장 개방 미룰수록 손해다

정부가 어제 열린 ‘쌀 관세화 공청회’에서 쌀 시장 개방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앞으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쌀을 관세 폐지 양허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쌀 시장을 개방하되 FTA 협상 등을 통해 관세율이 낮아지지 않도록 해 외국산 쌀의 무차별 유입은 막겠다는 의미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쌀 개방을 늦출수록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9월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시장 개방을 통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쌀 시장 개방을 미루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필리핀뿐이다. 필리핀은 19일(현지시간) 쌀 시장 개방을 5년 더 미루기로 했다. 대신 의무수입량을 기존 35만t에서 2.3배인 80만5000t으로 대폭 늘리고, 관세율도 현행 40%에서 35%로 낮추며 희망하는 모든 나라에 쌀 수출쿼터를 제공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필리핀 정부가 쇠고기 등 육류 시장도 추가 개방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쌀 시장 빗장을 5년 더 걸어두는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내준 셈이다.

 필리핀 사례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유예기간은 올해 말로 끝난다. 20년간 쌀 시장 개방을 미룬 대가로 우리는 이미 막대한 비용을 치렀다. 1995년 5만1000t으로 출발한 의무수입량은 올해 40만8700t으로 늘었다. 그러느라 20년간 약 3조원의 비용이 들었다. 수입쌀 보관에만 지난해 약 200억원의 국민 세금을 썼다. 창고가 모자라 민간업체 냉장창고까지 빌려 쓰는 것도 안 돼 매년 수입쌀 5만~20만t을 주정용으로 ‘땡처리’하고 있다. ㎏당 900~1100원에 사온 쌀을 ㎏당 300원씩에 처분하고 있는 것이다. 또 개방을 미루려면 필리핀 수준으로만 협상한다 해도 5년 후엔 연간 94만t을 수입해야 한다. 국내 소비량의 약 20%다. 게다가 필리핀처럼 쌀을 막자고 쇠고기 시장을 내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일본은 95년, 대만은 2003년에 쌀 시장을 열었지만 두 나라의 쌀 수입은 거의 늘지 않았다. 우리 쌀의 경쟁력도 높아졌고 국제 시세와의 격차도 2~3배 정도로 많이 좁혀졌다. 300~500%의 관세를 물리면 시장을 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경향_[사설]제대 앞둔 ‘말년 병장’이 왜 이런 끔찍한 일을

군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또 발생했다. 21일 오후 8시15분경 동부전선 일반전초(GOP)에서 주간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임모 병장이 부대원들에게 수류탄 1발을 터뜨리고 실탄 10여발을 발사해 5명은 숨지고 7명이 다치는 참사가 빚어졌다. 임 병장은 무장한 채 탈영해 군과 총격전까지 벌이며 대치했고, 이 과정에서 장교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세월호 참사의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젊은 생목숨을 한꺼번에 잃다니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총기난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할 최악의 군기사고다. 그럼에도 잊을 만하면 반복적으로 터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05년 6월 경기 연천 전방초소(GP)에서 김모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해 8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참극을 빚었고, 2011년 7월에도 인천 강화 해병대 해안초소에서 김모 상병이 내무반에 소총을 난사해 4명이 사망하는 사태를 겪었다. 그때마다 군 당국은 대국민 사과와 더불어 재발 방지 약속을 되풀이했다. 특히 병영 내 악습과 구태 일소 등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2011년 해병대 총기난사 사고에 이어 3년 만에 다시 터진 이번 사고로 빈말이 되고 말았다.

사고 당시 임 병장은 후방 보급로 삼거리에서 수류탄 1발을 던지고 생활관으로 이동하면서 K-2 소총 수발을 발사한 뒤 다시 생활관 통로로 진입해 난사했다고 한다. 3명은 생활관 밖에서, 2명은 안에서 각각 사망했다. 전역을 3개월 앞둔 ‘말년 병장’이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참으로 궁금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부대에서 또는 개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한 사고 경위와 배경을 밝혀야 할 것이다. 총기사고는 병사와 총기의 관리 문제에서 비롯되는 만큼 그에 대한 진상과 책임 소재의 철저한 규명을 통해서만 실질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정황으로 보면 군 당국의 병사 관리에 중대한 구조적 문제점도 엿보인다. GOP 근무에 관심병사를 배제해왔으나 최근 병력 부족으로 A급 관심병사에 대해서만 GOP 근무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A급 관심병사로 분류됐던 임 병장이 B급으로 조정돼 GOP에 투입된 것이 결과적으로 이번 총기난사 사고로 이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키는 장병을 믿고 부모형제가 단잠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군에 간 아들 걱정에 부모가 단잠을 설치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제발 이번에는 제대로 문제점을 진단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경향_[사설]문창극·김명수·이병기·정종섭… ‘2기 내각’ 다시 짜라

박근혜 정부의 2기 내각 구성은 총체적 ‘인사 참사’로 귀착되고 있다.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를 필두로 김명수 교육부 장관·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이병기 국가정보원장 내정자 등 새로 인선된 고위공직 후보들 태반이 도덕성과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우선 그릇된 역사관과 민족관 등으로 이미 국민들로부터 ‘부적격 판정’이 내려진 문 총리 지명자의 퇴장은 이제 시간 싸움이다. 문 지명자는 버티고 있지만, 여론과 국회의 동향에 비춰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총리’를 밀어붙이는 건 정권의 명운을 건 도박이기 십상이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문 지명자가 총리로서 적합하냐는 질문에 9%만이 긍정했다. 민심은 물론, 국회 인준 통과도 어려운 상황에서 남은 것은 박 대통령이 직접 사퇴를 요청하거나 결자해지로 지명을 철회하는 길뿐이다. 국정 표류를 막기 위해서도 신속한 결단이 필요하다.

‘문창극 사태’에 관심이 쏠려 있지만, 다른 고위공직 후보들의 비위와 도덕성도 심각한 수준이다. 김 교육부 장관 내정자는 무려 11건의 논문이 제자들의 논문을 표절하거나 ‘자기 표절’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대가로 수천만원의 연구비를 챙기고, 교수 승진 때마다 표절 논문을 제출한 의혹까지 사고 있다. 학자로서 기본 윤리와 양심을 저버린 사람을 대학의 연구를 지도·감독하고 교육개혁을 맡을 교육부 장관에 내정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정 안행부 장관 내정자는 군법무관 복무 기간 내내 서울 소재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았다. 강원도 화천 등지에서 근무하며 낮에 학교를 다녔으니 편법 군복무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국정원장 내정자는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 돈’ 배달책으로 ‘의원 회유’ 공작에 가담했고, 1997년 ‘북풍 공작’ 연루 의혹도 받고 있다. 대선개입과 정치공작으로 얼룩진 국정원의 개혁 임무를 맡기에는 부적합하다.

이번 ‘인사 참사’는 6·4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통합과 소통의 민심을 외면한 오만과 독선의 인사 결과다. 갤럽 여론조사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48%)가 긍정평가(43%)를 넘어섰다. 세월호 침몰참사 때보다 심각하다. 박 대통령은 민심을 직시하고, ‘2기 개각’과 ‘3기 청와대’ 개편의 내용을 원점에서 재고해야 한다. 문 지명자에 대한 지명 철회와 함께 결정적 흠결이 드러난 장관 내정자들의 임명을 거둬들여야 한다. 더는 독불장군식 국정운영과 인사로 인해 민심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하지 않기를 바란다.

경향_[사설]우려스러운 교육부와 전교조의 정면충돌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판결 이후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교육부가 판결 직후 전교조를 무력화하는 초강경 명령을 내리자, 전교조는 이 조치에 불응하고 총력투쟁으로 맞서겠다는 결의를 했다. 교육계의 노·정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교육부의 태도다. 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전교조를 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까지는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사 6만명이 가입해 있고 십수년간 교원단체로 활동해온 조직의 실체까지 부정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교육부는 전교조 전임자에게 휴직 허가를 취소한다며 2주일 이내에 서둘러 복직하라고 다그치듯 명령했다. 하지만 국가공무원법 제73조 3항에는 “휴직사유가 없어지면 30일 이내에 임용권자 또는 임용제청권자에게 신고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문구상 ‘30일 이내’라고 돼 있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다면 복직하기까지 30일의 시간 여유를 주는 게 타당하다. 그런데도 복직 시한을 7월3일로 못박은 것은 전교조에 우호적인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7월1일 취임한다는 일정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진보교육감이 들어서기 전에 일을 해치우겠다는 비겁하고 졸렬한 발상이다.

이 외에도 교육부는 전교조에 대한 사무실 퇴거와 임대보증금 반환, 단체교섭 중지,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전교조 교사들의 위원회 참여 배제 등을 시·도 교육청에 지시했다. 전교조를 꼼짝달싹 못하게 옥죄어 사실상 해체하겠다는 의도로 비친다. 하지만 노조가 아니라 해도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한 교육당국은 교사단체와 소통하고 그 활동을 지원하는 게 정상적이다. 일부 시·도에선 실제 전교조가 아닌 다른 단체에도 사무실을 무상 임대해주고 있고, 각종 교사 연구모임이나 동아리 회비를 월급에서 공제해주는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전교조 죽이기’가 아니라면 전교조에 대해서만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법치국가에서 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1심에 불과하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섣부른 단정을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이번 판결을 두고 전교조가 “사법부 스스로 행정부의 시녀임을 고백했다”고 비난하는 것도 그런 점에서 적절치 않다. 기왕에 법원 판단을 받아보기로 한 이상 일단 지켜보는 것도 방법이다. 교육부와 전교조 모두 차분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경향_[사설]고노담화 훼손하고 인류양심을 저버린 일본

일본 정부는 어제 군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담화를 발표하기 전 한·일 정부 간 막후 문안 조정을 했다는 내용의 담화 검증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양국 간 문안 협의 때 위안부 모집 주체에 대해 당초 ‘군이 아닌 군의 의향을 수용한 업자’라고 표현했으나 한국의 반대로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로 타협하게 했다고 밝혔다. 비공개 협의가 있었다면 이번 보고서 발표는 일방적으로 합의를 깬 외교적 도발이나 다름없다. 막후 의견교환은 외교에서 흔한 일이다. 그걸 검증의 이름으로 폭로하는 것은 신의 없고 무례한 국가나 하는 야만적 행태이다. 앞으로 이런 이웃을 믿고 진지하게 대화하고 협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은 주권국가다. 담화 발표를 결정한 주체도 그 내용에 책임져야 할 당사자도 일본이다. 그런데 보고서는 “(사전 협의 때) 한국 측이 ‘담화 내용은 일본 정부가 자주적으로 결정한 것일 뿐 아니라 교섭의 대상도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문구 수정을 희망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담화라는 건 형식일 뿐 실제로는 한국의 압력을 받아 왜곡된 내용을 발표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도 아닌데 한국의 압력 때문이라고 핑계를 댄 것이다. 성숙한 국가는 신사답지 않은 구차한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이번 담화 검증에도 불구하고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비열하고 교묘한 속임수다. 보고서에는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군의 지시를 받은 업자’로 표현하라고 요구했지만, 일본이 ‘군이 지시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는 대목이 있다. 보고서에 이런 내용을 담은 것은 군이 강제한 증거도 없는데 한국의 요구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표현했다며 고노담화를 부정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는 담화를 수정하지 않아도 수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 담화의 취지를 깡그리 부정함으로써 껍데기만 남겨 놓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금 인도주의적 범죄, 역사적 범죄 행위를 손으로 가려보겠다고 어리석은 몸짓을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정상 국가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일본의 양심적 시민과 지식인, 정치인들은 이런 인류의 양심에 도전하는 역사 수정주의에 맞서야 한다. 일본을 비정상 국가로 몰아가는 아베 정권에 대해 따져물어야 한다. 일본이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얻은 권위와 명성은 이제 땅에 떨어질 것이다. 일본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아베 정권의 이 무도함을 꺾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이렇게 염치없다는 사실은 이웃으로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경향_[사설]경제 실세 말 한마디에 부동산 규제 꼬리 내리나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검토에 나서겠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박근혜 정부 1기 때도 견고했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불가론이 최경환 부총리 내정자의 말 한마디에 방향을 바꾸려는 것 같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엊그제 국회에서 “금융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물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최수현 금감원장도 “합리적 개선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정책 기능이 없는 금감원장 발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규제 결정권을 갖고 있는 금융위원장마저 경제 실세의 한마디에 즉각 반응하는 것은 실소를 넘어 안쓰러움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그가 열흘 전까지 “LTV·DTI는 가계부채 차원의 금융정책 수단으로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기관 건전성 유지를 위한 핵심장치”라고 말해왔음을 떠올리면 더욱 씁쓸하다.

부동산 규제가 시장 활성화를 막는 대못이라는 완화론자의 주장에도 금융위가 불가 입장을 고수했던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국토교통부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주택 거래량과 가격은 과거 부동산시장 팽창 때와 달리 체감도는 낮지만 꾸준히 오르고 있다. 거품이 정상적으로 빠져가는 자기조정 과정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더 빌려줘 집을 사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헛바퀴로 끝날 공산이 크다. 되레 가계빚만 더 늘릴 수 있다. 가계는 주택담보대출을 주택구입자금 용도 못지않게 생활자금·사업자금으로 써왔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변함없다. 일각에서는 규제를 풀어 시장을 활성화시키면 소득이 늘고 그렇게 되면 부채상환능력도 좋아져 가계부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다. 집값이 과거처럼 오를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정부 내에도 없다.

물론 어떤 정책도 영구불변한 것은 없다. 하지만 바꾸려 할 때는 합당한 논거가 있어야 한다. 신 위원장은 “금융안정이 많이 됐다”는 것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 논거는 없다. 진정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면 실세가 말하기 전에 필요성을 설명하고 입장을 표명하면 될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앞으로 출범할 2기 경제팀의 리더십과 일사불란함을 시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 일사불란함이 지시와 무조건적인 이행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곤란하다. 이는 정책 실종일 뿐이다. 부동산 규제 완화 문제를 놓고 더 심도있는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경향_[사설]국민참여재판 가로막는 법무부의 꼼수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은 일반인들이 형사사건 재판의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무죄를 가리는 제도다. 배심원 결정이 구속력은 없지만 일반 국민들의 참여를 통해 형사사법체계의 투명성과 신뢰를 확보하자는 차원이다. 하지만 법무부가 이런 도입 취지와는 전혀 다른 법 개정안을 제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선거사범을 참여재판 대상에서 제외하고 평결 요건을 까다롭게 하자는 게 주된 골자다. 참여재판을 활성화하자는 게 아니라 발목을 잡겠다는 뜻이나 다를 바 없다.

정부 개정안은 참여재판의 요건과 검사의 권한을 강화한 게 특징이다. 선거법과 치료감호법 위반 사건 중 징역 1년 미만이면 참여재판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배심원 과반수로 결정해온 유·무죄 평결도 4분의 3 이상의 찬성을 거쳐야 성립하도록 했다. 참여재판 신청도 지금은 피고인만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검사에게도 자격을 주고 동시에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판사가 배심원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 단순 참고사항을 넘어 배심원 평결이 보다 구속력을 갖도록 보완했다.

하지만 선거사범 배제만 해도 정부의 저의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개정안 논의 과정에 대법원마저 “시민참여를 확대하자는 참여재판 취지를 거스를 수 있다”며 반대한 사안이다. 지난 대선 때 허위사실 공표와 후보자 비방 혐의로 기소된 시인 안도현씨와 <나꼼수> 진행자인 김어준·주진우씨 재판 사례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이들에게는 1심 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의 무죄 평결에도 불구하고 벌금형이 선고됐다가 항소심에서 결국 무죄가 나왔다. 일반 국민들의 법적 판단이 옳았다는 증거다. 정부는 “배심원단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선거재판이 휘둘릴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너무 얕잡아보고 하는 얘기다.

지난 5년간의 시행 결과를 토대로 참여재판제도의 문제점이 있다면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라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검사의 권한 강화만 해도 부작용이 걱정이다.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건의 경우 검찰의 여론재판용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평결 요건을 배심원 4분의 3 이상으로 만든 것도 이참에 참여재판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발상 아닌지 모르겠다. 형사사법체계를 다시 판검사들의 전유물로 돌리겠다는 뜻이라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불신만 초래할 뿐이다. 여야는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이런 꼼수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조선_[사설] 이라크發 유가 충격으로 경기 회복 또 늦어지나

이라크내전(內戰) 격화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어 한국 경제의 회복 전망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지난 주말 두바이유는 배럴당 110.74달러를 기록했다. 두바이 유가가 110달러를 넘어선 것은 작년 9월 이후 처음이다.

이라크는 이슬람 양대 종파(宗派) 중 시아파가 집권하고 있지만 수니파 반군인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가 북부 지역을 장악하고 수도 바그다드를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이 개입하고 중동 지역의 해묵은 수니파·시아파의 종교 갈등이 얽히면서 주변으로 분쟁이 확산될 우려까지 나온다. 이라크 2위 국영 석유 회사가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엑손모빌·BP 같은 다국적 석유 회사들은 이라크에서 인력을 철수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은 올해 유가를 배럴당 103~104달러로 보고 계획을 짰다. 그러나 유가가 이미 110달러를 넘어가고 있어 유가 충격이 이대로 지속되면 그나마 살아나던 경기가 온기(溫氣)를 느낄 사이도 없이 차갑게 변할 수 있다. 국내 기름값이 오르면 가뜩이나 소비가 침체한 상황에서 가계·기업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다.

정부 당국은 이라크 충격파에 대비해 일시적으로 금융을 완화하고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비상 대책을 만들어 놔야 한다. 불안한 것은 정부 경제팀이 교체되는 시기라는 점이다. 경제팀장으로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지명됐지만 인사청문회를 거치려면 최소한 20여일은 걸린다. 컨트롤 타워 공백(空白)이 생기지 않도록 전임·후임 경제팀 사이에 활발한 정책 협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선_[사설] 國政은 비상인데 與 당권 경쟁은 과열되고

새누리당 7·14 전당대회 청년 선거인단이 모집 시작 후 며칠 만에 정원인 1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당대표 경선에 나선 후보들이 무차별 동원 경쟁을 벌인 결과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수십 명이 "당권 주자들은 다음 총선 공천 등을 내세워 의원들을 줄 세우려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유력 당권 주자(走者) 측은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얼굴을 붉혔다.

22일엔 '여론조사 조작' 공방이 벌어졌다. 며칠 전 한 여론조사 기관의 당권 주자 지지도 조사 결과가 보도되자 2위로 거론된 후보 측은 "1위를 차지했다는 후보 측에 유리하게 자료가 조작됐다"고 했다. 여론조사 기관도 "보도 내용이 실제 조사 결과와 다르다"고 밝혔다. 1위에 올랐던 후보 측은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맞섰다. 당권 후보들 전과(前科)를 공개하느니 마느니 입씨름도 벌어지고 있다. 여당 당대표 경선이 초반부터 이 정도로 충돌 양상을 보이는 건 드문 일이다.

정당의 당권 경선은 으레 뜨겁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파열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국정(國政)이 진공 상태에 빠진 상황이다. 잇단 총리 후보자 인사 파동과 그에 따른 새 내각 출범 지연으로 국정이 두 달 가까이 헛돌고 있다. 새 총리 후보의 운명을 둘러싸고는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벌써 며칠째다. 이미 10여일 전 수장(首長) 교체가 확정된 국정원과 7개 부(部)는 아직 후임자들의 인사청문 요청서조차 국회에 제출되지 않아 장기 인사 공백(空白) 사태까지 우려되고 있다. 세월호 사건 국정조사는 시작된 지 20일이 지나도록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다. 명백한 국정 비상(非常)이다.

새누리당은 6·4 지방선거에서 간신히 완패를 면했다. 정치적 자생력이 밑바닥 수준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항상 야당을 크게 앞서던 당 지지도도 계속 떨어져 야당과 간격이 좁혀지고 있다. 여당 안에서조차 다음 총선·대선 위기론이 나올 정도다. 이런 새누리당의 죽기 살기 식 내부 권력투쟁이 어떤 결말로 끝날 것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당은 이름뿐이고 속으로는 분열로 골병이 들 것이다. 모두 자업자득일 뿐이다.

그러나 집권 2년도 안 된 정부가 정권의 중심에서부터 먼저 흔들려 국정을 마비 상태에 빠뜨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경제와 한반도 주변 정세까지 살얼음을 걷고 있는 이때에 집권당 내부가 여야 사이보다 더한 적대감으로 서로 물어뜯게 되면 결국 국민에게까지 피해가 돌아오게 된다. 지금 새누리당에선 국정에 대한 책임 의식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모두 눈앞의 권력에 눈이 멀어 정신 줄을 놓고 있지만, 곧바로 민심의 파도가 밀려들면 승자·패자 가리지 않고 쓸려가버릴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선_[사설] 또 전방 총기 난사, 자식 안심하고 軍 보낼 수 있겠는가

21일 저녁 강원도 고성 동부전선 22사단 GOP(일반전초) 소초에서 경계 근무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가던 임모(22) 병장이 동료 병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소총을 난사해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전역을 3개월 앞두고 있는 임 병장은 사건 후 총기를 휴대한 채 도주했다가 22일 오후 수색 군 병력에 발견돼 밤 9시 현재 대치 중이다. 세상에서 더 귀할 게 없는 아들을 입대시켰다가 졸지에 저세상에 보내고 만 부모들로선 하늘이 두 쪽 난 것이나 다름없다.

대학 1학년을 다니다 2012년 12월 입대한 임 병장은 22사단 배치 후 작년 4월 인성(人性) 검사에서 A급 '특별관리' 대상 관심 사병으로 지정됐다. 작년 11월 2차 인성 검사에선 B급 '중점관리' 판정을 받았지만 12월부터 GOP 근무를 시작했고 올 3월 다시 실시된 인성 검사에서도 B급 판정을 받았다. 비무장지대 남방 철책선 남쪽에 설치된 GOP에선 실탄·수류탄을 휴대한 채 근무하기 때문에 A급 문제 사병은 GOP 근무에서 배제되고 B급 사병은 지휘관 재량에 따라 GOP 근무를 시킬 수 있다.

2011년 경기 강화군 해병 2사단 해안 초소에서 총기 난사로 동료 4명을 죽게 한 김모 상병(당시 19세)도 인성 검사에서 불안·성격장애가 확인돼 '관리 대상'으로 분류된 경우였다. 김 상병은 후임병들로부터도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기수 열외(列外)' 대상이었다. 2005년 6월 경기도 연천 비무장지대 안 최전방 GP(감시소초)에서도 김모 일병(당시 22세)이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해 8명을 숨지게 한 일이 있다.

이번 사건을 일회성·우발적 사건으로 봐선 안 된다. 지난 10년간 있은 세 차례의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은 모두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하는 전방 초소에서 벌어졌다. 전방 초소 사병들은 고립된 집단 생활에서 왕따 같은 정신적 폭력이 가해져도 문제를 밖으로 알리거나 도움을 호소할 방법이 없다. 자칫 자제력을 갖추지 못한 사병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일선 지휘관들이 개별 사병들 동태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돌봐주는 수밖에 없다. 미세하게라도 행동의 이상이 눈에 띄는 사병에 대해서는 전문 상담과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육군에는 A·B·C급으로 나뉘는 '관리 사병'이 2만명쯤 있다고 한다. 일선 지휘관들 중에는 문제 사병들과 수시로 면담하고 성실한 선임병을 전우조(戰友組)로 붙여주면서 자상하게 관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부대 내에서 어떤 병사가 '관리 사병'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되레 조직적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군은 문제 사병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든 제도가 거꾸로 병사들을 궁지로 모는 일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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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_[사설] 쌀 개방 줄다리기 끝내고 후속 대책 서두를 때다

정부가 20일 '쌀 관세화 유예 종료 관련 공청회'에서 국내 쌀 시장을 개방하되 높은 관세(關稅)를 붙이겠다는 정책 방향을 공식화했다. 또 쌀 시장 개방에 따른 농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쌀 재해보험 보장 수준을 현실화하고 국산 쌀과 수입 쌀 혼합 판매 금지, 전업농(專業農) 육성, 미곡종합처리장(RPC) 시설 현대화 같은 후속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필리핀은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쌀 시장 개방 시기를 5년 더 미뤘다. 그러나 필리핀은 개방 시기를 늦춘 대신 큰 대가(代價)를 치르게 됐다.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 물량을 현재 35만t에서 80만5000t으로 2.3배 늘리고, 의무 수입 쌀의 관세율도 40%에서 35%로 낮추기로 약속했다. 육류(肉類)를 비롯한 농축산품에 대한 관세를 크게 내려 다른 농축산 시장 개방을 확대하기로 양보했다.

우리가 필리핀처럼 쌀 시장 개방을 늦춘다면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이 올해 40만8700t에서 94만t까지 늘어나게 된다. 국내 쌀 소비량의 20%를 넘는 물량이다. 지금도 정부 창고에 보관 중인 수입 쌀이 50만t에 이르는 상황에서 의무 수입 물량이 더 늘어나면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공급 과잉으로 쌀값이 폭락해 그 피해가 농민들에게 되돌아가고 정부 재정 부담도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다.

이날 공청회에서 일부 농민단체는 올해 말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종료되더라도 반드시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시장 개방에 반대했다. 그러나 쌀 시장 개방을 몇 년 더 늦춘다고 그때 가서 별다른 해결책이 나올 턱이 없다. 개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계속하기보다는 무엇이 우리 농업과 농민을 살릴 수 있는 길인지 대책 마련에 힘을 쏟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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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_[사설] 아베 정권, 한·일 관계 파탄 내려고 '고노 담화' 재검증했나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내각이 20일 일제(日帝)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의 '고노(河野) 담화'에 대해 재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아베 내각은 2월부터 총리실에 '담화 작성 과정 등에 관한 검토팀'을 만들어 1993년 8월 발표된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 대한 검증 작업을 해왔다. 다른 나라도 아닌 자기 나라 정부가 21년 전 발표한 담화를 따져보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정상(正常) 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아베 내각은 이번 보고서에서 "(고노 담화의) 내용이 타당한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결론지었다. 더 이상의 설명도 없는 딱 한 줄짜리 문장이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의 진짜 의도는 이 한 줄짜리 결론이 아니라 여기에 붙어 있는 21장짜리 '별첨 자료'에 들어있다. 보고서 겉 포장과 속 내용이 다른 것도 상식에 어긋난다.

별첨 보고서는 21년 전 고노 담화에 큰 생채기를 냈다. 일제의 위안부 강제 연행 여부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93년 담화 발표 직후 고노 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그런 사실이 있다고 봐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는 고노 장관이 강제성은 있지만 강제 동원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 입장과 달리 임의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장관의 회견 내용을 이제 와서 부정하는 것이다. 또 1993년 고노 담화 발표 당시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증언을 들었다고 했지만, 이번 보고서는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고노 담화의 원안(原案)이 작성됐다"며 담화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부정했다. 1990년대 말 일본이 마련한 기금에서 61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500만엔 상당의 보상을 받았고, 일부 할머니는 기금 대표가 일본 총리의 사죄 편지를 낭독하자 '소리 내어 울고, 기금 대표를 껴안고 계속 울었다'며 일본이 보상에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강조하는 대목도 나온다.

무엇보다 이번 보고서는 담화 발표를 전후해 한·일 양국 정부 간 외교 채널을 통해 오간 교섭 과정을 상세히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한국 정부가 고노 담화의 핵심 내용들과 관련해 단어 하나하나에까지 일일이 간섭한 것처럼 되어 있다. 또 진상 규명과 후속 조치를 묶는 '패키지딜'이라는 표현까지 들어가 있어 마치 위안부 문제를 놓고 한국이 일본과 정치적 거래를 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고노 담화가 철저한 사실 확인을 거쳐 작성되지 않고 외교 협상에 따라 작성되었고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보상에 노력했다는 게 보고서의 취지다.

한국은 일제의 위안부 강제 동원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당사국이다. 한국인 여성 피해자들은 1990년대 초까지 '성(性) 노예'로 끌려갔던 것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치욕이었기 때문이다. 1964년 한·일 수교 협상에서 이 문제가 다뤄지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1991년 중반부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쏟아졌고, 이듬해 초부터 시작된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집회는 23년째 계속되고 있다. 일본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는 상황에서 고노 담화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이뤄진 한·일 간 외교 접촉을 두고 무슨 흥정이 오간 것처럼 아베 내각은 왜곡했다. 아베 정권이 지금 와서 외교적 접촉을 거쳐 일본 정부가 어쩔 수 없이 고노 담화를 발표한 것처럼 보이려 한다면 일본의 외교적 독자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집권 전부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했고 고노 담화 수정을 여러 차례 공언했다. 아베를 떠받치는 일본 우익들은 고노 담화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정치 협상의 결과물이라며 재검증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2012년 12월 자신의 입으로 '담화 수정'이라는 말을 했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조사 결과 발표 후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지난 4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말을 바꿨던 것과 똑같다.

아베 내각은 이번에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모습을 보였다.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형식적으로 밝혀놓고서는 사실상 고노 담화를 격하(格下)시키는 첨부 자료를 공개하는 꼼수를 쓴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담화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은 이번에 고노 담화만 훼손한 게 아니라 한·일 관계, 더 나아가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틀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은 이번에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야 할 만한 내용도 공개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일본 측은 대화 과정을 일체 비밀에 부칠 것을 먼저 제안하고 한국 측이 이를 받아들였다. 또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의 최종 재가가 있었으며, 특히 김 대통령이 일본 측의 최종안을 평가하고 "한국 정부는 (고노 담화) 문안이 좋다는 취지의 연락이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자기들 편의대로 취사선택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외교를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어디까지 사실인지도 알 수 없는 이런 내용을 들춰내는 나라를 어떻게 신뢰하고 앞으로 안보 문제 등에서 협력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아베 내각은 막판에 발표 수위를 놓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반발과 미국의 공개 경고,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중재로 지난 3월부터 어렵게 시작된 한·미·일 안보 협력이 차질을 빚게 된다면 전적으로 아베 내각의 책임이다. 정부는 미국과 국제사회에 이번 보고서 내용의 문제점과 함께 이 점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한·일 관계가 중대한 전환점에 이른 만큼 정부의 대응 역시 단기 대증(對症) 요법을 넘는 장기적·전략적 대처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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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_[사설] ‘관심대상’ 말년 병장의 참극, 막을 수 없었나

세월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참사가 일어났다. 동부전선 최전방 지오피(GOP·일반전초)에서 병장이 동료 병사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쏴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총기를 난사한 병사는 소총과 실탄을 소지하고 탈영해 수색부대와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군대 내 총기 사건은 거의 주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2011년에는 해병대 2사단 해안초소에서 사건이 일어나 4명이 숨졌다. 또 2005년에는 경기도 연천군 전방초소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장교·병사 8명이 숨졌다. 이 사건 뒤 국방부와 육군은 병영 내 악습을 없애기 위한 병영문화 개선대책을 마련해 시행해 왔지만, 총기 사건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제대를 3개월 남겨둔 말년 병장이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정부와 육군은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 면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일을 낸 임아무개 병장은 지난해 4월 실시한 인성감사에서 에이(A)급 관심병사로 분류됐다고 한다. 에이급(특별관심대상)이면 업무 피로도가 높고 긴장감 속에서 근무하는 지오피 경계부대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임 병장의 경우 지난해 11월 실시한 인성검사에서 비(B)급(중점관리대상)으로 바뀌었다. 그 뒤 지오피 근무에 투입됐다. 인성검사에서 부적절 판정을 받았던 병사가 지오피에 배치된 것이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왜 에이급 관심병사가 비급으로 바뀌었는지, 그 검사에 문제가 없었는지, 비급 병사를 지오피에 투입시킨 지휘관의 결정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군당국은 철저히 밝혀야 할 것이다. 또 최근 병력 부족으로 비급, 시(C)급(기본관리대상)도 지오피 근무에 투입해왔다고 하는데, 관심병사 관리 제도 전반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해당 지오피 부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사고가 났던 곳이다. 그만큼 근무 긴장도가 높다는 얘기다. 게다가 최근에는 무인기 발견과 북한의 위협으로 인한 경계 강화로 지오피 근무 병력이 초긴장 상태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이런 근무 여건이 이번 사건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현재 지오피 병력에 대한 심리상담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군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군당국은 근무기강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병사들이 적절한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병영문화와 근무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이런 참사는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겨레_[사설] 위안부 ‘선전포고’에 ‘총력 반격’ 필요하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20일 내놓은 이른바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의 정식 이름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한 간의 교섭 경위-고노담화 작성에서 아시아여성기금까지’이다. 표지까지 포함해 A4용지로 25장 분량이다. ‘고노담화 작성 과정 등에 관한 검토팀-검토회에서의 검토’로 되어 있는 본문이 2장이고, 고노담화의 작성 경위와 한국에서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사업 경위를 서술한 별첨자료가 목차를 포함해 22장이나 된다.
보고서의 구성만 봐도, 일본 쪽이 이번 검증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뒷부분에 장황하게 붙여놓은 별첨자료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 내용에서도 일본 쪽은 본문에서 ‘이번 검토작업을 통해 열람한 문서 등에 기초하는 한, 그 내용이 타당한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간단하게 언급한 뒤, 첨부자료에서 노태우·김영삼 두 대통령의 발언까지 거론하며 고노담화 작성과 여성기금 설립 및 사업에 한국 쪽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을 부각하려고 용을 썼다. 그것도 자신들이 비밀로 하자고 제의한 외교교섭 내용을 상대의 동의도 없이 자신들한테 유리한 대목만 발췌하면서 말이다. 이 정도면 외교 결례 차원을 넘어 우리나라에 대한 멸시이자 외교적 선전포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위안부 도발에 따라 우리 정부의 대응도 불가피해졌다. 분명한 것은 일본 쪽이 겉으로는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완전히 담화 내용을 훼손한 이 심각한 사태를 성명 발표나 대사 초치 항의 등 형식적인 외교적 항의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구나 일본 외무성은 보고서 발표와 함께 영문판 보고서도 누리집에 띄워놓고 있다. 이런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검증 결과를 가지고 국제 홍보전을 벌이겠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일본 쪽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충실한 정부보고서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학계 및 시민단체까지 아우르는 범국가적인 팀을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번 기회에 1993년 고노담화 발표 이후 국내외에서 발굴된 자료와 연구 성과까지 모두 반영해,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일본군 군대 위안부 백서’를 낸다는 각오로 임하기 바란다. 정부가 그간 오락가락했다면 이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일본의 도발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정부는 중국을 포함한 위안부 피해국들과의 공조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_[사설] 문창극 사퇴보다 중요하고 긴급한 일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거취를 둘러싼 막장 드라마가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귀국하면 가닥이 잡힐 것으로 전망됐지만, 주말이 지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다. ‘문창극 총리’가 안 된다는 데 대해선 지금 누구도 다른 의견이 없을 터이다. 그런데도 임명권자와 후보자가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웃지 못할 모양새는 며칠째 그대로다. 정국의 현안이고 해법이 뻔한데도 이러니, 청와대의 무능과 비겁을 탓하는 것이다.
문 후보자가 자신의 뜻으로 물러나진 않을 것이라는 점은 지난 며칠간 그의 언행으로 분명해졌다. 그는 자신의 거취는 “박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런 태도에 대한 찬반은 둘째 치더라도, 문 후보자에게 총리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 당당하고 옳다. 지금 와서 자진사퇴의 모양을 취한다고 한들 누가 믿겠는가. 그런데도 총리임명동의안의 국회 제출에 대한 재가를 며칠씩 미뤄 자진사퇴를 압박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꼼수’일 뿐이다. 자신의 뜻으로 문 후보자를 지명한 대통령이 정작 부실 검증과 인사 실패의 책임은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정 공백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의 무책임한 태도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지명을 철회하고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 부실 검증과 인사 실패가 문 후보자 한 사람에 그친 것이 아닌 만큼, 다른 개각 내용도 재검토하는 것이 옳다. 그런 연후에 거듭된 인사 참극의 원인과 책임을 따져야 한다.
긴급 수술 대상은 청와대 자신이다. 이번 같은 인사 실패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박 대통령의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인사 스타일에 있다. 공식기구가 방대한 인사 데이터베이스에서 후보군을 추렸던 과거 정부와 달리 박근혜 정부에서는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후보를 정했는지부터 불투명하다. 대부분의 주요 인사는 ‘대통령 1인’의 판단에 기대는 구조라고 한다. 그러니 검증 역시 제대로 될 리 없다. 이번 개각에서도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몇 후보자의 논문 표절을 확인했지만 대통령의 ‘낙점’을 거스르지는 못했다고 한다.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총체적 무력화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서 일을 이 지경에 이르도록 둔 김기춘 비서실장의 문책은 당연하다. 청와대 외부 인사위원회 구성 등 인사 시스템의 전면 정비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또 책임을 회피하려 하다간 더 큰 화를 입게 된다.

한겨레_[사설] 불신만 더욱 키운 아베의 고노담화 검증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20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했던 고노담화 검증 결과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보고하는 형태로 공개했다. 핵심 내용은 담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일 정부 간의 문안 조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양국 정부가 문안 조정 사실을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도 들어 있다. 고노담화의 내용이 사실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외교협상의 결과물이었다는 점을 시사하며 담화의 의미를 깎아내리자는 의도가 짙게 배어 있다. 말장난으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치졸한 처사다.
검증보고서는 몇 가지 점에서 중대한 결격 사유가 있다. 우선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 쪽은 한-일 정부 간에 문안 조정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문안 조정이라기보다 일본 쪽의 일방적인 접촉 요구가 맞다. 고노담화가 발표될 당시 주일한국대사관에서 실무자로 근무했던 조세영 당시 서기관의 증언에 따르면, 담화의 문안을 놓고 협상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우리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었다. 우리의 이런 자세에 일본이 오히려 한국 쪽에 책임 전가를 하지 않겠으니 상담에 응해달라고 매달려 만남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둘째, 한-일 간에 이뤄졌다는 문안 조정의 내용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일본 쪽은 구체적으로 고노담화에 명시된 위안부 모집의 주체와 관련해, 일본 쪽의 원안에는 ‘군 당국의 의향을 받은 업자’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한국 쪽의 주장을 배려해 ‘군 당국의 요청을 받은 업자’라는 표현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우리 외교당국의 말과 전혀 다른 일방적인 주장일뿐더러, 설사 한국 쪽과 문안 협의가 있었다고 해도 일본 정부가 수개월간 피해자 면담 및 자료조사를 통해 자신의 책임으로 발표한 담화 내용을 이제 와서 검증 운운하는 것 자체가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이라는 걸 일본은 알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의 고노담화 검증이 아베 정권이 추진중인 역사수정주의 작업의 하나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한결같이 일본의 패전으로 형성된 질서를 부인하는 작업을 해왔다. 도쿄재판에서 에이(A)급 전범으로 처벌받은 14명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평화헌법을 수정하려는 것과, 일본의 가장 큰 수치인 위안부 문제로부터의 탈출은 한 꾸러미로 엮여 있다.
이렇게 담화 내용을 훼손해놓고도 일본은 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뻔뻔하게 말한다. 이런 일본을 어찌 믿으란 말인가.

한겨레_[사설] 박근혜 대통령, 갈림길에 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21일 귀국한다. 박 대통령은 문창극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재가 여부를 귀국 이후 검토하겠다고 했다. 문 후보자가 완강히 버티고 있지만 여론과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건대 박 대통령이 지명을 강행하기 어렵다는 건 너무도 분명하다.
문제는 귀국길의 박 대통령 앞에 놓인 숙제가 단순히 문 후보자 지명 여부를 훌쩍 넘어섰다는 점이다. ‘6·10 개각 인사 파동’은 가려져 있던 박근혜 정부의 온갖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김기춘 비서실장 등 소수의 측근·실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독선적, 비공식적 국정운영의 폐해다. 균형감각을 최고의 덕목으로 요구하는 총리 자리에 극단적인 우편향 인물을 인선하는 모습에서 생각이 다른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폐쇄적 인사코드의 폐단도 거듭 확인됐다. 치명적 허물조차 얼렁뚱땅 넘기고 보는 검증시스템의 허술함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처럼 국정운영 전반에 걸친 ‘적폐’를 청산하지 않은 채 그저 총리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는 것으로는 성난 민심의 파고를 넘을 수 없다는 게 박 대통령이 맞닥뜨린 문제의 본질이다.
박근혜 정부의 한심한 ‘민낯’을 들여다본 민심은 어느 때보다 성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20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43%, 부정평가는 48%였다. 부정평가가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최고치이며,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넘어선 것도 처음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세월호 침몰 사건 때보다 더 싸늘하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가 여당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은 박 대통령이 직면한 정치적 위기의 실체를 매우 또렷하게 보여준다. 박 대통령의 일방독주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것은 혈기방장한 초선 의원이나 ‘혈통’이 다른 친이계 의원뿐만이 아니다. 이제 친박의 중진들조차 박 대통령의 ‘비정상적 국정운행’에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했다. 당권 주자인 서청원 의원이 문창극 후보자 지명 강행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 대통령이 집권당을 주머니 속의 물건처럼 통제하고 장악하려 들면 여당의 대오이탈은 가속화할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제 갈 길을 가는 순간부터 레임덕이 본격화한다.
박 대통령은 지금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다. 박 대통령은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크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달라’거나 ‘대통령 지키기냐, 버리기냐’ 따위의 ‘비정상적 구호’를 앞세운 끝에 가까스로 얻은 6·4 지방선거 성적표를 진짜 실력으로 착각한 나머지 민심을 잘못 읽은 것이다. 민심의 오독은 통합을 외면한 돌파로 이어졌다. 6·10 개각의 인사 파동은 그 결과물이다. 박 대통령이 또다시 민심에 눈감고 일방적인 국정운영을 답습한다면 국민이 정말로 박 대통령을 버릴지 모른다.

한겨레_[사설] ‘편법 군복무’ 정종섭, 안행부 장관 자격 없다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가 군법무관으로 근무하던 3년9개월 내내 서울 소재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대학원에는 야간과정도 없었고, 정 후보자는 군 위탁교육생이 아니라 군 검찰관과 법무참모 등 정규 보직을 맡은 장교였다. 군인도 허가를 받아 대학원에 다닐 수는 있지만, 정 후보자의 군 인사기록에는 그런 허가나 절차를 거쳤다는 기록은 없다. 분명한 규정위반이다. 더구나 그는 서울 말고 강원도 화천과 경기도 용인에서도 근무했으니, 군법상의 위수지역 이탈까지 의심된다. 특혜와 편법을 거듭하면서 군복무를 대충 때운 게 아니냐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그런 행태가 법집행의 일선 책임을 지는 안전행정부 장관에 어울릴 수는 없다.
정 후보자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집필한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에서 4·3사건을 두고 “공산주의 세력의 무장봉기”라고 표현했다.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이 제주 양민을 학살한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도 4·3사건을 두고 “공산주의자가 일으킨 폭동”이라고 말했다. 역사적 진실을 외면한 채 편협하고 왜곡된 생각에 갇힌 데서 비롯된 망언들이다. 정부는 이미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진상규명 작업을 벌이고 있고, 4월3일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한 터다. 국무총리는 이 법에 따라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맡는 4·3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장이고, 안전행정부 장관도 당연직 위원이다. 안행부는 이 특별법의 주무부처이기도 하다. 그런 자리에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이를 앉힌다면 제주도민과 국민에게 더 깊은 상처를 입히는 것이 된다.
정 후보자는 또 자신의 논문을 베껴 다른 학술지에 싣기도 했다. 1991년과 1993년 사이 그랬고, 2005년과 2006년 사이에도 ‘자기 표절’을 저질렀다. 대표적인 헌법학자로서 윤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물론 위법까지 의심된다. 그런 이를 왜 굳이 안전행정부 장관으로 기용하려 하는가.

한겨레_[특별기고] 갈 길이 멀지만 포기하지 말자 / 홍세화

아! 이 글을 쓰는 중에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한 정부 처분이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 땅에서 노동의 권리는 그렇게 하찮은 것인가. 갈 길이 멀다는 걸 절감한다. 하지만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나만의 일일까, 이제는 신문 지상이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그들의 표정을 보는 일조차 식상하다. 인사청문회 덕일까, 전횡으로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게, 그리고 후보자들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결말지어지는 스펙터클을 멈출 날은 언제쯤 올까?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귀국하기 전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나?”라는 내 물음에 대한, 프랑스의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한 교수의 거침없는 대답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반역사적 역사관을 드러낸 문창극 총리 후보자 때문만이 아니다. 강자의 논리에 기댄 그의 언설은 6만여 조합원 중에서 9명의 해고자가 있다는 이유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로 통보한 박근혜 정부의 막무가내와 힘의 논리만을 따른다는 점에서 같은 뿌리에 있다. 국제적인 보편규범을 모른 체한다고 하더라도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노동 탄압에 앞장서면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운운하니 할 말을 잃게 된다.
우리가 기억투쟁을 게을리해선 안 되는 것은 우리가 쉽게 잊기 때문인데, 후보 시절 “증세하여 재원을 늘리지 않고 어떻게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냐?”라는 문재인 후보의 질문에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 아닙니까?”라고 응수했던, 그리고 당선에 성공한 오늘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선 게 규제에 대한 적개심이다. 그에게 모든 규제가 암 덩어리에 불과하듯이, 이 땅의 사회귀족이 되기 위한 일차적 조건은 절제를 저 멀리 내던지는 데 있다. 탐욕의 추구, 경쟁과 효율을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신의 구현이다. 자본에게 그것이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를 뜻한다면, 개인에게 그것은 “명리는 나에게, 책임과 윤리는 개에게나”라고 할 만하다.
그리하여, 자본의 끝없는 이윤 추구를 위해 구성원들의 안전을 비롯한 공공성의 요구로 사회에 적용돼온 규제를 없애야 하듯이, 입신출세를 목표로 하는 개인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가져야 할 덕목의 하나인 절제를 버려야 한다. 2기 박근혜 정부를 구성할 새 총리와 교육부 장관, 안전행정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교육수석 내정자를 비롯한 인물들에게서 예외 없이 드러나는 뻔뻔스러움이나 구림은 우리 사회에서 절제의 미덕이 사라졌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실상, 그들이 부끄러움 없이 웃는 표정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두려운 진실을, 또 이 땅에 사회귀족 체제가 그만큼 견고해졌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들의 특징은 사회 각 부문에서 군림하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점이다.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려도 계속 찍어주고 지지해주고 선망하고 따르는데 왜 그런 거추장스런 의무를 스스로 지겠는가.
동양에서 미덕의 하나로 존중되었던 절제는 서양에서도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강조되어 왔다. 이 절제는 세 방향에서 작용한다. 각자 내면의 성찰에서 비롯되는 자기절제, 상호 견제와 비판에 의해 작용하는 절제, 그리고 민중의 비판력으로부터 작용하는 절제가 그것이다. 가장 고급한 자기절제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령 언론이 정치권력을 비판하거나 학문이 언론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행위자들에게 절제하도록 작용하는 것이 횡적 견제에 의한 절제라면, 투표 등의 행위를 통하여 당선 또는 낙선시킴으로써 위정자들에게 절제하도록 작용하는 것을 민중의 비판력에 의한 절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 방향의 절제는 따로 작용한다기보다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작용한다. “국민의 수준을 뛰어넘는 정부 없다”는 토크빌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민중의 비판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여기서도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기계적으로 따르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가장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경구는 그대로 적용된다. 대중의 무지와 무관심이 결코 중립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거나 가로채고 연구비를 착복하는 ‘교육’계 인사들이 횡행하는 현실은 약자의 몫을 빼앗는 갑을관계가 어디까지 왔는지 허탈감마저 안겨준다. 여기서 우리가 함께 짚어야 할 점은 그들에게서 절제를 기대할 수 없는 게 그들만의 탓이라기보다 사회부문 간 횡적 견제와 특히 민중의 비판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서 온 귀결이라는 사실이다. 행정, 사법, 언론, 기업, 학문, 종교 사이에 이루어져야 할 횡적 견제는 사회귀족들 사이의 유착과, 지연, 학연, 혈연 등의 연고주의로 힘을 잃은 지 오래다. 상호 비판이나 견제가 이루어지는 대신 부패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자신처럼 부패한 사람과 “우리가 남이가”라면서 동패를 이루면서 청렴한 사람을 멀리하거나 조직에서 내쫓는 데 힘을 모은다.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이 적용되는 현실은 그 무엇보다 민중의 비판력이 취약하다는 서글픈 진실의 반영물인 것이다. 권력이든 자본이든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을 때(루소가 일찍이 말했듯이, 민중은 4년이나 5년 중에 투표하는 하루만 자유롭다), 없는 사람이 기득권 세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오히려 걱정해준다면 왜 그들이 절제의 미덕을 가지겠는가.
한편, 우리는 염치나 절제 없이 명리만을 좇은 인물을 비난할 줄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처럼 되기를 스스로 거부한 것일까, 아니면 능력이 부족해 그들처럼 되지 못한 것일까? 사회 안에 절제의 미덕이 살아 숨쉬지 않을 때, 나만큼은 절제를 지킬 것이라는 확신은 대개 절제할 거리나 기회조차 없는 사람의 몫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관건은 사회 환경과 세력관계에 있다. 그것을 규정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의식이며,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형성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교육이다. 이 점을 주류 지배세력이 더 잘 알고 있다. 조선, 동아를 비롯한 수구언론이 전교조를 부정하고 붉은 색깔을 입혀 깎아내리는 데 부심해온 점이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에 큰일이나 난 듯이 호들갑을 떨며 불안감을 부추기는 것은 세력관계 형성에서 교육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며, 지금까지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던 세력관계에 작은 변화라도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 때문이다.
아! 이 글을 쓰는 중에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한 정부의 처분이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취소 소송에서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률이 아닌 시행령만으로 내린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하다니… 이 땅에서 노동의 권리는 그렇게 하찮은 것인가.
갈 길이 멀다는 걸 다시금 절감한다. 하지만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자칫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의 하나는 개탄하는 것으로 자신의 윤리적 우월감을 확인하면서 자기만족에 머무르는 데 있다. 실상 세상이 혐오스럽다고 개탄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개탄을 넘어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분노를 넘어 참여하고 연대하고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에 설득하기 어렵고 그래서 모두 설득하기를 포기한 채 살아간다면,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다시금 되새기자.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2014년 6월 19일 목요일

중앙_[사설] 전교조는 판결 존중하고, 정부는 후속 조치를

전교조가 합법적인 지위를 얻은 지 14년 만에 법외노조로 전락하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가 어제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제기한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 효과는 당장 나타난다. 이번 판결로 전교조는 형사상 유죄판결을 받아 해직된 교사 9명을 내보내고 노조 설립 신고를 다시 하지 않는 이상 그동안 교원노조로서 누려 온 법적 지위를 모두 잃게 됐다. 시·도교육청은 전교조와 더 이상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을 맺거나 사무실 임대료를 줄 근거가 사라졌다. 노조 전임자로 교실을 떠난 조합원 72명도 다음 달 3일까지 즉시 학교로 복귀해야 한다.

 현행 교원노조법 조항만 보자면 해직 교사를 노조원으로 인정한 전교조 규약은 교원노조법 2조를 위반한 게 분명하다. 근로자가 아닌 사람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게 해당 조항이다. 고용부도 이를 근거로 해직 교사를 노조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에 대해 여러 차례 시정명령을 내렸고, 이를 거부하는 전교조에 대해 법외노조라고 통보했으니 적법한 행정처분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 전교조가 “ 사법부는 스스로 행정부의 시녀임을 고백했다”고 비난 성명을 낸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법부는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곳이며, 이런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전교조가 아이들에게 준법정신을 가르치면서 법 위에 올라설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전교조는 일단 판결에 승복해 노조 전임자를 전원 학교로 돌려보내고,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예산 지원을 자발적으로 거절하는 게 마땅하다.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된 친전교조·진보교육감 13명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전교조를 임의단체로 대우한다면 이를 막을 순 없겠으나 노조가 아닌 전교조에 다른 명목으로 사무실 운영비 등을 지급하거나 전교조를 정책 파트너로 삼아 교육정책을 결정해선 곤란하다. 법적 지위를 상실한 전교조와 13명의 진보교육감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와 갈등을 빚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사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교원노조법의 조항이 노조의 단결권 등을 보장한 헌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였다. 국가인권위원회나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거듭되는 권고나 선진국의 법률을 검토해 볼 때 노조의 조합원 자격은 법률이 아니라 노조가 자체적으로 결정하며, 해직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교원노조법의 조합원 자격 제한 조항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산별 노조에선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판례도 있지 않나. 법원의 판결은 분명히 존중되어야 하나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조항은 손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후속 조치를 주목한다.